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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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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 말씀 영상https://youtube.com/live/hwGPn8K70G0


욥에 대하여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욥기는 욥이라는 사람의 전기와 같은 책입니다. 비록 그의 유년 시절이나 장년의 시절을 기록하고 있지 않지만 그와 그 주변의 사람들 사이에 일어난 이들을 중심으로 기록된 책입니다. 일반적으로 욥기 하면 사람들은 그가 받은 고난과 그가 받은 복에 대하여 많이 설교합니다. 그러나 오늘 저는 욥의 신앙에 대하여 말씀을 드리려고 합니다. 그는 어떠한 사람이며, 그의 믿음과 신앙 생활은 어떠하였는가? 에 대하여 살펴보려고 합니다.

        욥기를 읽다 보면 욥이야 말로 가장 온전한 신앙인의 표상으로 보여질 만한 사람이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영적인 질서가 내면에 바르게 세워져 올바른 인생을 살았던 대표적인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종종 우리는 욥의 탁월함을 그의 인내에서 찾거나 또는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상실한 상태에서의 완전한 회복 즉 물질과 자녀의 회복에서 찾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욥의 탁월함을 그의 내면 즉 마음에서 난 것임을 말해주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가 어떠한 것을 마음에 두고 살았던 사람인지에 대하여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는 것입니다. 욥은 단언하건대 진정으로 내면이 다른 사람이었습니다.

        왜냐하면 그의 삶은 하나님께서도 인정하실 정도였기 때문입니다. 욥기 1 8절을 보면 [ 1:8] 여호와께서 사탄에게 이르시되 네가 내 종 욥을 주의하여 보았느냐 그와 같이 온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는 세상에 없느니라 Then the Lord said to Satan, "Have you considered my servant Job? There is no one on earth like him; he is blameless and upright, a man who fears God and shuns evil." 라고 하는데 하나님께서 사탄에게 욥에 대하여 하시는 말씀입니다. 먼저 하나님은 사탄에게 내 종 욥을 주의하여 보았느냐 라고 물으십니다. 우선 하나님께서 친히 욥을 자신의 종이라고 부르신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그를 어떻게 생각하시는가 하는 것을 나타냅니다. 그는 하나님께서부터 인정을 받고 있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사람이라고 하나님의 증언을 친히 받고 있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사탄에게 내가 인정하는 욥을 주의하여 보았느냐고 사탄에게 물으시는데 주의하여 보았다는 말은 마음에 두다 라는 뜻입니다. 무엇인가를 주의하여 살펴보는 것은 그것을 마음에 두는 것입니다. 그래서 생각하다 라고도 번역이 가능합니다. 그 다음에 원문에는 왜냐하면 이라는 단어가 나옵니다. 왜 하나님께서 욥을 내 종이라고 표현하시며 또한 사탄 앞에서 그를 자랑하시는 것처럼 표현하시는가 하면 욥의 삶과 같은 사람이 세상에 없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이 말이 만약 누군가 다른 사람에 의해서 말해진 것이라면 개인에 대한 칭찬 차원에서의 가벼운 개인적 발언으로 받아 들일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욥에 대하여 세상에 욥과 같은 사람이 없다고,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가 무슨 일을 했고 어떠한 자이기에 그러한 최고의 칭찬을 하나님으로부터 받고 있는가 하는 것이 우리의 궁금함입니다.

        우리의 욥에 대한 이해가 이것으로 그쳐서는 안됩니다. 이것만 보면 욥은 대단한 사람이다 라는 것으로 그치기 때문이며 욥은 우리와 다른 위대한 신앙인으로 생각될 뿐입니다. 넘사벽이라는 말이 있는데 넘을 수 없는 사차원의 벽이라는 뜻으로 너무나 능력이 탁월해서 어떤 짓을 하고 무엇을 해도 결코 따라잡거나 이를 수 없을 때 사용하는 신조어입니다. 욥은 그냥 신앙인의 넘사벽으로 기록된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우리가 궁금해하며 생각해야 하는 것은 어떻게 욥은 하나님이 칭찬하시며 인정받는 삶을 살 수가 있었는가 하는데 있습니다. 그것에 대한 힌트가 욥기 31:23절에 있습니다. 욥기 31:23절을 보면 [ 31:23] 나는 하나님의 재앙을 심히 두려워하고 그의 위엄으로 말미암아 그런 일을 할 수 없느니라 For I dreaded destruction from God, and for fear of his splendor I could not do such things. 라고 합니다. 여기서 말하고 있는 나는 욥 자신입니다. 욥은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나는 그런 일을 할 수 없느니라 라고 합니다. 욥이 할 수 없다고 거부를 선언하고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16절부터 시작되는 내용들인데 요약하면 가난한 자나, 과부나, 고아들을 돌보지 않는 것입니다. 특별히 21-22절을 보면 [ 31:21-22] 만일 나를 도와 주는 자가 성문에 있음을 보고 내가 주먹을 들어 고아를 향해 휘둘렀다면 내 팔이 어깨 뼈에서 떨어지고 내 팔 뼈가 그 자리에서 부스러지기를 바라노라 if I have raised my hand against the fatherless, knowing that I had influence in court, then let my arm fall from the shoulder, let it be broken off at the joint. 라고 합니다. 자신의 추종 세력이 있다고 해서 그것을 믿고 고아를 주먹으로 때리거나 하는 일을 행하였다면 어깨 뼈가 떨어지고 팔 뼈가 부스러지기를 바란다고 합니다. 그는 과부나, 고아나, 가난한 자들에게 함부로 할 수 없었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다시 욥기 3123절을 보면 [ 31:23] 나는 하나님의 재앙을 심히 두려워하고 그의 위엄으로 말미암아 그런 일을 할 수 없느니라 For I dreaded destruction from God, and for fear of his splendor I could not do such things. 그는 하나님의 재앙을 심히 두려워하고 그의 위엄으로 말미암아 그런 일을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재앙을 심히 두려워하였습니다.

        그의 마음엔 두려움이 있었습니다. 여기서 두려움은 경외심과는 다른 두려움입니다. 경외라는 단어는 두려움이지만 공포감하고는 차원이 다른 의미입니다. 경외심에 의한 두려움은 가까이 하며, 도망치거나 피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공포감은 공포감을 주는 대상으로부터 무서움으로 도망치거나, 피하거나, 멀리하는 마음의 상태입니다. 욥은 공포감을 느껴서 피하고자 하며 도망치고자 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이십니까? 아닙니다. 그를 심히 떨게 하고, 두렵게 하여 공포감에 사로잡히게 하는 것은 재앙입니다.

비록 그것이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것이지만 그는 하나님을 공포의 대상으로 여긴 것이 아니라 재앙을 공포스러운 것으로 여겼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라 자신이 하나님을 떠나 하나님의 심판을 당할 일을 행하는 것 자체를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발견하는 욥의 경건함과 거룩함의 출발점은 하나님의 심판에 대한 두려움으로 재앙에 대한 염려입니다. 비록 그에게 재난이 있기 전에 욥은 하나님의 심판을 직접 경험하지 못하였습니다. 그럼에도 그는 하나님의 재앙이 어떤 것인지를 알고 있었고 그것을 가슴 깊이 품고 있으며 생각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어떻게 그는 하나님의 재앙을 받아 본적이 없었는데도 불구하고 공포감을 가지게 된 것일까요? 그는 분명 그것을 알고 있었으며, 확신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것이 그에게 확신으로 그리고 믿었던 것은 그로 알게 하며 믿게 하신 분에 의해서 입니다. 하나님의 진노에 대하여 일반인 즉 중생하지 못한 자연인들은 전혀 경험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참된 그리스도인은 이것을 보기 때문에 무엇보다 그리스도를 구하며, 그리스도를 믿으며, 그의 은혜를 갈망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이러한 일을 행하신 이가 성령 하나님이시 듯이 욥에게도 이러한 깨달음으로 공포감을 주신 이가 성령 하나님이십니다.

        욥은 하나님의 재앙 만을 두려워한 것이 아닙니다. 그 다음에 나오는 그의 위엄으로 말미암아 할 수 없다는 말씀에서 욥은 하나님의 죄에 대한 심판에 대하여 공포심을 가지고 있었지만 또한 그는 하나님 자체에 대하여 경외심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참된 경건과 거룩한 성품의 마음은 죄에 대하여 공포심을 깊이 인식하고 있는 상태이며 더불어 하나님의 위엄 앞에 경외심으로 하나님을 존경하며 높이며 공경하고자 하는 마음의 상태인 것입니다. 이러한 내면의 온전한 영적 상태가 어떻게 불경건과 불의에 대하여 반응하는가 하는 것을 잘 나타내 주는 사건과 인물이 있습니다.

        창세기 39 9절을 보면 [ 39:9] 이 집에는 나보다 큰 이가 없으며 주인이 아무것도 내게 금하지 아니하였어도 금한 것은 당신뿐이니 당신은 그의 아내임이라 그런즉 내가 어찌 이 큰 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죄를 지으리이까 No one is greater in this house than I am. My master has withheld nothing from me except you, because you are his wife. How then could I do such a wicked thing and sin against God?" 라고 합니다. 요셉은 보디발의 아내의 유혹을 뿌리치며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어찌 이 큰 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죄를 지으리이까. 요셉은 그 순간에 누구를 생각했는가 하면 하나님을 생각한 것입니다. 요셉이 이 순간에 갑자기 하나님에 대한 생각이 들었고 이것이 하나님 앞에 큰 악이구나 라는 것을 그때 깨달은 것이 아닙니다. 그의 내면은 품고 있는 하나님에 대한 생각과 그분이 죄로 여기시며 심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하여 그는 되새기며 생각하며 살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이 위기의 순간에 그는 하나님을 먼저 생각하며 죄에 대하여 심판하실 하나님의 심판을 두려워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 자리를 피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특정한 순간의 경건과 거룩한 선택은 일상의 참된 경건과 거룩의 결과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욥기 31 24절부터 내면에 영적 질서가 세워진 사람의 내적 상태를 보여주고 있는데 이것은 욥의 내면의 영적 질서를 가리키는 것입니다. 욥기 31 24-28절입니다. 31:24-28절 만일 내가 내 소망을 금에다 두고 순금에게 너는 내 의뢰하는 바라 하였다면 만일 재물의 풍부함과 손으로 얻은 것이 많음으로 기뻐하였다면 "If I have put my trust in gold or said to pure gold, 'You are my security,' if I have rejoiced over my great wealth, the fortune my hands had gained, 만일 내가 내 소망을 금에도 두고 순금에게 너는 내 의뢰하는 바라 하였다면 만일 재물의 풍부함과 손으로 얻은 것이 많음으로 기뻐하였다면 이라고 합니다. 욥은 그러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는 심히 큰 부자였습니다. 그럼에도는 그는 금이나 순금에 소망을 두지 않고 그것에 마음을 두지 않았으며 그것을 기뻐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누구나 바라는 삶이며, 상태입니다. 그러나 그의 기쁨과 마음은 그것에 있지 않았습니다. 24절은 금을 나의 확신으로 삼고 순금을 나의 신뢰라고 믿는 것을 가리킵니다. 여기서 소망이라고 번역된 것은 내장이라는 뜻도 있습니다. 즉 금과 순금을 자신의 마음 속에 두고 신뢰의 대상으로 삼고 살아가지 않는 다는 것입니다.

        다음절인 욥기 3126-28절을 보면 [ 31:26-28] 만일 해가 빛남과 달이 밝게 뜬 것을 보고 내 마음이 슬며시 유혹되어 내 손에 입맞추었다면 그것도 재판에 회부할 죄악이니 내가 그리하였으면 위에 계신 하나님을 속이는 것이리라 if I have regarded the sun in its radiance or the moon moving in splendor, so that my heart was secretly enticed and my hand offered them a kiss of homage, then these also would be sins to be judged, for I would have been unfaithful to God on high. 라고 합니다.

        여기서 만일 해가 빛남과 달이 밝게 뜬 것을 보고 내 마음이 슬며시 유혹되어 내 손에 입맞추었다면 이라는 말은 자신의 행운을 비는 행위이며 은밀한 내면에서 일어나는 우상 숭배를 가리키는데 그는 그의 마음이 하나님 외에 다른 것에 은밀하게 이끌리는 것 조차도 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러한 것들은 하나님의 심판을 불러오는 죄악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것들은 위에 계신 하나님을 속이는 것이라고 합니다. 영적 내면이 온전한 사람의 모습은 물질을 마음에 깊이 두고 신뢰하고 확신하며 살지 않습니다. 또한 그는 하나님 외에 다른 어떤 것을 숭배하거나 섬기지 않습니다. 그는 위에 계신 하나님께서 자신의 내면을 아심을 알기에 하나님을 속이려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욥의 영적 내면의 질서는 욥의 삶을 완전히 바꾸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욥기 1 4절을 보면 [ 1:4] 그의 아들들이 자기 생일에 각각 자기의 집에서 잔치를 베풀고 그의 누이 세 명도 청하여 함께 먹고 마시더라 His sons used to hold feasts in their homes on their birthdays, and they would invite their three sisters to eat and drink with them. 라고 합니다. 욥에게는 일곱명의 아들들과 세명의 딸들이 있었습니다. 아들들이 자기의 생일에 각각 자기의 집에서 잔치를 베풀었다고 합니다. 아마도 아들들은 모두 장가를 가서 분가하여 자기 집을 가지고 있었으며 생일 때마다 함께 모여 축하를 하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5절을 보면 [ 1:5] 그들이 차례대로 잔치를 끝내면 욥이 그들을 불러다가 성결하게 하되 아침에 일어나서 그들의 명수대로 번제를 드렸으니 이는 욥이 말하기를 혹시 내 아들들이 죄를 범하여 마음으로 하나님을 욕되게 하였을까 함이라 욥의 행위가 항상 이러하였더라 When a period of feasting had run its course, Job would make arrangements for them to be purified. Early in the morning he would sacrifice a burnt offering for each of them, thinking, "Perhaps my children have sinned and cursed God in their hearts." This was Job's regular custom. 라고 합니다. 이 구절의 마지막 말씀은 욥의 행위가 항상 이러하였더라 라고 합니다. 이 말은 욥의 규칙적 생활 습관으로 몸에 배어서 저절로 나오는 행위를 말합니다. 그것은 자녀들이 생일 잔치가 끝나면 그들을 불러 성결하게 하고 아침에 그들의 명수대로 번제를 드리는 것입니다. 원문은 이것을 마치 기계적으로 정해진 순서에 따라 진행되는 것과 같은 의미로 말하고 있습니다. 이 의미는 한번도 예외 없이 그리고 미루어지거나 뒤로 제쳐 놓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즉 욥이 매우 중요하게 여기며, 가치 있게 여겨 심혈을 기울여 행하였다는 것을 뜻합니다.

        우리는 이 구절에서 일상의 삶에서 욥의 마음이 어디에 있으며 누구로 가득 차 있는지를 보게 됩니다. 그는 하나님을 경외하기를 원하였으며 자신과 자신의 자녀들이 하나님 앞에 온전히 살기를 바랐던 것입니다. 욥이 아들들을 위하여 하나님께 번제를 드리는 이유를 보면 혹시 내 아들들이 죄를 범하였을까 하여 입니다. 혹시 라는 말은 자신이 모르는 가운데 아들들이 죄를 범할 수도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여기에 욥이 하나님에 대한 그의 마음의 어떠한 가를 보여주는 단어가 있는데 아들들이 죄를 범하는데 행위를 통하여 바깥으로 드러난 죄에 대한 것이 아니라 아들들의 마음에 하나님을 욕되게 하는 죄를 지었을까? 하는 우려로 인하여 번제를 드린다는 것입니다.

        영적 내면의 질서가 세워진 사람은 겉으로 들어난 죄에 대하여만 관심을 기울이고 그것을 감추거나 또는 숨기거나 또는 처리하려고 힘을 쓰는 자가 아닙니다. 오히려 그 내면에 혹시 하나님께 합당하지 않은 것을 품고 있지 않은지를 늘 살피며 미연에 방지하려는 자세와 태도를 가진 자라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겉으로 드러나며 이미 발생한 죄 조차도 인식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으며 또한 인식해도 회개를 통하여 깨끗함을 회복하려고 하지 않는 경우도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삶에서 짓고 있는 죄를 방치하며 수치감이나 부끄러움도 없이 살아가기도 합니다. 그러나 내면의 질서를 가지고 살아가는 이들은 마음 조차도 하나님 앞에 부끄러움이 없기를 원하며 혹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마음으로 범한 죄가 있다면 용서해 달라고 구하게 됩니다.

        욥이 혹시 자녀들이 하나님께 마음으로 죄를 지은 것에 대하여 하나님을 욕되게 함이라고 합니다. 욕되게 하다 란 단어는 원래 하나님께 저주하다 라는 표현을 하지 못하기 때문에 완곡어법으로 이 단어를 사용합니다. 그렇기에 개역한글에서는 저주하다 라고 번역한 것입니다. 개역 개정에는 욕되게 하다 라는 표현을 사용한 것은 하나님을 가볍게 여기거나 또는 하찮게 생각하거나, 무시하는 태도를 표현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욥이 하나님을 두려워하였으며 경외하였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한 모습에 반대가 되는 행위들을 혹시 아들들의 마음에 있지 않을까 하는 그래서 그들이 하나님께 죄를 짓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가지는 것입니다.

        욥의 행위가 항상 이러한 것입니다. 욥의 행위는 항상 내적인 그의 마음의 상태에서 나온 것임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영적 내면 질서를 하나님께로 세우지 않으면 이러한 행위가 항상 나타날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재앙에 대하여 두려움을 넘어 공포심을 가져야 하며, 하나님의 위엄과 영광과 존귀함을 묵상해야 합니다. 내가 어찌 그분의 말씀을 넘어 살 수 있을까? 내가 어찌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고 살 수 있을까? 하나님 외에 다른 어떤 것들을 마음에 두는 것조차 죄임을 인식하여 하나님만을 마음에 두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영적 내면의 질서를 세우고 살아가는 자는 늘 마음에 하나님을 생각 하며 온 마음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할 뿐만 아니라 온 마음으로 하나님을 섬겼던 사람입니다. 그러한 삶이 온전한 신자의 삶인 것입니다. 우리 또한 이러한 삶이 성령 하나님을 통하여 가능할 뿐만 아니라 이러한 삶의 자리로 우리를 부르신다는 사실을 알고 경건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경건은 죄에 대한 공포감과 하나님에 대한 경외심으로부터 시작된다는 사실을 알고 하나님과 그가 행하시는 일을 두려워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렇기에 하나님에 대하여 깊은 깨달음과 그분에 대한 이해를 더하여 달라고 기도하며, 하나님이 누구신지를 깊이 깨닫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주일 말씀 요약 및 설교 영상

주일 말씀 컬럼 안에 설교 영상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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