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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 말씀 영상 https://youtube.com/live/kCyMEZdfA00


성탄절이 곧 다가 옵니다. 성탄절이 무슨 날인가 하는 것은 성탄절을 국가 기념일로 지정하고 있는 모든 나라들에 사는 사람들은 다 알고 있습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사람으로 오신 날입니다. 이 날에 대하여 사람들이 잘못 생각하며 잘못된 이미지를 가지도록 해서는 안됩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아기로 이 세상에 태어나신 사실을 부각시키며, 그것을 기념하는 것으로 성탄절을 생각하게 하는 것입니다. 예로 들면 오래전 처음 교회에 다닐 때에 성탄절에 성극을 하였습니다. 성탄절에 성극을 하면 반드시 동방박사 이야기나 목자들과 마구간에서 나신 아기 예수님에 대한 이야기가 중심이 됩니다. 한편에는 강보에 쌓인 아기 예수님을 안고 있는 마리아의 모습이 인상적이기도 합니다. 강보란 말이 어떤 이들에게는 낮선 단어일 수도 있습니다. 누가복음 27절을 보면 [ 2:7] 첫아들을 낳아 강보로 싸서 구유에 뉘었으니 이는 여관에 있을 곳이 없음이러라 and she gave birth to her firstborn, a son. She wrapped him in cloths and placed him in a manger, because there was no guest room available for them. 첫 아들을 낳아 강보에 싸서 구유에 뉘었다고 합니다. 여기서 강보라는 말은 쉽게 말하면 포대기로 갓난 아이를 천으로 감싸는 도구이며, 천조각으로 아이를 감싸 말았다는 의미입니다.

이러한 모습들이 성탄절하면 떠 오르게 되는 이미지들입니다. 이런 이미지들이 다 잘못된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 문제는 어린 아기 예수님에 대하여 성탄절에 행하여지는 행사들이 때론 도를 넘어, 성경이 말하고자 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나심에 대한 의도를 왜곡한다는데 있습니다. 그 왜곡의 예로 어린이 주일 학교에서 성탄절에 교회에서 케이크를 가지고 예수님의 탄생을 축하는 행사를 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행사는 어떤 이미지를 심어주게 되는가 하면 마치 인간이 인간의 생일을 축하는 것으로 인식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또한 성탄절에 아이들에게 선물을 나누어 주는 행사를 함으로 아이들은 성탄절에 선물을 받는 날로 인식하게 되는 것입니다.

염려스러운 것은 성경은 우리 주님의 탄생의 의미와 목적에 대하여 전혀 이런 방식을 유도하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요구하지도 않는다는 것입니다. 놀라운 것은 성경 어디에서도 예수님의 탄생을 기념하였다는 것을 발견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성경의 초점은 아기 예수님의 탄생이 아니라 그분이 누구신가 하는 것과 그분이 이 땅에 오신 목적이 무엇인가 하는 것, 그리고 그분이 무엇을 하셨는가에 초점을 맞추고자 하기 때문입니다.

누가복음 211절을 보면 [ 2:11] 오늘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 Today in the town of David a Savior has been born to you; he is the Messiah, the Lord. 이 말씀은 천사를 통하여 우리 주님이 누구신지 그분이 이 땅에 오시는 목적이 무엇인지를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오늘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고 합니다. 우리는 여기에 사용되고 있는 단어들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 붙여진 그분에 대한 수식어들은 그분이 이 땅에 오시는 목적과 그분이 누구신지를 알게 해주는 것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분을 설명하는 단어들은 그분의 정체성을 명확하게 해주기 위해서 붙여진 것들입니다.

첫째로 그분은 구주라는 것입니다. 구주 라는 단어는 헬라어로 소테르 라는 단어입니다. 이 단어의 어원은 소조 라는 단어입니다. 이 단어의 뜻은 구조하다, 구원하다, 보호하다 라는 뜻을 가지고 있으며, 위험과 파괴로부터 구출하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이 단어는 질병에서 해방되다 라는 의미도 함께 가지고 있어 병에서 나음을 입을 때에 구원 받았다 라는 의미로도 사용되었습니다. 즉 병에서 벗어나 완전하게 하다 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이로서 우리는 그분이 이 땅에 왜 오셨는지를 알게 됩니다. 그분은 너희를 위하여 라는 표현 속에서 이 땅에 살고 있는 인간들을 건져내시며, 구원하시며, 위험과 파괴로부터 구출하시기 위하여 오셨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을 제대로 안다면 생일 파티 흉내를 내며 즐길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위험과 파괴로부터 벗어나는 중대한 일이 우리에게 필요하다는 사실을 기억하며, 자신이 또 다시 이러한 위험과 파괴에 처하지 않도록 주의하는 일을 생각할 것입니다.

또 다른 그분에게 붙여진 칭호는 그분은 그리스도 라는 칭호입니다. 그리스도란 의미는 구약의 메시야 라는 히브리어의 헬라어 번역입니다. 메시야 라는 의미는 기름부음을 받은 자 라는 뜻입니다. 기름 부음을 받았다는 것은 하나님에 의해서 임명된 직분을 가진 존재라는 뜻입니다. 예수님은 사람에 의해서 그리스도로 세워진 분이 아닙니다. 사람들이 결정해서 그분을 그리스도 즉 메시야로 추앙된 것이 아닙니다. 그분은 이 땅에 메시야 즉 그리스도로 오신 것입니다. 그분은 이 땅에 태어나실 때에 이미 그리스도이신 것입니다. 그리스도라는 뜻이 기름부음을 받았다는 것은 그분은 하나님으로부터 직분을 받아 임명되어 이 땅에 오신 분이며 그분은 세 가지의 직분을 받아 오셨습니다. 구약에서 기름부음으로 직분을 임명하게 되는데 기름부음으로 구분되어 임명되는 직분은 왕, 제사장, 그리고 선지자 입니다. 성경이 예수님을 그리스도라고 칭할 때에 이는 예수님께서 기름부음으로 임명되는 세 개의 직분을 가진 분이시라는 사실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세 직분을 그리스도의 삼중직이라고 말합니다. 예수님은 왕으로써 이 땅에 오셨고, 그분은 제사장으로 오셨고, 그분은 선지라로서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즉 성탄절에 우리가 생각해야 하는 것은 이 땅에 예수님께서 왜 오셨는가?에 대하여 그분은 우리의 왕이 되시기 위하여 오셨으며, 우리를 위한 대제사장으로서 오셨으며, 우리를 가르치는 선지자로서 이 땅에 오셨다는 사실입니다. 이러한 가르침을 되새기며, 그분이 나의 왕이심을 알고 순종하고자 하는 마음과 태도를 나타내야 합니다. 또한 그분이 자신의 피로 속죄의 제사를 드리셨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우리를 위하여 여전히 중보하고 계시는 자이시며, 우리의 연약함을 돌보하시는 분이심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지금도 여전히 우리를 친히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되는 방식으로 우리를 가르치고 계심을 알아 그분의 발 아래에서 열심으로 하나님에 대하여 그분의 뜻에 대하여 배워야 합니다.

그리고 세번째로 그분이 주라는 사실입니다. 그분은 여전히 아기가 아닙니다. 그분이 비록 우리와 같은 종의 형체로 이 땅에 오셨지만 그분은 그때에도 지금도 여전히 주이십니다. 주라는 말은 하나님이시라는 말입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이시라는 것에 대하여 성경은 그것을 이러한 방식으로 증명합니다. 요한복음 114절을 보면 [ 1:14]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The Word became flesh and made his dwelling among us. We have seen his glory, the glory of the one and only Son, who came from the Father, full of grace and truth.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며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고 합니다. 이 구절을 예수님에 대한 증언 중에서 대단히 중요한 증언 중 하나입니다. 이 말씀에서 우리가 생각하고자 하는 것은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라는 내용입니다. 우리가 그분의 영광스러움을 보니까 그분의 영광스러움, 높으심, 그분의 존귀하심은 그분이 아버지 즉 성부 하나님으로부터 오신 only Son 이라는 사실입니다.

한글 성경에서 독생자라고 표현할 때에 이는 하나 뿐인 아들 라는 의미입니다. 그러나 이 의미가 담아 내고 있는 것은 그분은 하나님께로부터 나신 하나님이라는 의미입니다. 영어로 표현할 때에 여자에게서 태어나는 것을 birth 라고 표현합니다. 이는 어머니로부터 태어나는 것을 강조하기 위한 단어입니다. 그러나 자식을 얻게 되는 아버지를 표현할 때에 beget 이라는 단어를 사용합니다. 이 의미는 아버지가 되다, 아버지가 자식을 보다 라는 의미를 표현할 때 사용되는 것입니다. 독생자라고 할 때에 이를 begotten 이라고 번역하는데 KJV 성경을 보면 [KJV] 1:14 And the Word was made flesh, and dwelt among us, (and we beheld his glory, the glory as of the only begotten of the Father,) full of grace and truth. The only begotten of the Father 라고 번역하였습니다. 이는 아버지로부터 난 아들이라는 표현입니다. 즉 예수님께서 주가 되신다는 의미는 그분은 성부 하나님으로부터 나신 유일하신 아들 하나님이라는 의미입니다. 이러한 성경의 가르침에서 주의해야 하는 것은 그분은 피조물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예수님을 창조된 하나님이 아닙니다. 그분은 성부 하나님으로부터 나신 아들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성탄절에 우리가 생각할 예수님에 대한 것은 그분이 하나님이시라는 점입니다. 그분이 하나님이신데 왜 사람이 되셨는가? 바로 우리의 구주가 되시기 위함이라는 것입니다. 왜 그분은 구주가 되셔야 하는가? 왜냐하면 인간은 파멸의 위험에 처한 상태이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인간을 파멸로부터 구출해줄 수 있는 자가 세상에 없기 때문에 하나님으로부터 나신 유일하신 아들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여 사람이 되셔서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사람이 되신 놀라운 사건, 즉 하나님이 피조물과 같은 모양을 입으신 것에 대한 놀라움과 기쁨입니다. 이것이 성탄절에 기억해야 하는 내용들입니다.

문제는 누구나 모두다 이러한 기쁨과 놀라움의 소식을 믿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세상에 수 많은 사람들이 가고, 오고, 살고 있습니다. 이 땅에 살았던 흔적을 남긴 많은 사람들이 이 소식을 들었고, 그래서 성탄절에 대한 나름의 어떠한 정보를 가지고 있다해도 모든 이들이 이러한 사실을 믿을 뿐만 아니라 그 사실에 대하여 분명하고 확실한 자신의 신앙 고백만이 아니라 삶을 바꾼 자들은 많지 않습니다.

이에 대하여 누가복음 213-14절을 보면 [ 2:13-14] 홀연히 수많은 천군이 그 천사들과 함께 하나님을 찬송하여 이르되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하니라 Suddenly a great company of the heavenly host appeared with the angel, praising God and saying, "Glory to God in the highest heaven, and on earth peace to those on whom his favor rests." 홀연히 수많은 천군이 그 천사들과 함께 하나님을 찬송하여 말합니다.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이 말씀의 의미를 여러분들은 아십니까? 예수님께서 사람이 되셔서 이 땅에 태어나신 날 천사들은 하나님을 찬송합니다. 수 많은 즉 그 수를 셀 수 없는 하늘의 천군과 그 천사와 함께 하나님을 찬송합니다. 여기서 한글 성경에서는 천국과 그 천사들이라고 번역되어 복수 형인데 영어 성경에서는 한 천사입니다. 한 천사는 바로 목자들에게 예수님의 탄생 소식을 전하는 그 천사입니다. 그 천사와 천군 즉 천사들의 무리 혹은 천사들의 군대가 함께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세상이 창조된 이래 한번도 일어난 적이 없는 놀라운 피조물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놀라운 계획이 실현되었기 때문입니다.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스러운 이유가 바로 하나님 자신이 누구신지를 드러내며 그분의 은혜와 사랑과 공의가 온 땅에 선포되어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얼마나 영광스러운 분이신지를 모든 피조세계에 알리심으로 그분은 영광스럽게 되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예수님의 탄생은 첫째로 하나님께는 영광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나님이 행하신 일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성탄절에 하나님의 영광을 생각해야 하며, 그분이 누구신지를 그분이 어떠한 일을 행하셨는지를 생각하며 묵상하며, 기려야 하는 것입니다.

둘째는 땅에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들 중에 평화라고 합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이 모든 사람들 중에 평화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평화에 대하여 사람들은 사람들과 사람들 사이의 평화라고 생각합니다. 그러한 것이 전혀 없다는 말이 아닙니다. 성탄절이 되면, 전쟁을 그치고, 다툼과 분열을 그치고 그리스도의 평화를 이룹시다 라고 말하며, 가르칩니다. 이것은 인본주의적 가르침입니다. 인간 사이의 평화를 위하여 주님이 오신 것이 아닙니다. 그분은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관계를 회복하시기 위하여 오신 것입니다. 타락한 인간은 그 타락한 본성과 죄된 육신적 삶으로 인하여 하나님으로부터 진노를 받는 상태일 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원수로 여기는 자들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신 것은 하나님과 인간 사이를 자신의 죽으심을 통하여 화목하게 하시기 위하여 오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평화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자신과 화목하게 하신 평화인 것입니다. 그 이후에 하나님과 화목함으로 평화 즉 평강을 얻은 인간은 비로서 인간과 인간 사이의 닫힌 문을 우리 주님 앞에서 열게 되어 복음으로 화목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성탄절을 앞두고 기억하며, 바르게 알고 믿어야 할 내용들입니다. 성탄절은 그리스도를 깊이 알아야 함을 깨닫는 시간이며, 하나님께서 우리를 이하여 행하신 일들을 돌아보며 감사하는 시간임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주일 말씀 요약 및 설교 영상

주일 말씀 컬럼 안에 설교 영상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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