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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말씀
2025.02.19 12:55

생베와 새 포도주

Y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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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 말씀 영상 https://youtube.com/live/YkOvWkNiaPg


우리가 읽은 본문은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라는 내용으로 유명한 본문입니다. 새 포도주나 새 부대에 대한 것에 초점을 맞추게 되면 새 마음을 가지자 라거나 새롭게 되자 라는 뜻으로 받아 들이고 그렇게 적용을 합니다. 그러나 본문은 그것을 이야기 하고자 하는 것이 아닙니다. 14절 말씀은 오늘 본문 전체를 이해하는 중요한 열쇠가 됩니다. 마태복음 914절을 보면 [ 9:14] 그 때에 요한의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와 이르되 우리와 바리새인들은 금식하는데 어찌하여 당신의 제자들은 금식하지 아니하나이까 Then John's disciples came and asked him, "How is it that we and the Pharisees fast often, but your disciples do not fast?" 라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이 구절의 첫 번째 단어는 그 때에 라는 말입니다. 이 말은 앞의 문맥적 상황을 말해 주고 있는데 예수님께서 세리 마태의 집에서 식사를 할 때를 가리키는 것입니다. 그때 바리새인들은 예수님께서 세리와 죄인들과 식사를 하는 것을 보고 비웃습니다. 어떻게 경건한 자라고 하는 자가 세리와 죄인과 함께 어울릴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이에 예수님께서는 자신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오셨다고 말씀하십니다. 그 때에 라는 말은 마태의 집에서 식사하시며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신 목적을 설명하시는 그 때를 말합니다.

        바로 이 때에 세례 요한의 제자들이 찾아왔습니다. 그들이 질문하기를 우리와 바리새인들은 금식하는데 어찌하여 당신의 제자들은 금식하지 아니하나이까? 라고 질문하였습니다. 여기에 내용적으로 재미있는 문장기법을 사용하였습니다. 앞에서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이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음식을 먹는 문제를 지적합니다. 마태복음 911절을 보면 [ 9:11] 바리새인들이 보고 그의 제자들에게 이르되 어찌하여 너희 선생은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잡수시느냐 When the Pharisees saw this, they asked his disciples, "Why does your teacher eat with tax collectors and sinners?" 바리새인들이 보았습니다. 무엇을 보았는가 하면 예수님께서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식사하는 모습을 본 것입니다. 그리고 지적을 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세리와 죄인들은 불결한 자들이기에 함께 식사함으로 불결해진다고 여겨져 꺼리는 자들이었기 때문입니다.

        또한 그리고 마태복음 914절을 보면 [ 9:14] 그 때에 요한의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와 이르되 우리와 바리새인들은 금식하는데 어찌하여 당신의 제자들은 금식하지 아니하나이까 Then John's disciples came and asked him, "How is it that we and the Pharisees fast often, but your disciples do not fast?" 세례 요한의 제자들은 음식을 먹지 않는 금식의 문제를 가지고 질문하였습니다. 금식은 말 그대로 영적인 목적을 이루기 위하여 육체적인 욕구와 음식을 금하는 것을 말합니다. 구약성경에는 금식일이 따로 정해져 있었습니다. 레위기 1629절을 보면 [ 16:29] 너희는 영원히 이 규례를 지킬지니라 일곱째 달 곧 그 달 십일에 너희는 스스로 괴롭게 하고 아무 일도 하지 말되 본토인이든지 너희 중에 거류하는 거류민이든지 그리하라 "This is to be a lasting ordinance for you: On the tenth day of the seventh month you must deny yourselves and not do any work-whether native-born or a foreigner residing among you- 율법에는 일년에 한번씩 대 속죄일에 스스로를 괴롭게 하도록 명하는데 이는 금식을 의미하며 그렇기 때문에 금식하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그 후 이스라엘은 포로생활 후에 부림절과 예루살렘 함락일 등 일 년에 네 번의 금식을 전통적으로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주님 당시에는 엄격한 바리새인들 사이에서 일주일에 두 번의 금식일을 실행하고 있었습니다. 누가복음 1812에 보면 [ 18:12] 나는 이레에 두 번씩 금식하고 또 소득의 십일조를 드리나이다 하고 I fast twice a week and give a tenth of all I get.' 예수님이 비유로 말씀하시는 내용 속에 한 바리새인이 기도하기를 나는 이레에 두 번씩 금식하고 또 소득의 십일조를 드리나이다 라고 하였습니다.

        이러한 배경에서 볼 때 세례 요한의 제자들이 우리와 바리새인들은 금식하는데 어찌하여 당신의 제자들은 금식하지 아니 하나이까? 라고 질문한 것은 특별한 의미가 있습니다. 그것은 당시에 바리새인이나 세례 요한의 제자들은 금식을 구원을 얻는 방법으로 인식하였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사례들은 사도 바울이 쓴 골로새서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골로새서 216을 보면 [ 2:16] 그러므로 먹고 마시는 것과 절기나 초하루나 안식일을 이유로 누구든지 너희를 비판하지 못하게 하라  [Freedom From Human Rules] Therefore do not let anyone judge you by what you eat or drink, or with regard to a religious festival, a New Moon celebration or a Sabbath day. 라고 합니다. 여기서 먹고 마시는 것이라는 것은 먹고 마시는 쾌락주의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금욕주의를 가리키는 것으로 골로새 교회를 어지럽히던 문제였습니다. 이런 사상에 빠지는 이유는 먹고 마시는 일이나 구약의 율법을 지키는 것을 구원의 조건으로 이해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당시 바리새인들과 세례 요한의 제자들이 금식 문제를 질문한 것은 구원을 얻는 문제에 있어서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금식을 왜 하지 않느냐는 것이었습니다.

        이 질문에 대하여 예수님은 마태복음 915을 말씀하십니다. [ 9:15]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혼인집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을 동안에 슬퍼할 수 있느냐 그러나 신랑을 빼앗길 날이 이르리니 그 때에는 금식할 것이니라 Jesus answered, "How can the guests of the bridegroom mourn while he is with them? The time will come when the bridegroom will be taken from them; then they will fast. 유대 전통에 따르면 혼인 예식 기간에 금식 기간이 있다 할찌라도 금식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혼인 예식은 즐거움과 기쁨의 잔치이기 때문입니다. 15절에서 예수님은 이러한 혼인 예식을 예로 들어 지금 신랑이신 예수님과 함께 있는 신랑의 친구들인 제자들이 금식할 수 없는 이유를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신랑이 빼앗길 날이 이른다고 합니다. 이때는 예수님이 고난을 당하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장사지 낸 때를 말합니다. 그때에는 제자들이 금식할 것이라고 합니다. 여기서 예수님께서는 금식을 금하시거나 폐하신 것이 아닙니다. 그 의미가 달라진 것을 말씀하시고자 하시는 것입니다.

        16절과 17절은 두 가지 비유가 나옵니다. 먼저 마태복음 916절을 보면 [ 9:16] 생베 조각을 낡은 옷에 붙이는 자가 없나니 이는 기운 것이 그 옷을 당기어 해어짐이 더하게 됨이요 "No one sews a patch of unshrunk cloth on an old garment, for the patch will pull away from the garment, making the tear worse. 생베란 한번도 빨지 않은 천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이천을 낡은 옷에 붙이면 그 옷을 빨 때에 생베가 줄어들기 때문에 낡은 옷이 더욱 헤어지는 것입니다. 17절을 보면 [ 9:17] 새 포도주를 낡은 가죽 부대에 넣지 아니하나니 그렇게 하면 부대가 터져 포도주도 쏟아지고 부대도 버리게 됨이라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어야 둘이 다 보전되느니라 Neither do people pour new wine into old wineskins. If they do, the skins will burst; the wine will run out and the wineskins will be ruined. No, they pour new wine into new wineskins, and both are preserved." 라고 말씀합니다. 새 포도주를 새 부대에 넣어야만 되는 이유입니다. 오래된 가죽 부대는 탄성이 부족하여 새 포도주의 발효를 감당하지 못하고 터져버리게 되기 때문에 그렇게 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이 두 비유를 하시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일반 상식을 이야기하는 것은 아닙니다.

        이 비유의 핵심은 14절입니다. 마태복음 914절을 보면 [ 9:14] 그 때에 요한의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와 이르되 우리와 바리새인들은 금식하는데 어찌하여 당신의 제자들은 금식하지 아니하나이까 Then John's disciples came and asked him, "How is it that we and the Pharisees fast often, but your disciples do not fast?" 지금 이 비유를 하시는 이유는 금식에 관한 문제 제기를 하고 있기 때문에 그것을 설명하시는 예수님의 답변 속에 비유가 들어있다는 것입니다. 바리새인들이나 요한 제자들이 이해하는 금식은 구원의 조건으로써의 율법적 행위입니다. 그것을 왜 당신의 제자들은 이 구원의 행위를 하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이에 대한 예수님의 대답이 바로 이 비유인 것입니다. 지금은 혼인 잔치와 같아서 제자들이 신랑과 함께 있으므로 하지 않는다 그러나 신랑을 잃으면 그때는 할 것이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금식을 할 것이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이것은 시기의 문제 즉 지금 하느냐 아니면 나중에 하느냐의 문제이며 예수님께서는 요한의 제자나 바리새인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금식이 구원의 조건으로 율법 성취를 인정하신 것이냐 하는 문제가 남습니다.

        16절의 생베 조각에 대한 비유의 말씀에 한글 성경에는 없지만 원문에는 그러나 혹은 그리고 라는 단어가 있습니다. [ 9:16] 생베 조각을 낡은 옷에 붙이는 자가 없나니 이는 기운 것이 그 옷을 당기어 해어짐이 더하게 됨이요 "But no one puts a patch of unshrunk cloth on an old garment; for the patch pulls away from the garment, and a worse tear results. NASB는 그러나 라는 말로 번역을 했습니다. 이 단어가 있고 없고의 본문 이해는 확연히 달라집니다. 그럼 넣어서 해석해 보겠습니다. 그러나 신랑을 빼앗길 날이 이르리니 그 때에는 금식할 것이니라 (그러나) 생베 조각을 낡은 옷에 붙이는 자가 없나니 이는 기운 것이 그 옷을 당기어 해어짐이 더하게됨이요 무슨 의미가 됩니까? 내 제자들이 금식을 할 것이다. 그러나 생베 조각을 낡은 옷에 붙이지 않는다. 여기서 생베 조각이나 새 포도주는 예수님의 가르침이며 구약과 다른 새로운 언약이며 복음입니다. 이것이 낡은 옷 즉 구약의 율법적 사고나 생각에 동의하거나 같을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제자들이 금식할 것이라고 합니다. 자신이 빼앗길 날에 그렇습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죽으심을 의미하는 것인데 그럼 그때만 그렇습니까? 아니요 계속해서 교회는 금식을 해오고 있습니다. 사도행전 132절을 보면 [ 13:2] 주를 섬겨 금식할 때에 성령이 이르시되 내가 불러 시키는 일을 위하여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우라 하시니 While they were worshiping the Lord and fasting, the Holy Spirit said, "Set apart for me Barnabas and Saul for the work to which I have called them." 최초의 이방인 교회인 안디옥 교회가 바울과 바나바를 파송할 때 금식합니다. 금식이 금해진 것이 아닙니다. 그럼 무엇이 바뀐 것입니까? 그 의미가 바뀐 것입니다. 바리새인과 요한의 제자들은 구원의 방편으로 율법을 지키며 그 가운데 금식을 이해하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금식은 구원의 방편이나 도구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 금식은 예수님을 통하여 새로운 의미와 내용으로 옷을 입게 되는 것입니다. 신약에서의 금식은 하나님을 섬기는 방법입니다. 사도행전 13장이 말하고 있는 것은 주를 섬겨 즉 예배하면서 금식하고 있는 모습입니다. 즉 하나님을 섬기며 하나님을 받드는 모습인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께 위임과 위탁적 행위가 금식인 것입니다. 내 뜻과 내 소망을 관철시키는 수단이 금식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것이 금식인 것입니다.

        본문에서 우리가 깨닫게 되는 것은 금식에 관한 내용 만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생베와 새 포도주를 통하여 말씀하시는 내용은 잘못된 내용이 잘못된 형식을 만들어 낼 수 있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바리새인들은 금식이라는 것이 구원의 조건이라고 여기게 되었고 그래서 일주일에 이틀을 정하여 금식의 날이라는 형식을 만들어낸 것입니다. 이런 형식은 내용이 어찌 되었든 간에 그 형식을 지키는 한은 그 내용이 자동적으로 보장이 된다는 사고를 하게 하는 것입니다. 즉 일주일에 두 번의 금식은 구원을 유지 하는 수단이 되는 것입니다. 교회 안에도 이런 형식주의가 있습니다. 교회에 출석하며 교회에 교인으로 등록이 되어 있다면 구원 받을 수 있다는 잘못된 생각입니다. 교회에 출석하여 예배를 드린다는 그리고 헌금하며 다른 모임에도 나간다는 형식이 구원을 보장해 주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형식이란 "겉으로 드러나는 모양이나 격식"을 의미합니다. 즉 형식은 겉으로 드러나는 어떤 것을 가리키는 것으로 신앙이란 겉으로 드러난 어떤 것 자체가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 내용이 중요한 것입니다.

        그렇기에 신앙은 형식이기에 앞서 내용입니다. 신앙은 무슨 내용을 담느냐에 따라 형식이 달라집니다. 그렇기에 바른 내용을 담는 것은 정말 중요합니다. 예수님은 생베와 새 포도주라는 비유를 통하여 예수님의 가르침과 예수님의 말씀과 그의 복음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자신의 생각이나 마음에 따라 신앙 형식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가르침과 말씀에 근거한 신앙 형식을 만들어 가야 하며 나타내야 합니다. 그것이 형식이 잘못되지 않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입니다. 자신이 믿고 싶은 데로 믿지 마시고 말씀에 따라 믿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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