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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 말씀 영상 https://youtu.be/F4m8AxbIpE0


누가복음 111절에서 제자들은 예수님께 나아와 우리에게 기도를 가르쳐 달라고 합니다. 이에 예수님께서는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라고 하시면서 주기도문을 가르쳐 주십니다. 그리고 이어서 또 이르신 것인데 기도에 대하여 말씀하신 것입니다. 본문의 내용을 살펴보면 대화 속에서 화자로써 등장하는 인물은 두 사람입니다. 한 사람은 여행중인 친구를 맞이한 사람이고 다른 한 사람은 그 사람으로부터 무례한 요청을 받은 사람입니다.

        물론 우리가 기억해야 되는 것은 당시의 문화와 지금의 문화가 다르다는 것입니다. 당시에는 손님을 접대하는 것이 당연시 여기던 시대였습니다. 나그네를 대접하는 일은 책임이자 의무였던 때였습니다. 그러나 그것도 한 밤중에 나타난 것이 어려움입니다. 그리고 더욱 어려움은 대접할만한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행중인 친구를 맞아들인 사람은 가까운 자신의 친구를 찾아갑니다. 그 친구가 누구인지는 나오지 않지만 아마도 손님을 맞은 사람이 생각하기에 그 사람만큼은 자신의 손님을 대접할 음식이 있으리라는 확신을 가지고 그 집에 간 것입니다. 이 사람이 두 번째 뻔뻔스런 사람입니다. 이 사람은 아마도 그 집의 문을 두드렸을 것입니다. 한 밤중에 말입니다. 그리고 말합니다.

누가복음 116절을 보면 내 벗이 여행중에 왔는데 내가 먹일 것이 없으니 떡 세덩어리만 빌려 달라는 것입니다. 떡 세덩이는 한 사람 성인의 식사로 충분했기에 세 덩어리의 떡을 빌려 달라는 것입니다. 이에 이런 황당한 일을 만난 사람이 말합니다. 이 사람이 첫 번째 내 뱉은 말이 나를 괴롭게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 사람은 지금 떡 세덩어리를 빌리러 온 친구 때문에 괴로움을 당하고 있습니다. 이 사람이 괴로운 이유는 별로 친하지 않은데 떡을 빌려 달라고 해서가 아닙니다. 한 밤중에 찾아와서도 아닙니다. 이유는 시간 자체가 아니라 지금의 상황 때문에 그런데 이미 그는 잠자리에 들었고 자녀들도 그와 함께 이불을 덮고 침대에 누워있다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117절을 보면 이 말은 이미 잠자리에 들어 자고 있다는 표현입니다. 그렇기에 줄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의 개념으로는 그냥 일어나 주면 되지 왜 괜한 아이들 핑계를 댈까 하는데 당시의 문화를 보면 일반적으로 시골의 경우 집의 구조는 원룸 구조입니다. 집의 문을 열면 문안에 짐승들이 있고 그 안쪽에 방이 있는데 그 한방에서 모두가 잠을 잡니다. 깜깜한 밤에 그 가운데서 일어나 밖으로 나오고 음식을 찾고 짐승들을 깨우고 해서 음식을 주는 일이 여간 번거롭고 귀찮은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래서 나를 괴롭게 말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여기서 반전된 이야기를 하십니다. 침상에 이미 누운 사람은 하고 싶지 않습니다. 찾아온 사람이 친구인데도 그렇게 하고 싶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친구이기 때문이라면 그런 괴로운 일을 하고 싶지 않지만 그 사람의 강청함을 인하여 일어나 소용대로 준다고 합니다.

        친구로써의 우정 때문에는 일어나지 않을지 모르지만 그의 강청에는 일어나 그 필요를 준다라는 말은 기도가 강청이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합니다. 강청이라는 것을 우리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하면 때를 쓰고 막무가내로 요구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기도는 막무가내로 때를 쓰고 끈질기게 물고 늘어지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 비유 다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시는 것은 이것을 더욱 확증하게 됩니다.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열리리라. 이 말을 연결하면 기도는 때를 쓰고 끈질기게 요구하고 애를 써서 얻어내는 것이고 그 방법으로는 구하고 찾고 두드려야 되는 것이구나로 알게 됩니다.

        이런 생각은 기도를 인내력 싸움으로 몰아가게 됩니다. 누가 끈질긴지 하나님과 싸우는 것입니다. 이런 기도의 모습으로 상징되는 사람이 야곱입니다. 얍복 강가에서 천사와 씨름 하던 야곱은 환도뼈가 부러지기까지 붙들고 놓지 않아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의 축복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이 그 사건을 끈질긴 기도의 씨름으로 말하고 있는가 하는 부분입니다. 왜 우리는 자꾸 기도를 우리의 노력이나 인내나 내가 필요한 것을 얻기 위한 수단이나 방법으로 여기는가 하면 하나님의 응답에 대한 내 차원에서 할 말이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응답해 주시긴 했는데 왜인지는 모르는 것입니다. 그러다 생각해 보니 내가 금식해서 그렇구나 그래 금식해야 하나님이 응답하셔라고 결론 짓는 것입니다. 그래 작정기도 하니까 들어주시는 구나 작정기도 해야 돼 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내가 포기 하지 않고 기도하니까 들어주셨어 그래서 기도가 다 내 노력, 내 수고, 내 공로가 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기도를 욕되게 하는 것입니다.

        본문에서 해석의 열쇠를 지고 있는 부분은 11절부터 13절입니다. 누가복음 1111-13절을 보면 여기서 예수님은 세상 아버지와 하나님을 비교하십니다. 세상 아버지가 자신의 자녀들을 어떻게 대하시는가 하는 부분입니다. 이들은 자신의 아들이 생선을 달라는 요구에 뱀을 주지 않는다고 하십니다. 또한 알을 즉 계란을 달라는데 전갈을 주지 않는다고 합니다. 주석에 보면 왜 계란을 달라고 하는데 전갈을 주는가 하면 전갈이 몸을 말게 되면 계란 같이 동그라지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예수님은 그렇게 말씀하시면서 너희가 악할지라도 너희 자녀에게 좋은 것을 주는데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천부께서 구하는 자들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고 말씀하십니다.

이 부분에서 중요한 것은 세상 아버지들이 자신의 자녀들의 요구에 응하는 태도 입니다. 자신들이 비록 악하지만 여기서 악하다는 것은 처음부터 계속 악한 상태에 있었다는 의미입니다. 계속해서 너희는 악하지만 그럼에도 자신의 자녀들을 위해서는 좋은 것을 준다는 것입니다. 좋은 것을 비교한 것이 생선과 뱀입니다. 그리고 계란과 전갈입니다. 두 개의 비교 중에서 나쁜 것으로 비교된 것은 뱀과 전갈입니다. 이것은 자녀들에게 해가 되는 것입니다. 만약 뱀이 독사라면 정말 큰 일이 일어날 일입니다. 전갈 또한 아이들에게 치명상을 줄 수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비교하신 것은 악한 자들도 자신의 자녀들에게 치명적인 문제를 일으키는 것은 절대로 주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늘에 계신 너희 천부는 어떤 분이시냐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물며라는 말은 비교할 수 없다는 의미입니다. 악한 자도 그렇게 하는데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자녀들에게 더욱 어떠하시겠느냐 더욱 잘하지 않겠느냐 더 좋은 것을 주시지 않겠느냐 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인간 아버지에 대한 하나님의 비교는 비교할 수 없는 수준의 것입니다. 하나님은 악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선하신 분이십니다. 그분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더욱 좋은 것을 자신의 자녀들에게 주신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무엇을 말하는가 하면 하나님은 자신의 자녀들에게 좋은 것을 주시기를 원하시는 분이시기에 그들의 기도에 응답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들의 요청이 뻔뻔하고 부끄러움도 모르는 요구이지만 그 요구에 응답하신다는 것입니다. 강청이라는 말은 끈질기게나 반복적으로 계속해서라는 의미가 아닙니다. 무례하리 만치 당당하고 뻔뻔하며 부끄러움을 모르고 요구하는 것입니다. 기도가 왜 그렇습니까? 기도는 아무런 권리와 권한이 없는 자가 뻔뻔함과 수치심 모르는 담대함으로 자기 자녀에게 좋은 것 주시기를 원하시는 하나님 아버지게 요구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본문에서 제자들에게 가르치는 기도는 뻔뻔함입니다. 당당함입니다. 왜 입니까? 우리가 잘해서 입니까? 우리에게 무슨 권리나 권한이 있어서 입니까? 아닙니다. 있다면 우리의 아버지가 되시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좋은 것 주시기를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기도는 축복입니다. 기도는 우리가 어떤 자들인가를 잘 말해주는 우리의 신분에 관한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우리 아버지로 여기고 있다는 것이고 그 아버지에게 요구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구하고 찾고 두드리는 것입니다. 무엇으로요 뻔뻔함으로 담대함으로 말입니다. 비록 이 권리와 권한이 우리에게서 난 것이 아니기에 기도로 우리의 자랑을 삼을 수는 없지만 분명한 것은 우리에게는 기도할 수 있는 권한이 생겼다는 것입니다. 요구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분이 내 아버지이시기 때문입니다. 좋은 것 주시기를 원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기도가 바뀌어야 하는 것은 기도가 의무로 책임으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내가 하나님께 무엇인가를 잘 해야 하나님이 들어주시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 많이 보고 선한 일 많이 해야 기도할 권한이 생기는 것이 아닙니다. 기도는 누구에게나 뻔뻔함과 당당함입니다. 우리 중 어느 누구도 자신의 의로 하나님께 기도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문제는 뻔뻔할 때에 뻔뻔하지 않고 당당할 때 당당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요구하는 것이 당당함이고 뻔뻔함으로 해야 됨에도 이것이 바뀌어 하나님 없이 사는 것에 담대하며 당당해 합니다. 기도하지 않는 다는 것은 하나님의 도움 없이 살겠다는 것인데 이것에는 아주 당당합니다. 그리고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인데도 그것에 감사하지 않고 인정하지 않으며 아주 뻔뻔하게 자신이 힘으로 사는 줄 압니다. 이것이 바뀌어야 합니다. 그것을 바뀌게 하는 것이 기도입니다. 기도는 어린 아이 같은 것입니다. 아이는 아빠에게 요구할 때 아빠의 형편과 상황을 보지 않습니다. 또한 자신의 상황과 형편을 고려하지 않습니다. 아빠이기 때문에 요구하는 것입니다. 요구의 잘 잘못에 대하여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것에 고민하지 않습니다. 그분이 단지 우리 아빠이기 때문에 말하는 것입니다. 그분은 항상 내게 좋은 것 주시는 분이시고 내 말에 귀를 기울이시며 나를 도우시려고 하신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강청에 담긴 의미입니다. 하늘에 계신 하나님은 우리에게 좋은 것 주시기를 원하시는 분이십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바로 성령입니다.

        마태복음에는 좋은 것이 성령으로 분명하게 나옵니다. 그러나 누가복음에서는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신다고 하십니다. 두 문장이 다른 것 같으나 13절에서 악한 자들도 자신의 자녀에게 좋은 것 줄줄 알거든 이라는 비교하는 말에서 천부이신 하나님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신다는 것은 좋은 것이라는 말이 생략되어 있음을 알게 됩니다. 왜 성령이 좋은 것이며 구하는 자들에게 하나님이 주시는 것일까요? 성령은 하나님의 자녀를 하나님께로 인도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분은 우리를 위해 기도하시며 탄식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분으로 인하여 우리는 기도할 힘을 얻게 되고 담대함을 가지게 됩니다. 성령은 우리에게 기도하게 하시고 하나님을 구하게 하시며 찾게 하시며 하나님을 향한 문을 두드리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러기에 성령은 우리에게 좋은 것이 되는 것입니다. 기도는 여러분과 제가 하나님을 아버지라 여겨 뻔뻔함과 담대함으로 요구할 수 있는 축복입니다. 그러기에 주져 없이 어느 때에나 기도하셔야 합니다. 힘들고 어려울 때에만 기도하는 것은 기도를 수단으로 밖에 사용하지 않는 것입니다. 기도는 그 차원을 넘어 내게 늘 좋은 것 주시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을 아버지로 믿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분께 담대하게 필요를 요구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기도입니다.

 


주일 말씀 요약 및 설교 영상

주일 말씀 컬럼 안에 설교 영상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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