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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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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 말씀 영상 https://youtu.be/8Ln_Ed8ScI4



오늘 우리가 함께 살펴볼 말씀은 부자와 거지 나사로의 비유라고 이름이 붙여진 예수님께서 주신 비유의 말씀입니다. 이 비유 앞서 예수님과 바리새인들의 대화하는 장면이 나오게 되는데 누가복음 1613-14절을 보면 실제적으로는 예수님께서는 누가복음 161절부터 제자들에게 불의한 청지기에 대한 비유의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 청지기는 주인의 소유를 낭비하고 있는 하인입니다. 그에 대한 비유 속에서 주님께서는 불의한 재물로 친구들을 만들어라 라고 말씀하시며, 불의한 재물을 가지고 충성을 하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한 후에 최종적으로 13-14절 말씀을 하시는데 집 하인이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유는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길 것이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입니다.

물론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 하시는 데도 불구하고 부득불 우기며, 비웃는 자들이 있습니다.바로 바리새인들의 경우가 그렇습니다. 자신들은 그렇지 않다고 여기는 것입니다. 돈도 사랑하고 하나님도 사랑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바리새인들의 생각을 아시는 주님께서는 바로 거지 나사로와 부자의 비유를 그들에게 주시는 것입니다. 즉 그러한 관점에서 보게 되면 이 비유의 핵심은 이 땅에서 부유함 가운데 살며, 그것으로 즐거움과 기쁨을 삼고, 추구하며 사랑하며 살다가 그 후에 그의 영혼이 어떻게 되는가 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게 되는 것입니다. 이 비유가 우리에게 주는 중요한 교훈은 첫째로 모든 인간은 이 땅에서 그들이 어떠한 형편에 있든지, 어떠한 지위에 있든지, 그들이 어떻게 살았던지 모두 죽음의 때가 온다는 것입니다. 부자의 부유함은 그의 죽음을 막지 못하며, 거지 나사로의 죽음 또한 그가 가난하기 때문에 죽은 것이 아닙니다. 둘다 죽을 수 밖에 없는 존재이며, 언젠가는 이 땅을 떠나게 될 것이라는 점입니다. 이러한 그들의 죽음에 대한 운명을 바꿀 수 있는 것은 없다는 것입니다.

둘째로 히브리서 927절을 보면 모든 인간은 죽음 이후에 공의로우신 재판장이신 하나님 앞에서 심판을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 심판의 결과로 그들은 전혀 다른 곳에서 영원히 살게 된다는 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이것의 결정은 이 땅에서 어떻게 살았는가, 이 땅에서 얼만큼 부유하며, 건강하며, 행복하게 살았는가 하는 것이 중요하지 않습니다. 또한 반대로 이 땅에서 못 배우며, 가난하며 불쌍하게 살며, 치유할 수 없는 질병으로 인하여 고통스럽게 살았는가 하는 것 자체가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것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면 무엇으로 결정이 되는가 하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1619절을 보면 부자는 세상적으로 볼 때에 이 사람은 잘 산 사람입니다. 하고 싶은 것, 누리고 싶은 것 다 누리며, 만족하며 산 사람이며, 다른 사람들이 부러워 할 만한 삶을 산 사람입니다. 어쩌면 모든 사람들이 바라는 것이 이러한 삶이 아닐까 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 삶이 영원히 지속되지 않으며, 이 삶을 끝마칠 날이 오며 그 후에 심판이 있다는 것입니다. 문제는 현재의 삶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이 후의 삶이 현재의 삶을 전혀 생각하지 못할 정도로 고통스럽다면 현재의 삶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점입니다.

그렇게 호화스럽게 살던 부자가 죽은 후에 하는 말을 보면 그가 이 땅에 부러움을 받고, 시기와 질투를 받을 정도로 만족하며, 행복하며, 기쁨과 즐거움과 향락으로 삶을 채워 살았던 사람인가 의심할 정도입니다. 그러한 것이 전혀 기억도 나지 않을 정도로, 그것이 그가 지금 당하고 있는 고통을 조금이라고 잊게 할 만큼의 만족도 주지 못하는 상태에 처하였다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1624절을 보면 부자가 아브라함을 부릅니다. 그리고 부탁을 합니다. 나를 긍휼이 여기서 나사로를 보내어 그 손가락 끝에 물을 찍어 내 혀를 서늘하게 하소서 왜냐하면 내가 이 불꽃 가운데서 괴로워하고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라는 것입니다. 문제는 이러한 작은 부탁도 허락 되지 않는 상태에 놓여 있다는 것이 그의 확정된 고통인 것입니다.

그가 겪는 고통은 이 땅에서 자신이 즐겼던 즐거움과 쾌락의 향수로 달래며 위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예전에 내가 그렇게 살았었지 그때가 좋았지 라고 하며 스스로를 위로 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가 처한 불행은 너무나 비참하여 자신의 이생의 삶의 기쁨을 전혀 기억할 수 조차도 없는 고통이라는 것이며, 그 고통이 너무나 커서 허락되지 못할 아주 작은 것이라도 간절히 바랄 수 밖에 없는 상태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그에게 회복되지 않는, 무를 수 없는, 다시 돌이킬 수 없는 비극인 것입니다. 동시에 돈을 사랑하며, 하나님을 온전히 섬기지 않고, 이 땅의 것들을 사랑하며, 사는 모든 이들에게 임할 비극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비유 속에서 하시고자 하시는 말씀은 부자가 받는 고통의 크기가 얼마나 큰가 하는 것입니다. 그는 자신 조차도 감당할 수 없는 고통 가운데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아브라함에게 구하게 되는데 누가복음 1627-28절을 보면 아버지여 구하노니 나사로를 내 아버지 집에 보내소서 내 형제 다섯이 있으니 그들에게 증언하게 하여 그들로 이 고통 받는 곳에 오지 않게 하소서 라고 간청합니다. 부자에게는 형제가 다섯이나 아직 살아 있었습니다. 그가 그곳에서 고통을 받으며 절실하고, 간절한 것이 있는데 절대로 이곳에 내가 아는 누군가가 오지 않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이것을 통하여 우리가 알게 되는 것은 죽음 이후에 하나님으로부터 받게 심판의 고통은 나 혼자 감당하기도 힘들다는 것입니다. 너무나 고통스러워서 이 땅의 모든 것들이 전혀 도움이 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다른 이들이 만약 이러한 고통을 받게 된다는 것 또한 특히 내가 아는 누구든지 이러한 고통의 장소에 오는 것을 막고자 함이 있다는 것입니다. 지옥의 고통은 참을 만한 것이 아닙니다. 견딜 만한 것도 아닙니다. 너무나 간절해서 나사로를 내 아버지의 집에 보내 달라고 합니다. 그리고 증언해 다라고 합니다. 그래서 이 고통 받는 곳에 오지 않게 해 달라고 할 만큼 고통스럽다는 것입니다. 좋은 것이 있으면 생각나는 사람이 있고, 맛있는 것이 있으면 나누고 싶은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나 고통은 특히 사랑하는 사람에게 나누고 싶은 것이 아닙니다. 특히 지옥의 고통은 얼마나 큰지 할 수 만 있다면 무슨 수를 쓰더라도 막고 싶은 고통인 것입니다. 부자는 이것을 지금 경험하고 있는 것입니다. 어리석은 사람들 중에 죽으면 그만이지 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또한 고통 받으면 참으면 되지 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견딜 수 없기에 참을 수 없기에 절대 누구도 오면 안되다고 여길 정도의 고통이 바로 지옥의 고통이며, 최후에 받게 될 영원한 불못에 던져지게 되는 곳입니다.

이제 마지막 부분을 살펴볼 것인데 핵심적인 부분입니다. 나사로가 죽었다 살아나서 자신의 형제들에게 가서 형이 지옥에서 이러한 고통을 받고 있으니 절대로 오지 말라고 할 수 있을 때에 지옥의 형벌을 면하라고 증언해 달라고 하는 부탁에 대하여 아브라함의 대답과 부자의 응대가 29절과 30절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이르되 그들에게 모세와 선지자들이 있으니 즉 성경이 있고 복음을 전하는 자들이 있으니 그들에게 들을 것이다 라는 것입니다. 그러자 30절에서 부자의 절규가 이어지는데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이 말은 자신과 같은 삶을 추구하는 자들인 자신의 형제들이 절대로 복음을 들으려 하지 않으며, 회개하며 돌이키지 않으려 할 것이라는 것을 자신 알고 있는 것입니다.

이 말은 자신 또한 그래 왔던 것입니다. 이 땅에서 만족하며 행복하게 살면 되지 이것이 가장 중요한 것이 아닌 라며 살아왔던 것입니다. 죽음 이후를 준비하는 것에 대하여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에 대하여 그에게 주신 삶에 대하여 경고하고 책망의 말을 수 없이 들었지만 그것을 무시하며 살았던 것입니다. 그것이 나와 무슨 상관이 있는가? 그러한 것이 있기나 하는 것인가? 사람들이 지어낸 말이 아닌가? 죽으면 끝이지 무슨 지옥 같은 것이 있는가? 하는 마음으로 자신이 살아 온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렇지 않다고 확신하는 것입니다. 만일 죽은 자에게서 그들에게 가느 자가 있으면 그때 정도 되면 회개 할지 모르지만 그렇지 않으면 절대로 회개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자신을 통하여 보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죽은 나사로가 살아서 증언하여 달라는 것입니다.

이에 대하여 아브라함의 마지막 대답이자 이 비유의 결론이 31절을 보면 아브라함이 고통 받는 부자에게 말합니다. 모세와 선지자들에게 듣지 않으면 즉 지금 복음을 전하며 가르치는 자들에게서 듣고 회개하지 않으면 비록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는 자가 있을 지라도 권함을 받지 않을 것이다 라는 것입니다. 이 말은 비극입니다. 마음이 이미 강팍하여 지금 선포되고 증언 되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회개하지 않는 자는 어떠한 방법으로도 결코 회개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돌이키지 않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결국 죽어 지옥에 간 부자는 아무것도 할 수 없으며, 절망의 끊임 없는 고통 가운데 있을 수 밖에 없습니다. 그가 비록 자신이 받는 고통이 너무나 커서 자신이 사랑하는 형제가 이와 같은 곳에 오지 않기를 간절히 바란다 할지라도 그것은 자신의 몫도 아니며, 그 어떤 것도 할 수 없는 헛된 소망일 뿐입니다. 이 비유 속에서 우리는 하나님이 주신 삶을 이 땅의 것들로 채우며 그것을 추구하며 살다가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을 받아 지옥의 고통에 던져진 부자를 봅니다. 그는 살아 생전에 복음을 들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무시한 것입니다. 그에게는 회개할 기회가 있었지만 그렇지 않았으며, 그는 죽기 전 그가 누렸던 그 모든 행복이 전혀 위로가 되지 못하는 절망의 고통 가운데 신음하며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있다고 여기며, 하나님의 말씀으로 자신을 깨끗게 하지 않고 세속의 것에 마음을 두고 살아가는 자들이 가게 될 지옥은 자신만이 아니라 어느 누구라도 가서는 안되는 곳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돌아오라고 하는 것이며, 하나님 앞에 바르게 살며, 말씀에 순종하며 살라는 것입니다. 지금 이 땅에 아직 기회가 있을 때에 우리는 부자의 외침을 기억하며 살아야 합니다. 절대로 이곳에 오지 말라는 절규를 들어야 합니다. 천국에 가지 위하여, 주님이 계신 곳에 함께 하기 위하여 우리는 최선을 다하여 믿음으로 살아야 하는 것이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부자와 같이 되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주일 말씀 요약 및 설교 영상

주일 말씀 컬럼 안에 설교 영상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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