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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말씀
2025.05.07 12:36

어떻게 성령 충만함을 받는가

YC
조회 수 1928 추천 수 0 댓글 0

주일 말씀 영상 https://youtube.com/live/HM-z1lk6cgc


성경은 신자에게 두 가지 방식으로 일반적으로 명령을 하는데 첫째는 하지 말라 라는 부정어를 통하여 금지하는 것입니다. 둘째로는 하라 라는 명령으로 적극적인 자세와 태도를 요구하는 명령입니다. 오늘은 금지에 관한 명령이 아니라 하라 라는 명령으로 요구 받고 있는 것에 대하여 살펴보려고 합니다. 성경이 무엇인가를 하라고 명령할 때에 그것은 반드시 행하는 자에게 유익을 보장하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좋으신 하나님께서 무엇인가를 자신의 자녀들에게 하라고 할 때에 결코 불필요하거나 무익한 것을 요구하시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럼 오늘 우리가 살펴볼 하라 라는 명령의 내용과 그것이 주는 유익은 무엇인가에 대하여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에베소서 518절을 보면 [ 5:18]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 Do not get drunk on wine, which leads to debauchery. Instead, be filled with the Spirit,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본문은 주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거부감을 느끼는 좀 멀리하고 싶은 성경 구절중 하나입니다. 이유는 주님을 너무나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주님의 주는 술 주자입니다.

누구든지 본문을 읽으면 자연스럽게 예상하게 되는 것이 술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겠구나 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금주에 대하여 확실하게 성경이 말하고 있는 말씀이라고 제시되는 것이 이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사실 본문의 핵심적인 내용은 술에 관한 내용이 아닙니다. 본문에서 술 취함은 단지 비교의 대상으로 인용된 것입니다. 무엇에 대한 비교의 대상인가 하면 성령 충만에 대한 비교의 대상이라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만약 우리가 금주에 대한 이야기로만 우리가 본문을 이해한다면 아마 한탄하실 것입니다. 본문은 금주라는 삶의 규범으로 제한될 만한 그런 본문이 아닙니다. 오히려 더 위대하고 놀라운 은혜를 경험하고 체험하도록 우리를 높은 신앙의 차원으로 인도하는 안내서와 같은 본문이기 때문입니다.

        우선 우리가 살펴봐야 되는 부분은 왜 갑자기 뜬금없이 술이라는 애주가들에게는 상당히 거부감을 느끼게 하는 것에 대하여 이야기를 꺼내고 있는가를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바울이 에베소 5장에서 이야기하고 싶어하는 것은 새 생명과 옛 생명에 대한 비교입니다. 그러면서 갑자기 술 취하지 말라는 이야기를 꺼내는 것입니다. 이렇게 술에 관한 이야기를 꺼내는 것은 이것이 상당히 설득력이 있고 이해가 빠르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누구에게 그런가 하면 바로 에베소 교인들에게 입니다. 바울이 에베소서를 쓸 당시의 에베소를 보면 술로 인한 문제가 도시 전체에 만연되어 있었습니다. 도시 어디서에서든지 술에 찌든 사람들을 볼 수가 있었고 거리 곳곳에 술집들이 즐비해서 사람들을 유혹했습니다. 사람들 모두가 술로 인한 폐해가 심각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렇게 사는 것이 당연한 것처럼 여겨졌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에베소 교인들에게는 다른 말보다 술 취하지 말라는 말이 직접적으로 다가 온다는 것입니다.

        이런 배경아래에서 바울이 본문에서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 라고 말씀하시는데 이 말씀을 가만히 들여다 보면 하지 마라 그러나 또 하라 라고 되어 있습니다. 하지 말라는 것은 술 취하지 말라는 것이고 하라는 것은 성령의 충만입니다. 여기서 바울이 정말 하고 싶은 말은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을 말하기 위해서 그것을 더욱 분명하게 만들어 주는 매개체로 술 취함을 표현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술 취함과 성령의 충만은 유사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서도 다른 차이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술 취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바르게 알면 성령의 충만함이 무엇인가를 더욱 분명하게 알게 되기 때문에 비교 장치로 술 취함이라는 상황을 연결해 놓은 것입니다. 즉 술 취함은 성령 충만을 이해하는 연결고리라는 것입니다.

먼저 술 취한다는 것부터 이해해 보겠습니다. 술에 취한다는 것은 단어의 원어적 의미는 술에 담근다는 라는 의미입니다. 즉 술에 푹 젖어 있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이것을 좀더 자연스럽게 표현하자면 술에 푹 빠져들지 말고 오직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하나 더 생각해야 할 것은 술에 푹 빠져들지 말아야 하는 이유가 하나 나와 있습니다. 술에 푹 빠져들면 자연스럽게 나타나는 것인데 그것이 이는 방탕한 것이니 라는 말씀입니다. 술에 푹 빠져드는 것은 방탕한 것이라고 합니다. 여기서 방탕이라고 하는 것의 단어적 의미를 살펴보면 이 단어가 눅15장의 탕자의 비유에서 사용된 단어임을 알 수가 있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대로 탕자는 아버지의 재산을 가지고 집을 나가서 먼 나라에서 아버지의 재산을 허랑방탕하여 다 써버립니다. 누가복음 1513절을 보면 [ 15:13] 그 후 며칠이 안 되어 둘째 아들이 재물을 다 모아 가지고 먼 나라에 가 거기서 허랑방탕하여 그 재산을 낭비하더니 "Not long after that, the younger son got together all he had, set off for a distant country and there squandered his wealth in wild living. 여기서 아버지의 재산을 허랑 방탕하였다는 단어가 바로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라는 단어와 같은 단어어라는 것입니다.

헬라어 아소토스 허랑 방탕이라는 단어는 원래 어근이 소조라는 헬라어로 절약하다는 뜻인데 단어 앞에 부정 접두어가 붙은 것입니다. 즉 원래는 긍정적인 단어입니다. 그러나 그 앞에 붙은 것이 부정어가 붙은 것입니다. 영어로 unfaithful 하다는 뜻으로 자신이 소유하고 있는 것을 소중히 다루고 아끼고 돌보다는 의미가 부정어가 붙어 그것을 낭비하다가 된 것입니다. 아끼고 소중하고 간수하고 다루어야 할 것을 아무렇게 써버리고 소진 즉 다 없애 버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결국에는 모든 것을 다 함부로 써버려서 아무것도 남지 않은 텅 비어버린 상태가 되 거지가 되는 것입니다. 인생을 망쳐버리는 결과를 초래하게 되는 것이 바로 이 방탕이라는 단어의 의미입니다. 다시 에베소서 518절을 보면 [ 5:18]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 Do not get drunk on wine, which leads to debauchery. Instead, be filled with the Spirit, 이것을 다시 정리하면 술에 푹 빠져들지 말라 이것은 인생을 파멸로 몰고 가는 것이다 라는 의미입니다. 영어 성경에서 debauchery 로 이끌다 라고 번역했는데 이는 과도한 탐닉으로 이끌리게 되어 정상적인 사고나 판단이 결여되는 상태에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령의 충만함을 받으라고 합니다.

왜 술 취함이 인생의 파멸로 이끌어가는 것일까요?  우선은 술이 가지는 영향력 때문입니다. 대부분 사람들은 술에 취하면 기분이 좋고 흥이나고 그래서 자극을 주는 것으로 이해합니다. 그러나 의학적으로 술은 마취제입니다. 술이 마취제라고 하는 것은 술은 우리에게 중요한 기관을 능력을 상실하게 만든 다는 것입니다. 의학적으로 술을 먹으면 우리 몸의 중요한 고등중추기관이 마비되게 됩니다. 우리의 이성과 사고 즉 자율, 자제, 판단력, 판별력, 분별력, 조정능력, 균형 감각등을 마비시킨다는 것입니다. 경찰들이 술에 취하였는지 아닌 지를 구분하기 위해 똑바라고 걷는 것을 시키는 이유가 바로 이것 때문에 그렇습니다. 술에 취해서 판단력을 상실에서 실수를 하는 경우를 우리는 종종 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고 합니다. 성령의 충만은 술취함과 비슷한 부분이 있습니다. 그것은 사도행전 2 12-13절을 보면 [ 2:12-13] 다 놀라며 당황하여 서로 이르되 이 어찌 된 일이냐 하며 또 어떤 이들은 조롱하여 이르되 그들이 새 술에 취하였다 하더라 Amazed and perplexed, they asked one another, "What does this mean?" Some, however, made fun of them and said, "They have had too much wine." 사람들이 성령의 충만을 받아 밖으로 나와 복음을 전할 때 사람들이 이들의 모습을 보고 하는 말이 있습니다. 이들이 모두 술에 취하였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술 취함과 성령의 충만이 겉으로 보이는 유사점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내면은 전혀 다릅니다. 술 취함은 이성이 마비되어 본능에 의해 생기는 용기로 흥분되는 것이고 그러나 성령의 충만은 각성제 입니다. 인간이 가진 이성과 사고를 더욱 뛰어 넘는 능력이 행동에 나타나는 것입니다. 성령이 주시는 주체할 수 없는 능력에서 나타나는 담대함이 이들로 하여금 복음을 전하게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신자들에게 믿지 않는 자들이 우리를 관원에 넘겨주었을 때 우리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염려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왜냐하면 성령이 너희에게 알게 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보면 성령은 우리의 생각과 사고를 더욱 넓히고 분명하게 하며 우리의 기능을 깨워 더욱 활발하게 하는 분이시라는 것입니다.

다시 에베소서 518절을 보면 [ 5:18]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 Do not get drunk on wine, which leads to debauchery. Instead, be filled with the Spirit, 다음으로 살펴볼 것은 바울이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고 했는데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는 의미가 무엇인가를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충만이라는 단어가 무슨 의미인가를 살펴볼 것입니다. 충만이라는 단어를 헬라어 사전에서 의미를 찾으면 무엇이 마음에 사로잡을 때 충만하다고 합니다.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어떤 것이 우리의 마음을 사로 잡아 그것이 마음에 가득하게 되면 그것이 바로 충만하다 라고 표현되는 것입니다. )드라마에 충만, 애인에게 충만.

우리 안에 무엇이 우리의 마음을 사로잡는 것이 있다면 그것으로 우리가 충만하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다른 말로 표현하면 술 취하는 사람들은 술 기운으로 산다고 합니다. 이런 표현을 취한다면 성령 충만하다는 것은 성령의 기운으로 산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술 취하는 것이 술기운 즉 술의 힘에 의지해서 살아가는 것이라면 성령의 충만은 성령의 기운에 의지해서 그리고 그 힘에 의해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또한 사람이 술을 먹으면 사람이 술의 그 기운에 의해 통제되고 그에 의해 이끌려 살듯이 성령에 통제되고 성령에 의해 제어 되어 살아가라는 것입니다. 본문에서 성령의 충만은 우리가 해야 되는 우리의 행동을 요구합니다. 무엇을 해야 하는가 하면 우리의 마음이 성령으로 사로잡혀야 한다는 것입니다. 또한 성령에 의해 통제되도록 내어 놓아야 합니다

성령 충만이라는 것은 시제가 현재형이다. 즉 너희는 지속적으로 계속해서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는 것입니다. 성령의 충만은 성경에서 두 가지의 경우가 있습니다. 하나는 특별한 일을 위하여 하나님이 특별한 상황과 특별한 사람에게 주시는 성령의 충만입니다. 예로는 출애굽기 312-3절을 보면 [ 31:2-3] 내가 유다 지파 훌의 손자요 우리의 아들인 브살렐을 지명하여 부르고 하나님의 영을 그에게 충만하게 하여 지혜와 총명과 지식과 여러 가지 재주로 "See, I have chosen Bezalel son of Uri, the son of Hur, of the tribe of Judah, and I have filled him with the Spirit of God, with wisdom, with understanding, with knowledge and with all kinds of skills- 성막을 짓기 위하여 브사렐이라는 사람을 지명하여 부르라고 합니다. 그리고 이 사람에게 하나님이 성막 기구를 만들기 위해 성령의 충만을 부어주십니다. 또 누가복음 115절을 보면 [ 1:15] 이는 그가 주 앞에 큰 자가 되며 포도주나 독한 술을 마시지 아니하며 모태로부터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 for he will be great in the sight of the Lord. He is never to take wine or other fermented drink, and he will be filled with the Holy Spirit even before he is born. 세례 요한의 경우 주님의 길을 예비하기 위하여 준비될 자로 모태로부터 하나님께서 성령의 충만함을 주시는 경우가 있습니다. 또한 세례 요한의 어머니 엘리사벳에게 성령의 충만이 임하였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특별한 일을 위하여 특별한 사람들에게 주시는 성령의 충만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그 충만이 일시적이나 한시적일 수 있습니다.

두번째로는 오늘 말씀과 같이 특별한 상황이 아니면서 특별한 사람이 아닌 일반적인 그리고 모든 사람에게 주어지는 성령의 충만이 있습니다. 사도행전 63절을 보면 [ 6:3] 형제들아 너희 가운데서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칭찬 받는 사람 일곱을 택하라 우리가 이 일을 그들에게 맡기고 Brothers and sisters, choose seven men from among you who are known to be full of the Spirit and wisdom. We will turn this responsibility over to them 스데반을 포함한 일곱 집사의 경우 이들은 초대 집사로 선출이 됩니다. 그 이유는 믿음과 성령이 충만하였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잘 생각해야 하는 것이 있는데 스테반은 결코 집사의 직분을 감당하기 위해 성령의 충만을 받은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그는 오히려 성령이 충만한 상태로 있었기 때문에 집사의 직분을 받은 것입니다. 바울의 동역자 바나바의 경우도 마찬가지 입니다. 바나바는 일상적으로 성령이 충만한 사람이었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생활상의 충만이 있다는 것입니다. 본문은 그런 차원에 바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생활상의 성령 충만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다시 에베소서 518절을 보면 [ 5:18]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 Do not get drunk on wine, which leads to debauchery. Instead, be filled with the Spirit, 다음으로 중요한 것은 본문에서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고 하는데 이것은 수동형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성령의 충만을 기다리고 만 있다는 것입니다. 달라고만 하고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다는 것입니다. 마치 과실 수 아래에서 열매가 떨어지기를 바라며 누워 기다리는 모습이라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분문이 성령의 충만함을 이야기할 때 성령의 충만이 오기를 기다리라는 것이 아닙니다. 여기서 수동형이라는 것은 성령 충만이 우리에게서 나온 것이 아니라는 것이지 충만해지는 것이 가만히 기다리고 주실 때까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어야 되는 것은 아니라는 점입니다.

        앞에서도 말씀 드렸듯이 충만이라는 것은 무엇인가가 마음을 사로잡는 것입니다. 즉 바울이 우리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는 술에 푹 빠지게 되어서 본능이 지배함으로 인생을 파탄되는 삶을 살지 말고 우리의 마음에 성령으로 가득 차게 하라는 것입니다. 성령에 마음이 사로 잡히는 삶이 우리에게 정말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어떻게요 술에 취한 자들이 그 술에게 통제력을 내어주듯이 그 의지를 술에 이끌리듯이 우리의 모든 통제력 의지력 판단력 분별력 등 모든 것을 성령께 내어 놓으라는 것입니다. 그분의 인도 아래 내려 놓으라는 것입니다. 성령의 충만은 한번 집회에 참석했다고 얻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지속적인 순종과 말씀을 따름이 있어야 가능한 것입니다. 진정한 성령의 충만은 끊임없이 자신을 내려 놓는데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 말씀에 따라 사는데 있습니다. 그것이 성령의 충만의 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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