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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 설교 영상 https://youtu.be/aNaSaKo6MM8


언약이라는 사전적 정의는 말로 한 약속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에서 사용되는 언약이라는 뜻은 그와는 다른 확실하고 명확할 뿐만 아니라 반드시 지켜져야 하는 것으로 그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왜 그런가 하면 언약이라는 단어가 가지고 있는 뜻 때문에 그렇습니다. 언약이라는 히브리어의 단어는 베리트 라는 단어입니다. 베리트라는 단어의 뜻은 언약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자르다, 쪼개다 라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왜 히브리인들은 언약이라는 단어를 무엇인가를 자르고, 쪼개는 것이라는 단어를 사용 하였을까요? 왜냐하면 언약이라는 단어는 만약 지키지 못할 시에 목숨까지도 내어 놓겠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즉 죽음을 담보로 하여 맺는 것이 언약이라는 단어의 의미입니다.

        구약에서 등장하는 언약 가운데 종주권 언약이라는 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종주권 언약이란 의미는 강한 나라가 약한 나라에게 혹은 왕이 신하에게 어떠한 것을 지킬 것을 약속 받는 것을 종주권 언약이라고 합니다. 즉 일반적으로 나라 간에 종주가 되는 나라가 점령하거나 통치를 받는 나라에게 약속을 요구하는 언약을 가리킨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때에 언약 당사자이 종주가 되는 나라의 왕과 다스림을 받는 왕 사이에 맺어지는 언약의 내용은 일반적으로 속국은 종주에게 공물을 헌납하거나 종주가 치르는 전쟁에 함께 참여하여야 하는 책임을 가지게 됩니다. 반대로 종주는 속국에게 보호를 약속하며, 침략 시에 지켜 줄 것을 약조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에서는 이러한 쌍무 언약 만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특이하게 한쪽 편에서만 언약의 책임을 지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때에는 언약의 당사자가 약속을 하며, 혼자 쪼개진 짐승 사이를 지나가며 약속을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편무 언약인 이유는 한 쪽에만 책임지게 되기 때문입니다. 이 편무 언약의 특징은 대부분이 속국이나 약자가 종주에게나 또는 강자에게 책임을 지겠다는 약속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성경에서 이와 같은 편무 언약의 특별하고 특이하고 유별난 장면을 목격하게 됩니다.

        창세기 158절을 보면 하나님께서 아브람에게 가나안 땅을 소유로 주시겠다고 하십니다. 그러자 아브람이 하나님께 묻는 것입니다. 내가 이 땅을 소유로 받을 것을 무엇으로 알리이까? 내가 어떻게 알 수 있는지 보여 달라는 것입니다. 이에 대하여 9-10절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아브람에게 나를 위하여 삼 년 된 암소와 삼 년 된 암염소와 삼 년 된 숫양과 산비둘기와 집비둘기 새끼를 가져오라고 합니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이 나를 위하여 입니다. 즉 하나님을 위하여 짐승들이 준비되고 있습니다. 그러자 아브라함이 그 모든 것을 가져다가 그 중간을 쪼개고 그 쪼갠 것을 마주 대하여 놓고 그 새는 쪼개지 않았다고 합니다. 아브람이 왜 짐승을 가져오라고 했을 때 가져만 오지 왜 짐승을 쪼개는 것일까요?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짐승을 가져오라는 의도를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미 우리는 구약에서 언약이라는 단어가 쪼개다 자르다 라는 뜻임을 알고 있습니다. 지금 아브람은 하나님께서 왜 자신을 위하여 짐승을 준비하라고 하셨는지를 알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창세기 15:17절을 보면 해가 져서 어두울 때에 연기 나는 화로가 보이며 타는 횃불이 쪼갠 고기 사이로 지나갔다고 합니다. 우리는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가를 순서적으로 이해하여야 합니다. 아브람의 증표를 요구함, 하나님께서 자신을 위하여 짐승을 준비하게 함, 아브람이 짐승을 쪼개어 벌려 놓음 그리고 그 벌려 놓은 고기 사이로 연기 나는 화로가 보이며 타는 횃불이 지나갔다는 것입니다.

        여기까지의 전체적인 내용과 흐름 속에서 우리는 이것이 언약식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람에게 언약을 하시는 것입니다. 아브람 시대에 모든 사람들이 이렇게 언약을 맺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약자인 아브람이 하나님께 서약하며 쪼갠 고기 사이를 지나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쪼갠 고기 사이로 지나가신다는 것입니다. 즉 편무 언약이 주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람의 언어와 이해를 바탕으로 그에게 약속을 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만약 약속을 어기시면 이 쪼갠 짐승처럼 되겠다는 선언이신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하나님께서 얼마나 자신을 낮추시며, 어떻게 약속을 하시는지를 보게 됩니다. 약속은 강자가 약자에게 요구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아브람이라는 피조물을 위하여 자신이 쪼개어진 고기 사이로 지나가시면 약속하신 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자녀들에게 주시는 언약의 지극히 작은 부분에 불과하며, 큰 것의 일부에 불과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아브람 개인에게 주신 언약보다 더 큰 언약을 우리에게 주셨는데 비록 우리는 그 언약을 보지도 못하고 참여하지도 못하였지만 그 언약의 혜택은 우리를 위한 것이며, 우리를 유익하기 위한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구속언약이라고 불리는 언약입니다. 항상 언약은 쌍방이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그 언약에 참여한 적도, 그 언약을 알지도 못할 때에 구속 언약은 맺어지게 되었습니다. 이 구속 언약은 말 그대로 구속을 위한 언약입니다. 즉 타락하고 범죄한 인간들을 구원하기 위하여 맺은 언약이라는 것입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으며, 언약이 당사자들이 누구이며, 언약의 내용이 무엇인가 하는 것이 궁금한 것입니다. 첫째로 구속 언약은 삼위 하나님께서 서로 맺으신 언약입니다.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삼위 하나님께서 함께 서로 언약을 맺으신 것입니다. 이것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하면 에베소서 14절을 보면 이 구절에서 주목해서 보아야 할 것이 언제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택하셨는가 하는 것입니다. 곧 창세 전입니다. 창세 전이라는 것은 세상이 지음을 받기 이전을 가리킵니다. 그때 이미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실 것임이 정해진 것입니다.

        이에 대하여 다음절인 5절을 보면 창세전에 그 기쁘신 뜻대로 누가 기뻐하신 것입니까? 성부 하나님께서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 미리 정하신 것입니다. 어떻게 하려고 정하신 것입니까?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시려고 하셨다는 것입니다. 즉 창세 전에 성부 하나님은 우리를 택하심과 예정이 있었고 그 택하심과 예정은 그리스도 안에 있게 하시며,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할 뿐만 아니라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시려고 하신 것입니다. 즉 창세전에 성부 하나님과 성자 하나님 간의 약속이 되어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좀더 분명히 해주는 것이 요한복음 530절을 보면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아무 것도 스스로 할 수 없다고 하십니다. 그리고 듣는 대로 심판하신다고 하시며, 나는 나의 뜻대로 하려 하지 않고 나를 보내신 이의 뜻대로 하려고 하신다는 것입니다. 즉 예수님께서 하시는 모든 일은 보내신 이의 뜻대로 하시는 것입니다. 이러한 내용은 요한복음 곳곳에서 발견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으로부터 보내심을 받았으며 그분이 하시는 모든 일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신 성부 하나님의 뜻대로 하신 것입니다. 이러한 내용 속에서 우리가 알게 되는 것은 성부 하나님과 성자 하나님 사이에 어떠한 약속이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성부 하나님과 성자 하나님은 동등되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신 성자 하나님께서는 성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시며, 그의 뜻대로 하신다는 것입니다. 무엇을 위해서 그렇게 하십니까? 우리의 구원을 위해서 그렇게 하시는 것입니다. 십자가에서 죽으심 앞에서 주님께서 기도하실 때에 나의 뜻대로 하지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옵소서 하시는 기도를 드리십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분명 하나님이십니다. 빌립보서 26-7절을 보면 여기서 그는 예수 그리스도 이신 성자 하나님이십니다. 그분은 근본 하나님의 본체라고 합니다. 이 말은 그분은 하나님과 동등된 분이시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그러한 하나님으로서의 권위와 위엄과 능력과 영광을 내려 놓으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즉 낮추시어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었던 것입니다.

        성자 하나님께서 이렇게 하신 것은 분명 성부 하나님의 계획이며, 이 계획 속에 성자 하나님은 순종하시기로 약속하신 것입니다. 즉 우리는 성부 하나님과 성자 하나님께서 타락한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한 언약을 맺으셨다는 것을 추론할 수 있는 것입니다.

        여기서 언약의 당사자들이 전부가 아닙니다. 성령 하나님도 마찬가지입니다. 성경은 성령을 하나님으로 부릅니다. 즉 성령 하나님이십니다. 그럼에도 이 성령하나님은 어떻게 인간들의 구원을 위하여 참여하시는가 하면 요한복음 1526절을 보면 예수님께서는 내가 아버지께로부터 너희에게 보낼 보혜사 곧 아버지께로부터 나오시는 진리의 성령이라고 표현하고 계십니다. 이 성령하나님은 성부 하나님으로부터 나오셔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에게 보내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분이 오셔서 하시는 일은 죄인을 회개하게 하여 중생하게 하실 뿐만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증언하시는 일을 하시는 것입니다.

        한 구절 더 보면 사도행전 233절을 보면 베드로의 설교 속에서 말씀 되어지는 성령 하나님에 대한 내용으로 하나님이 오른손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높이셨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가 약속하신 성령을 즉 예수님께서 약속하신 성령을 아버지께 받아서 너희가 보고 듣는 이것을 부어 주셨다고 합니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것이 성령 하나님께서 어떻게 동일 본질이신 성부 하나님에 의해서 보내심을 받고 성자 하나님께 순종하심으로 택하신 자들에게 임하시냐는 것입니다. 성령 하나님은 스스로 일하시는 것이 아니라 성자 하나님을 대신하시는 또 다른 보혜사로 오실 뿐만 아니라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을 생각나게 하시며, 예수 그리스도를 증언하시는 사역을 하시는 것입니다.

        이러한 내용들은 즉흥적으로 정해진 것이며, 아무나 두서없이 행해지는 것이 아닙니다. 인간의 구원을 위하여 삼위 하나님께서는 창세전에 서로 간에 언약을 맺으신 것입니다. 그리하여 동일 본질 가운데 있지만 성자 하나님께서는 성부 하나님의 뜻과 계획에 순종하심으로 자신을 인간이 되시기로 하시고 십자가에 죽기까지 순종하시기로 약조하신 것입니다. 또한 성령 하나님은 동등된 영광 가운데 계시지만 자신을 낮추시어 인간의 구원을 위하여 성부 하나님으로부터 보내심을 받아 성자 하나님께 순종하심으로 택하신 자들을 중생하게 하시며, 그들에게 보혜사의 사역을 대신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창세전에 일어난 삼위 하나님 간의 언약입니다. 이것을 우리는 구속 언약이라고 부릅니다. 성탄절에 예수 그리스도를 기억하며, 기념하며, 그분이 이 땅에 오심을 묵상하며 감사하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구원은 성자 하나님 한 분만으로 이루진 것이 아닙니다. 삼위 하나님께서 서로 언약을 맺으신 것입니다. 누구를 위함입니까? 죄인된 우리를 위함입니다. 언제 그렇게 하셨습니까? 우리가 이 땅에 존재 하지 않을 때에 그리고 이 땅에 태어나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왜 그렇게 하신 것입니까? 그분들이 그렇게 하시기를 기뻐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자신을 낮추신 것입니다. 이 언약은 우리가 참여한 적이 없을 뿐만 아니라 우리가 알지도 못할 때, 우리가 존재하지도 않았을 때에 이루어진 언약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놀라운 것이며, 너무나 감사한 것입니다. 나를 위하여 영광스러운, 엄위로우신, 지극히 거룩하시고 높으신 삼위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구원은 얼마나 값지고 보배로운 것입니까? 우리의 구원의 가치는 얼마나 귀한 것입니까? 삼위 하나님의 계획과 애씀과 노력으로 우리는 구원을 받았고 그분들의 은혜 속에 있다는 것이 놀랍지 않습니까? 이것이 우리가 크리스마스에 들어야 할 내용이고 깨달아야 할 내용입니다. 이것이 저와 여러분들을 위한 놀라운 삼위 하나님 간의 언약에 관한 이야기 입니다.

 

 


주일 말씀 요약 및 설교 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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