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 말씀 영상 https://youtube.com/live/PEJKFx6XNKk
우주적 의미에서 우리는 보편교회 즉 카톨릭 교회인 것입니다. 카톨릭이라는
말이 보편적 이라는 말인데 로마 카톨릭이 먼저 사용함으로 우리가 사용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보편적 교회라는
말은 성경에 따른 신앙의 고백을 하며, 성경적 가르침을 믿고 순종하며 사는 자들의 모임입니다. 여기에 강조되고 있는 것이 바로 성경입니다. 왜냐하면 성경 만이
모든 믿는 자들의 표준이고, 잣대이며, 삶의 원리이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교회를 바른 교회 또는 성경적인 교회라고 부를 수 있는 것입니다. 성경적인 교회, 즉 온전한 교회는 어떠한 교회인가 하는 것을 생각할
때에 많은 사람들이 모이는 교회, 큰 교회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많은 사람들이 모인다는 것은 많은 사람들이 동의하며, 좋아하는 요소가 있으며, 사람들을 끄는 능력이 교회에 있기 때문에 성경적 교회가 아닌가 하는 생각 때문에 그렇습니다. 세상에 있는 주님의 교회가 카톨릭 교회 즉 보편적 교회라고 할 때에 이 보편적이라는 말은 보통 또는 누구나
다 동의하거나, 무엇에든지 포용적이며, 마음이 넓고, 누구에게나 관대하거나, 누구나 거리낌이 없이 참여 할 수 있는 이라는
의미가 아닙니다. 여기서 보편적 교회라는 말은 보편적 교회라는 말이 생소하게 여길 수
있는데 공교회 라는 말을 영어로는 홀리 유니버셜 처치 라고 표현하지만 예전 번역은 홀리 캐톨릭 처지 라고 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캐톨릭 교회를 믿는 다는 말이 아니라 캐톨릭 이라는 단어가 보편적 이라는 표현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이 단어를 캐톨릭이 지속적으로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로마 카톨릭 교회로 여겨지는데 사실은 보편적 교회라는 표현입니다. 보편적 교회란 첫째로 장소적으로 교회가
어느 특정한 장소나 나라에 매여 있거나 거기에 한정되어 있지 않고 온 세상에 퍼져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둘째는
사람들과 관련하여 교회를 보편적이라고 부르는데 교회는 모든 민족에 속한 모든 계층의 사람들로부터 모였기 때문입니다. 셋째는 시간적인 의미에서 교회를 보편적이라고 부르는데 곧 교회는 세상의 모든 시대를 통틀어 계속 이어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즉 교회는 모든 장소, 모든 사람, 모든 시대에 걸쳐 있기 때문에 보편적 교회라고 부르며
우리는 교회가 그러한 교회임을 믿는 것입니다. 우리 주변에는 다양한 이름을 가진 교회들이 있습니다. 지역 마다, 나라 마다 다릅니다.
다양한 인종들이 각기 다른 지역과 장소에서 모임을 갖습니다. 그러나 실제로 모든 교회는
하나인 것입니다. 벨직 신앙 고백서에서 보편 교회를 이렇게 정의 하는데 "이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정결하게 되고, 성령으로 성화되고 인침을 받아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그들의 전적인 구원을 바라는 참된 그리스도인 신자들의 하나의 거룩한 회중이며 회합이다. 이
교회는 세계의 시작부터 있었고, 또 세계의 마지막까지 있을 것이다. 이
사실은 그리스도께서 영원한 왕이시지만 신하된 백성이 없이는 왕이 되실 수 없으므로 진리임이 분명하다. 그리고
교회가 때로는 사람들 눈에 아주 작고 보잘 것 없는 것 같으나, 하나님께서 이 거룩한 교회를 광분하는
온 세상에 맞서도록 보존하시고 지탱하신다. 아합의 위험한 통치기간에도 그러셨으니 그 때 주께서는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않았던 칠천명을 보존하셨다. 더구나 이 거룩한 교회는 어떤 장소나 혹은 어떤 인물들에게
국한되거나 구속되어 있거나 제한을 받고 있는 것이 아니고, 온 세상에 퍼져 흩어져 있다. 그러면서도 믿음의 힘으로, 같은 한 성령 안에서 마음과 뜻으로 연결되고
연합되어져 있다.” 원래 “보편적” 교회라는 말은 지구상 어느 곳이나 모두 다 포괄한다는 의미이자, “공간적
보편성” (spatial universality)이라는 개념으로 사용되어집니다. 복음이 우주 전체에 퍼져나간다는 인식하에서 사용된 말인 것입니다. 교회의 보편성은 기독교의 보편성을 전제로 하여 세워진 개념으로 기독교는
보편적인 종교입니다. 하나님의 온전하신 뜻에 따라서 하시는 것이며, 그
외에 어떤 기준이나 제한을 두지 않는다. 남녀의 차별이나, 나이에
따른 구별이나, 인종, 신분, 지위, 국적, 언어에
전혀 제한을 두지 않습니다. 교회의 보편주의는 어떤 특정한 국가나 지역의 한계가 있을 수 없다는 말인
것입니다. 그러나 여기에 주의할 것이 있습니다. 우리가 교회의
보편성을 믿는 다는 것이 어떠한 신앙적 고백이나 성경적 믿음을 요구하지 않으며, 잘못된 교리와 비성경적
진리를 외치는 자들을 다 수용하며 포옹해야 한다는 것은 배제해야 하는 것입니다. 교회가 보편적이라는
것과 교회가 진리를 수호하며, 바른 신앙적 고백을 해야 한다는 말은 상호 충돌되는 것이 아니라 일치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교회가 서로 연합한다는 것은 같은 신앙과 믿음의 고백 즉 주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고백하며, 그분의 말씀에 대한 바른 믿음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교회가 교회 다움이라는 것은 교인 수의 많고 적음이 아니며, 교회 예배당의 크고 적음도 아니고, 교회에 다양한 활동과 모임이
활발하게 이루어지는 것도 아닙니다. 교회의 교회 다움은 누가 더 참된 진리 알고 있으며, 믿고 있으며, 그 진리에 따라 살고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피로 정결케 되고 성령으로 성화되고 인침을 받았는가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자신들의 전적인
구원을 바라고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이들의 삶은 광분하는 세상에 맞서서 믿음으로 위에 계신 그리스도만을
바라보고 사는가 하는 싸움을 누가 하고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교회입니다. 역사 속에서 참된 교회, 온전한
교회는 이러한 것을 추구하며, 거룩하게 지어져 갔습니다. 지나간
세월 동안 그러한 교회가 되도록 교회의 구성원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이러한 일들을 추구해 왔습니다. 로마서
11장 13절 말씀을 보면 바울이 이렇게 말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내가 이방인인 너희에게 말하는데 내가 이방인의 사도인 만큼 내 직분을 영광스럽게 여긴다고 합니다. 바울이 자신의 직분을 영광스럽게 즉 자랑스럽게 여긴 이유에 대하여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사람들은 목사나 장로나 집사가 되는 것을 영광스럽게 생각합니다. 바울이 자신의 직분을 영광스럽게 여기는 이유는 그러한 것이 아닙니다. 이방인의 사도라는 것이 이방인들 위에 군립하는 것 때문도 아니며, 사람들이
자신을 우러러 보기 때문도 아닙니다. 그가 자신을 이방인들의 사도로 부르심을 받은 직분을 영광스럽게
여기는 이유는 그가 맡은 직분의 특별한 사역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의 직분의 사역의 내용이 무엇입니까? 그는 이방인들의 사도로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일을 하는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의 비밀인 구원에 대하여 전하며, 그 내용을 가르치는 것입니다.
이에 대하여 골로새서 1장
25절에서 좀더 분명하게 말하는 것을 보게 되는데 골로새서 1장
25절을 보면 내가 교회의 일꾼
된 것은 하나님이 너희를 위하여 내게 주신 직분을 따라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려 함이라고 합니다. 여기서
그는 자신의 직분의 목적에 대하여 설명하고 있습니다. 첫번째로 생각할 것은 내가 교회의 일꾼 된 것은
이라고 할 때에 그 의미가 왜 자신을 일꾼 삼으셨는가에 대하여 그는 하나님이 너희를 위하여 나를 일꾼 삼으셨다고 말합니다. 그는 자신의 직분을 교회를 위하여 일하라고 주셨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만일 누군가 교회에서 그것이 목사이건, 장로이건, 권사이건, 집사이건 직분을 받았다면 그것은 교회를 위하여 주셨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바울이 왜 자신의 직분을 영광스럽게 여기는가 하면 그는 그리스도의 교회를 위하여 사용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는 그리스도를 위한 봉사이며, 섬김이기 때문에 자랑스러운 것입니다. 둘째로는 내가 교회를 위하여 일하라고 주신 직분의 내용 때문에 그는
자신의 직분을 영광스럽게 여긴 것입니다. 개역개정에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려 함이라고 번역되었는데
이 부분을 좀더 명확하게 하면 공동번역에서 이렇게 번역하였는데 [공동번역]골 1:25 나는
하느님께서 맡기신 사명을 따라 여러분에게 하느님의 말씀을 남김없이 전하기 위해서 교회의 일꾼이 되었습니다. 나는 하나님께서 맡기신 사명을 따라 여러분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남김없이 전하기 위해서 교회의 일꾼이 되었다고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려 한다는 말을 남김없이 전하기 위해서 라고 번역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루다는 말은 풍성하게 하다, 완벽하게 하다, 끝까지 채우다 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바울이 그의 사역 가운데
온 힘을 기울인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완벽하게 전하는 것이며, 하나도 남김 없이 끝까지 채우는 것입니다. 그럼 하나님의 말씀이 무엇을 의미하는가를 생각해보면 골로새서 1장 26-27절을 보면 이 비밀이 가리키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가 교회의 일꾼으로 교회를 위하여 일하고자 하는 그의 일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교회를 가득 채워 완벽함에 이르게 하기를 원했습니다. 이 하나님의 말씀은 비밀로 만세와
만대로부터 감추어져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하나님의 성도들에게 나타났고, 하나님께서 이 영광이 이방인 가운데 얼마나 풍성한지 알게 하셨습니다. 이
비밀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분은 그를 믿는 모든 자들에게 영광스러운 소망인 것입니다. 이것이 그의 직분에 대한 자랑입니다.
왜 자신의 직분을 영광스럽게 여깁니까? 바로 비밀인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는 것입니다. 그에 대하여 가르치는 것입니다. 한 부분만이 아니라 같은 말만 반복하며, 가르침의 내용이 뻔한 것이 아니라 완벽하게 그리고 남김없이 그분에 대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왜 그렇게 해야 하며, 하나님께서는 왜 그렇게 하시기를 원하십니까? 이에 대하여 골로새서 1장 28-29절
말씀을 보면 우리가 그를 전파하여 각 사람을 권하고 모든 지혜로 각 사람을 가르침은 각 사람을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자로 세우려고 함이라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교회를 온전하게 하는 방식은 그를 전하는 것입니다. 각
사람을 권하는 것입니다. 모든 지혜로 각 사람을 가르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사람을 그리스도에 대하여 정통한 자들이 되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할 때에 완전한 자로 세워지는 것입니다. 이것이 온전한 교회가 되는 것입니다. 교회는 부르심을 받은 자들의
모임입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이 그리스도에 대하여 깊이
더 높이 알고 깨닫게 될 때에 그들은 더욱 완전한 자가 되며, 그러할 때 교회는 온전한 교회, 참된 교회가 되는 것입니다. 바울은 이를 위하여 나도 내 속에서 능력으로 역사하시는 이 즉 그리스도께서
바울의 속에서 능력으로 역사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이에 합하여 그는 온 힘을 다하여 수고하는 것입니다. 모든 힘을 다하고 모든 에너지를 다하여 이 일에 힘쓰는 것입니다.
교회가 이렇게 하고 있는가? 교회가 이러한 일들에 힘을
쓰고 있는가 하는 것이 참된 교회 온전한 교회의 모습인 것입니다. 교회에 사람이 많이 모이는 것이 참된
교회가 아닙니다. 큰 교회 일 수 있습니다. 많은 모임이
있고, 활발한 활동이 있고, 그래서 늘 분주하고, 많은 일들을 하는 교회가 참된 교회가 아닙니다.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하여 집중하며, 그분에 대하여 성경이 말씀하고 있는 내용을 남김 없이 가르치는 일을 하며, 배우는 일을 하고, 그렇게 사는 일을 하는 것이 교회입니다. 저는 이 말씀에 사로잡혀 있고, 이 말씀을 실천하려고 합니다. 그래서 아무도 말하지 않는 어려운 교리들을 가르치려 합니다. 딱딱하고
현재의 삶에 적용할 수 없는 지식도 그리스도의 것이기 때문에 가르치려고 하는 것입니다. 목요 기도회
설교가 쉽지 않습니다. 때론 주일 설교도 이해하기 쉽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하는 이유는 여러분의 비위를 맞추면 안되기 때문입니다. 남김 없이 가르치며 배워야 여러분들이 완전해지며, 그리스도를 깊이 아는 지식에 이르게 됩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이며, 온전한 교회가 되는 길입니다. 우리는 지난 13년동안 그렇게 해 오고 있습니다. 왜 하나님께서 우리 교회를 지금까지
지켜 주셨는가를 생각할 때에 우리가 잘났거나, 우리의 노력과 수고가 남달랐거나 한 것이 아닙니다. 주님의 말씀을 가르치며, 주님의 말씀을 배우고자 하기 때문에 주님께서
우리를 지금까지 지켜 주신 것입니다. 저는 여러분들에 더욱 참된 교회 온전한 교회로 세워져 가기를 부탁드립니다. 저 또한 제게 직분을 주신 주님 앞에 온 힘을 다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