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 말씀 영상 https://youtube.com/live/V9zyljp3d4s
오늘 우리가 함께 살펴볼 말씀은 마태복음 5장과 6장 7장에 걸쳐서 기록된 예수님의 말씀으로 이 말씀을 통상 산상설교라고
부릅니다. 왜냐하면 마태복음 5장 1-2절을 보면 [마 5:1-2] 예수께서 무리를 보시고 산에 올라가 앉으시니 제자들이
나아온지라 입을 열어 가르쳐 이르시되 Now when Jesus saw the crowds, he went up
on a mountainside and sat down. His disciples came to him, and he began to
teach them. He said: 예수님께서 무리를 보시고 산에 올라가셨습니다. 그리고 제자들이 나아 온지라 입을 열어 가르쳐 말씀하셨다고 합니다. 여기서
장소적 배경이 산이고 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가르치신 내용이라는 사실 속에서 산상 수훈, 산상 보훈
또는 산상 설교라고 명칭이 붙게 되었습니다. 수훈이라는 말은 드리울 수 자와 가르칠 훈 자로 드리워진
즉 넓게 펼쳐진 가르침이란 뜻으로 산에서 드리워진 가르침이란 뜻입니다. 또한 산상 보훈이라는 뜻은 보배로운
가르침이라는 뜻입니다. 오늘은 전체적인 예수님의 산상 설교에 대한 그림을 그리도록 하겠습니다. 첫번째로는 산상 설교의 대상이 누구인가 하는 부분입니다. 마태복음
5장 1절을 보면 예수님께서 무리를 보시고 산에 올라가 앉으셨다고
합니다. 앉으셨다는 말은 당시의 표현법으로는 가르치시기 위하여 자세를 잡다 라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입을 열어 가르치셨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을 따르는
모든 무리들이 그 대상인가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2절에서는
그의 제자들이 그에게 왔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가 가르치시기를 시작하셨다고 합니다. 1절과 2절을 함께 생각해 볼 때에 1절에서 영어 성경에서는 예수님께서 무리를 보셨을 때 그가 산에 올라가서 앉으셨다고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산상 설교는 무리들에게 주신 설교가 아닌가 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2절에서 제자들이 나오자 입을 열어 가르치셨다고 합니다. 즉 무리와 제자들이 따로 구분되어 사용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무리들과 제자들 모두에게 주신 것이 아닌가 라는 생각을
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마태복음 7장에서 무리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놀랐다고 말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마태복음 7장
28절을 보면 [마 7:28] 예수께서 이 말씀을 마치시매 무리들이 그의 가르치심에
놀라니 When Jesus had finished saying these things, the crowds
were amazed at his teaching, 예수님께서 가르치심을 마치실
때에 그 무리들이 그의 가르침에 놀랐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무리들 또한 예수님의 가르침을 듣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는 무리들을 대상으로 가르치신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부분이 있는데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산상 설교의
내용을 보면 반드시 거듭나 중생한 사람들에게만 해당하며, 누가 천국 백성이며, 하나님의 자녀는 어떠한 삶을 살고 있는 자인지에 대하여 말씀하고 있기 때문에 결코 중생하지 않은 자나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지 않은 자들에게는 무의미한 말씀이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무의미하다는 것은 이들은 그렇게 살려고도
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그렇게 살 수도 없다는 것입니다. 산상 설교의 첫 부분에 해당되는 여덟 개의 복에 대하여 즉 팔복에 대한
내용을 볼 때에 그 사실이 입증이 됩니다. 사람들이 착각하는 것이 예수님께서 팔복에 대하여 말씀 하실
때에 팔복을 받기 위해서 이렇게 하라는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우선 마태복음 5장 3-6절까지의 말씀을 보면 [마
5:3-6]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배부를 것임이요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다고 합니다. 애통하는
자도 복이 있고 온유한 자도 복이 있고 의에 주리고 목마를 자도 복이 있다고 합니다. 이들이 받는 복은
천국을 받고 위로를 받고 땅을 기업으로 받고 배부를 것입니다. 그러므로 천국의 복을 받고 위로의 복을
받고 땅을 기업으로 받고 배부름의 복을 받기 위해서 심령이 가난해져야 하고 애통해야 하고 온유해야 하고 의에 주리고 목말라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복을 받는 비결이라는 것입니다. 성경을 자신들의 입맛과 사람들의 입맛에 맞추어 왜곡하여 변질시키는 일들이
일어나는 이유는 더럽혀진 마음과 구원 받지 못한 부패한 정욕의 마음에 이끌리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마음에
있는 삐뚤어진 마음으로 성경을 보니 삐뚤게 보는 것입니다. 이 본문에 대하여 영어 성경을 보면 [마
5:3-6] "Blessed are the poor in spirit, for theirs is the kingdom of
heaven. Blessed are those who mourn, for they will be comforted. Blessed are
the meek, for they will inherit the earth. Blessed are those who hunger and
thirst for righteousness, for they will be filled. 복을 받을 것이다 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복을 받은 즉 복된 자는 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원문의 의미도 이와 같습니다. 원문에서 사용된 헬라어 단어는 마카리오이 로 남성 복수 입니다. 즉
복된 자들로 이미 복을 받은 자들은 심령이 가난한 자들이라는 것입니다. 복된 자는 애통하는 자이며, 복된 자는 온유한 자이며, 복된 자는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입니다. 결국 심령이 가난하여야 복을 받는 것이 아니며, 애통해야 복을 받는
것도 온유해야 복을 받는 것도 주리고 목말라야 복을 받는 것이 아니라 이미 복을 받은 자들만이 심령이 가난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복을 받은 자만이 애통하며 복을 받은 자만이 온유하며, 복을 받은
자만이 의에 주리고 목말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산상 설교는 불신자들에게 주신 말씀일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들은 결코 이렇게 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복을 받지
못하였기 때문이며, 복된 자들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럼
누가 복된 자입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믿음으로 구원을 얻어 하나님의 자녀가 된 자들이 복된 자들인
것입니다. 이것이 어떻게 그렇게 된 것입니까? 디도서 2장 14절을 보면 [딛 2:14] 그가 우리를 대신하여 자신을
주심은 모든 불법에서 우리를 속량하시고 우리를 깨끗하게 하사 선한 일을 열심히 하는 자기 백성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who gave himself for us to redeem us from all wickedness and to
purify for himself a people that are his very own, eager to do what is good. 그가 우리를 대신하여 자신을 주셨다고 합니다. 그는 누구입니까? 바로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님이십니다. 그분이 왜 우리를 대신하여
자신을 주신 것입니까? 바로 모든 불법에서 우리를 속량하시기 위해서 입니다. 또한 왜 그렇게 하신 것입니까? 우리를 깨끗하게 하시기 위하여 입니다. 주님은 자기 백성된 우리를 위하여 자신을 주신 것입니다. 정리하면
주님께서 죽으신 이유는 우리를 모든 불법에서 속량하시기 위함입니다. 둘째로는 우리를 깨끗한 백성 되게
하기 위함인데 이 백성의 특징은 선한 일에 열심을 다하는 자신의 소유된 백성으로 이들을 깨끗하게 하시기 위하여 죽으신 것입니다. 한글 성경에는 없지만 여기에 중요한 것이 바로 그 자신을 위하여 또는 그 자신에게 라는 단어입니다. 이 말은 하나님께 합당하며, 우리 주님께 적합한 자기 백성이 되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 백성이 되었기 때문에 이들은 마태복음 5장 3절부터 시작되는 팔복 가운데 복이 있는 자들이 되는 것입니다. 또한 그리스도께서 대신하여 죽으심으로 모든 불법에서 구원해 내셨기 때문에 그리고 깨끗하게 하셨기 때문에 그들의
심령이 가난하고, 애통하며, 온유하며, 의에 주리고 목마르며, 마음이 청결하며, 화평하게 하며, 긍휼이 여기며,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을 수 있는 자들이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산상 설교는 이미 하나님의 백성된 자들 즉
마태복음에서 말하고 있는 천국 백성된 자들에 대한 진술인 것입니다. 이들의 본질적인 성격이 어떠한가를
말해주고 있는 것이지 어떻게 이러한 자들이 될 수 있는가를 말해주는 것이 아닙니다. 즉 하나님의 자녀가
된 자들은 어떠한 본질적 성경을 띄게 되는가 하는 것을 말해주는 것입니다. 결코 구원을 어떻게 받으며, 천국을 어떻게 소유할 수 있는가에 대한 말씀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팔복 다음에 나오는 말씀은 이러한 사실을 좀더 명확하게 해 줍니다. 마태복음 5장 11-12절을
보면 [마 5:11-12] 나로 말미암아 너희를 욕하고 박해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도 이같이 박해하였느니라 "Blessed
are you when people insult you, persecute you and falsely say all kinds of evil
against you because of me. Rejoice and be glad, because great is your reward in
heaven, for in the same way they persecuted the prophets who were before you. 나로 말미암아 너희를 욕하고 박해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다고
합니다. 여기서도 욕을 먹고 박해를 당하고 거짓으로 모든 악한 말을 너희에게 나 때문에 당하면 복을
받을 것이다가 아니라 복된 자들은, 이미 복을 받은 자들은 어떠한 취급을 세상으로 받게 되는가 하면
예수 그리스도 때문에 비난을 당하고, 핍박을 당하고 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받는 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 속에 그리스도인은 어떤 유의 인간인가를 보게 되며, 그에게
어떠한 일들이 일어나게 되는가를 보여줍니다. 주님은 산상 설교를 통하여 세상 사람들에게 이러한 삶을 삶으로 해서
복을 받으라고 말씀하시지 않으셨습니다. 오직 그분의 제자된 중생한 그리스도인들에게 이 말씀을 주신 것입니다. 이유는 세상 사람들은 이 말씀에 이끌리지도, 이 말씀을 알아 듣지도, 이 말씀대로 살 수도, 살려고도 하지 않는 다는 것입니다. 오직 그리스도께서 대신 죽으신 자들에게만 이 말씀은 아멘이 되며, 삶의
원리가 되며,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길을 보여주게 되는 것입니다. 산상 설교 가운데 우리 주님이 목표로 하시며, 대상으로 여기시는 자들을 향하여 그들을 정의하시며, 그들에게 요구하시는
내용에는 만약이라는 혹은 너희가 그렇게 할 수 있거든 이라는 말은 없습니다. 주님은 자신의 백성들을
정의하시고 이렇게 살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그들이 그렇게 살 수 있는 것은 그들이 변화되었기 때문이며, 그리스도의 죽으심으로 깨끗함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마태복음 5장 13절을 보면 [마 5:13]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 데 없어 다만 밖에 버려져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
"You are the salt of the earth. But if the salt loses its saltiness, how
can it be made salty again? It is no longer good for anything, except to be
thrown out and trampled underfoot.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라고 합니다. 이 말은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 되라가 아닙니다.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다 라는 선언입니다. 그러므로 신자는 맛을 내는 소금으로서 삶을 살아야 합니다. 다음절인 마태복음 5장 14절을 보면 [마 5:14]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겨지지
못할 것이요 "You are the light of the world. A town built on a
hill cannot be hidden. 너희는 세상의 빛이 되라가 아니라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 라고 선언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이며, 구원 받은 자의 위치입니다. 우리는 되기 위해서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된 자로서 어떻게 살 것인가를 고민하는 삶이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하는 것은 구원을 얻기 위하여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아니라 구원을 얻었기 때문에 말씀에 순종할 수 있는 것이며, 순종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산상 설교의 말씀을 들으며, 이 말씀을 삶에서 실천하고자 하는 것은
여러분들이 복을 받기 위함이 아닙니다. 이미 복을 받았기 때문에 이러한 삶으로 이어지며, 예수님의 가르침을 따라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이에 대하여 마지막으로 산상 설교 가운데 오해 되어 생각하게 되는 말씀을
살펴보겠습니다. 마태복음 6장 14-15절을 보면 [마 6:14-15] 너희가 사람의 잘못을 용서하면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도
너희 잘못을 용서하시려니와 너희가 사람의 잘못을 용서하지 아니하면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잘못을 용서하지 아니하시리라 For if you forgive other
people when they sin against you, your heavenly Father will also forgive you.
But if you do not forgive others their sins, your Father will not forgive your
sins. 이 말씀을 보면 너희가 사람의 잘못을 용서하면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도 너희 잘못을 용서하실 것이다 라고 합니다. 그리고 15절에서는 너희가 사람의 잘못을 용서하지 아니하면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잘못을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라고 말씀합니다. 즉 이 말씀만을 놓고 보면 마치 우리가 용서 받는 것이 우리가 남을
용서함으로 인하여 얻어지는 방식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것은 구원이 마치 내가 타인을 용서함으로
하나님으로부터 얻어내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용서와 구원이 이러한 방식이라면 굳이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으심이 필요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그분이 아니고서도 구원을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닌가 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와 같은 의미에 대하여 우리 주님께서 어떻게 말씀하시며 이
의미가 무엇인지를 찾아 볼 수 있는데 마태복음 18장 35절을
보면 [마 18:35] 너희가 각각 마음으로부터 형제를 용서하지 아니하면 나의 하늘 아버지께서도 너희에게 이와 같이 하시리라
"This is how my heavenly Father will treat each of you
unless you forgive your brother or sister from your heart." 너희가 각각 마음으로부터 형제를 용서하지 않으면 나의 하늘 아버지께서도 너희에게 이와 같이 즉 용서하지 않으실
것이라고 합니다. 이 말씀은 일만달란트 빚진 자의 비유의 마지막 내용으로 주인에게 일만 달란트를 빚진
종이 주인에게 가서 용서해 달라고 사정했습니다. 그랬더니 주인이 그를 용서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자기에게 더욱 적게 빚진 동료를 용서하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그의 주인이 그의 용서를 철회하고 그를 처벌하는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그리고 주님은 너희가 각각 마음으로부터
형제를 용서하지 않으면 나의 하늘 아버지께서도 너희에게 이와 같이 하시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럼 이 말은 용서했기 때문에만 용서 받았다고 가르치는 것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이 가르침은 만일 내가 용서하지 않으면 용서받지
못한 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자기가 범죄자요 악한 죄인임을 깨달은 자들은 그의 유일한 소망이
하나님께서 그를 대가 없이 용서해 주심이라는 것을 압니다. 이것을 실제로 보고 알고 경험하고 믿는 사람은
다른 사람을 용서하는 일을 거절할 수 없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다른 사람을 용서하지 않는
사람은 그 자신의 용서를 모르는 사람입니다. 나의 마음이 하나님 존전에서 깨어져 있을진대 나는 남을
용서하기를 거절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다른 사람을 용서하지도 않으면서 그리스도에게 자기 죄를
용서 받았다고 생각하는 자들은 실제로는 용서 받은 자들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용서 받은 자는 남을 용서하게
됩니다. 용서 받았기 때문에 용서 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즉
구원을 받았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려고 하는 것이지 구원을 받기 위해서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려고 하는 것은 아닙니다. 산상 설교는 구원을 받았기 때문에 주시는 말씀이지 구원을 받기 위해 주신 말씀이 아닙니다. 또한 구원을 받기 위해서 이러한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이 아닙니다. 구원을
받았기 때문에 이렇게 살라고 주신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구원함을 얻은 우리는 산상 설교에 대하여 바르게
이해하며, 어떻게 살 것인가? 어떠한 방식이 그리스도인에게
적합한 것인가를 말씀을 통하여 듣고 깨달아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