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험에 대하여 성경이 이중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이중적이라
함은 성경을 보면 시험에 대하여 우리 주님께서는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기도하라고 말씀하실 뿐만 아니라 유혹을 받지 않도록 주의하라고 말씀하십니다. 반면에 성경의 어떤 구절에서는 시험을 당하는 것이 오히려 기쁘게 여겨야 하는 일이지 피하거나 두려워할 일이
아니라는 구절이 또한 존재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특히 야고보서 1장
2절을 보면 [약 1:2]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당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Consider it pure joy, my brothers and sisters,
whenever you face trials of many kinds,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시험을 당하는 것을 무서워하거나 피할 필요가 없는 것이 아닌가 생각 할 수 있습니다. 성경에 대하여 그리고 성경이 시험이라고 사용하고 있는 단어의 의미와
뜻에 대한 이해가 없으므로 혼란스러워하거나 전혀 이해를 못하는 상태에 있는 이들이 태반입니다. 이는
성경이 시험이라고 번역된 단어가 페이라 라는 단어인데 이 단어가 문맥에 따라 시험, 시련, 유혹 또는 미혹 이라는 단어로 번역되기 때문입니다. 영어로는 test, trial, temptation, tempt 등으로 번역되는 것입니다.
먼저 성경이 말씀하고 있는 것에 대하여 구분 할 줄 알아야 합니다. 둘째로는 이 구분 속에서 우리는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백성을 시험 즉
test 하시며, 또한 trial
을 주십니다. 그 이유는 첫째로 하나님께서는 시험을 통하여 그 시험 당하는 자의 마음에
무엇이 있는가 알고자 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알고자 하실 때에 이러한 하나님의 시험은 시험의 대상자가
스스로 자신의 마음이 어떠한지를 드러내게 하기 위함입니다. 이러한 시험의 목적은 두번째로 하나님이 누구신지를
나타내시며, 알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시험과 시련을 통하여
하나님의 백성은 자신에게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며, 이러한 사랑은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주신 은혜임을 인식하게 고백하며, 하나님을 더욱 의지하도록 이끌게 되는 것입니다. 야고보는 12절에서 [약 1:12]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나니 이는 시련을 견디어 낸 자가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이기 때문이라 Blessed is the one who perseveres under
trial because, having stood the test, that person will receive the crown of
life that the Lord has promised to those who love him. 라고 덧붙입니다. 시험 곧 죄를 짓 도록 시험 받는 것은 결코 내가 원하는 복된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우리 믿음의 연단을 위해 보내시는 고통을 견디는 것은 복된 일입니다. 그러므로
시험 당함을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는 말을 시험을 받는 일을 피하거나 두려워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은 어리석은 것이며 그러한 자들은 다가오는
시험에 넘어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시험을 두 가지 의미로 이해할 수가 있습니다. 하나는 소극적 및 중립적 의미입니다. 이런 경우는 시험이 되기도
하고 안 되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다른 하나는 적극적 의미입니다. 왜냐하면
이런 경우는 반드시 죄로 이끌기 때문입니다. 야고보는 시험을 전자의 의미로 말하고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또 다른 부분은 성경에서 예수님께서도 시험을 받으셨다는 기록을 통하여
예수님께서 시험을 받으신 것은 예수님께서 죄에 들어가신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입니다. 히브리서 2장 18절을 보면 [히 2:18] 그가 시험을 받아 고난을 당하셨은즉
시험 받는 자들을 능히 도우실 수 있느니라 18 Because he himself suffered when he
was tempted, he is able to help those who are being tempted.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에 대하여 우리가 알아야 하는 것은 주님이 받으신 시험은 육신을 입고 계신 시기에 세상과
세상 임금의 악의로 인해 주어진 일이라는 것입니다. 주님은 스스로 시험에 들어간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바로 이런 상태에 있기 때문에 우리는 최대한 부지런하고 깨어서 조심한다고 하더라도 반드시 시험을 받도록
되어 있고, 그 점에서 우리는 그리스도와 같은 상태에 있습니다. 그리스도는
시험에 들었을 때 단지 시험이 주는 고통만 맛보게 됩니다. 하지만 우리는 시험에 들면 죄를 범하게 되며
우리의 생애는 죄로 오염되고 헝클어진 삶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모든 수단을 동원해서 시험을 피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에 대한 성경의 예를 좀 보도록 합시다. 먼저 남의 것에 탐욕에 눈이 멀어 물질의 유혹에 빠진 사람의 경우입니다. 열왕기하
5장은 아람의 장군인 한 사람의 이야기가 등장합니다. 그
사람은 아람 왕으로부터 총애를 받은 자리에 있었지만 그는 문둥병으로 고통을 받은 인생이었습니다. 그의
집에는 여자 종이 있었는데 그녀로부터 만약 나아만이 이스라엘에 있는 선지자 엘리사에게 가면 그의 병이 낫을 것이라는 말을 듣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왕의 공식적인 요청서를 가지고 이스라엘로 옵니다. 그는
선지자 엘리사의 말을 듣고 요단강 물에 일곱번 들어감으로 문둥병이 나은 것입니다. 병이 나은 나아만은
엘리사에게 사례를 하고자 하지만 엘리사는 거절합니다. 그리고 그냥 돌려 보냅니다. 그가 돌아갈 때에 일어난 일이 열왕기하 5장 20절에 기록이 되었는데 열왕기하 5장 20절을 보면 [왕하 5:20] 하나님의 사람 엘리사의 사환
게하시가 스스로 이르되 내 주인이 이 아람 사람 나아만에게 면하여 주고 그가 가지고 온 것을 그의 손에서 받지 아니하였도다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내가 그를 쫓아가서 무엇이든지 그에게서 받으리라 하고 Gehazi, the servant of
Elisha the man of God, said to himself, "My master was too easy on Naaman,
this Aramean, by not accepting from him what he brought. As surely as the Lord
lives, I will run after him and get something from him." 하나님의 사람 엘리사의 사환 게하시가 스스로 말합니다 내 주인이 이 아람 사람 나아만에게 면하여 주고 그가 가지고
온 것을 그의 손에서 받지 않았다 라는 것입니다. 영어 성경에서는 My
master was too easy on Naaman 이라고 번역하였는데 이는 나의 주인은 나아만을 너무 좋게 살살 다루었다는 의미로
번역하였습니다. 원문의 의미는 내 주인은 나아만에게 면하여 주고 라고 할 때에 억제하다 라는 뜻입니다. 즉 나의 주인은 나남에 대하여 억제하며, 자제하는 것입니다. 즉 엘리사는 나아만이 주는 물질에 대하여 유혹되지 않았고, 미혹에
빠지지 않은 것입니다. 그러나 종인 게하시는 달랐습니다. 그는
이 기회를 놓칠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는 심지어 하나님의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까지 합니다. 시험에 빠지면 하나님을 이용하며, 그분의 이름을 이용하는 것입니다. 욕망에 눈먼 자들이 교회를 분열할 때에 서로 하나님의 이름을 걸고 합니다. 왜냐하면
시험에 빠져 눈이 멀어버렸기 때문입니다. 다음에 나오는 게하시의 모습을 보면 내가 그를 쫓아가서 무엇이든지
그에게서 받으리라고 합니다. 쫓아가고 반드시 받아 내겠다는 그의 각오가 담겨져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는 결국 돌아가는 나아만을 불러 세워 옷 두벌과 은 두 달란트를
받아 챙깁니다. 그리고 태연히 아무일도 없다는 듯이 엘리사에게 나아옵니다. 이에 엘리사가 묻습니다. 어디에 갔다 왔는가? 이 물음에 게하시는 아무데도 가지 않았다고 거짓말을 합니다. 그러나
엘리사는 이미 성령을 통하여 모든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를 꾸짖으며 이렇게 말하는데 열왕기하
5장 27절을 보면 [왕하 5:27] 그러므로 나아만의 나병이
네게 들어 네 자손에게 미쳐 영원토록 이르리라 하니 게하시가 그 앞에서 물러나오매 나병이 발하여 눈같이 되었더라
Naaman's leprosy will cling to you and to your descendants forever." Then
Gehazi went from Elisha's presence and his skin was leprous-it had become as
white as snow. 그러므로 나아만의 나병이 네게 들어 네 자손에게 미쳐
영원토록 이르리라. 나아만의 문둥병이 게하시에게로 가며 그와 그의 자손 모두가 저주를 받게 된 것입니다. 시험에 빠진다는 것은 이처럼 고통스러운 것이며, 망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감사하게도 우리는 성경을 통하여 두 가지 시험에 빠지지 않게
되는 방식에 대하여 듣게 됩니다. 첫째는 우리를 도우시는 분이 계시다는 사실입니다. 바로 우리 주님입니다. 우리 주님은 자신이 잡히시던 날 밤에 제자들이
시험에 들어 믿음이 사라질 위기 가운데에서 그들을 위해 기도하심으로 사단의 시험이 결코 자신의 제자들의 믿음이 완전히 시들어버리고 사라지는 것을
막으셨습니다. 제자들을 위하여 기도하신 주님은 지금도 하나님이 우편에서 우리를 위해 기도하고 계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하며, 믿고 의지해야 합니다. 또한 우리 주님은
우리가 시험을 당할 때에 어떻게 우리를 건시실지를 아시는 주님이십니다. 베드로후서 2장 9절을 보면 [벧후 2:9] 주께서 경건한 자는 시험에서
건지실 줄 아시고 불의한 자는 형벌 아래에 두어 심판 날까지 지키시며 if this is so, then the
Lord knows how to rescue the godly from trials and to hold the unrighteous for
punishment on the day of judgment. 한글 성경은 모호하게
번역되어 있습니다. 주께서 경건한 자는 시험에서 건지실 줄 아시고 라고 할 때에 주님이 경건한 자는
시험에서 건져 낼 것을 아신다 라고 말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이는 주님이 아신다 라는 의미로 읽힐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 의미는 주께서 경건한 자를 시험에서 어떻게 건지실 줄을 아신다는 뜻입니다. 우리 주님은 자신을 믿고, 의지하며, 주를 붙잡고, 쫓아 살고자 하는 경건한 자를 시험에서 어떻게 건져내실
지를 아신다는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의 시험을 아실 뿐만 아니라 그것에서 우리를 어떻게 건져 내실지도
알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시험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할 이유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를 시험에서 건져 내신다는 주님의 약속만을 믿고 안일하게
살아서는 안됩니다. 왜냐하면 건져낼 것을 약속하신 우리 주님은 우리에게 깨어 기도하라고 말씀하시며, 시험에 들지 않도록 기도하라고 명령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너희는
시험에 들지 않도록 기도하라 라는 말씀이 주님이 가르쳐주신 매일의 우리의 기도문에 담겨 있는 것입니다. 주님이
우리를 시험으로부터 이끌어 내시도록 우리는 기도해야 합니다. 동시에 우리는 우리 자신을 영혼을 보호할 책임이 우리에게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성경은 우리 자신을 온갖 시험으로부터 지키기 위하여 우리로 깨어 있기를 원합니다. 이제 우리가 구체적으로 살펴볼 것은 성경은 시험에 들지 않고 자신의 영혼을 보호하며 지키기 위한 방법과 수단들에
대하여 어떻게 가르치고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시험으로부터 영혼을 보호하기 위한 방법으로 당신의 마음의 지혜에 대해 깨어 있으라는 것입니다. 성경은 많은 곳에서 마음을 지키는 것이 중요함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잠언 4:23절을 보면 [잠 4:23] 모든 지킬 만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 Above all else, guard your heart, for everything
you do flows from it. 라고 합니다. 우리에게는 많은 지킬 만한 것들이 있습니다. 이것도 저것도 모두다
소중하고, 중요하다고 생각이 되지만 그것들 가운데 가장 귀하고 지키야 하는 것은 마음이라는 것입니다. 시험에 드는 문제에 있어서 우리 마음을 잃게 되면 그 순간 바로 시험에 들게 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여기서 마음의 지혜에 대해 깨어 있으라는 말의 의미를 말씀드리면 시험에 들지 않기 위해서는 자신의 마음을 먼저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과거나
현재나 사람들은 자신의 마음이 어떠한지를 잘 알지 못합니다. 내가 왜 이것을 다른 것들보다 더 좋아하는지, 왜 내가 이러한 일들을 행하고 있는지에
대하여 궁금하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고 관심을 기울여 파헤쳐 보지 않고 그냥 합니다. 그래서 왜
하는가? 왜 그렇게 생각하는가?에 대하여 그냥 하고 싶으니까? 혹은 습관적으로라는 대답을 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자신의 영혼을 시험으로부터 지키기 위해서는 자신의 영, 본성의 구조와 기질, 욕심과 부패함, 본능적으로 죄를 쉽게 범하는 영적인 연약함 등을
잘 파악해야 합니다. 이유는 이것들 안에 수시로 시험에 유리한 빌미를 제공하는 요소들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자신의 연역함이 어디에 있는지 알게 되면 죄를 범할 모든 기회를 멀리 하려고 조심하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비록 성격이 온순하고 상냥하며 부드럽고 고분고분한 것은 아주
고상한 성격적 기질이며 참으로 본받을 만한 바탕으로서 그 자체로 미덕이어서 은혜가 자라고 있을 때에는 문제가 없지만 깨어 있지 않으면 이 기질은
무수한 시험에 빌미를 제공하며 연루되는 수단이 되고 맙니다. 육욕적이고 완고하며 괴팍한 성격은 시기, 악의 이기심, 역정, 거친
태도, 불평불만 등이 그들의 성격의 문턱에 놓여 있어 이들은 가는 곳마다 다른 사람들을 걸려 넘어지게
합니다. 우리는 성경 속에서 이러한 문제를 안고 있는 자를 발견하게 되는데 광폭한
예후가 그 예입니다. 열왕기하 9장 20절을 보면 예후의 성격을 보게 되는데 [왕하 9:20] 파수꾼이 또 전하여 이르되 그도 그들에게까지 갔으나
돌아오지 아니하고 그 병거 모는 것이 님시의 손자 예후가 모는 것 같이 미치게 모나이다 하니 The
lookout reported, "He has reached them, but he isn't coming back either.
The driving is like that of Jehu son of Nimshi-he drives like a maniac."예후는
당시의 아합의 아들 요람이 왕으로 있을 때에 엘리사가 자신의 제자를 예후에게 보내어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데 그로 북 이스라엘의 왕으로 기름을
부어 예언과 함께 세웁니다. 이때에 예후는 반역을 일으켜 요람을 죽이러 가는 길에서 그를 만나러 오는
파수꾼들을 만나는 장면입니다. 이때에 그가 요람이 있는 이스르엘 성으로 달려가는 모습을 보면 그 병거
모는 것이 님시의 손자 예후가 모는 것 같이 미치게 몬다고 합니다. 이 단어는 미쳐 날뛰다는 의미로
불 같은 그의 성격을 잘 나타내 줍니다. 그의 불 같은 성격은 아합의 아내 이세벨을 창에서 던져 죽이고, 아합의 집에 관련된 모든 사람들을 죽이며, 심지어 유다 아하시아왕의
형제들을 포함하여 사십 이명을 죽입니다. 이러한 그의 성격은 충동적이며, 광분에 이끌리는 성격을 가짐으로 인하여 비록 하나님에 의해서 아합에게 내린 하나님의 심판의 도구로 사용되었지만
그의 인생은 결코 좋은 결말을 맺지 못하게 됩니다. 이에 대하여 열왕기하 10장 32절을 보면 [왕하 10:32] 이 때에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서
땅을 잘라 내기 시작하시매 하사엘이 이스라엘의 모든 영토에서 공격하되 In those days the Lord
began to reduce the size of Israel. Hazael overpowered the Israelites
throughout their territory 이 때에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서 땅을 잘라 내기 시작하셨다고 합니다. 이 때는 예후가 왕으로 통치 할 때에부터 입니다. 하나님께서의 그가
다스리는 땅을 조금씩 잘라 내어 다른 이에게 넘겨준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안에 충동적으로 광분하는
예후를 두지 않도록 조심하여야 합니다. 또한 손쉽게 불평하는 요나와 같은 성격을 주의해야 합니다. 요나서 4장 9절을 보면
[욘 4:9] 하나님이 요나에게 이르시되 네가 이 박넝쿨로 말미암아 성내는 것이 어찌 옳으냐 하시니 그가 대답하되
내가 성내어 죽기까지 할지라도 옳으니이다 하니라 But God said to Jonah, "Is it
right for you to be angry about the plant?" "It is," he said.
"And I'm so angry I wish I were dead." 요나는
하나님께 성을 내고 있는데 네가 이 박넝쿨로 말미암아 성내는 것이 옳으냐라는 물음에 대하여 그는 내가 성내어 죽기까지 할지라도 옳다고 합니다. 이 내용의 배경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위협하는 앗수르를 회개하게 하기 위하여 요나를 앗수르의 수도인 니느웨로
보내 하나님의 심판을 예언하게 합니다. 그때 요나는 이러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기 싫어서 다시스로
도망을 치다 풍랑을 통하여 잡혀오게 됩니다. 그리고 어쩔 수 없이 니느웨 성에 하나님의 심판을 선포합니다. 그리고 그 성이 어떻게 되는가 지켜 보고 있었는데 너무나 더운 날씨에 죽을 지경이었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는 한 박 넝쿨이 자라 덮게 되어 그늘을 만들어 주어 그는 너무나 기쁨 가운데 쉴 수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다음날 하나님께서는 벌레를 예비하여 박 넝쿨을 갈아 먹게 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게서는 뜨거운 동풍 불게 하셨으며, 태양은 요나를 고통스럽게
하였습니다. 그러한 가운데 요나가 하나님께 대하여 불평하는 것입니다.
내가 성내어 죽기까지 할지라도 옳다는 것입니다. 이에 대하여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시는데 요나서 4장 10-11절을 보면 [욘 4:10-11]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네가
수고도 아니하였고 재배도 아니하였고 하룻밤에 났다가 하룻밤에 말라 버린 이 박넝쿨을 아꼈거든 하물며 이 큰 성읍 니느웨에는 좌우를 분변하지 못하는
자가 십이만여 명이요 가축도 많이 있나니 내가 어찌 아끼지 아니하겠느냐 하시니라 네가 수고도 아니하였고 재배도 아니하며 하룻밤에 났다가
하룻밤에 말라 버린 이 박넝쿨을 네가 아꼈거든 하물며 이 큰 성읍 니느웨에는 좌우를 분변하지 못하는 자가 십이만여 명이며 가축도 많이 있는데 내가
어찌 아끼지 않겠는가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쉽게 불평하며, 쉽게
화를 내며, 자기 중심적인 성향을 주의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시험은 이러한 우리의 기질적 문제를 통하여 역사하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성격적 기질들을 어떻게 다루느냐에
따라 큰 죄의 매개체가 되게 할 수도 있고 은혜를 행사하는 장점이 되게 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시험에 들지 않도록 영혼을 보호하기 위한 다음의 방법은
마음을 훈련시키는 모든 것들에 대해 깨어 있으라는 것입니다. 마음을 지키기 위해서는 마음을 훈련시켜야 합니다. 자신의 마음을 주의하여 살펴보아 어떠한 기질을 가지고 있으며 그 기질 안에 어떠한 부패함이나 악함이 도사리고
있으며 자신을 자주 죄에 빠지게 하는 나쁜 습성이 배어 있지 않는가를 살펴보아야 합니다. 순간 순간
떠오는 악한 생각들은 마음의 부패에서 나오는 것들이기 때문에 마음을 훈련하여 이러한 생각들을 멀리하도록 해야 합니다. 우리의 삶 속에서 우리의 본성의 기질을 혼란 시키거나 타락을 부추기는데 유력하게 작용하는 모든 빌미, 기회, 일, 교제, 은퇴, 사업 등이 있으며 이러한 것들에 대하여 우리는 깨어 있어야
합니다. 깨어 있다는 것은 주의를 기울이며 마음이 이러한 일들을 대하는 방식과 태도를 고려하며 거기에
죄가 끼어 들거나 악한 생각으로 나아가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시험에 들지 않으려면 마음의 창고에 양식을 비축해
두어야 합니다. 마태복음 12장 34-35절을 보면 [마 12:34-35] 독사의 자식들아 너희는 악하니 어떻게 선한 말을
할 수 있느냐 이는 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함이라 선한 사람은 그 쌓은 선에서 선한 것을 내고 악한 사람은 그 쌓은 악에서 악한 것을 내느니라 You brood of vipers, how can you who are evil say anything good?
For the mouth speaks what the heart is full of. A good man brings good things
out of the good stored up in him, and an evil man brings evil things out of the
evil stored up in him. 독사의 자식들은 악하여 선한 말을 할 수가 없는데 이것은 마음에 악이 가득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선한 사람은 마음에 쌓은 선으로 선한 것을 낼 수가 있는 것이며 악한 사람은 그 마음에 쌓은
악 때문에 악한 것을 낼 수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때문에 우리는 마음에 선한 양식을 쌓는 일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양식을 쌓기 위해서 우리는 복음이 제공하는 양식을 준비해야 합니다. 복음의
양식은 마음을 그리스도 안에서 베풀어지는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의식으로 가득 채워 줄 것입니다. 우리는
또한 율법의 양식도 쌓아 놓아야 하는데 율법을 통해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과 더불어 사망, 지옥, 형벌에 대한 두려움도 가져야 합니다. 물론 율법의 양식들로만 쌓인
마음은 사단의 공격에 한동안 버틸 수 있지만 조만간 무너지게 됩니다. 여기에 가장 중요하고, 더욱 중요한 양식은 그리스도 안에서 베풀어진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의식이며,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영원한 계획이고, 그리스도의 보혈의 흔적과 우리가 얻게 된 특권으로
그분의 자녀됨, 의롭게 됨, 용서 등을 음미하며 이것들이
마음에 넘치도록 할 때에 우리의 마음은 시험으로부터 지킴을 받으며 영혼은 안전하게 되는 것입니다.
주일말씀
2025.01.16 12:31
시험에 들지 않도록 영혼을 보호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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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 말씀 요약 및 설교 영상
주일 말씀 컬럼 안에 설교 영상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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