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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우리가 살펴볼 말씀은 이스라엘 백성이 출애굽하여 시내산에 도착한 후 하나님으로부터 십계명을 받는 장면입니다. 출애굽기 20장 1-3절을
보면 [출 20:1-3] 하나님이 이 모든 말씀으로 말씀하여 이르시되 나는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낸 네 하나님 여호와니라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두지 말라
And God spoke all these words: "I am the Lord your God, who brought you
out of Egypt, out of the land of slavery. "You shall have no other gods
before me. 출애굽기 20장을
볼 때 우리가 관심을 갖게 되는 것은 중요한 십계명입니다. 그래서 그 십계명을 받는 상황이 어떠 한가는
대체적으로 무시 됩니다. 본문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어떤 상황과 분위기 속에서 십계명을 받았는가를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십계명은 일반적으로 하나님께서 두 돌판에 써서 모세에게 주셨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습니다. 그러나 먼저는
하나님께서 직접 자신의 음성으로 주신 것이 십계명입니다. 본문을 보면 백성들이 가까이 가지도 못하고
멀리 서서 떨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시내산으로부터 우뢰 즉 천둥소리와 번개와 나팔 소리 그리고 연기를
보았기 때문입니다. 이에 대한 다른 본문인 신명기 4장 11-12절을 보면 [신 4:11-12] 너희가 가까이 나아와서 산 아래에 서니 그 산에
불이 붙어 불길이 충천하고 어둠과 구름과 흑암이 덮였는데 여호와께서 불길 중에서 너희에게 말씀하시되 음성뿐이므로 너희가 그 말소리만 듣고 형상은
보지 못하였느니라 You came near and stood at the foot of the mountain
while it blazed with fire to the very heavens, with black clouds and deep
darkness. Then the Lord spoke to you out of the fire. You heard the sound of
words but saw no form; there was only a voice. 신명기 4장
11절은 너희가 가까이 나아와서 산 아래 서니 그 산에 불이 붙어 불길이 충천하고 어둠과 구름과 흑암이
덮였는데 라고 표현합니다. 여기서는 산에 불이 붙었습니다. 그리고
그 불이 하늘로 치솟아 오릅니다. 또한 검은 구름과 깜깜함으로 덮여있었습니다. 어떨지 상상해 보십시오. 지금 여러분들이 산 아래에 모여 있습니다. 그런데 그 산이 시뻘건 불길로 타오르고 있고 불이 하늘 높이 치솟아 오르며 천둥소리가 나고 번개가 치며 그
산은 검고 짙은 구름으로 덮여 깜깜하였습니다. 오직 보이는 것은 치솟은 불과 번개이며 엄청난 소리들입니다. 엄청난 소리에 아마 땅도 진동하였을 것입니다. 그런 상황 앞에서
여러분이라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두려움을 느끼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치솟은 불이 번개가 자신들을 덮치지 않을까 두려움에 멀리 설 수밖에 없습니다. 출애굽기 20장 18-19절을 보면 [출 20:18-19] 뭇 백성이 우레와 번개와 나팔 소리와 산의 연기를
본지라 그들이 볼 때에 떨며 멀리 서서 모세에게 이르되 당신이 우리에게 말씀하소서 우리가 들으리이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말씀하시지 말게 하소서 우리가
죽을까 하나이다 When the people saw the thunder and lightning and
heard the trumpet and saw the mountain in smoke, they trembled with fear. They
stayed at a distance and said to Moses, "Speak to us yourself and we will
listen. But do not have God speak to us or we will die." 두려움에 떤
백성들이 할 수 있는 것은 모세에게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제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직접 말씀하지 마시고
당신이 우리에게 말씀해 주소서 우리가 들으리이다. 이렇게 요구하는 배경을 성경은 그들이 생각하기를 우리가
죽을까 하나이다 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 왜 하나님은 십계명을
주시는 배경 혹은 상황에 백성들이 하나님의 은혜나 긍휼을 경험하는 분위기 보다는 죽음을 생각하는 상황과 환경을 만드신 것일까요? 20절이 그 해답인데 20절을
보면 [출 20:20] 모세가 백성에게 이르되 두려워하지 말라 하나님이 임하심은 너희를 시험하고 너희로 경외하여 범죄하지
않게 하려 하심이니라 Moses said to the people, "Do not be afraid.
God has come to test you, so that the fear of God will be with you to keep you
from sinning." 하나님이 이렇게 하심은 너희로 시험하고 너희로 경외하여 범죄치 않게 하려고 그러셨다는 것입니다. 왜 하나님이 평화스럽고 부드럽고 편안한 분위기가 아니라 굳이 죽음의 공포 속에서 말씀을 주시는가 하면 두 가지인데
하나는 시험하시기 위해서 입니다. 시험이란 단어는 시험으로도 사용되고 또 다른 의미는 증명이라고도 해석이
됩니다. 시험이라고 번역이 되면 하나님을 두려워하는가에 대한 시험입니다. 그러나 증명이라고 번역이 되면 하나님이 자신이 누구인지를 증명함으로 이스라엘 백성이 경외하게 되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범죄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경외한다는 의미가 한국말로는 좀 불분명합니다. 경외하다는
말의 뜻이 높이다 존귀히 여기다라고 생각하는데 경외란 공경하면서 두려워한다는 의밉니다. 영어 성경은 Fear로 번역이 되었습니다. 두려움으로 번역하는 것이 더 나은 것
같습니다. 경외 즉 하나님을 두려워하게 되면 일어나는 현상이 범죄치 않게 된다는
것을 우리는 깨닫게 됩니다. 본문을 좀 정리하면 하나님께서 십계명을 주실 때 죽음의 공포를 느낄만한
상황 속에서 주신 이유가 있는데 그것은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을 경외 즉 두려워하게 하기 위해서 입니다. 경외심을
가지게 하는 이유는 그들이 범죄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 라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을 얼마나 경외하느냐와
죄에서 멀어지는가는 비례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면 할수록 사람들은 죄에서 멀어지며 범죄하지
않게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으면 않을수록 죄를 짖게 되는 가능성이 높아지고 범죄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은 하나님을 경외함이란 저절로 우리
안에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을 생각하면 그냥 경외심이 나오고 두렵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 하나님을 향한 두려움은 하나님의 사랑 속에서 발견되는 것이 아닙니다. 또한
하나님의 한량없는 은혜에서 발견되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진노 속에서 발견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죽을 것 같은 공포 속에서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을 느꼈듯이 말입니다. 이런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것에 대한 예는 구약에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고린도후서
5장 11절을 보면 [고후 5:11] 우리는 주의 두려우심을 알므로
사람들을 권면하거니와 우리가 하나님 앞에 알리어졌으니 또 너희의 양심에도 알리어지기를 바라노라 Since,
then, we know what it is to fear the Lord, we try to persuade others. What we
are is plain to God, and I hope it is also plain to your conscience. 바울이
말하길 우리가 주의 두려우심을 안다고 합니다. 우리는 성령을 통하여 중생함으로 영적인 눈을 뜨게 된
사람이며, 그는 하나님이 누구신지를 깨닫고 믿게 된 자입니다. 그
중에 바울도 있는 것이며 바울은 여기서 우리 라는 단어를 통하여 자신을 포함하고 있는 것입니다. 바울은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은 사람이며 하나님의 사랑을 체험했고 그 사랑가운데 있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가 주님은 두려우신 분이라고 고백합니다.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시지만 하나님은 두려운 분이시라는
것입니다. 본문의 의미는 이렇습니다. 우리는
주님을 두려워해야 할 분임을 알기 때문에 사람들을 설득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잘 알고 계시며 그래서
나는 희망하기를 우리가 여러분들의 양심에 잘 알려지기를 원합니다. 이 본문에서 중요한 것은 바울이 하나님을
두려워해야 할 분으로 알고 있으며 그래서 사람들을 설득한다는 것입니다. 왜 바울이 사람들을 설득하는가
하면 하나님은 두려운 분이시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어떤 것이 두려운 가는 10절 말씀에 나와 있습니다. 고린도후서 5장 10절을 보면 [고후 5:10] 이는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나타나게 되어 각각 선악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 For we must all
appear before the judgment seat of Christ, so that each of us may receive what
is due us for the things done while in the body, whether good or bad. 바울은
왜 우리가 하나님을 두려워해야 하는가 하면 우리는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드러나게 되기 때문이며 그때 선악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대가를 받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이유입니다. 예전에 자주 들었던 말이 신자가 신앙 생활을 잘 하려면 하나님의 은혜를
많이 받으면 된다는 가르침이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사랑을 많이 경험하면 신앙 생활을 잘 하게 된다고
들었습니다. 여기서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이라고 여기는 것은 세상적으로 잘되는 것이며, 사람들이 볼 때에 잘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은혜요 사랑의
표식이라고 여긴 것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사람들이 말하며 간절히 원하는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도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해도 사람들의 삶의 모습이 바뀌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많은 신자들은 하나님의 사랑에
대하여 이야기를 하며 감격해 합니다. 그분의 한량없는 은혜 앞에 목놓아 울기도 하며 감사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삶은 변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들 안에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가 왜곡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신앙도 이와 같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되 왜곡되게
사랑하고 이기적으로 사랑합니다. 이런 왜곡된 사랑은 하나님을 한쪽으로만 보는 시각입니다. 이기적 사랑은 자신 중심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한쪽으로만 본다는 것은 하나님은 늘 우리를 사랑만 하시는 분으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성경은 그렇게 이야기 합니다. 그런데 왜 사랑이라고 하십니까? 무엇이 하나님의 사랑을 사랑되게 하십니까? 그분의 심판입니다. 왜 하나님이 사랑이신가면 죽음 앞에 떨고 있는 우리를 구원하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마치 시내산 앞에서 죽음의 공포속에 떨고 있는 이스라엘처럼 죽음에 사로 잡혀 있고 무서운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설 우리를 구원하여 주셨기 때문입니다. 시내산 산 전체를 둘러싸고 있는 엄청난 화염과 그리고 하늘 높이
치솟는 불길과 아무것도 볼 수 없는 깜깜함은 마치 하나님의 심판인 지옥을 연상케 합니다. 우리는 그런
하나님의 심판이 지옥 문 앞에서 구원을 얻은 존재라는 사실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내가 원하는 것은 무엇인지 다해주고 내가 바라는 것은 무엇이든지 되게 해주는 것이 아니라 바로
두렵고 떨리는 심판대 앞에서 지옥의 문 앞에서 우리를 건져 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사랑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리는 누구인가를 먼저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향한 진짜 사랑은 그분을 두려움함에서 발생하는 것입니다. 또한 그분의 한량없는 용서를 경험한 자만이 하나님을 사랑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누구인지를 알게 되면 그분을 두려워하게 됩니다. 그 두려움은
우리를 거룩하게 하며 온전하게 합니다. 고린도후서 7장 1절을 보면 [고후 7:1] 그런즉 사랑하는 자들아 이 약속을 가진 우리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가운데서 거룩함을 온전히 이루어 육과 영의 온갖 더러운 것에서 자신을 깨끗하게 하자
Therefore, since we have these promises, dear friends, let us purify ourselves
from everything that contaminates body and spirit, perfecting holiness out of
reverence for God. 하나님을 두려워하기 때문에 죄를 지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저절로 죄를 못 짓는 것이 신앙의 내공이 쌓이면 도달하는 곳이 아닙니다. 신앙이 좋으면
죄를 짓지 않게 되는 것은 그들이 착해져서도 아니고 더 도덕적이 되어서도 아니고 더 윤리적이 되어서도 아니고 죄에 대한 욕구가 사라지거나 느끼지
못해서도 아닙니다. 두렵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두렵습니다. 그분이 생각나기 때문입니다. 그분의 심판이 더 크게 가슴에 오기
때문이고 그분의 크신 용서와 사랑에 배신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나를 위해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의
가슴에 절절하기 때문이고 그 십자가가 내가 지어야 될 형벌임을 알기에 차마 죄악의 길에 설수가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면 삶이 바뀝니다. 함부로 살수가 없습니다. 함으로 말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두려우신 하나님의 심판을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함부로 행동할 수 없습니다. 그분이 행위대로
보응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함부로 생각할 수 없습니다. 그분은
우리의 생각 또한 아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삶은 그렇다고 매여 율법적으로 사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삶은 그분을 따라 사는 삶이고 그분과 더불어 사는 삶이고 인생의 가장
가치 있고 보람 있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또한 심판에서 벗어난 자유의 삶이고 죽음에서 벗어난 영원한
삶입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