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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말씀
2025.04.02 15:15

왜 예수를 믿어야 합니까

Y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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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영상  https://youtube.com/live/VDDV00gAaUI


우리가 오늘 함께 살펴볼 본문 가운데 있는 요한 복음 3 16절을 보면 [ 3: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For God so loved the world that he gave his one and only Son, that whoever believes in him shall not perish but have eternal life. 말씀은 너무나 잘 알려 진 말씀이며 대부분이 암송하고 있는 구절 중 하나입니다. 이 구절은 복음의 진수를 담고 있기 때문에 복음의 핵심 구절 가운데 하나인 것은 분명합니다. 복음이라는 것은 복된 소식 혹은 좋은 소식이라는 뜻입니다. 왜 이 구절이 복음 즉 복된 소식인가 하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사랑의 실행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셨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고 하신다는 것입니다. 16절 전체를 분해해 보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셨고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셔서 그를 믿는 자들에게 영생을 얻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통하여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는 길이 열렸다는 것은 참으로 우리에게 있어서 복된 소식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래서 복음입니다.

        우리는 전도를 할 때 이 구절에 근거하여 하나님께서 당신을 사랑하십니다 라는 말을 합니다. 또한 이 구절에 근거하여 하나님께서 당신을 위한 계획을 가지고 계십니다 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교회 안에 큰 현수막으로 하나님은 당신을 사랑하십니다 라고 써 붙여 놓기도 합니다. 맞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너무나 사랑하십니다. 그런데 오늘 제가 여러분과 이 말씀을 함께 살펴보고 싶은 것은 이 말씀이 정말 하나님의 사랑을 나타내는 구절인가 하는 부분입니다. 이 구절에서 우리는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시는 구나 나를 기뻐하시고 나를 좋아하시는 구나 하는 것을 느낄 수 있는 구절인가를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먼저 16절을 보면 하나님께서 이처럼 세상을 사랑하셨다고 합니다. 공동 번역에서는 이처럼을 극진히 라는 말로 번역을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극진히 사랑하셔서 그래서 독생자를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에 나오는 말씀이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라는 말씀인데 의미는 예수님을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기 위해서 라는 뜻입니다. 이것을 붙여 설명하면 하나님께서 세상을 극진히 사랑하여서 독생자를 세상에 주셨는데 이 분이 오신 목적은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기 위해서 라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이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신 이유는 그를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입니다. 이 구절에서 우리가 늘 주목하며 힘주어 부르며 생각하였던 단어는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입니다. 이 구절을 우리는 그렇게 여겨 왔고 생각해 왔습니다. 그러나 이 구절에서 핵심은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지 않는 다는 말이 아닙니다. 이 구절의 핵심은 하나님의 사랑이 아닙니다. 이 구절의 핵심은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함이라 라는 말씀입니다. 이유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사실 이 구절은 종속절입니다. 종속절이라는 말은 본래의 내용이 있고 그 내용에 관한 것을 설명하기 위해 첨가된 내용이라는 뜻입니다. 한글 성경에는 나타나지 않지만 헬라어 원문을 보면 이라는 단어가 나옵니다. 이 뜻은 왜냐하면 이라는 이유를 나타내는 단어입니다. 즉 이 구절은 왜냐하면 이라는 말과 함께 시작되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이라는 단어가 앞에 나온다는 것은 앞에 것을 설명하기 위해서 입니다. 그럼 이 구절 앞의 내용이 무엇입니까?

요한복음 314절부터 보도록 하겠습니다. 요한복음 314절을 보면 [ 3:14]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Just as Moses lifted up the snake in the wilderness, so the Son of Man must be lifted up, 본문은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한다고 합니다.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들었던 적이 있습니다. 민수기 219절을 보면 [ 21:9] 모세가 놋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다니 뱀에게 물린 자가 놋뱀을 쳐다본즉 모두 살더라 So Moses made a bronze snake and put it up on a pole. Then when anyone was bitten by a snake and looked at the bronze snake, they lived. 모세가 놋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달았다고 합니다. 이 사건을 이야기하는 것으로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 노정중에 길이 험악하여 인내하지 못하고 불평을 하게 됩니다. 민수기 215절을 보면 [ 21:5] 백성이 하나님과 모세를 향하여 원망하되 어찌하여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해 내어 이 광야에서 죽게 하는가 이 곳에는 먹을 것도 없고 물도 없도다 우리 마음이 이 하찮은 음식을 싫어하노라 하매 they spoke against God and against Moses, and said, "Why have you brought us up out of Egypt to die in the wilderness? There is no bread! There is no water! And we detest this miserable food!" 그들은 먹을 것도 없고 물도 없고 그리고 만나에 대하여는 하찮은 음식이라고 하는데 하찮은의 뜻은 경멸 할만한 이란 뜻으로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위해 내리신 음식을 경멸할 만한 이라고 표현하며 악한 말을 쏟아 냅니다. 이에 하나님께서 불 뱀을 보내시고 백성들이 불 뱀에 물려 죽는 일들이 발생하게 됩니다. 불 뱀이란 불타는 뱀이 아니라 물리면 불에 데인 것 같은 통증이 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입니다. 이에 백성들이 모세에게 하나님께 기도하여 불 뱀을 없애 달라고 청하고 모세가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놋으로 불 뱀을 만들어 장대에 달라고 하십니다. 그리고는 그 장대에 달린 불 뱀을 보는 자 마다 살게 하십니다.

이 사건을 예수님께서 언급하시는 이유는 자신도 이와 같이 들려야 한다는 것을 설명하기 위해서 입니다. 인자 즉 예수님께서 들려야 한다는 것은 십자가에서 죽으심에 대한 이야기 입니다. 이 이야기가 왜 시작되었는가 하면 3장에서 니고데모라는 사람이 예수님께 찾아와 구원에 관한 대화를 나누면서 이 이야기가 시작된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 예수님께서 자신이 십자가에 달려서 죽어야 됨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314절을 보면 [ 3:14]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Just as Moses lifted up the snake in the wilderness, so the Son of Man must be lifted up, 14절에서 한글 성경에는 나타나지 않는 단어가 있는데 반드시라는 단어입니다. 데이라는 단어인데 예수님께서 인자도 반드시 들려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서 사용한 단어입니다. 이 뜻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지 않고는 절대로 구원이 이루어질 수 없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또한 구원을 위해서는 다른 방법이 있을 수 없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왜 예수님께서 반드시 십자가에서 죽으셔야만 하는가 하면 15절 때문입니다.

요한복음 315절을 보면 [ 3:15]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that everyone who believes may have eternal life in him." 원문을 직역 하면 이런 의미입니다. 그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기 위해서 라는 뜻입니다. 14 15절을 함께 해석하면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과 같이 인자도 그를 믿는 자가 영생을 얻게 하기 위하여 반드시 들려야 하리라 라는 뜻입니다. 이 구절이 이야기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예수님의 죽음입니다. 어디에서의 죽음입니까? 십자가에서의 죽음입니다. 죽음의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를 믿는 자들에게 영생을 얻게 하기 위해서 입니다. 왜 믿는 자들에게 영생이 필요합니까? 왜냐하면 그들이 영생을 소유하지 못하면 멸망 당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멸망이라는 단어는 완전히 파괴 되다는 라는 뜻과 잃어 버린다는 뜻이 있습니다. 예수를 믿지 않으면 영원히 파괴될 상황에 놓인 것이 우리라는 사실입니다. 또한 예수를 믿지 않으면 우리는 우리의 인생과 우리의 영혼을 잃어 버리게 됩니다. 파괴되거나 잃어 버린다는 것은 죽으면 감각이 없어져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고 끝이라는 의미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지으신 목적과 뜻을 이루지 못한다는 의미에게 파괴되고 무너져 버리는 것을 의미합니다. 요한복음 318절을 보면 [ 3:18] 그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니라 Whoever believes in him is not condemned, but whoever does not believe stands condemned already because they have not believed in the name of God's one and only Son. 그들에게는 분명한 하나님의 심판이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지 않은 자들은 자신의 인생과 삶이 파괴되고 무너지며 잃어 버린 자들이 될 것이고 또한 하나님의 심판대에서 심판을 받아 영원한 불 못에 들어가게 될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313절은 왜 예수님께서 반드시 들리셔야 하는지 즉 십자가에서 죽으셔야 하는지를 잘 말해 주고 있습니다. 갈라디아서 313절을 보면 [ 3:13]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 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에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Christ redeemed us from the curse of the law by becoming a curse for us, for it is written: "Cursed is everyone who is hung on a pole."예수님께서 들린다는 것은 단순히 십자가에서 죽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나무에 달린 다는 것은 저주 아래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저주 아래 있는 자처럼 십자가에 달린 것은 그분이 죄가 있어서가 아니라 그분이 율법의 저주 아래 있는 우리를 속량하시기 위해서 입니다. 이 말씀은 바로 우리가 저주 아래 놓여 있는 자들이라는 것입니다. 이 말은 우리가 죄인이라는 뜻입니다. 죄인이란 죄를 지은자입니다. 로마서 623절을 보면 [ 6:23]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 For the wages of sin is death, but the gift of God is eternal life in Christ Jesus our Lord.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죄의 값은 사망입니다. 우리는 모두다 예수 그리스도가 아니었다면 사망할 자들입니다. 여기서 사망이라는 말은 하나님의 심판으로 인한 영원한 불못 곧 지옥을 말합니다.

이 문제 때문에 예수님께서 오신 것입니다. 다시 요한 복음 3 16절을 보면 [ 3: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For God so loved the world that he gave his one and only Son, that whoever believes in him shall not perish but have eternal life. 하나님이 이처럼 세상을 사랑하사 라는 말은 따뜻한 분위기와 부드러운 미소와 차분함 속에서 주어진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죽음과 관련된 것이며 생명에 관한 것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셔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하면 하나님께서 세상을 사랑하셔서 독생자를 주셨고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기 위해서 그래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셔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오늘 우리가 읽은 구절의 의미입니다. 복음은 결코 부드럽지 않고 행복한 이야기가 아닙니다. 복음은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죽으심이며 피를 흘리심입니다. 복음에는 우리가 누구인지가 드러납니다. 우리는 멸망을 피할 수 없는 자들이라는 사실입니다. 예수님이 들리지 않으시면 소망이 없는 자들이 우리들이며 인생이 파괴되고 무너지고 갈가리 찢기 우고 산산 조각이 나며 무서운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야 할 존재들이 바로 저와 여러분들이라는 사실입니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저주와 심판이 나타나며 하나님의 진노가 나타나고 십자가의 죽음이 나타납니다. 그것이 복음입니다. 그렇다면 이 복음이 무슨 기쁜 소식입니까? 우리로 하여금 두렵게 하며 떨게 하는 것이 무슨 좋은 소식입니까? 라고 반문 할 수 있습니다. 저는 여러분들에게 복음이야 말로 우리가 세상에서 들을 수 있는 소식 중에서 가장 좋은 소식이며 가장 기쁜 소식이라고 말씀 드릴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 저주에서 그 사망에서 그 심판에서 그 멸망에서 우리가 구원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바로 우리를 위해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서 말입니다. 이 감격이 있습니까? 이 기쁜 소식이 여러분의 것입니까? 이 좋은 소식이 여러분의 가슴을 울립니까? 복음은 저주와 심판과 진노에서 시작됩니다. 그러나 우리의 믿음을 통하여 그것은 우리를 넘어갑니다. 마치 죽음의 심판자가 애굽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집을 넘어가듯이 우리를 넘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 속에는 그리스도의 피가 묻어 있으며 그리스도의 피가 우리 가슴을 적시고 우리의 심장에 흐르고 우리의 혈관에 흐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복된 소식을 믿음으로 받습니다. 이 복된 소식이 나의 것이 되기 위해서 믿어야 합니다. 본문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믿음이란 확률이 아닙니다. 그럴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기 때문에 믿는 것은 확률입니다. 믿음이란 지식적 동의가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살아 계셨다는 사실 존재하셨다는 사실을 안다고 해서 그것이 믿음은 아닙니다. 믿음이란 나의 지성과 의지와 감성이 함께 예수 그리스도께 굴복하는 것으로 그분을 주인으로 모시고 살겠다는 결단이자 결심입니다. 성경에 나타난 믿음이란 말은 쉽게 정의할 수 있는 말이 아닙니다. 그러나 정의 하자면 믿음이란 예수님이 나의 죄를 위해 죽으셨으며 부활하여 살아계시고 지금도 내게 역사하시는 분이심을 믿는 것입니다. 또한 예수님만이 나의 주님이라 고백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예수님 만이 나의 구주시라는 고백과 삶이 포함되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회개하여 예전과 다른 삶을 살려는 의지와 삶이 있는가가 믿음의 요소입니다. 잊지 마십시오. 우리가 예수를 믿는 것은 놀라운 은혜요 감격이요 감사요 기쁨이라는 사실을 말입니다. 그러기에 그분을 닮아 가려는 삶이 따르게 됩니다.

 


주일 말씀 요약 및 설교 영상

주일 말씀 컬럼 안에 설교 영상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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