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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 설교 영상  https://youtu.be/JXfKtaYnbdI


신명기 3329절을 보면 이 구절에서 모세는 이스라엘아 너는 행복한 자인데 너와 같이 이렇게 행복한 자가 누가 있는가? 라는 의미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하여 왜 자신들이 행복한 자인지를 생각하게 하는 것입니다. 모세는 이스라엘에게 스스로를 돌아보라고 요청하는 것이며, 기억을 더듬으며, 자신에게 일어난 일들을 생각해 내라고 요청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깨닫게 되는 중요한 내용은 그리스도 안에 있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것인지에 대하여 신자 자신이 잘 알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자신이 얼마나 행복한 자리에 있는 것이며, 얼마나 큰 행복을 이미 받았고 누리고 있다는 사실에 대하여 우리는 잘 알지 못합니다.

        시편 14515-16절을 보면 여기서 앙망이란 강렬한 소원과 소망을 담아 기대하며, 기다리는 것으로 간절히 갈망한다 라는 의미입니다. 모든 사람의 눈이 하나님을 간절히 갈망하는 이유는 주는 때를 따라 그들에게 먹을 것을 주시는 분이시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인간들이 자신들의 생명을 유지하기 위하여 먹을 것을 구할 때에 자신의 힘이나 능력으로 얻는 줄 알고 그것들을 바라보며 얻으려 애쓰지만 실제로는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먹을 것을 주시는 분이시며, 또한 하나님께서 손을 펴실 때에야 모는 생물들의 소원이 만족되는 것입니다. 모든 복은 하나님으로부터 오며, 하나님만이 복의 근원이시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디모데전서 111절을 보면 여기서 복되신 이란 복을 받은 이라는 뜻이 아닌 복의 주인으로서 복을 주시는 분이시라는 의미입니다. 즉 하나님은 행복의 근원이며 행복으로 충만하신 분이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직 하나님께만 행복이 있는 것이며, 하나님만이 행복을 주실 수 있는 것입니다.

        이에 대하여 또 다른 증거로 왜 인간들은 누구나 다 어린아이나 노인이나, 남자나 여자나 할 것 없이 모든 인간들은 행복하기를 원하며, 행복을 추구하는가 하는 것입니다. 행복을 추구하며, 행복했으면 하는 것은 모든 인간의 본질적인 것입니다. 왜 일까요? 이유는 단 하나 바로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었으며, 그 마음은 하나님에 의해서 지어졌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형상이란 의미 속에서 하나님을 닮음이 인간 안에 있는 것입니다. 즉 인간의 마음의 생각과 마음의 정서 즉 감정과 의지는 누구를 닮아 지어졌는가 하면 하나님이십니다. 즉 행복으로 충만하신 하나님, 복의 근원이신 하나님을 따라 지으심을 받아 인간은 행복하기를 원하며, 행복을 찾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행복을 잃어버렸기 때문에 더욱 그러합니다. 첫 사람 아담이 범죄함으로 타락함으로 인간 안에 하나님의 형상은 어그러지고 왜곡되며, 파괴었습니다. 그러나 어떤 부분은 여전히 남아 있으며, 흔적이 있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남아 있는 부분들은 온전한 상태로 있지 못하고, 왜곡되어 삐뚤어져 잘못된 길로 이끌리게 된 것입니다. 바로 죄의 지배 아래 있기 때문입니다.이에 대하여 중요한 요소가 우리가 가지고 있는 행복하고자 하는 욕구에 대하여 입니다. 행복하려는 욕구 자체는 잘못되거나 죄된 것이 아닙니다. 타락하기 전 욕구는 인간에게 아름다운 것이었습니다. 이 욕구나 욕망, 바램은 좋은 것이었습니다. 욕구나 욕망, 바램, 원함 등의 마음의 작용이 죄가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예수님을 통하여 알 수 있는데 누가복음 2215절을 보면  여기에 원하고 원하였다는 동사와 명사로 같은 단어로 강조하여 사용하신 것입니다. 즉 예수님께서는 계속해서 원하였던 것입니다. 다른 표현으로 욕구를 가지셨으며, 욕망하셨으며 바래셨다는 것입니다. 여기에 사용된 단어는 에피뒤미아 라는 헬라어 입니다.

        그런데 이 단어가 신약 성경에 이렇게 사용되고 있다는 것을 보게 됩니다. 마가복음 419절을 보면 여기에서 결실하지 못하게 하는 악한 것이 무엇이냐면 세상의 염려 재물의 유혹 기타 욕심 즉 욕구, 욕망입니다. 이 단어는 주님께서 누가복음 2215절에서 원한다고 할 때에 사용된 에피뒤미아 라는 단어입니다. 주님은 인간들의 마음에 있는 욕심에 대하여 말씀을 막아 결실하지 못하게 하는 악한 것으로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자신은 그러한 욕심을 가지고 계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주님이 가지신 에피뒤미아가 하나님의 말씀을 막아 결실하지 못하게 하였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주님은 오히려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일에 온 힘을 기울였으며, 고난을 받은 것에 대하여 또한 에피뒤미아를 가지고 계셨습니다.

        그렇다면 주님이 가지는 것과 인간이 가지는 에피뒤미아는 뭔가 다르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이에 대하여 로마서 78절을 보면 바울은 죄가 기회를 타서 계명으로 말미암아 내 속에서 온갖 탐심을 이루었다고 합니다. 여기에 탐심이란 단어가 바로 에피뒤미아 라는 단어로 욕구하다, 욕망하다라는 단어입니다. 그런데 무엇이 탐심을 이룹니까? 죄 입니다. 죄가 기회를 타서 인간의 마음에 온갖 욕구를 일으킨다는 것입니다. 즉 주님도 에피뒤미아를 가지고 계십니다. 그리고 그것을 이루십니다. 또한 인간도 에피뒤미아를 가지고 있으며 그것을 이루고자 합니다. 그러나 이 둘의 큰 차이는 인간은 죄로 인하여 타락한 욕구를 가지며, 왜곡되고 어그러져 이기적이며, 탐욕적이며, 죄의 이끌림으로 하나님 앞에 범죄하는 욕구를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참된 행복은 하나님 안에 있으며, 바른 욕구를 회복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갈라디아서 517절을 보면 우리 안에 육체의 소욕 즉 왜곡되고 타락하여 죄에 오염되어 있는 에피뒤미아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것을 이겨내고 온전하게 하기 위하여 우리 안에서 우리 마음을 바르게 교정하시는 분이신 성령 하나님의 에피뒤미아에 순종하며 따라야 하는 것입니다.

        행복을 추구하는 것은 우리의 본성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우리를 행복하게 하십니다. 그렇게 하심으로 우리가 하나님을 기뻐하며, 즐거워하며, 그분을 깊이 알고자 하며, 사랑하고자 하는 마음이 일어나게 하십니다. 이러한 마음은 하나님께 영광이 되며 하나님을 높이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은 신자들로 하여금 영광을 받으시는 것입니다. 이미 하나님은 신자들로 하여금 영광을 받으시는데 바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를 구원하심으로 그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것에 대하여 감사하며, 그 은혜를 찬송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구원의 목적이며, 바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은 우리에게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늘에 속한 신령한 은혜를 주심으로 신자를 기쁘게 하며, 만족하게 하십니다. 그렇게 하심으로 신자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은 자신의 영광을 신자의 기쁨 속에서 구하시는 것이며, 신자는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에 감사하며 기뻐함으로 영광 돌리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성령의 소욕에 따라 살면 살수록 하나님은 우리의 어그러지고 죄악된 에피뒤미아를 교정하셔서 우리로 영원한 행복으로 이끌어 가십니다. 바로 하나님 자신에게로 이끄시는 것입니다. 존 오웬은 신자가 이 땅에 누를 수 있는 최고의 복은 그리스도의 영광을 보는 것이며, 죽어서 그분의 영광 앞에 서는 것이라고 말하였습니다. 그는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면 받을수록 그 영광을 돌리는 신자들은 더 없는 은혜를 경험하게 되며, 복을 누리게 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신자가 하나님께 더 많은 영광을 돌리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그분의 한량없는 은혜를 부어 주셨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며, 그것이 원천이 되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기쁨을 가지기 때문입니다. 즉 우리는 하나님께서 나를 통하여 영광을 받으시길 위하여 기도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생각하며, 그분이 내게 주신 것들을 기뻐하며 즐거워하여야 합니다. 그럴 때에 하나님은 우리의 구원을 더욱 온전하게 하시며, 우리의 삶을 더욱 복되게 하실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우리의 참된 행복에 대한 욕구를 성취하심으로 영광을 받으시기 때문입니다.

 


주일 말씀 요약 및 설교 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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