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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말씀
2024.08.07 16:02

택정하심 로마서 1장 1절

Y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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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로마서 11절의 내용 가운데 남아 있는 부분들을 살펴보려고 합니다. 로마서 11절을 보면 [ 1:1] 예수 그리스도의 종 바울은 사도로 부르심을 받아 하나님의 복음을 위하여 택정함을 입었으니 바울은 자신을 소개할 때에 예수 그리스도의 종 그리고 사도와 하나님의 복음을 위하여 택정하심을 입었다고 합니다. 바울이 이러한 말을 할 때에 이 말속에 담겨진 의미와 내용이 무엇인가를 살펴보아야 한다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왜냐하면 이 표현은 단순한 인사를 건네는 차원에서의 의미 없는 수사적 표현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앞서 바울이 얼마나 그리스도를 높이고 있는가 하는가에 대하여 살펴보았습니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의 노예라는 사실을 마음 깊이 고백하고 있으며 그것을 자랑스러워 하고 있는 것입니다. 또한 그는 자신이 사도로 부르심을 받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지난 시간에 사도에 대하여 살펴보았습니다. 오늘은 그의 사도됨에 대하여 좀더 살펴보겠습니다. 사도란 보냄을 받은 자라는 뜻을 가지고 있지만 스스로 보냄을 받았다는 생각을 가지고 자신을 사도라고 칭할 수는 없습니다. 사도는 반드시 부활의 주님을 만나야 하는 것입니다. 이에 대하여 바울은 자신이 부활의 주님을 만났음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사도행전 227-8절을 보면 [ 22:7-8] 내가 땅에 엎드러져 들으니 소리 있어 이르되 사울아 사울아 네가 왜 나를 박해하느냐 하시거늘 내가 대답하되 주님 누구시니이까 하니 이르시되 나는 네가 박해하는 나사렛 예수라 하시더라 그는 다메섹으로 가는 도중에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게 됩니다. 바울은 부활하신 주님을 만난 것뿐만 아니라 주님으로부터 보내심을 받게 되는데 사도행전 2616-17절을 보면 [ 26:16-17] 일어나 너의 발로 서라 내가 네게 나타난 것은 곧 네가 나를 본 일과 장차 내가 네게 나타날 일에 너로 종과 증인을 삼으려 함이니 이스라엘과 이방인들에게서 내가 너를 구원하여 그들에게 보내어 부활하신 주님께서 그에게 나타나신 것은 네가 나를 본 일과 장차 내가 네게 나타날 일에 너로 종과 증인을 삼으려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을 그를 이스라엘과 이방인들에게 보내신다는 것입니다. 그는 부활의 주님을 보았을 뿐만 아니라 그 주님으로부터 보내심을 받은 것입니다.

        이 말씀에서 우리는 바울이 자신을 사도로 부르심을 받았다고 할 때에 그가 의도하고 있는 것이 로마에 있는 교회에 쓰고 있는 이 편지는 바로 그가 주님을 본 것과 장차 그에게 나타날 일에 대하여 증거하시기 위한 목적 가운데 쓰여지고 있음을 말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즉 그가 기록하여 보내는 이 편지는 주님께서 말씀하시며, 가르치신 것임을 의도적으로 말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바울의 증거들은 다른 그의 서신서들에서도 발견되는데 갈라디아서 111-12절을 보면 [ 1:11-12]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내가 전한 복음은 사람의 뜻을 따라 된 것이 아니니라 이는 내가 사람에게서 받은 것도 아니요 배운 것도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로 말미암은 것이라 바울은 갈라디아에 있는 교인들에게 자신이 전한 복음의 출처에 대하여 밝히고 있는데 그가 전한 복음은 사람의 뜻을 따라 된 것이 아니라고 합니다. 그가 전한 복음은 그가 구약을 깊이 연구하고 또한 예수님에 대하여 깊이 연구한 결과 얻게된 지식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는 연구와 탐구를 통하여 기독교의 복음이라는 사상 체계를 만들어 낸 것이 아닙니다. 바울이 사람의 뜻을 따라 된 것이 아니라는 의미가 바로 이것입니다. 그가 전한 복음은 그에게서 난 것이 아닙니다. 사람이 기원이 아니고 사람에 의해서 고안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그는 내가 사람에게서 받은 것도 아니고 배운 것도 아니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는 그가 전한 복음을 베드로나 요한으로부터 가르침을 받은 것이 아닙니다. 바나바나 또한 그에게 주님의 말씀을 전하여 준 아나냐로부터 배운 것도 아닙니다. 그가 전한 복음의 출처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로부터 입니다. 이것이 중요합니다. 그는 로마에 있는 성도들에게 그가 지금 그들에게 전하는 복음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로부터 그가 받은 복음이라는 것을 말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그가 전하는 복음이 누구의 것인지를 증거하는 것입니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고 있으며, 그렇기에 이 서신서는 주님께서 그에게 주신 전하라고 주신 말씀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성경을 읽을 때에 주님께서 나에게 전하기 위하여 주신 말씀이라는 사실을 생각하며, 읽고 듣고, 배워야 함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이것은 사람으로부터 온 가르침이 아닙니다. 고린도전서 1123절을 보면 [고전 11:23] 내가 너희에게 전한 것은 주께 받은 것이니 곧 주 예수께서 잡히시던 밤에 떡을 가지사 바울이 자신이 전한 것은 누구에게 받은 것이라고 합니까? 바로 주님께로 부터 받은 것이라고 합니다.

        바울의 사도성에 대한 증거들이 성경에 등장하는 이유와 그가 자신을 그리스도에 의해서 보내심을 받은 사도라고 증거하는 것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요한계시록 2:2절을 보면 [ 2:2] 내가 네 행위와 수고와 네 인내를 알고 또 악한 자들을 용납하지 아니한 것과 자칭 사도라 하되 아닌 자들을 시험하여 그의 거짓된 것을 네가 드러낸 것과 초대 교회때에 교회들을 힘들게 하는 문제들 가운데 하나가 바로 자칭 사도라 하는 자들이 발생한 것입니다. 그들은 스스로 사도라 부르며 자기 권위를 세우며, 그것으로 거짓된 것을 가르쳐 교회를 어지럽게 하며, 교인들은 미혹하는 일들을 한 것입니다. 잘못된 교리와 잘못된 가르침으로 사람들은 믿음에서 멀어지게 하며, 교회 안에 악한 것들과 부패하며, 불의한 것들이 용납되게 하여 더럽혀지게 하는 것입니다.

        지금도 이렇게 스스로 사도라고 부르는 자들이 있습니다. 자신들은 계시를 받아 사도가 되었으며, 사도적 권위를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어떤 교회들은 자신들이 사도적 권위를 계승 받은 교회라고 소개하기도 합니다. 이 모든 것들은 거짓이며, 속임입니다. 이 가운데는 오래전부터 베드로의 사도적 계승을 받은 자라고 말하는 있는데 바로 로마 카톨릭 교회입니다. 교황이 바로 베드로의 사도적 계승자라는 것입니다. 성경에서는 사도가 계승된 적이 없을 뿐만 아니라 사도들이 죽은 후에 아무도 사도직을 계승 받은 사도라고 주장한 이들이 없습니다. 이유는 사도직은 계승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당시에 주님의 복음의 계시를 위하여 세워진 직분이기 때문입니다.

        골로새서 11절을 보면 [ 1:1]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 된 바울과 형제 디모데는 여기서 우리는 분명한 차이점이 있다는 것을 보게 되는데 바울은 자신을 하나님의 뜻을 따라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로 부르심을 받았다고 합니다. 그러나 동시에 디모데는 형제라고 칭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 구절과 빌립보서 11절을 보면 [ 1:1] 그리스도 예수의 종 바울과 디모데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빌립보에 사는 모든 성도와 또한 감독들과 집사들에게 편지하노니 이 구절에서 바울은 자신과 디모데를 가리켜 그리스도 예수의 종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 두 구절에서 바울은 자신은 사도이지만 디모데는 사도가 아니며, 그러나 둘은 동시에 모두 그리스도 예수의 종이라는 것입니다. 바울은 사도에 대하여 구별하고 있으며, 이것은 계승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이러한 바울의 사도로 부르심을 받은 것에 대한 중요성은 로마서의 중요성에 대한 이해로 바울은 로마에 있는 교회에 복음을 전하려고 이 서신서를 쓰는 이것은 바로 그리스도로부터 받은 계시에 의한 것임을 강조하기 위함 입니다. 또한 그가 사도로 부르심을 받은 것은 바로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기 위함이라는 것입니다.

        다시 로마서 11절을 보면 [ 1:1] 예수 그리스도의 종 바울은 사도로 부르심을 받아 하나님의 복음을 위하여 택정함을 입었으니 여기서 바울이 하나님의 복음을 위하여 택정하심을 입었다고 자신을 소개하는 것에 어떠한 목적이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계획없이 일을 시작하시는 분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은 즉흥적이거나, 충동에 의해서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이 말씀에서 하나님이 어떻게 일하시며, 그분이 하시는 일의 방식과 방법이 무엇인지를 말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의 관심은 하나님이며, 그분은 자신이 전하시는 복음에 대하여 오랫동안 준비하셨고, 계획하셨으며, 그것을 이루셨고 나타내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바울을 택정하셨는데 이 택정이란 구별하셨다는 것입니다. 언제 그렇게 하신 것입니까? 우리는 하나님께서 그를 하나님의 복음을 위하여 택하시고 구별하신 것이 사도행전 9장에서 그가 다메섹으로 가는 도중에 일어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바울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복음을 위하여 택하시고 구별하신 것이 이미 그 전부터라고 합니다. 갈라디아서 115-16절을 보면 [ 1:15-16] 그러나 내 어머니의 태로부터 나를 택정하시고 그의 은혜로 나를 부르신 이가 그의 아들을 이방에 전하기 위하여 그를 내 속에 나타내시기를 기뻐하셨을 때에 내가 곧 혈육과 의논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은 바울이 그의 어머니의 태에 있을 때부터 그를 하나님의 복음을 위하여 택정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때부터 그를 예수 그리스도를 이방에 전하기 위하여 정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를 다소에서 나게 하셨고, 유대인으로 그리고 가말리엘 문하에서 정통 유대교를 배우게 하셨고, 헬라 문화에 익숙하게 하셨으며, 로마 시민권을 가지게 하셨습니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계획의 일부분이라는 것입니다. 어떻게 하다 보니까 그가 하나님의 복음을 위하여 택정하심을 받아야 할 사람이 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께서 정하신 때가 되실 때까지 기다리셨습니다. 그가 스데반을 죽이는 데에 동의하며, 참여할 때에도 하나님께서는 그를 내버려 두셨습니다. 그가 살기 등등하여 그리스도인들을 잡아 가두는 일을 할 때에도 하나님은 그를 내버려 두셨습니다. 우리는 왜 하나님께서 스데반의 죽을 때에 회심하게 하지 않았는지, 그리스도인들을 박해 할 때에 그를 막으시고, 변화시키지 않으셨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하나님의 뜻과 계획에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완전히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여기에 중요한 것은 바울은 스스로 하나님을 믿은 것도 아니며, 스스로 자신을 돌이켜 그리스도 예수 앞으로 나온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를 만나셨고, 그를 변화시켜서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는 자로 택하셨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때에 우리를 부르셨고, 구원하여 주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바울을 택정하셨듯이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택정하여 주셨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모든 삶은 우연이 아니며, 지금까지의 우리의 삶도 우연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미 우리를 창세전에 정하셨습니다. 그분의 자녀로 정하신 것입니다. 바울은 로마서 829절에서 [ 8:29]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을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을 미리 정하셨다고 합니다. 여기서 하나님이 미리 아신 이라는 표현은 창세전을 가리키는 것으로 이미 창세 전에 하나님의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시기 위하여 우리를 미리 정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은 것이 아닙니다. 우리 개개인은 우리의 인생 가운데 어느 시점에서 하나님을 만났고 그분의 부르심을 받아 자녀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그때 우리를 구원하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계획하심이 그때에 우리에게 나타난 것입니다. 그분은 우리를 미리 아셨고 정하신 것입니다. 이 말은 창세 전에 이미 택하심을 받았으니 아무렇게나 살아도 된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우리를 창세전에 택하시고 우리의 어머니의 뱃속에 있을 때에 이미 우리를 아신 것은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시기 위함 입니다. 이 일을 위해 우리는 택하심을 받은 것입니다. 그렇기에 이 일을 하신 하나님은 놀라운 분이시며, 경의로운 분이신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하나님에 의해 택하심을 받은 자들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구별하신 것입니다. 세상으로부터 구별해 내셨으며, 악한 것들에게 구별하여 내셨으며, 멸망 당할 것들로부터 우리를 구별해 내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우리를 구별하신 분의 뜻을 쫓아 구별된 삶을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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