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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말씀
2024.11.14 12:25

하나님은 나의 부요함이라

YC
조회 수 1951 추천 수 0 댓글 0

주일 말씀 영상 https://youtube.com/live/lxvNSusURMg


오늘 본문에 있는 내용들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배경 지식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떠한 일들이 일어났으며, 일어나고 있는지를 살펴보면 이렇습니다. 아브람이 자신의 조카 롯과 헤어지고 나서 얼마의 시간이 지난 후에 아브함이 살고 있는 가나안 지역에 전쟁이 일어납니다. 그돌라오멜이라는 왕을 중심으로 한 4명의 왕들과 소돔왕을 중심으로 한 5명의 왕들이 싸움을 한 것입니다. 이유는 12년동안 그돌라오멜을 섬기던 소돔왕과 그의 연합군들이 배반하고 조공을 바치지 않고 13년째 해에 배반을 합니다. 이에 14년차에 그돌라오멜이 연합군을 이끌고 소돔왕의 연합군과 싸움을 하게 됩니다. 여기서 소돔왕의 연합군이 패하게 되고 소돔은 약탈을 당하게 됩니다. 이때 소돔에 있던 아브람의 조카 롯과 그의 가족들도 포로로 잡혀가게 됩니다. 이 일이 있은 후 아브람이 이 사실을 듣게 되고 집에서 길리고 훈련된 318명의 사람들을 모아 단까지 추격하여 밤에 급습하여 쳐부수고 빼앗긴 사람들과 노략 물들을 다시 찾아 옵니다. 노략 물을 찾아 돌아온다는 소식을 듣고 패배하였던 소돔왕이 샤웨 골짜기란 곳까지 나와 아브람을 영접하고 이때 살렘왕 멜기세덱이라고 불리우는 인물도 아브람을 맞이 합니다.

        본문의 내용 중 우리가 오늘 주의 깊게 살펴볼 것은 아브람과 소돔왕과의 대화중에 나온 전리품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창세기 1421절을 보면 [ 14:21] 소돔 왕이 아브람에게 이르되 사람은 내게 보내고 물품은 네가 가지라 The king of Sodom said to Abram, "Give me the people and keep the goods for yourself." 소돔왕이 아브람에게 말하기를 사람은 내게 보내고 물품은 네가 가지라고 말합니다. 그러자 창세기 1423절을 보면 [ 14:23] 네 말이 내가 아브람으로 치부하게 하였다 할까 하여 네게 속한 것은 실 한 오라기나 들메끈 한 가닥도 내가 가지지 아니하리라 that I will accept nothing belonging to you, not even a thread or the strap of a sandal, so that you will never be able to say, 'I made Abram rich.' 아브람이 대답합니다. 너에게 속해 있는 것 중에 아무 것도 가지지 않겠다고 합니다. 여기서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이 있는데 당시의 전리품에 대한 처리 문제입니다. 소돔왕은 사람만 보내고 나머지 전리품은 네가 가지라고 합니다. 그런데 아브람은 사람도 보내고 전리품도 가지지 않겠다고 합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소돔왕이 사람 이외에 아브람에게 주는 전리품의 성격입니다. 다시 창세기 1421절을 보면 [ 14:21] 소돔 왕이 아브람에게 이르되 사람은 내게 보내고 물품은 네가 가지라 The king of Sodom said to Abram, "Give me the people and keep the goods for yourself." 이것이 누구의 소유냐 하는 것입니다. 지금 소돔왕이 아브람에게 주려는 것이 선의의 차원에서 베푸는 것이 아닙니다. 네가 싸워서 승리해서 찾아오느라 수고했어 그러니까 내가 그 수고의 대가로 전리품을 줄 테니 가져 라는 것이 아닙니다. 지금 소돔왕이 아브람에게 주는 것이 아니라 비는 모습입니다.

        당시의 전리품에 대한 일반적인 처리 방식에 따르면 전리품은 전쟁에서 승리한 자의 것입니다. 그것이 이전에는 소돔왕의 소유였을지 모르지만 이제는 아브람의 것입니다. 그러기에 아브람에게 이래라 저래라 못하는 것입니다. 오히려 소돔왕은 아브람의 눈치를 보아야 하는 상황입니다. 그랬기에 사람들은 보내 달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머지는 당신의 것이니까 당신이 알아서 하십시오 라는 의미입니다. 아브람이 싸워서 얻은 아브람의 소유인 이 전리품을 아브람이 어떻게 처리 하는가 보십시오 그는 그것에 관심을 가지지 않고 자신의 것을 포기합니다. 물질에 대한 신자의 자세입니다.

        자신의 것입니다. 그러나 욕심을 내지 않습니다. 자신이 소유해도 누구하나 뭐라고 할 사람이 없습니다. 그러나 소유하려 하지 않습니다. 일반적인 사람들의 선택과 너무나 다르지 않습니까? 당시의 관례에 따르며 일반적인 방식은 당연히 모든 몫은 아브람의 것입니다. 그것을 소돔왕도 알고 있기 때문에 부탁하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아브람은 당시의 문화적인 방식과 전통적인 방식을 따르지 않습니다. 이러한 것을 보고 아브람은 뭔가 다르구나 라는 생각이나 또는 아브람도 그러했으니 우리도 물질에 대하여 초연하라는 가르침은 도덕과 윤리 수준이며, 성경이 말씀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성경의 가르침은 물질에 대하여 탐심을 품지 말라고 합니다. 또한 탐욕을 가지지 말라고 합니다. 성경이 하나님과 물질을 겸하여 섬길 수 없음으로 물질이 네 인생의 주인이 되지 못하게 하라고 가르치는 것은 이것이 쉽지 않은 문제이기 때문이며, 우리의 삶을 옳아 매는 족쇠가 되고, 믿음을 무너뜨리는 문제가 되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우리 주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하나님과 물질을 겸하여 섬길 수 없습니다. 이 말은 사람들의 경향성은 물질을 쉽게 섬긴다는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과 물질을 함께 사랑하지 못한다고 합니다.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또는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기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는 것입니다. 섬긴다는 말은 종이 된다는 것입니다. 지배를 받아 섬기는 그것을 위하여 사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성경은 우리의 먹고 사는 문제가 불필요한 것이고 나쁜 것이라고 전혀 생각하지 말아야 할 것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문제는 그것에만 집중하여 사는 것이 문제라고 합니다. 마태복음 2438-39절을 보면 [ 24:38-39] 홍수 전에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 들고 시집 가고 있으면서 홍수가 나서 그들을 다 멸하기까지 깨닫지 못하였으니 인자의 임함도 이와 같으리라 For in the days before the flood, people were eating and drinking, marrying and giving in marriage, up to the day Noah entered the ark; and they knew nothing about what would happen until the flood came and took them all away. That is how it will be at the coming of the Son of Man. 본문은 예수님께서 세상 끝 날에 사람들의 모습을 예언한 것입니다. 세상 끝 날은 마치 노아가 방주에 들어갔던 때와 같다고 합니다. 그때 사람들이 한 것이 무엇이냐면 먹고 마시고 장가 들고 시집 가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이것 자체가 나쁘다는 이야기를 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먹고 마시고 장가 들고 시집 가야 합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이것만 하였다는 것입니다.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 가는 일에만 매달려 홍수가 나서 자신들이 죽게 된 것은 깨닫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무엇이 잘못인가 하면 먹고 사는 문제가 삶의 중심이 되고 인생의 목적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문제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본문의 아브람은 어떻게 먹고 사는 문제의 핵심인 물질에 대하여 이렇게 자유할 수 있을까요? 첫째로 그 전리품의 양이 작아서 입니까? 이미 엄청난 부자인 그에게 너무 작은 양의 전리품이라 관심이 없었던 것이 아닙니다. 그돌라오멜과 그 연합군은 이미 여러 성읍들을 쳐서 전리품을 무수히 가졌고 또한 당시 부유한 소돔과 고모라의 모든 재물과 양식을 빼앗았습니다. 큰 도시들이 노략을 당했습니다. 그 양이 얼마나 크겠습니까? 전리품의 양이 적음이 아닙니다. 두번째로는 그는 엄청난 부자였기 때문에 물질에 대하여 자유 할 수 있었습니까? 이런 말이 있습니다. 있는 사람이 더한다. 다윗이 밧세바를 우리아에게서 빼앗은 것을 나단 선지자가 책망하는 부분에서 이런 비유를 듭니다. 한 성에 부자와 가난한 사람이 있는데 그 부자는 소와 양이 가득하고 가난한 사람은 돈을 주고 사온 암양 새끼 하나라 그것을 가족과 같이 돌보고 기르는데 어느날 부자에게 손님이 왔는데 이 부자가 자신의 것이 아까와 가난한 자의 양을 빼앗아 손님을 대접합니다. 그렇습니다. 부자라고 돈에 대하여 자유합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99개를 가진 사람은 1개를 더 채워 넣으려고 애를 씁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아브람은 이런 선택을 할 수 있는 것일까요? 우선 창세기 1423절을 보면 [ 14:23] 네 말이 내가 아브람으로 치부하게 하였다 할까 하여 네게 속한 것은 실 한 오라기나 들메끈 한 가닥도 내가 가지지 아니하리라 that I will accept nothing belonging to you, not even a thread or the strap of a sandal, so that you will never be able to say, 'I made Abram rich.' 라고 합니다. 풀어서 이야기 하면 나는 너에게 속한 실 한오라기나 혹은 신발 끈 하나도 가지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 너는 절대로 말하지 못할 것이다. 네가 나를 부자로 만들었다고 이 말의 의미가 무엇입니까? 소돔왕으로 단순히 나를 부하게 하였다 하는 말을 듣기 싫은 것입니까? 인간적으로 소돔왕이 싫어서 혹은 인간적으로 남에게 도움을 받았다는 말이 듣기 싫어서 입니까?

        이에 대한 이해는 창세기 1422절이 핵심입니다. 창세기 1422절을 보면 [ 14:22]

아브람이 소돔 왕에게 이르되 천지의 주재이시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 여호와께 내가 손을 들어 맹세하노니 But Abram said to the king of Sodom, "With raised hand I have sworn an oath to the Lord, God Most High, Creator of heaven and earth, 아브람이 물질에 대하여 자유 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 때문입니다. 그의 맹세 속에 들어있는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를 보십시오. 그가 믿는 하나님은 누구신가 하면 천지의 주재 즉 하늘과 땅의 창조주 이십니다. 또한 최고로 높으신 분이라는 것입니다. 그분에게 손을 들어 맹세합니다. 하나님에 대한 이런 인식을 아브람이 어디서 얻게 되었는가 하면 창세기 1419절입니다. 창세기 1419절을 보면 [ 14:19] 그가 아브람에게 축복하여 이르되 천지의 주재이시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이여 아브람에게 복을 주옵소서 and he blessed Abram, saying, "Blessed be Abram by God Most High, Creator of heaven and earth. 이 말씀을 보면 멜기세덱의 축복과 아브람의 맹세 속에 들어난 하나님이 동일한 분임을 알게 됩니다. 아브람이 전쟁에서 돌아올 때 멜기세덱을 만나는데 그가 아브람을 축복합니다. 누구 이름으로 하는가 하면 천지의 주재이며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이름을 아브람을 축복합니다. 그리고 선언하기를 너희 대적을 네 손에 붙이신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을 찬송할찌로다 라는 말을 합니다. 이 선언을 통하여 아브람이 깨닫게 되는 것이 자신이 싸운 이 전쟁이 자신의 힘으로 능으로 된 것이 아님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네 명의 강력한 왕들을 무찌를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의 도우심이며 그가 이기게 하셨다는 것을 알게 된 것입니다.

        그전에는 자신이 어떻게 이기게 되었는지 확신할 수가 없습니다. 318명이 너무나 잘 싸워 이겼는지 아니면 야간의 습격이 주요했는지 승리의 주 요인을 확신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돌아와 멜기세덱의 말을 들으니 확신하게 된 것입니다. 이것이 내가 잘해서 이긴 것이 아니란 것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하늘과 땅의 주인 되시는 분이 나를 이기게 하신 것입니다. 나의 삶이 그분에게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자 그 얻는 것 중에 십분 일을 멜기세덱에게 주는 것입니다. 이 일은 그가 그것을 확신했다는 의미입니다.
       
멜기세덱을 통하여 아브람이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를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생각해 보니 하나님이 자신을 도우셨다는 것을 인식하게 되는 것입니다. 믿음은 그냥 믿는 다고 믿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은 감정적으로 접근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성적 접근입니다. 생각해 보니까 하나님이 하신 것입니다. 돌아 보니까 하나님이 일하시고 계시며 보호하고 계신 것입니다. 성경은 누누이 우리에게 말합니다. 생각해 보라고 합니다. 히브리서 1119절을 보면 [ 11:19] 그가 하나님이 능히 이삭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실 줄로 생각한지라 비유컨대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도로 받은 것이니라 Abraham reasoned that God could even raise the dead, and so in a manner of speaking he did receive Isaac back from death. 본문은 아브람이 이삭을 바칠 때 그가 어떻게 그런 일을 할 수 있었는지에 대한 말씀입니다. 본문에서 중요한 단어가 바로 다시 살리실 줄로 생각한지라 입니다. 그가 자식 이삭을 하나님께 바칠 수 있었던 것은 이성을 무시하고 아무 생각 없는 믿음으로 바친 것이 아닙니다. 분명하게 그는 생각했습니다. 이 단어의 의미가 논리적으로 생각해 보았다는 의미입니다. 그냥 무턱 대고 믿습니다 한 것이 아니라 논리적으로 이성적으로 생각해 보니까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알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그 분이라면 죽은 자도 살리실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분명히 아브람의 믿음은 이성적 작업을 통하여 작동하게 된 것입니다.

        이것이 왜 중요한가 하면 아브람이 물질을 포기한 것이 바로 하나님에 대한 그의 생각을 통한 믿음의 결정이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 것을 안 것입니다. 하늘과 땅의 주인이신 분이 자신을 지켜주시고 복을 주시는데 그 어떤 다른 것이 필요하겠습니까? 오늘날 신자가 물질적인 부분에서 바뀌어야 될 부분이 하나님에 대한 신뢰가 약하다는 것입니다. 그분이 하늘과 땅의 주인이시지만 먹고 사는 문제 물질에 대한 문제는 여전히 내가 고민하고 내가 애써야 될 문제로 인식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물질의 문제를 하나님께 의탁하셔야 합니다. 여러분을 먹이시며 입히신다는 하나님의 약속을 믿으셔야 합니다. 여러분 생각해 보셔야 합니다. 하나님이 나에게 어떤 분이신가 그분이 나를 위해 무엇을 하실 수 있는가를 생각해 보셔야 합니다. 이것이 믿음입니다. 믿음은 생각 없이 외쳐대는 것이 아닙니다. 그분을 묵상하며 그분이 누구신가를 생각해 볼 때 우리는 하나님을 더욱 신뢰하게 되고 하나님을 더욱 의지하게 됩니다. 아브람이 그랬듯이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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