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 말씀 영상 https://youtube.com/live/12LBKmzv_bY
한국의 5월은 가정의 달입니다. 또한
오늘은 어머니 주일입니다. 그래서 성경에 말씀하고 있는 가정에 대하여 말씀을 살펴보려고 합니다. 오늘 우리가 성경을 통하여 살펴보고자 하는 중심 주제는 결혼에 대하여 입니다.
저는 이미 앞서서 성경적 결혼에 대하여 몇 번 말씀을 전하였습니다. 오늘은 또 다른 결혼에
대하여 우리가 생각해 보지 않았던 부분을 살펴보려고 합니다. 첫째로는 우리는 어떻게 결혼하게 되는가
하는 것에 대하여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어떻게 결혼하게 되는가 하는 부분은 정말 중요합니다. 물론 결혼하기 전에 이러한 사실들을 알고 결혼하게 된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지만 이미 결혼한 분들에게는 자녀들이나
손자들에게 가르치시는 기회가 되시길 바랍니다. 둘째는 결혼 생활에 대하여 남편과 아내는 서로에 대하여
어떻게 해야 되는가에 대하여 살펴보려고 합니다. 이제 첫번째 부분에 대하여 생각해 보도록 합시다. 우리는 어떻게 결혼하게 되는가 하는 부분에 대하여 살펴보는 이유는 많은 이들이 성경 말씀에 대하여 오해하기
때문입니다. 저 또한 결혼하기 전 청년의 때에 이러한 잘못된 가르침을 따랐던 적이 있습니다. 성경에 무지한 자들이 쓴 책을 읽고 그러한 가르침을 마치 성경의 가르침인 양 속았던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의 결혼은 하나님께서 정하신 자들을 찾는 것이며, 하나님께서는
우리 각자에게 정하신 배필을 준비하셨다는 것입니다. 양은순이라는 분이 계십니다. 이 분은 목사님 아내였습니다. 이분이 책을 쓰셨는데 그분의 그의
책에서 하나님께서는 우리 각 사람에게 꼭 맞는 배필을 준비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결혼 할
자들이 하나님께서 마련하신 배필을 찾기 위해 기도해야 하며, 자신의 배필을 찾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를 든 것이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에 관한 내용입니다. 창세기 24장 14절을 보면 [창 24:14] 한 소녀에게 이르기를 청하건대 너는 물동이를 기울여
나로 마시게 하라 하리니 그의 대답이 마시라 내가 당신의 낙타에게도 마시게 하리라 하면 그는 주께서 주의 종 이삭을 위하여 정하신 자라 이로 말미암아
주께서 내 주인에게 은혜 베푸심을 내가 알겠나이다 May it be that when I say to a
young woman, 'Please let down your jar that I may have a drink,' and she says,
'Drink, and I'll water your camels too'-let her be the one you have chosen for
your servant Isaac. By this I will know that you have shown kindness to my
master." 이 말씀은 아브라함의 종 엘리에셀이 기도하는 내용입니다. 그는 아브라함의 명령을 받아 아브라함의 친족이 있는 밧단 아람으로 이삭의 아내를 찾아 떠납니다. 그는 이삭의 아내가 될 자가 누군지 몰라 성 밖 우물 곁에서 기도하는 것입니다. 저녁에 물을 길으러 오는 여자 가운데 이삭의 아내가 될 자에 대하여 그는 알 수 없기 때문에 기도합니다. 내가 한 소녀에게 청하여 네 물동이를 기울여 나로 마시게 하라고 합니다. 그때
그 여자는 마시라 라고 말하여야 합니다. 또한 그가 묻지도 않았는데 내가 당시의 낙타에게도 마시게 하리라고
말합니다. 이렇게 말하면 그는 하나님께서 주의 종 이상을 위하여 정하신 자라로 알겠다고 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정하신 자라는 단어를 통하여 하나님께서는 이삭을 위하여 리브가를 정하셨다는 것입니다. 즉 결혼은 하나님께서 정하신 자들이 만나 결혼하는 것이며, 한나님께서는
누군가를 배필로 정하셨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내용들과 이러한 가르침들이 당시에 저를 포함한 많은 청년들에게
결혼이 하나님께서 정하신 배필을 찾는 일을 하는 것으로 믿게 되는 것입니다. 당시에 대부분의 청년들이
그렇게 믿었습니다. 그러나 이삭의 결혼은 모든 사람들에게 결혼할 배필이 예정되었고 정해졌다는 것을 증명하는
내용이 아닙니다. 성경의 내용을 왜곡한 거짓된 가르침인 것입니다. 이삭의
결혼이 하나님에 의해서 준비된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이삭의 경우에는 믿음이 씨를 위한 하나님의 구원을
나타내시며, 이루시기 위한 특별한 방식이었다는 것입니다. 이삭의
결혼에 대하여 왜 아브라함이 자신의 친족에게 자신의 종을 보내어 찾게 하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창세기 24장 3절을 보면 [창 24:3] 내가 너에게 하늘의 하나님, 땅의 하나님이신 여호와를 가리켜 맹세하게 하노니 너는 내가 거주하는 이 지방 가나안 족속의 딸 중에서 내 아들을
위하여 아내를 택하지 말고 I want you to swear by the Lord, the God of
heaven and the God of earth, that you will not get a wife for my son from the
daughters of the Canaanites, among whom I am living, 너는 내가 거주하는 이 지방 가나안 족속의 딸 중에서 내 아들을 위하여 아내를 택하지 말라고 합니다. 이 말은 가나안 족속의 딸 중에서 아내를 택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절대로 그렇게 하지 말라고 합니다. 그 이유는 가나안 족속은 그들의 죄로 말미암아 심판을 받을 자들이기
때문에 그들에게서 아내를 얻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은 믿음의 조상들입니다. 이들은 하나님의 구원이 어떠한 방식으로 주어지는 지를 보여지는 예표를 보이는 자들입니다. 그렇기에 이삭의 결혼은 하나님의 구원에 있어서 특별함을 가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삭의 결혼을 모든 사람의 결혼, 특히 그리스도의 결혼의 방식으로 일반화시키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선지자 호세아의 경우에 음란한 여자 고멜과의 결혼은 그 결혼 속에서 하나님께서 범죄한 이스라엘에 대한 경고와
책망과 진노하심을 나타내시기 위한 것이기에 정하여진 것입니다. 그 외에 모든 결혼은 하나님께서 정하신 배필에 의해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이 말은 결혼이 신성하지 않다는 말이 아닙니다. 제가 이 말씀을
드리는 이유는 결혼이 하나님이 정하신 배필과의 만남이며, 결혼이라고 믿을 때에 일어나는 문제에 하나님을
비난 거리로 삼지 말라는 것입니다. 내가 만나 결혼한 사람이 하나님이 정하신 배필인데 왜 이 사람과
맞는 것보다 맞지 않는 것이 더 많아 갈등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혹시 하나님이 잘못된 사람을 주신
것인지 따지지 말라는 것입니다. 결혼 생활은 수 많은 갈등과 고통이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잘못된 배필을 마련하신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우리가 결혼할 배필을 선택한 것입니다. 자신의 눈에 보기 좋은 사람을 선택해 놓고 하나님께 원망하거나, 하나님의 잘못으로 핑계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 문제에서 정말 결혼이 하나님의 선택된 배필과의 만남이 아니라 나의
선택의 결과라는 것은 성경 어디에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7장
36절을 보면 고전 7장 36절 그러므로 만일 누가 자기의 약혼녀에 대한 행동이 합당하지
못한 줄로 생각할 때에 그 약혼녀의 혼기도 지나고 그같이 할 필요가 있거든 원하는 대로 하라 그것은 죄 짓는 것이 아니니 그들로 결혼하게 하라 If anyone is worried that he might not be acting honorably toward
the virgin he is engaged to, and if his passions are too strong and he feels he
ought to marry, he should do as he wants. He is not sinning. They should get
married. 만일 누가 자기의 약혼녀에 대한 행동이 합당하지 못한 줄로 생각할 때에 그 약혼녀의 혼기도 지나고 그 같이
할 필요가 있거든 원하는 대로 하라고 합니다. 무엇에 대하여 원하는 대로 하라고 합니까? 결혼에 대하여 입니다. 결혼 한다고 죄 지는 것이 아니라고 합니다. 여기서 결혼 전의 한 청년에게 약혼한 여자가 있는데 결혼 해야 되는가 안해야 되는가 하는 문제에 대하여 네가
원하는 대로 하라는 것입니다. 만일 하나님께서 배필을 정하셨다면 안하는 것은 죄입니다. 그런데 바울은 하는 것이 죄가 아니라고 합니다. 이는 결혼에서 자유로움이
있다는 것이며, 하나님이 정한 배필이기 때문에 꼭 해야 되는 문제가 아니라는 점입니다. 다음 절인 고린도전서 7장
37절을 보면 고전 7장 37절 그러나 그가 마음을 정하고 또 부득이한 일도 없고 자기
뜻대로 할 권리가 있어서 그 약혼녀를 그대로 두기로 하여도 잘하는 것이니라 37 But the man who
has settled the matter in his own mind, who is under no compulsion but has control
over his own will, and who has made up his mind not to marry the virgin-this
man also does the right thing. 그러나 그가 마음에 정하고
또 부득이한 일도 없고 자기 뜻대로 할 권리가 있다면 약혼녀와 결혼하지 않고 그대로 두는 것 즉 결혼하지 않는 것도 잘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만일 모든 결혼이 하나님이 정하신 일이며, 배필 또한 정하셨다면
이는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는 것입니다. 그런데 잘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바울이 하나님의 정하심을 무시하는 것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결혼이 하나님의 정하신 배필을 만나는 일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한 구절 더 봅시다. 고린도전서
7장 39절을 보면 [고전 7:39] 아내는 그 남편이 살아 있는
동안에 매여 있다가 남편이 죽으면 자유로워 자기 뜻대로 시집 갈 것이나 주 안에서만 할 것이니라 A woman
is bound to her husband as long as he lives. But if her husband dies, she is
free to marry anyone she wishes, but he must belong to the Lord. 아내는 그 남편이 살아 있는 동안에 매여 있다가 남편이 죽으면 자유로워 자기 뜻대로 시집 갈 것이나 주 안에서만
할 것이니라 고 합니다. 여기에 한 결혼한 여자가 있는데 그의 남편이 죽었습니다. 그럼 이 여인은 이제 결혼 제도에서 자유로운 것입니다. 그래서 이
여자가 생각했습니다. 결혼 해야겠다. 이 때에 이 여자는
시집을 갑니다. 그런데 누구랑 결혼 합니까? 하나님이 또
배필을 정하셔서 그 사람과 결혼 합니까? 아닙니다. 자기
뜻대로 입니다. 이 말은 그녀가 원하는 사람과 입니다. 여기에
오직 하나의 조건이 있는데 주 안에서만 즉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고백하시는 신자와만 결혼하라는 것입니다. 이
여인은 자신이 원하는 자와 결혼하는 것입니다. 이제껏 우리는 결혼이 하나님이 정하신 배필이 있고, 우리는 그 배필과 결혼하는 것이다 라는 고정되고, 잘못된 가르침에
대하여 살펴보았습니다. 그럼에도 여전히 이러한 내용들에 있어서 의문을 품을 수 있는 것이 예수님의 결혼에
대한 가르침에 대한 온전한 이해의 부족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결혼에 대하여 이렇게 정의하시고 말씀하시는데
마태복음 19장 6절을 보면 [마
19:6] 그런즉 이제 둘이 아니요 한 몸이니 그러므로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할지니라 하시니 So they are no longer two, but one flesh. Therefore what God has
joined together, let no one separate." 그런즉
이제 둘이 아니요 한 몸이니 그러므로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에서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한다고 하는 가르침을 보고 결혼은 하나님이 짝을 찾아서 맺어주시는 것이야 라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말이 아닙니다. 지금 주님은 결혼 제도에 대하여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결혼 제도는 하나님이 내신 것입니다. 그렇기에
이 결혼 제도는 신성한 것입니다. 그 기원이 하나님이기 때문입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이 배필을 정하신다는 말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정하신 결혼 제도 속에서 둘이 하나가 되게 하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말라는 의미인 것입니다. 즉 결혼 제도의 신성함과 결혼이 가지는 의미는 하나님 앞에서, 그리고
하나님이 정하신 법이기 때문에 사람들이 임의로 결혼을 무효화 시키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 말씀의 배경이
이것을 증명합니다. 마태복음 19장 3절을 보면 [마 19:3] 바리새인들이 예수께 나아와 그를 시험하여 이르되 사람이
어떤 이유가 있으면 그 아내를 버리는 것이 옳으니이까 Some Pharisees came to him to
test him. They asked, "Is it lawful for a man to divorce his wife for any
and every reason?" 바리새인들이 예수께 나아와 그를 시험하여
이르되 사람이 어떤 이유가 있으면 그 아내를 버리는 것이 옳은 것이냐고 묻습니다. 어떤 이유로 아내를
버릴 수 있는가 하는 문제입니다. 이 질문에 예수님은 사람이 나눌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이 둘을 하나로 만드는 결혼이라는 제도를 세우셨으며, 결혼은
하나님 앞에서의 신성한 것이기 때문에 나눌 수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결혼이 하나님이 정하신 배필 때문에 거룩한 것이 아니라
우리의 결혼은 하나님 앞에서 한 것이기 때문에 거룩한 것이며, 신성한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비록 사람이 서로 만나 좋아하고 사랑하고 결혼하게 되는 것은 인간들 개인의 선택이지만 그들이 한 결혼은 하나님
앞에서 신성한 것이며, 거룩한 것이며, 변개 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이 신성한 결혼 생활을 위하여 부단히 애를 쓰며 노력해야 하는 것입니다. 결혼의 목적을 위해 함께 최선의 노력을 다해야 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한가지 집고 넘어가야 할 것이 우리의 결혼이 우리의 선태의 결과라면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선택에 아무 것도 간섭하지 않고 내버려 두시는가? 이것은 온전히 사람에게만 달려
있는가? 하는 문제입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특별히 누구에게 누구를 정하시지 않으셨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고, 결혼에 대하여 자신에게 합당한 배우자를 만날 수 있는
기회를 얻고 찾을 수 있는 은혜를 달라고 구할 수 있습니다. 이때 우리는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나와 함께
거룩한 가정을 함께 세울 배우자를 만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모든 연약함을 아십니다. 우리는 완전한 상태로 서로를 만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함께
하나님의 결혼 제도 속에서 서로를 이해하고, 수용하며, 권면하고, 격려하며 아름답게 새워지도록 도우십니다. 우리가 알아야 하는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세우시려 했던 결혼과 지금의
결혼 즉 타락 후의 결혼은 많은 차이가 있으며, 다름이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남자와 여자로 창조하시고 결혼 제도를 통하여 서로 한 몸이 됨으로 삼위 하나님의 연합의 기쁨을
맛보게 하려고 하셨습니다. 또한 결혼 제도를 통하여 하나님의 형상이 그 가운데 온전히 나타나도록 설계하셨습니다. 그러나 타락한 후에 결혼은 갈등과 고통이 있게 되었습니다. 여러분
그리스도인의 가정이라고 해서 고통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고린도전서 7장
28절을 보면 [고전 7:28] 그러나 장가 가도 죄 짓는 것이 아니요 처녀가 시집
가도 죄 짓는 것이 아니로되 이런 이들은 육신에 고난이 있으리니 나는 너희를 아끼노라 But if you do
marry, you have not sinned; and if a virgin marries, she has not sinned. But
those who marry will face many troubles in this life, and I want to spare you
this. 그러나 장가 가도 죄 짓는 것이 아니요 처녀가 시집 가도 죄 짓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결혼한 이들은 육신에 고난이 있습니다. 영어
성경에서 많은 문제들이 결혼 생활에 있다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어떻게 하면 남편을 기쁘게 할까? 어떻게 하면 아내를 기쁘게 할까? 하는 문제와 주님을 기쁘시게 할까
하는 문제 사이에 고통이 있기 때문입니다. 고린도전서 7장 33절을 보면 [고전 7:33] 장가 간 자는 세상 일을 염려하여 어찌하여야 아내를
기쁘게 할까 하여 But a married man is concerned about the affairs of
this world-how he can please his wife- 장가간 자는 세상 일을 염려합니다. 그 염려는 어찌하여야 아내를 기쁘게 할까 하는 염려입니다. 이것에
대하여 염려하는 것입니다. 다음절을 보면 [고전 7:34] 마음이 갈라지며 시집 가지
않은 자와 처녀는 주의 일을 염려하여 몸과 영을 다 거룩하게 하려 하되 시집 간 자는 세상 일을 염려하여 어찌하여야 남편을 기쁘게 할까 하느니라 and his interests are divided. An unmarried woman or virgin is concerned
about the Lord's affairs: Her aim is to be devoted to the Lord in both body and
spirit. But a married woman is concerned about the affairs of this world-how
she can please her husband. 마음이 갈라집니다. 그의 관심이
나누이게 된 것입니다. 시집간 자는 세상 일을 염려하여 어찌하여 남편을 기쁘게 할까 염려하는 것입니다. 그가 만약 결혼하지 않았다면 그는 주의 일을 생각하였을 것입니다. 그녀의
몸과 영을 다 거룩하게 하여 주님을 섬겼을 텐데 결혼 함으로 고통을 겪는 것입니다. 결혼 생활이 고통스러운 것은 타락 후 우리가 온전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가정에 고통이 있고 다툼이 있고, 의견 충돌이 있는 것은 우리 가정이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 정상적입니다. 우리는 결혼 제도 안에 이러한 것이 있고, 타락의 결과로 우리의 결혼 생활이 온전하지 않음을 압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정하신 제도 안에서 우리는 결혼하였고, 하나님 앞에서 결혼 생활을 하고 있기에 여러 다름 가운데서도
한 몸과 한 마음을 가지고 서로 그리스도인으로서, 그리스도의 닮은 사람들이 되어 가도록 애를 써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내신 결혼의 목적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저와
여러분들의 가정을 통하여 영광을 받으시길 원하십니다. 우리의 가정이 온전하기 위해서 우리는 이러한 권면을 받습니다 고린도전서
7장 29절을 보면 [고전 7:29] 형제들아 내가 이 말을 하노니
그 때가 단축하여진 고로 이 후부터 아내 있는 자들은 없는 자 같이 하며 What I mean, brothers
and sisters, is that the time is short. From now on those who have wives should
live as if they do not; 그 때가 단축하여진 고로 이 후부터 아내 있는 자들은 없는 자 같이 하라고 합니다. 이 말은 아내를 사랑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아내를 기쁘게 하기 위하여 마음에 그것으로 가득하여 살지 말라는
것입니다. 육신적인 것들로 가득 채워진 가정이 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 때가 단축하여진 것이란 주님이 오실 것을 알고 그 날이 가까웠음을 알고 서로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살라는 말입니다. 그리고 고린도전서 7장 35절을 보면 [고전 7:35] 내가 이것을 말함은 너희의 유익을 위함이요 너희에게
올무를 놓으려 함이 아니니 오직 너희로 하여금 이치에 합당하게 하여 흐트러짐이 없이 주를 섬기게 하려 함이라 I
am saying this for your own good, not to restrict you, but that you may live in
a right way in undivided devotion to the Lord. 내가
이것을 말함은 너희의 유익을 위함이요 너희에게 올무를 놓으려 함이 아니니 오직 너희로 하여금 이치에 합당하게 하여 흐트러짐이 없이 주를 섬기게
하려 함이라고 합니다. 이것은 우리의 유익함을 위한 것입니다. 우리는
오직 이치에 합당하게 살아야 합니다. 우리는 흐트러짐이 없이 주를 섬기는 일에 온 힘을 기울이며 우리의
가정은 그래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