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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말씀
2024.10.16 10:31

삶을 망치는 조급함

Y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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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 말씀 영상 https://youtube.com/live/ZeYACE-bHzw


오늘 우리가 함께 살펴보고자 하는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우리가 생각할 것은 첫째로 인간은 어떤 존재인가 하는 것입니다. 둘째로는 인간이 안고 있는 연약함에 어떻게 벗어날 수 있는가? 하는 문제를 생각해 볼 것입니다. 세번째로 왜 그것이 우리에게 효력이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먼저 살펴볼 하나님의 말씀은 잠언 2419절 말씀입니다. 잠언 2419절을 보면 너는 행악자들로 말미암아 분을 품지 말라고 합니다. 또한 악인의 형통함을 부러워하지 말라고 합니다. 여기서 행악자들 이라는 단어와 뒤에 나오는 악인이라는 단어는 같은 단어가 아니지만 같은 의미를 반복해서 사용하는 시가 가지는 특성으로 동어 반복이라고 합니다. 즉 같은 뜻이지만 다른 단어를 사용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악인이라고 이해하는 단어적 의미와 성경이 악인이라고 표현하는 성경적 단어의 의미를 구분해야 합니다. 악인이라고 할 때에 일반적인 개념은 법을 어기는 무법한 자들이나 또는 사회 통념적 기준에 어긋난 행동을 하는 사람들을 악인이라고 합니다. 지난 6월에 음주 사고가 한국에서 발생했습니다. 이 사고로 60대 가장이 죽음을 당하고 함께 동승한 아내는 중상을 입게 되었습니다. 사고를 일으킨 운전자는 50대 남성인데 이 사람이 만취 상태에서 운전을 하다가 중앙선을 넘어 정면으로 오는 차를 받아 60대 남성을 죽게 한 것입니다. 문제는 이 사고를 일으킨 음주 운전자는 이미 3번이나 음주 운전으로 처벌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음주 운전을 한 것이고, 또한 음주 운전에 대한 처벌로 운전면허증이 취소된 상태로 또 다시 음주 운전으로 다른 사람을 죽인 것입니다. 사회 통념상 이런 사람들은 법을 어긴 것 이상으로 악인이 아닐 수 없으며, 행악자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제 성경적인 악인에 대한 개념을 정의하자면 불법을 하는 자들을 악인이라고 하는 것은 동일합니다. 국가의 법이나 사회의 규범이나, 도덕이나 윤리 등에 대하여 성경은 동일하게 그 권한을 인정하며, 그러한 것들이 지켜져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이유는 국가와 그 국가가 재정한 모든 법들과 사회적 규범과 사회 안의 도덕이나 윤리적 가치들은 모두 인간들을 통하여 죄를 억제하는 수단으로 하나님께서 법을 제정하는 자들을 통하여 내신 것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동시에 성경이 악인이라고 말할 때에 악인은 또 다른 것을 포함하는 의미를 가지는데 그것에 대하여 시편 103절을 보면 악인은 그의 마음의 욕심을 자랑하며 탐욕을 부리는 자는 여호와를 배반하여 멸시한다고 합니다. 여기서 악인이 어떤 자들인가에 대하여 정의하고 있는데 악인은 그의 마음의 욕심을 자랑하는 자라고 합니다. 마음이라고 번역된 단어는 영혼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는데 이는 전인격이 라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악인은 그의 전인격이 욕심을 자랑하는 자인 것입니다. 여기서 욕심이 의미하는 것은 그가 하고 싶어하는 모든 일에 대한 열망으로 이것을 그는 자랑하는 자라는 것입니다. 또한 두번째로는 이들은 축복하는 자들이라고 합니다. 축복한다는 것이 좋은 것이 아닌가 하는데 누구를 축복하는가 하면 탐욕이라는 단어는 부순다, 깨뜨린다 라는 뜻으로 남을 부수고 깨뜨려 빼앗는 자들을 축복하는 것입니다. 또한 이들은 하나님을 멸시하며, 경멸하는 자들인 것입니다.

        정리하면 악인이란 그의 전인격이 자신이 하고자 하며, 얻고자 하는 일에 대하여 열망으로 가득한 자들이며, 이것을 자랑하는 자들입니다. 그래서 이들은 자신과 같은 자들을 축복하는데 바로 남의 것을 부수고, 깨뜨려 빼앗는 자들을 축복하며, 이러한 것을 금하신 하나님을 멸시하며, 경멸하는 자들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다음절을 보면 시편 104절에서 악인은 그의 교만한 얼굴로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이를 감찰하지 아니하신다 하며 그의 모든 사상에 하나님이 없다고 합니다. 악인들은 여호와께서 이를 감찰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이 말은 하나님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 것이며, 그의 모든 사상에 하나님이 없다는 말은 그의 모든 생각이 하나님께서 계시지 않기 때문에 그가 악에 대하여 정죄하거나, 심판하여 그 책임을 묻지 않으실 것이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이들의 사상이며, 악인이라고 정의되는 자들인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만을 보면 악인이 얼마나 못되 먹은 자들인지를 공감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잠언 2419절을 다시 보면 너는 행악자들로 말미암아 분을 품지 말라고 합니다. 또한 악인의 형통함을 부러워하지 말라고 합니다. 분을 품다는 뜻은 악인들이 악을 행하는 것을 보고 의분이 일어나는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다음에 이와 같은 동의어로 나오는 것이 바로 부러워하다 라는 단어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분을 품다는 단어의 의미는 좋은 의미로 분을 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부러움으로 질투를 느끼며, 마음이 안절부절 못하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영어에서 fret이라고 번역한 이유는 악인의 형통함을 보며 안절부절 못하고, 부러워하며, 조금해 하는 마음을 의미함으로 조급해 하다 라는 단어로 번역한 것입니다.

        악인들의 악이 벌을 받아 마땅하며, 악인들의 자리에 함께 서는 일이 옳지 않은 일이라는 것은 도덕적으로 윤리적으로 또한 양심에서도 금하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사람의 마음은 세상에서 누군가의 형통함을 볼 때에 그것을 보며 부러워하는 마음과 동시에 자신의 상태와 비교해 보며 조급한 마음으로 안절부절 하지 못하는 일들이 그 마음에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마치 이율배반과 같은 것입니다. 악인과 같이 되기를 원하지 않는 동시에 악인의 형통함에 스스로 조급해 하며, 불안해 하며, 악인을 부러워하는 마음이 같이 일어납니다. 이것이 인간의 부패한 마음의 상태입니다. 이러한 조급증은 인생을 망치며, 결국에는 자신의 육체와 영혼이 함께 멸망을 당한다는 사실을 생각해야 함에도 현실에서 이러한 경고하심을 따라 자신의 마음을 지키며, 조급함에 이끌려 살지 않고, 오직 하나님을 인정하며, 하나님의 뜻에 자신의 삶을 두고 부동심을 유지하며 사는 자들이 많지 않습니다.

        조급함을 다스리지 못하여 스스로 멸망의 길을 간 사람이 있습니다. 사무엘 상 135-6절을 보면 블레셋 사람들이 이스라엘과 싸우려고 모였는데 그 숫자가 너무 많아 해변의 모래 같았다고 합니다. 이에 이스라엘 사람들이 위급함을 보고 절박하여 굴고 수풀과 바위 틈과 은밀한 곳과 웅덩이에 숨었습니다. 그리고 심지어 어떤 사람들은 강을 건너 도망하였습니다.

        이러한 상태에서 이스라엘의 초대 왕이었던 사울이 어떠한 일을 했는지에 대하여 성경이 말씀하고 있는데 사무엘상 138-9절을 보면 사울은 사무엘이 정한 기한대로 이레 동안을 기다렸습니다. 그런데 사무엘이 길갈로 오지 않고 백성은 사울에서서 흩어지고 있었습니다. 이때 사울이 말하여 번제와 화목제물을 가져오라고 합니다. 그리고 번제를 드립니다. 이것이 무슨 문제인가 하는 것인데, 사울은 백성이 흩어지고 있고 두려움 가운데 빠진 것을 보고 어찌하든 백성들을 달래는 수단이 필요했습니다. 그 수단은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며 하나님 자신들과 함께 하신다는 것을 백성들에게 보임으로 그들을 자신의 곁에 두려고 한 것입니다. 그는 왕이지만 제사를 집례할 수 있는 권한이 그에게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스스로 자신의 이익을 위하여 제사라는 수단을 통하여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고 있다는 행위를 함으로 백성들을 자신에게 묶어 두려고 한 것입니다. 그는 예배를 이용했으며, 그는 사무엘이 오기로 한 것을 기다리지 못하고, 그의 눈에 보이는 것들로 인하여 그는 조금함을 이기지 못하고 그의 조급함이 결국 일을 망치게 만든 것입니다.

        다음절을 보면 사무엘상 1310절 번제 드리기를 마치자 사무엘이 온지라 사울이 나가 맞으며 문안하매 Just as he finished making the offering, Samuel arrived, and Saul went out to greet him. 번제 드리기를 마치자 마자 사무엘이 왔습니다. 11-12절을 보면 삼상 13:11-12절 사무엘이 이르되 왕이 행하신 것이 무엇이냐 하니 사울이 이르되 백성은 내게서 흩어지고 당신은 정한 날 안에 오지 아니하고 블레셋 사람은 믹마스에 모였음을 내가 보았으므로 이에 내가 이르기를 블레셋 사람들이 나를 치러 길갈로 내려오겠거늘 내가 여호와께 은혜를 간구하지 못하였다 하고 부득이하여 번제를 드렸나이다 하니라 사무엘이 묻습니다. 왕이 행한 것이 무엇입니까? 이에 사울의 대답은 백성은 내게서 흩어지고, 당신은 오지 않고 불레셋 사람은 모였음을 내가 보았으므로 그가 본 것들이 무엇입니까? 그는 계속해서 사람을 보고 있습니다. 흩어지는 백성, 오지 않은 사무엘, 해변의 모래 같은 블레셋 사람들을 보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봄이 가져오는 마음의 상태는 일어나지 않은 일이 일어난 것으로 여겨 공포에 빠지는 상태에 이르게 됩니다. 그것이 블레셋 사람들이 나를 치러 길갈로 내려오겠거늘 즉 그는 자신을 치러 오는 블레셋 사람을 마음으로 보고 겁을 먹은 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여호와께 은혜를 간구하지 못하였다 하고 부득이 하여 번제를 드렸다고 합니다. 여기서 부득이 하게 라는 말의 의미가 강요되는 상태입니다. 그의 마음이 자신에게 강요하며, 강제한 것입니다. 그의 마음이 조급함에 이끌려 하지 말아야할 행동을 하게 한 것입니다.

        이에 대하여 그의 인생은 불행 속에 빠져 들게 됩니다. 사무엘상 1313절을 보면 사무엘이 사울에게 이르되 왕이 망령되이 행하였도다 왕이 왕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왕에게 내리신 명령을 지키지 아니하였도다 즉 사울은 하나님의 명령을 어긴 것이며, 범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명령을 어김으로 인하여 그의 왕위는 다른 사람에게 넘어가게 됩니다. 그리고 그는 이러한 조급증을 버리지 못함으로 인하여 결국 전쟁터에서 자신의 칼에 엎드려져 죽게 됩니다.

        조급함은 누구나 있습니다. 불신자에게는 감당할 수 없는, 또한 조절할 수 없는, 극복할 수 없는 조급함이 있습니다. 그래서 조급함 때문에 자신의 몸이 망가지는 젊은 이들이 있고, 조급함 때문에 노년의 인생을 망치는 이들이 있습니다. 건강한 몸이 아니라 살을 빨리 빼고 싶고, 육체적으로 보기 좋은 몸을 만들려고 약에 의존하다, 정신 병에 걸리거나, 평생 약을 의존하며 살아야 하는 자들도 있습니다. 조급함 때문에 잘못된 선택으로 한 순간에 채무 불이행으로 이어져 신용불량자로 사는 자들도 넘쳐나고 있습니다. 오늘도 인생 역전이라는 말에 속아 매일 로또를 사며 거짓된 희망을 쫓는 자들도 넘쳐 납니다.

        조급함은 세상의 약이나 방법으로 고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조급함을 누르며, 조급함이 마음을 지배하지 않을 수 있는가에 대하여 잠언 2420절을 보면 잠언 24:20절 대저 행악자는 장래가 없겠고 악인의 등불은 꺼지리라 for the evildoer has no future hope, and the lamp of the wicked will be snuffed out 한글 성경에 없지만 영어 성경에는 왜냐하면 이라는 단어가 기록됩니다. 앞에서 왜 악인의 형통을 부러워하며, 조급해 하지 말아야 하는가에 대하여 왜냐하면 악인에게는 장래가 없기 때문입니다. 악인에게 미래의 소망이 없는 것입니다. 그들이 자랑하며, 잘 사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이 땅에서뿐입니다. 메뚜기도 한철이라고 합니다. 이 말은 모든 생물은 전성기가 있고 곧 쇠퇴기가 있다는 의미입니다. 악인들이 한철은 이 땅에 사는 동안입니다. 그것이 그들에게 주어진 시간이며, 그들의 삶의 전부입니다. 그 후에 이들은 영원한 형벌 가운데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경건한 자들이 악인들의 형통을 부러워할 이유가 없으며, 조급해야 할 이유가 없는 것입니다. 악인들의 등불은 꺼진다는 말은 인생이 끝이 난다는 것입니다. 그들의 이 땅에서의 생명이 꺼지는 것입니다. 이것이 악인들의 형통의 결말인 것입니다.

        누가 이렇게 하는 것입니까? 누가 악인의 인생을 정하는 것입니까? 그들이 인정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이 하시는 것입니다. 왜 조급하지 않으며, 부러워하지 않으며, 악인들의 형통이 한 때임을 확신하며 삽니까? 인생의 주인이신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이며, 악인들이 부인하는 그분이 존재하며, 그분이 그들을 심판하시며, 인생들을 심판하시기 때문에 우리는 영원하신 하나님을 의지하며, 미래의 소망을 유업으로 얻기를 바라며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이 땅을 살아가며, 마음을 지키는 내용이며, 믿음이며, 확신입니다. 하나님은 온 세상의 유일한 주인이심을 믿으십시오. 그리고 그분께 온전한 삶 만이 가치 있음을 알고 조급함에 이끌려 인생을 살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주일 말씀 요약 및 설교 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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