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 말씀 영상 https://youtube.com/live/Qpm6_vSfHjM
사람들이 종종 오해하는 것이 초대교회때로 돌아가야 한다 라고 합니다
초대 교회 때로 돌아 가는 것이 오순절의 성령 강림으로 베드로의 설교를 통하여 교회가 부흥되고 서로 떡을 떼며 거룩한 교제가 있는 교회 그래서
참된 교회의 모습이라고 생각들을 합니다. 저는 그렇게 보지 않습니다.
초대 교회 때에 교회가 모든 시대의 교회의 모범이 되는가 하는 부분에서 저는 그렇게 보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서신서들을 통하여 우리가 보게 되는 것들은 각종 이단들과 거짓된 복음들이 난무하여 사람들을 미혹하며, 믿음에서 파선하는 일들이 많았다는 것입니다. 이미 사단에게 내어
준 자들도 많았고 사도들이 가르치지 않은 것들을 가르치며, 교회를 이용하여 먹고 사는 자들이 비일비재
하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서신서들은 계속해서 경고와 책망으로 이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신약 성경 중에 초기에 쓰여진 데살로니가서의 경우 데살로니가 후서 2장
3절을 보면 [살후 2:3] 누가 어떻게 하여도 너희가 미혹되지 말라 먼저 배교하는
일이 있고 저 불법의 사람 곧 멸망의 아들이 나타나기 전에는 그 날이 이르지 아니하리니 Don't let
anyone deceive you in any way, for that day will not come until the rebellion
occurs and the man of lawlessness is revealed, the man doomed to destruction. 누가 어떻게 하여도 너희가 미혹되지 말라고 합니다. 이 말은 많은
이들이 어떻게 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을 미혹하게 하는 일들이 비일 비재 하였습니다. 히브리서는 시험으로 인하여 배교하는 이들을 위하여 경고하며 위로하기 위하여 쓰여졌습니다.
초대 교회시대에 교회는 진리에 대하여 혼란스러웠고, 거짓 사도와 거짓
선생들로 인하여 진리가 위협을 받던 때입니다. 지금과 별반 다르지 않다는 것입니다. 이에 대하여 에베소서 4장 14절을
보면 [엡 4:14] 이는 우리가 이제부터 어린 아이가 되지 아니하여 사람의 속임수와 간사한 유혹에 빠져 온갖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 Then we will no longer be infants, tossed
back and forth by the waves, and blown here and there by every wind of teaching
and by the cunning and craftiness of people in their deceitful scheming. 이는
우리가 이제부터 어린 아이가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이들은 지금까지 어린 아이와
같았다는 것입니다. 또한 어린 아이의 특징을 가지고 있는데 사람의 속임수와 간사한 유혹에 빠지며 온갖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하고 있는 상태인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기 위해서 노력해야 하는 일이 있는데
그 앞절을 보면 에베소서 4장 13절을 보면 [엡
4:13]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 until we all reach unity in the faith and in the
knowledge of the Son of God and become mature, attaining to the whole measure
of the fullness of Christ.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온전한 사람이 되는가 하면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 즉
성경의 모든 진리를 통하여 온전한 사람을 이루게 되며, 또한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자라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됨으로 어린 아이가 되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내용들은 우리가 해야 하는 중요한 일들이며, 우리 자신과 우리의 영혼을 지키기 위한 노력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만으로 족하지 않기에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지키도록 친히 우리 몸을 무장할 장비들을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신자들에게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주시는데 에베소서 6장 11절을
보면 [엡 6:11] 마귀의 간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입으라
Put on the full armor of God, so that you can take your stand against the
devil's schemes. 이것을 가지고 다니라는 것이 아니라 입으라 취하라는
명령 속에서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소유만 한 상태가 아닌 이것을 입음으로 이것을 통하여 영혼이 보호 받게 하라는 것입니다. 작년에 혈액 암 판정을 받은 분이 계시는데 이분이 혈액암 판정을 받게 된 것은 목 뒤에 혹 같은 것이 나면서
검사를 받다가 혈액 암이라는 진단을 받았습니다. 그가 혈액 암에 걸린 이유는 지하철 정비 공장에서 일하면서
입니다. 오래전부터 지하철 정비사들은 이러한 위험에 노출이 될 수 밖에 없었는데 오래전에는 누구도 화학
약품을 사용할 때에 어떠한 보호 장비를 갖추어야 하는지 아는 사람이 없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모두다
화학 약품을 사용하면서 피부를 그대로 노출 시킨 결과 혈액암에 걸린 사람들이 발생하게 된 것입니다. 만일
당시에 사람들이 또는 관계자들이 화학 약품이 신체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하여 주의 하여 장비를 제대로 갖추고 일하였더라면 이러한 일을 미연에
방지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영혼을 위하여 특별한 보호 장비를 마련하시고 그것을
자신의 자녀들에게 주어 구원하신 영혼을 보호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전신 갑주입니다. 이 하나님의 전신 갑주에 대한 전체적인 내용은 모두 여섯 개로 구성이 되어 있으며, 이것들에 대한 개론적인 것을 말씀을 드리면 에베소서 6장 14-17절을 보면 [엡 6:14-17] 그런즉 서서 진리로 너희 허리 띠를 띠고 의의
호심경을 붙이고 평안의 복음이 준비한 것으로 신을 신고 모든 것 위에 믿음의 방패를 가지고 이로써 능히 악한 자의 모든 불화살을 소멸하고 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 Stand firm then, with the belt of
truth buckled around your waist, with the breastplate of righteousness in
place, and with your feet fitted with the readiness that comes from the gospel
of peace. In addition to all this, take up the shield of faith, with which you
can extinguish all the flaming arrows of the evil one. Take the helmet of
salvation and the sword of the Spirit, which is the word of God. 진리로 허리띠를 띠어야 하며, 의의 흉배를 붙이며, 평안의 복음의 예비한 것으로 신을 신고, 믿음의 방패를 가지고 구원의
투구를 쓰고 성령의 검을 사용해야 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전신 갑주는 이렇게 여섯 개의 중요한 부분으로 구성이 되어
있습니다. 이렇게 여섯 개의 중요한 부분으로 구성된 것을 주의해서 살펴보면 이것들이 세 개씩 두 달락으로
나뉘어 질 수 있음을 보게 되는데 이 구분의 기본원리는 처음 세 개는 실제로 몸에 고정된 부분입니다. 예를
들면 허리띠를 띠는 것은 실제로 그 몸의 위치에 고정시키는 것입니다. 흉배 역시 그렇습니다. 이것들은 헐렁하게 달아 메거나 느슨하게 몸에 붙여서는 안됩니다. 이것들은
몸에 단단히 매거나 고정시켜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신도 견고하게 발에 고정시켜야 합니다. 무장에서 있어서 이 세 부분은 일반적으로 이러한 특징을 가집니다. 그러나 나머지 세 부분을 보면 조금 다름을 보게 되는데 방패를 볼 때는
분명히 그것은 몸에 고정된 어떤 것으로 취급되지 않습니다. 투구 역시 마찬가지 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용어로서 투구 즉 중세시대에 쓴 투구와 같은 것으로 투구를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사도시대에 쓴 투구는
사람이 그의 머리 위에 올려 놓은 금속조각이 있는 가죽 모자로 만들어졌습니다. 이것은 고정된 것이 아닙니다. 이 부착은 처음 세부분의 경우와 같이 그렇게 견고한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검은 분명히 몸에 고정되거나 부착된 것이 아닙니다. 이제 이러한 내용들의 의미들을 하나씩 상세히 살펴보겠습니다. 이것들을 상세히 살피는 것이 필요성은 바울이 하나님의 전신 갑주에 대하여
말할 때에 이것은 성령의 영감 속에서 하나님이 주신 말씀에 근거한 것으로 이 모든 것의 언급의 순서는 매우 주요하며 큰 의미가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바울은 이것들을 기록할 때에 머리에 떠오르거나 군인들을 보았을 때 우연한 방법에 의하여 마음내키는 대로 이
다른 용어들을 기록한 것이 아닙니다. 그는 분명하고 정당한 논리를 내세우고 있습니다. 그 첫번째가 바로 진리로 너의 허리띠를 띠라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6장 14절을
보면 [엡 6:14] 그런즉 서서 진리로 너희 허리 띠를 띠고 의의 호심경을 붙이고
Stand firm then, with the belt of truth buckled around your waist, with the
breastplate of righteousness in place, 이 말씀에서 우리는 첫번째로 진리로 너의 허리띠를 띠라
라는 말씀을 듣게 됩니다. 이 허리띠는 허리라고 하는 신체 위에 고정되어져야 합니다. 띠는 종종 장식을 위해서 그리고 보이기 위해서 매어집니다. 그러나
이 진리의 띠는 단지 장식을 위해서 매어지는 것이 아님을 분명히 해야 합니다. 왜 이것이 첫번째로 오는가
하면 허리띠는 그 기능 때문에 지극히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바울 시대에 옷에 대하여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바울은 그것을 염두에 두고 있습니다. 당시의 옷들은 길고 헐렁한
옷, 긴 옷을 입는 것이 사람들의 풍습이었던 그 자신의 시대 혹은 그의 세대를 위해서 쓰고 있다는 것입니다. 허리띠의 용도는 헐렁한 옷을 한데 모아 결합시키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앉아서 긴장을 풀 때에만 그의 허리띠를 풀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활동하기를 원하는 순간 그는 그의 옷을
한데 모아서 허리띠로 그 옷들을 고정시켰습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축 늘어진 옷이 그의 행동을 방해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특히 전쟁시에 있어서 긴 옷은 전쟁에 여간 방해가 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전쟁시에 허리띠를 매는 것은 그 자체로 기운이 나게 하며 행동에 안정감을 주며 행동의 준비가 됩니다. 또한 무엇 보다 중요한 것은 허리띠를 매는 것은 군인들에게 행동의 자유를 준다는 사실입니다. 그럼으로 허리띠를 띤다는 것은 우리는 행동할 준비를 해야 하며 일어날지도 모르는 우발적인 사건에 대해 예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바울이 영적 의미에서 허리띠를 설명하는 내용에 대하여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바울은 진리로 너희 허리 띠를 띠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진리가 무엇인지를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일반적으로 진리 라고 생각할 때 성령의 검이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에 진리는 다른 것이 아닌가 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바울이 의도하는 것은 진리란
하나님의 말씀 즉 성경이라고 분명히 말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성령의 검 즉 하나님의 말씀과 어떻게
다른가 하는 부분에 대해서 생각해야 합니다. 진리가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하는 것과 성령의 검 또한 하나님의 말씀으로
두 개가 중복되는 것이 아닌가 라는 의문에 대하여 전체로서의 진리와 그 분리된 부분으로서의 진리 상이가 다르다는 것을 말씀드립니다. 예를 들어 설명을 드리면 예수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시기 전에 광야에서 사단에게 시험을 받으셨습니다. 그때 주님께서는 사단의 세 개의 시험에 대하여 각각 성경에 이렇게 쓰여 있다 라고 말하심으로 사단의 시험을
이기셨습니다. 사단의 시험에서 주님은 성경의 검 즉 하나님의 말씀을 사용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이 실제적으로 말한 것은 특별한 성경을 인용한 것입니다. 이것은
성경의 전 진리에 대해서 즉 구원의 교리에 관한한 전 진리에 대하여 이야기하는 것과는 매우 다릅니다. 그
진리의 허리띠란 모든 진리 즉 성경 전체의 모든 진리 그 자체를 나타내는 것이며, 성령의 검으로서 하나님의
말씀은 특별한 성경 말씀을 가리키는 것으로 이해하는 것이 옳습니다. 이에 대하여 성경 말씀들을 통하여 확인하도록 하겠습니다 요한복음 8장 31-32절을 보면 [요 8:31-32] 그러므로 예수께서 자기를
믿은 유대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으로 내 제자가 되고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To the Jews who had believed him, Jesus said, "If you hold to
my teaching, you are really my disciples. Then you will know the truth, and the
truth will set you free." 예수님께서는 자기를 믿는 유대인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너희나 내 말에 거하면
참으로 내 제자가 되고 진리를 알게 되며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할 것이라고 합니다. 주님께서는 진리를
아는 것에 대하여 말씀하고 있습니다. 다른 말로 하면 그는 전체로서 즉 기독교의 교리 전체로서 진리의
충분한 요약으로서 그것에 관해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는 것은 사단으로
부터의 자유입니다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시고 계신 것입니다. 너희가 만약 내 말에 즉 진리에 관한 나의
교훈에 거한다면 그때에 너희는 참 내 제가가 될 것이며, 너희가 계속 거할 그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할 것이다 라는 것입니다 즉 이것을 에베소서 6장 14절에
적용하면 사단과 그의 궤계로 부터 자유롭게 되기 위하여 너희는 진리의 허리띠를 매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또한 요한복음 17장 17절을 보면 [요 17:17] 그들을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 Sanctify them by the truth; your word is truth. 주님께서는 그들을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라고 말씀하시며,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라고 하십니다. 거룩은 진리에 의하여 존재합니다만 아버지의 말씀 즉 하나님의 말씀에 의하여
역사합니다. 에베소서 6장에서 취급하고 있는 것은 거룩입니다. 그러므로 에베소서 6장 14절의
진리는 요한복음 8장과 17장에 있는 것과 같은 의미인 것입니다. 여기에 더하여 좀더 실제적인 의미를 살펴보면 베드로전서 1장 13절을 보면 [벧전 1:13] 그러므로 너희 마음의 허리를
동이고 근신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너희에게 가져다 주실 은혜를 온전히 바랄지어다
Therefore, with minds that are alert and fully sober, set your hope on the
grace to be brought to you when Jesus Christ is revealed at his coming. 베드로는
그러므로 너희 마음의 허리를 동이고 근신하라고 합니다. 여기서 마음은 진리와 신앙과 관련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베드로는 마치 이와 같이 이야기 하는 것과 같습니다. 너희는
진리의 허리띠로 허리를 매라 라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허리띠라는 단어가 에베소서 6장 14절에서 사용된 단어와 같기 때문입니다. 바울 또한 허리 띠를 단순히
물질적 허리 띠를 의미하지 않고 있으며 오히려 마음에 대해서 생각하고 있습니다. 즉 마음의 허리 띠인
것입니다. 마음은 사람 안에 있는 가장 위대한 것입니다. 누군가 성공적으로 싸우려 한다면 그의 마음이 계몽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우리의 싸움이 육체의 싸움이 아니라 영적인 싸움이라고 합니다. 이 영적 싸움에 있어서 마음은 중요한
싸움을 위한 요소가 됩니다. 마음에 모든 진리를 담고 그것으로 띠를 띠고 있어야 싸움에서 승리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야 우리의 모든 생각은 그 진리에 의해서 지배되고,
다스려지며, 원수를 대적할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진리로 허리 띠를 매어 준비해야 하는 것입니다. 결국 진리의 띠를 띠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모든 성경의 말씀들에 대한 앎이 있어야 하며, 이것들로 마음을 채워야 하는 것입니다. 거추장스러운 것들에 의해서 걸려 넘어지지 않기 위해서 우리는 모든 것을 정리하며, 걸려 넘어지게 할 모든 것을 동여 매야 합니다. 몸을 재빠르게 날렵하게
움직이며, 어떠한 상황에도 대처할 수 있는 상태로 있어야 합니다. 이것을
위해 하나님의 말씀으로 모든 영역에서 우리의 모든 상황에서 이해하며, 깨달아 불명확함이나, 부정확함에서 벗어나야 완전한 이해를 가져야 합니다. 그래야 어떠한
것으로 싸움을 걸어도 하나님에 대한 확실함과 그리스도 예수에 대한 믿음에서 흔들리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