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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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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영상https://youtu.be/625zfoILdxw


           우리는 이미 성경에서 가장 큰 이적이나 기적은 다른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인간이 되신 사건이라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이것이 얼마나 놀라운 일인지 하늘에 있는 천사들에 조차도 신비한 일이며 궁금증을 유발할 뿐만 아니라 자세히 살펴보고 알아 보고자 할 만큼 대단한 일이 라고 성경이 말하고 있음을 살펴보았습니다. 왜냐하면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직접 피조물인 인간의 모습으로 이 땅에 오셔서 인간이 되신다는 것은 어느 누구도 상상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렇게까지 하시리라고는 상상할 수가 없는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지난 시간에는 왜 성육신이 신비한 것인가 하는 부분에 대하여 초점을 맞추었다면 오늘은 성육신이 담고 있는 의미에 대하여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디모데전서 3 16절을 보면 [딤전 3:16] 크도다 경건의 비밀이여, 그렇지 않다 하는 이 없도다 그는 육신으로 나타난 바 되시고 영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으시고 천사들에게 보이시고 만국에서 전파되시고 세상에서 믿은 바 되시고 영광 가운데서 올려지셨느니라 라고 합니다. 우리는 이미 크도다 경건의 비밀이라는 말의 의미에 대하여 살펴보았습니다. 여러분 스스로를 생각해 보십시오. 다른 일이 기적이 아니라 내가 예수를 믿은 것이 기적이 아니겠습니까? 내가 하나님을 계심을 믿으며 하나님을 섬기고자 하는 마음을 가지고 살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자 하는 마음으로 삶에서 하나님 중심적으로 삶을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 놀라운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와 같은 모양으로 사람이 되셨지만 또 다른 신비로운 것은 그분은 죄가 없는 완전하신 분이라는 사실입니다. 이 부분이 바로 영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으셨다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를 사하실 수 있는 것은 죄가 없기 때문이며 만약 죄를 가지고 계셨더라면 예수님은 자신의 죄를 위해 죽으신 것이지 우리를 위해 죽으신 것이 아닌 것입니다. 성경은 예수님의 죄 없으심에 대하여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히브리서 4 15절을 보면 [ 4:15]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실 이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신 이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예수님은 모든 일에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셨지만 죄는 없다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똑같이 시험을 받으셨다는 말은 우리와 같은 인간으로서 인성을 가지고 계시며 그로 인하여 인간이 당하는 모든 시험을 받으셨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유의해서 보아야 되는 것은 그러나 그분은 죄가 없으신 분이라는 사실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와 같은 인간이 되셨음에도 불구하고 죄가 없으신 것은 바로 성령에 의해서 새롭게 창조된 인간의 형상을 취하셨기 때문입니다. 누가복음 1 35절에서 이미 앞서 살펴보았듯이 지극히 높으신 이의 능력이 너를 덮으리니 라고 말씀할 때에 성령께서는 마리아의 피와 살로부터 예수님의 인성을 취하실 때에 죄로 말미암아 더럽히지 않도록 보호하시며 지키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비록 인간의 몸을 입으셨지만 죄는 없으신 분이시며 그러므로 우리의 죄를 사하실 수 있는 능력을 유지할 수 있으셨던 것입니다.

           여기서 조금 더 예수님의 성육신의 신비에 대하여 말씀을 좀 드려야겠습니다. 이 부분이 여러분들에게는 감성적으로 들릴 수 있지만 감성적 터치를 위한 말이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은 실제적인 사건이며 일들이라는 사실입니다. 눈에 보이지 않고 완전히 드러나지 않은 일이지만 실제로 일어난 일들입니다. 우리는 인간이 되신 예수님께서 원래 성부 하나님과 동일하신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주목해야 합니다. 그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세상을 창조하신 분이실 뿐만 아니라 세상을 주관하시며 세상을 보존하시고 유지하시며 관리하시는 분이십니다.

           우리는 성탄절에 이런 이야기를 종종 듣습니다. 아기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셨지만 뉘이실 방이 없어 마굿간에서 태어나셔야만 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분은 하늘을 지으시고 땅을 지으신 분이시며 하늘 나라의 왕이시지만 그분은 마굿간에서 나신 것입니다. 그분은 온 세상의 왕이시지만 오직 동방박사와 천한 목자들만이 그분의 나심을 환영하고 기뻐하였습니다. 하늘의 왕께서 이 땅에 오셨지만 그분은 비천한 가운데 오신 것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분의 오심에 대하여 알지도 못했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을 죽이려 혈안이 되어 있는 자들도 있었습니다. 아기 예수님을 죽으려 했던 헤롯의 생명의 주인은 누구입니까? 하나님께서는 자신을 죽이려는 헤롯을 피하여 애굽으로 내려가셔야만 하셨습니다.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못박힌 십자인 나무는 누가 물을 주고 누가 기른 것입니까? 그 나무의 싹이 나게 하고 나무에 햇빛을 주시고 비를 내려 주신 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런데 그분이 자신이 기른 나무에 달려 죽으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나무에 매달고 그의 손과 발에 못을 박고 그의 옆구리를 창으로 찌른 군병들의 생명은 누구로부터 온 것입니까? 이 모든 것도 다 주님으로부터 온 것이며 주님이 그들에게 생명을 주신 것입니다.

           우리가 이러한 사실들을 통하여 성경이 말하는 것이 사실임을 알게 되는데 주님께서는 자신을 우리에게 스스로 내어 주신 것이며 이 일은 바로 저와 여러분들의 씻으며 없앨 수 없는 죄에서 씻고 사하시기 위하여 대신 죽으신 것입니다. 요한복음 10 18절을 보면 [ 10:18] 이를 내게서 빼앗는 자가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스스로 버리노라 나는 버릴 권세도 있고 다시 얻을 권세도 있으니 이 계명은 내 아버지에게서 받았노라 하시니라 주님은 자신의 생명을 자신에게서 빼앗을 자가 없다고 말씀합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이신 예수님에게서 그의 생명을 취하거나 빼앗을 수가 있는 자는 세상에 없습니다. 그럼에도 그가 십자가에서 죽으심은 그가 스스로 자신의 생명을 버리셨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버린다는 말은 내려 놓는다는 말씀입니다. 주님은 자신의 생명을 우리를 위해 내려 놓으시고 지키시지 않으신 것입니다. 하나님이신 그분은 자신의 생명을 위협하는 모든 것들이 전혀 위협이 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그 어떤 것도 감히 그를 조금이라도 위협할 수 없지만 그분은 스스로 십자가로 걸어가신 것이며 그곳에서 우리를 위해 죽으신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에게 신비한 일이며 주님이 오시기 전까지 감추어진 비밀인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을 통하여 얻게 되는 실제적인 이익이 무엇인가를 생각해 보기로 하겠습니다. 왜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는 사람이 되셔야만 하셨습니까? 갈라디아서 4 4-5절을 보면 4:4-5절 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에 나게 하신 것은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을 속량하시고 우리로 아들의 명분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라고 하는데 바울은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에 나게 하신 이유가 있다고 합니다. 예수님께서 사람이 되셔야 하는 분명한 이유가 있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바로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 곧 저와 여러분들을 속량하시며 우리로 아들의 명분을 얻게 하시기 위함이라는 것입니다.

           이 말의 의미는 우리가 하나님 앞에 죄를 사함 받은 자만이 아니라 의롭게 되어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는가를 설명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사람이 되셔서 하나님의 법인 율법 아래 즉 율법을 지켜야 할 자가 되신 것은 바로 율법 아래 있는 자인 저와 여러분들을 속량하시기 위함이라는 것입니다. 이는 예수님께서 율법을 지키심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으셨는데 이 의를 우리에게 전가하심으로 예수님께서 모든 율법에 순종하신 것이 마치 우리가 하나님의 모든 율법에 순종한 것으로 인정되어 의롭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이 되게 하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성육신 하신 것은 단지 죄를 지은 것만을 용서하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의롭게 하여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시는 것임을 잊지 마십시오. 만약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이 죄를 사하는 것만 아니라면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가 아닐 뿐만 아니라 전에 지은 죄는 용서 받았지만 다시 범죄함으로 다시 범법자가 되어 하나님의 원수로 되돌아갈 뿐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그렇게 하지 않도록 자신의 의를 우리에게 전가해 우리로 의롭게 되게 하시며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심으로 우리로 하나님의 약속 즉 자녀에게 선물로 주시는 성령을 통하여 죄와 분리된 삶을 살 수 있는 힘과 능력을 주시는 것이 자녀가 받은 은혜를 받게 하심으로 하나님의 자녀로서 보호하심과 돌보심을 받게 하신 것입니다.

           이러한 내용과 같은 성육신의 목적을 보면 로마서 8 3-4절에서 [ 8:3-4]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시나니 곧 죄로 말미암아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육신에 죄를 정하사 육신을 따르지 않고 그 영을 따라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가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니라 우리의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법인 율법을 온전히 지킬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자신의 법인 율법을 온전히 지키실 수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 법은 자신의 본성이자 속성을 대변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성육신이 필요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죄 때문에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 즉 성육신으로 이 땅에 보내신 것입니다. 그 이유는 육신에 죄를 정하시기 위함인데 바로 예수님의 육체에 우리의 죄를 쏟아 부어 죄책을 담당하게 하심으로 죄에 대한 책임을 자신에게 옮겨 가게 하신 것입니다. 그로 말미암아 우리는 죄책에서 자유하게 된 것입니다.

           또한 더하여 이제 죄에서 자유하게 된 우리가 죄가 지배하는 몸을 따르지 않고 이제 자녀에게 선물로 주시는 성령을 따라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가 이루어지게 하신 것입니다. 이미 그리스도 예수께서 이루신 의를 성령을 통하여 우리가 마치 순종한 것처럼 그 요구를 이루게 하심으로 우리는 이제 율법의 저주에서 벗어나게 되었으며 율법의 정죄에서 벗어나게 된 것입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신으로 우리를 위해 순종하심으로 그 순종이 우리가 한 것처럼 여겨지게 된 것입니다. 이것은 율법의 정죄에서 벗어났다는 말이지 율법을 지키지 않아도 된다는 말이 아닙니다. 우리는 이제 구원을 얻기 위해서 율법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이미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자녀다움으로써 율법 준수를 요구 받게 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성육신을 통하여 우리에게 말로 할 수 없는 은혜와 복을 허락해 주셨습니다. 우리가 알아야 하는 것은 이 모든 주님의 낮아 지심이 저와 여러분들을 위함이며 그분께서 사람이 되심으로 모든 율법에 순종하심은 자신을 위함이 아니라 우리를 위함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서 머무시는 한 순간도 자신을 위한 삶이 없었다는 사실은 우리가 어떠한 삶을 살아야 하는지를 생각해 보게 합니다. 그분은 한 순간도, 한번도 자신을 위해서 사신 것이 아니라 저와 여러분들의 구원을 위하여 하늘 보좌를 떠나 인간이 되셨고 이 땅에 사시는 동안 하나님으로써 모든 것을 포기하시고 우리를 위해 자신을 낮추사 고난을 당하신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이 이 복음이 저와 여러분들의 삶에 영향을 미쳐야만 하는 이유는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일이며 기대할 수 없는 일이 나를 위하여 시행되며 성취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주님의 은혜에 어떻게 보답하며 살아야 하는가를 생각하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주일 말씀 요약 및 설교 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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