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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말씀
2025.05.20 16:14

인생에 고난이 찾아 올 때

Y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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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 말씀 영상 https://youtube.com/live/AN0YycGFzzI


오늘 우리가 함께 살펴볼 시편 42편은 누가 지었는지에 대한 견해 차이가 있습니다. 고라 자손이 지은 시인지 아니면 다윗이 지은 시인데 후대에 고라 자손에 의해서 불리어진 시인지에 대한 다양한 의견들이 있습니다. 이러한 것들을 차치 하고 이 시는 누군가 고난을 당할 때 지은 시인데 그 고난은 짧은 시간들이 아니라 긴 시간들이었다는 것이 이 시 전체에서 알게 되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이 시를 통하여 살펴보고자 하는 것은 시인이 당한 고난과 그 고난의 때에 하나님의 자녀된 자들이 고난을 대처하며 이기는 방식에 대하여 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일반적인과 관점에서 시를 보는 것입니다. 더욱 중요한 관점이 있는데 이 시가 마스길 즉 교훈을 주는 시이며, 예배시에 드렸던 찬양 시라는 점을 생각할 때에 우리는 시인이 말하고 있는 내용 속에서 그가 의지하는 분이 누구이며, 그가 찾고 있는 분이 누구이며, 그분은 고난의 때에 자신의 백성을 어떻게 인도하시는가 하는 것이 주된 내용이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즉 우리는 시인이 아니라 이 시인의 상태 속에서 시인을 인도하시는 하나님을 보고자 하는 것입니다.

        먼저 시편 421절을 보면 [ 42:1] [고라 자손의 마스길, 인도자를 따라 부르는 노래] 하나님이여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 같이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니이다 1 [For the director of music. A maskil of the Sons of Korah.] As the deer pants for streams of water, so my soul pants for you, my God. 먼저 살펴볼 것은 고라 자손의 마스길이라고 하는 것의 의미인데 마스길이라는 단어의 의미는 일반적으로 교훈을 담고 있는 시라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 시가 마스길이라는 표현만으로도 이것은 교훈을 담고 있으며, 가르침의 목적으로 지은 시라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이제 본 시의 내용들을 보면 시인은 하나님이여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 같이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다고 합니다. 시인은 자신을 비유하여 표현하고 있는데 자신을 사슴으로 비유하고 있습니다. 사슴의 어떤 부분과 자신이 같은가 하면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 같은 것이 바로 자신과 같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두 번이나 같은 단어를 사용하는데 바로 갈급함입니다.

        갈급함에 대하여 먼저 사슴의 갈급함에 대하여 생각해 보면 왜 다른 동물이 아닌 사슴이라는 짐승을 통하여 자신의 상황을 표현하고 싶어는가 하는 것인데 사슴은 열이 많은 동물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열을 식히기 위하여 자주 물을 마셔야 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이라고 표현하고 있는 것은 사슴이 살고 있는 이스라엘 땅이 원래 강수량이 적어 야생에서 물을 찾기가 쉽지 않아 갈급할 수 있으나 본문에서 사슴이 물을 찾기에 갈급하다고 하는데 사람들이 어떻게 사슴이 시냇물을 찾아 갈급하지를 아는가 하는 것입니다. 이는 갈급함이라는 단어가 가지는 의미 때문입니다. 갈급함이란 의미는 소리를 내어 울부짖다 라는 뜻을 가집니다. 즉 사슴이 물을 찾고 있는구나, 목이 마르구나 라는 것을 사슴이 내는 소리를 통하여 알게 되는 것입니다.

        다음으로 사슴이 찾고 있는 시냇물은 우기에만 생성되고 건기에는 사라지는 시내인 와디가 아닙니다. 사슴은 간신히 목을 축일 만큼의 물을 원하지 않고 더 이상 물 걱정 없는 상태를 얻기를 원하며, 그러한 물의 근원을 찾고자 하는 것입니다. 즉 지속적으로 물이 흐르는 시내를 찾고 있는 것입니다. 사슴의 이러한 상태가 바로 시인이 자신을 빗대어 말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는 마르지 않는 샘을 찾고 있으며 그것을 찾기에 소리 내어 울부짖고 있는 것입니다. 그 마르지 않는 샘이 바로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두 가지의 사실을 알게 되는데 첫째로는 그의 갈급함의 대상에 대하여 입니다. 시편 421절에서 시인은 하나님이여 라고 부르짖고 있습니다. 우리는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으니까 이것이 당연한 줄 압니다. 왜 그는 다른 이가 아닌 하나님을 부르고 있습니까? 왜 그는 고난과 환란 가운데, 생명의 위협 앞에 왜 하나님을 찾는가 하는 것입니다. 왜 그는 다른 신들을 구하지 않습니까? 오늘날 우리는 신화적인 사고 가운데 살고 있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신을 찾는 것은 특별히 종교를 가지고 있지 않는한 일반적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지금으로부터 이 시가 쓰여졌던 시대에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신화적 사고와 환경 가운데 살았습니다. 신화적 사고란 모든 사물을 신적 존재로 이해하며, 믿고 사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성경에서 보듯이 고대의 사람들은 다양한 신들을 숭배했으며, 신을 숭배하지 않는 이들은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각 나라는 각 나라의 주 신이 존재하였으며, 왕을 비롯한 모든 백성들은 자신들이 섬기는 신을 의지하며, 그 신을 숭배하였습니다. 전쟁의 때에 승리한 나라의 신은 더욱 숭배를 받으며, 강한 신으로 인정을 받는 시대입니다.

        시대의 정신이 지배하는 환경에서 시인은 하나님을 찾고 있다는 것은 놀라운 것이며, 특이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는 지금 자신이 섬기는 신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쫓기고 있으며 생명의 위협을 받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그는 지금 그의 영혼이 갈급해 하고 있습니다. 이 갈급은 계속되는 것으로 그는 계속해서 울며 부르짖고 있는 것입니다. 시편 422절을 보면 [ 42:2] 내 영혼이 하나님 곧 살아 계시는 하나님을 갈망하나니 내가 어느 때에 나아가서 하나님의 얼굴을 뵈올까 My soul thirsts for God, for the living God. When can I go and meet with God? 내 영혼이 하나님 곧 살아 계시는 하나님을 갈망하나니 내가 어느 때에 나아가서 하나님의 얼굴을 뵈올까 라고 합니다. 여기서 어느 때에 라는 표현을 눈여겨 보아야 하는데 언제 라는 의미로 지금까지도 그에게 하나님께서는 응답하지 않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윗은 여전히 하나님을 찾기 위하여 갈급해 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2절에서 왜 다윗은 다른 신들 중 하나가 아니라, 자신보다 강하게 여겨지는 사람들이 섬기는 다른 신들을 찾지 않고 하나님을 찾는 이유는 그가 찾는 하나님은 유일하신 하나님이시며, 그분만이 살아 계시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세상에는 많은 신이라 불리는 존재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신들은 모두다 살아 있지 않습니다. 존재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존재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아무런 도움을 주지도 못하는 죽어 있는 신들이며, 거짓된 신들이라는 것입니다. 다윗은 그것을 알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두 번째의 내용을 알게 되는데 하나님은 자신의 자녀의 갈급함에 대하여 왜 바로 응답하지 않고 갈급하도록 마치 사슴이 시냇물을 찾아 해메이는 것같이 내 버려 두시는 이유에 대하여 입니다. 그 이유는 첫째로 하나님은 시인의 마음에 역사하시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신화적 사고로 가득한 상황에서 시인이 자신의 다급하고, 위급한 상황에서도 다른 신들을 향하여 마음을 옮기지 않고 하나님을 찾게 하는 갈급함이 시인 자신의 경건함과 순결함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는 점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자녀들을 위하여 수만가지의 방법으로 도우시고, 역사하십니다. 그 가운데 가장 중요하고, 큰 하나님의 도우심은 자신의 자녀들의 마음을 잃지 않고 지키신다는 것입니다. 고난과 환란의 때에 하나님은 고난을 벗어나게 하시기전, 환란에서 벗어나게 하시기전 자신의 자녀들의 마음을 확정시키십니다. 바로 자신에게 그들의 마음을 고정하게 하며, 그들이 자신을 갈망하다록 하십니다. 그렇게 하심으로 하나님은 영광을 받으실뿐만 아니라 자신의 자녀들의 믿음을 더욱 강하게 하시며, 단련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시고자 하는 마음이 무엇인가를 생각해 볼 때에 우리가 알게 되는 것은 하나님은 자신의 자녀들에게 자신에 대한 갈급함을 주시고 이 갈급함의 목적이 하나님을 예배하는 기쁨과 즐거움으로 이끌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2절에서 다윗은 내가 어느 때에 나아가서 하나님의 얼굴을 뵈올까 라고 합니다. 하나님은 편재하신 분이시기 때문에 어디서든 하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또한 하나님께 기도할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얼굴을 뵈올까 하는 것과 나아가서 라는 말은 예배자로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을 즉 당시에는 하나님의 임재의 장소인 성전에 나아가 예배를 드리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부분이 중요한 것인데 하나님께서 신자에게 주시는 마음은 하나님을 예배하며, 하나님께 나오고자 하는 마음입니다. 이와 동시에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자들을 찾으시는 분이시라는 점입니다. 요한복음 423-24절을 보면 [ 4:23-24] 아버지께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자기에게 이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 Yet a time is coming and has now come when the true worshipers will worship the Father in the Spirit and in truth, for they are the kind of worshipers the Father seeks. God is spirit, and his worshipers must worship in the Spirit and in truth." 하나님께서는 자기에게 이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신다고 하는데 찾으신다는 단어의 의미가 잃어버린 것을 찾으신다는 뜻으로 자신의 소유물을 찾으신다는 뜻입니다. 즉 여기에는 타락한 후에 다시 그리스도안에서 찾으신 자신의 자녀들 뿐만 아니라 그들을 통하여 드려지는 예배 또한 하나님 자신의 전유물이며, 소유된 것으로 하나님께서는 이것을 함께 찾으시는 것입니다. 단순히 사람만을 찾으시는 것이 아니라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는 것입니다. 즉 예배자를 찾으시는 하나님이시라는 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자녀들의 마음에 예배자로서 나오도록, 하나님의 예배로 부르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신자의 마음에 있는 영적 갈급함의 참된 내용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왜 하나님은 자신의 예배로 부르시는가? 왜 자신의 자녀들에게 예배에 대한 갈급함을 주시는가 하면 예배를 통하여 자신의 복됨을 드러내시며, 부어주시기 때문입니다. 예배를 통하여 얻게 되는 것에 대하여 4절을 보면 [ 42:4] 내가 전에 성일을 지키는 무리와 동행하여 기쁨과 감사의 소리를 내며 그들을 하나님의 집으로 인도하였더니 이제 이 일을 기억하고 내 마음이 상하는도다 These things I remember as I pour out my soul: how I used to go to the house of God under the protection of the Mighty One with shouts of joy and praise among the festive throng. 내가 전에 성일을 지키는 무리와 동행하여 기쁨과 감사의 소리를 내며 그들을 하나님의 집으로 인도하였더니 라고 합니다. 다위의 마음이 상하는 이유는 그가 전에 성일을 지키는 무리와 동행하여 기쁨과 감사의 소리를 내며 그들을 하나님의 집으로 인도하였는데 지금은 그렇게 하지 못하고 있는 자신의 처지 때문입니다.

        그가 마음이 상하는 이유는 자신이 하나님의 집에 감으로 인하여 누리게 되는 기쁨과 감사의 소리를 지금 상실하였다는 것 때문입니다. 기쁨과 감사의 소리를 낸다는 것은 기쁨과 즐거움에 겨워 소리를 지르며 환호하는 것입니다. 무엇 때문에 이런 격한 감정이 일어나는 것인가 하면 하나님이 그들의 마음에 즐거움을 주시고 기쁨을 주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예배를 통하여 슬픔이 변하여 기쁨이 되게하시고 낙심이 변하여 소망이 되게 하시며, 불안과 염려가 변하여 평안을 얻게 하십니다. 어떻게 그렇게 하시는가 하면 자신을 계시하심으로 그렇게 하십니다. 자신을 계시하신다는 것은 자신이 누구인지를 깨닫게 하시는 것입니다. 인생의 주인이 누구이며, 세상의 주인이 누구이며, 온 세상을 다스리며,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을 자신의 뜻대로 하시는 분이심을 드러내십니다. 그때에 신자는 전능하신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문제가 그분 보다 크지 않다는 사실을 알 뿐만 아니라 그분이 자신을 지키시며, 돌보신다는 사실을 확신하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위로와 평안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예배를 통하여 하나님께서 자신의 자녀들에게 복을 주시는 하나님의 방식입니다.

        말씀을 마칩니다. 인생의 고난이 닥쳐올 때 하나님은 가만히 계시지 않고 그들의 마음에 하나님에 대한 갈급한 마음을 주십니다. 우리편에서는 고난의 때에 다른 어떤 것들을 의지하지 말고 하나님께로 나아가며, 하나님을 찾는 일에 온 힘을 기울여야 합니다. 그분을 더욱 예배하고자 하며, 하나님의 평강과 위로를 구해야 합니다. 예배자로서 하나님의 은혜를 갈망하며, 하나님을 즐거워하기 위하여 그분을 힘써 아는 일에 전념해야 합니다. 그럴 때에 자신의 마음을 지키며, 고난을 때를 이길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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