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 말씀 영상 https://youtube.com/live/oR044dRy6c4
오늘
우리가 살펴볼 잠언 9장 10절 말씀을 보면 [잠
9:10]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요 거룩하신 자를 아는 것이 명철이니라 The
fear of the Lord is the beginning of wisdom, and knowledge of the Holy One is
understanding. 라는 너무나 유명한 말씀입니다. 누구나 한번은 들어 보았던 말씀이지만 사실 이 말씀이 가지는 의미에 대하여는 깊이 생각해 본 분은 많지 않을
것입니다. 이 말씀은 두 부분으로 나뉘어 집니다. 첫째는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라는 것과 둘째는 거룩하신 자를 아는 것이 명철이라는 부분입니다. 잠언이나
전도서나 시편의 경우 동어 반복이라는 문법적 방식을 사용하고 있는다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 말은 같은
의미를 다른 단어를 사용하여 반복적으로 사용하는 것입니다. 즉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라는
말과 거룩하신 자를 아는 것이 명철이라는 것은 같은 의미인 것입니다. 동어를 반복하는 것입니다. 거룩하신 자는 여호와이며, 경외한다는 것은 그분을 아는 것이며, 지혜는 명철과 동어 반복인 것입니다.
여기서
지혜란 말이 가지는 의미를 깊이 이해해야 본문을 바르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지혜란 말의 의미는 현대적
의미로 해석해서는 안됩니다. 현대적 의미로 지혜는 이치를 빠르게 이해하고 깨달으며, 그것에 접합하게 반응하는 것입니다. 현대적 지혜는 세상에서 경험하게
되는 각종의 일들을 빠르고 신속하게 대응하며, 적절하게 대처하는 정신적 능력입니다. 그러므로 지혜는 세상을 사는 방법이며, 세상에서 자신의 목적과 뜻을
이루는 능력입니다. 그러나 성경이 말하는 지혜는 세상에서 어떻게 살 것인가? 하는 이치를 이해하고 분석하여 세상에 적응하여 사는 능력을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지혜의 시작이 바로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즉 지혜는 하나님과 관련이 되어 있으며, 그분을 경외하는 방식이라는
것입니다. 또한 지혜는 하나님을 아는 것입니다.
잠언
8장 13절을 보면 [잠 8:13]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은 악을
미워하는 것이라 나는 교만과 거만과 악한 행실과 패역한 입을 미워하느니라 To fear the Lord is
to hate evil; I hate pride and arrogance, evil behavior and perverse speech.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은 악을 미워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교만과 거만과 악한 행실과 패역한 입을 미워한다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나타내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기 때문에 어떠한 것을 분별하는가 하면 악을 분별하는 것입니다. 무엇이 악인가 하면 하나님이 미워하시는 것이 악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기 때문에 자신 또한 하나님이 미워하시는 악을 미워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 안에 무엇이 생겼는가
하면 지혜가 시작된 것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지혜가 시작되고 그 지혜가 악을 미워하게 되는 것입니다. 지혜는 바로 하나님에 대한 것이며, 하나님을 아는 것이며, 그분이 기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를 깨닫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11장 6절을 보면 [히 11:6]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And without faith it is impossible to please God, because anyone
who comes to him must believe that he exists and that he rewards those who
earnestly seek him.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한다고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시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한다고 합니다. 여기서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을 믿어야 합니다. 즉 그는 하나님이 계시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지혜
즉 하나님으로부터 온 지혜를 통하여 하나님을 인식하게 되는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으로부터 온 지혜는
그분이 자신을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자이심을 깨닫게 하는 것입니다. 지혜는 이렇게 사용되며, 이것을 위해서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입니다. 그분이 계시다는 것을 인정하며, 그분이 어떠한 분이신가를 깨닫는
것입니다. 이것들은 지혜로부터 오는 것들입니다.
이러한
것들을 통하여 성경이 말하는 지혜를 정의 하면 지혜란 삶에서 경건한 선택을
할 수 있게 하는 능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성경에서 지혜라는 말이 신적 선물로 설명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성경이 말하는 지혜는 세상적으로는 얻을 수 있거나 찾을 수 있거나 발견하거나
노력을 소유할 수 없는 것입니다. 지혜의 뜻인 경건한 선택이란 타락한 인간의 힘으로는 가질 수 없는
능력이기 때문이며 오직 하나님으로부터만 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지혜는 늘 신앙적인 면에서
그리고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특별한 은혜로 설명되어지는 것입니다. 이러한 성경이 말하는 지혜란 의미를
알고 나면 이제 본문에서 여호와는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라는 말의 의미에 좀더 가까이 갈 수가 있습니다.
본문을
지혜라는 뜻을 대입해서 설명하는 이런 말입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삶에서 경건한 선택을 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게 되는 시작이다. 이제 이 말의 내용이 보이십니까? 이 말씀이 하고자 하는 것은 경건한
선택을 할 수 있는 능력은 어디서부터 오는가? 바로 하나님을 두려워함으로부터 그분을 인식하면서부터 시작된
다는 것입니다. 만약 우리가 하나님을 인식 즉 하나님이 계시다는 사실 그리고 그분이 자신을 찾는 자들에게는
상을 주시지만 그렇지 않은 자들에게는 심판하시는 분이라는 사실을 안다면 그분을 두려워하게 됩니다. 여기서
두려움이란 공포가 아닌 존경과 공경의 대상을 향한 마음입니다. 위엄 있는 분을 그에 걸맞게 대하는 태도가
바로 경외심 입니다. 이런 경외심은 우리를 경건한 선택을 하도록 요구하며 그분 눈에 거슬리거나 그분의
마음에 들지 않는 행동과 행위를 조심하게 합니다. 지혜는 그러한 능력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그분의 뜻을 따라 선택하며 결정하는 능력이 바로 지혜입니다. 그렇기에 지혜는 지적 능력이 해당하지 않습니다. 지혜를 얻기 위해서
좋은 대학을 다녀야 되는 것도 아니며 좋은 학원에 다녀야 되는 것도 아니고 세상의 지혜로운 자들을 찾아 다녀서 될 것이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을 경외하고자 하면 그분으로 인하여 지혜를 얻어 우리의 삶에서 그분을 위한 선택과 그분을 향한 선택이
가능해 지는 것입니다.
다음절인
잠언 9장 11절을 보면 [잠
9:11] 나 지혜로 말미암아 네 날이 많아질 것이요 네 생명의 해가 네게 더하리라 For
through wisdom your days will be many, and years will be added to your life. 왜냐하면이라는 접속사로 시작합니다. 왜냐하면 나 지혜로 인하여 너의
날들이 많아지고 너의 생명의 년수가 더해질 것이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지혜 즉 삶에서 경건한 선택을
할 수 있게 되는 능력으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을 살게 되면 하나님께서 복을 주심은 당연한 것입니다. 이
복들이 구체적으로 어떠한 복인지를 오늘날 우리가 다 헤아릴 수는 없습니다. 우리의 날들이 많아지고 생명의
년들이 더해지는 것은 경건한 선택으로 인하여 하나님이 주시는 기쁨과 만족을 누리며 사는 복된 우리의 삶에 대한 내용이며 그분과 더불어 영원히 살게
될 신자들이 누리게 될 영생을 기대해도 좋은 것입니다.
다음으로
잠언 9장 12절 말씀을 보면 [잠
9:12] 네가 만일 지혜로우면 그 지혜가 네게 유익할 것이나 네가 만일 거만하면 너 홀로 해를 당하리라 If you are wise, your wisdom will reward you; if you are a mocker,
you alone will suffer. 지혜가 우리에게 유익을 준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본문을 직역하면 만약 네가 지혜로우면 너는 네 자신을 위해 지혜롭다 라는 뜻인데 이 말은 지혜가 네게 유익할 것이라는 말입니다. 지혜 즉 삶에서 경건한 선택을 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자는 그 지혜가 자신의 영혼에 얼마나 유익을 주겠는가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그러나 거만하면 홀로 해를 당하게 됩니다. 이
말은 지혜가 없는 자는 그 지혜 없음으로 인하여 고통을 당하며 자신에게 해롭게 될 수 밖에 없음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통하여 우리는 지혜가 우리에게 얼마나 중요하며 필요한 것인가를 깨달을 수 있습니다. 왜 성경이
지혜를 우리에게 있어야 될 것으로 요구하고 있는가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야고보서 1장 5절을 보면 [약 1:5] 너희
중에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주시리라
If any of you lacks wisdom, you should ask God, who gives generously to all
without finding fault, and it will be given to you.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야고보 사도는 신자에게 지혜를 구하라고 합니다. 누구든지 지혜가
부족하거든 하나님께 구하라고 합니다. 부족하다는 말은 있어야 될 것이 없는 것을 의미합니다. 꼭 필요한 것이 결핍된 상태를 의미합니다. 지혜는 있어도 되고 없어도
되는 그런 것이 아닙니다. 신자에게 꼭 필요한 것입니다. 지혜가
없으면 신자다운 삶을 살지 못하기 때문에 지혜는 꼭 필요한 것입니다. 경건한 선택을 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지 못한 사람에게 경건한 삶을 요구하며 바라는 것은 사과나무 아래에서 감이 열리기를 기대하는 것과 같습니다.
신자의 삶은 경건한 삶을 선택하는 싸움인데 그 싸움을 할 수 있는 능력의 결여는 싸움을 해보나 마나인 결과를 맞이 할 뿐이며 늘 세상적인
것에 이끌려 살수 밖에 없는 비참함만이 있을 뿐입니다. 그렇기에 야고보는 구하라고 합니다.
야고보가
하나님께 지혜를 구하라 함은 분명히 주신다는 약속하에 구하는 것입니다. 야고보는 확신 속에 말씀합니다. 너희가 구하는 그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 하면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는 분이시라고 합니다. 후히 주신다는 것은 원어의 의미는 관대하다는 뜻입니다. 이 말은
지혜가 없음에 대하여 책망하거나 혼을 내거나 비난하거나 화를 내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형편과 상황을 이해하신다는 의미입니다. 우리의 연약함을 잘 아시기에 그분은 후하게 아낌없이 주시며 결코 꾸짖지 않습니다. 여기에 지혜를 구하는 기도의 필요성이 있습니다. 오늘 내가 무엇을
선택할지 어떤 것을 취할지 그 능력을 구해야 합니다. 지혜란 단순히 지식을 구하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을 많이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러나 그것을 통하여 바른 경건의
선택을 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우는 것이 중요합니다. 지식은 우리를 망하게 합니다. 그러나 지혜는 우리를 살립니다. 이 말을 기억하셔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우리의 삶에서 우리에게 왜 지혜가 절실한가 하면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이 시대가 반드시를 지혜를 갖추어야 만 살아낼 수 있는 시대이기 때문입니다. 계시록 22장 10-11절을
보면 [계 22:10-11] 또 내게 말하되 이 두루마리의 예언의 말씀을 인봉하지 말라 때가 가까우니라 불의를
행하는 자는 그대로 불의를 행하고 더러운 자는 그대로 더럽고 의로운 자는 그대로 의를 행하고 거룩한 자는 그대로 거룩하게 하라 Then he told me, "Do not seal up the words of the prophecy of
this scroll, because the time is near. Let the one who does wrong continue to
do wrong; let the vile person continue to be vile; let the one who does right
continue to do right; and let the holy person continue to be holy." 이
두루마리의 예언의 말씀을 인봉하지 말라고 합니다. 왜냐하면 때가 가까웁기 때문입니다. 때가 가깝다는 것은 종말이 가까워오며 하나님의 구원의 날과 심판의 날이 가까웠다는 말입니다. 그때에 대하여 불의를 행하는 자는 그대로 불의를 행하고 더러운 자는 그대로 더럽고 의로운 자는 그대로 의를
행하고 거룩한 자는 그대로 거룩하게 하라고 합니다. 세상이 종말이 가까울수록 악인은 악한 그대로 더
나아갈 것이며, 불의한 자는 그대로 불의함으로 나아갈 것입니다. 그러나
의인은 더욱 의로움과 거룩한 자는 더욱 거룩함으로 나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시대의 정신에 함몰되어
세상에 빠져 살지 않기 위하여 우리는 더욱 의로움으로 우리는 더욱 거룩함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이것은
저절로 되는 것이 아니라 깨어 있는 자들은 더욱 깨어 있음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에게 지혜가 반드시 필요한 것입니다.
또한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거룩함으로 부르심을 받았기 때문에 우리의 모든 삶이 경건을 선택하는 삶이 되어야 합니다. 데살로니가전서
4장 7-8절을 보면 [살전 4:7-8]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심은 부정하게 하심이 아니요 거룩하게 하심이니 그러므로 저버리는 자는 사람을
저버림이 아니요 너희에게 그의 성령을 주신 하나님을 저버림이니라 For God did not call us to
be impure, but to live a holy life. Therefore, anyone who rejects this
instruction does not reject a human being but God, the very God who gives you
his Holy Spirit.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심은 부정하게 하심이 아니고 거룩하게
하심이라고 합니다. 영어 성경을 보면 하나님을 우리를 부정하도록 부르신 것이 아니라고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신 것은 거룩한 삶을 살도록 부르신 것이라고 합니다. 우리는 거룩한 삶을 살도록 부르심을 받은 자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경건을 선택할 수 있는 지혜가 필요한 것입니다. 우리의 매일 삶은 주님으로부터 받은 삶이기 때문에
그분에게 합당하게 우리 몸과 영혼을 드려야 합니다. 그분이 받으실 만한 삶을 선택함으로 온전한 산 제물로
바쳐진 삶을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지혜를 통하여 선택하여 살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경건한
선택을 할 수 있는 능력은 하루 아침에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지속적으로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얻어지는 것입니다. 또한 이것은 기도를 통하여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는 것입니다. 그분을 더욱 느끼며 경험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래야 그분을 경외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기도란 하나님을 아는 것이며 그분을 경험하는 것이며 그분의 도우심 앞에 서는 것입니다. 지혜가 없으십니까? 모든 이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십시오. 여러분에게 삶의 지혜를 주실 것입니다. 무엇을
선택해야 하는지? 어떤 것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인지? 무엇을
선택하며 따라야 여러분의 영혼이 살아날 수 있는지? 깨닫게 하실 것입니다. 매일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의 자신의 삶을 적용하며 살아가면 하나님께서 자신을 여러분들에게 더 많이 계시하여
주실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여러분들은 지혜로운 분이 되어서 그 지혜로 그분을 더욱 기쁘시게 하는 분들이
되실 것입니다. 지혜를 구하십시오. 그래서 선택의 능력을
키우십시오. 무엇을 해야 할지? 지금 어떤 것을 해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며 내 영혼을 위한 바른 선택이 되는지를 생각해 보셔야 합니다. 영적으로 게으르거나 무관심에서
떠나야 합니다. 이것은 지혜가 부재로 인하여 발생하는 삶일 뿐입니다.
신자로서 영적으로 부지런 하십시오. 그리고 깨어 있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