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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신년 저녁 기도회 월요일 먼저 구해야 할 것 마태복음 6 30절부터 34절까지

           오늘 신년 저녁 기도회에 첫날 첫 번째 우리가 듣고자 하는 하나님의 말씀은 마태복음 말씀입니다. 이 말씀이 첫 날에 살펴보고자 하는 이유는 이 말씀이 가지는 중요성 때문입니다. 이 말씀은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며 무엇을 하고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분명한 목적을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의 고귀하고 가치 있으며 불변의 진리인 것이 이 말씀이 바로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신 우리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이 문맥 속에서 핵심 구절은 33절 말씀인데 33절을 보면 33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라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우선 이 말씀을 듣고 생각할 때에 마음의 모든 거부감이나 저항에서 벗어나기 위하여 모든 자신의 편견과 생각을 내려 놓으셔야 합니다. 왜냐하면 인간은 본질적으로 자신을 중심으로 살아가고 자신에게 실제적으로 유익한 것을 우선에 놓고 살아가는 존재이기에 내가 아닌 다른 분의 뜻을 자신의 인생에 처음의 장소, 처음의 시간, 처음의 순서에 놓고 살아가는 것은 본질적으로 하기 싫은 일이기 때문입니다.

           이 말씀의 요구를 생각하기 전에 먼저 이 말씀을 하시는 주님을 먼저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성경에서 하나님은 우리의 창조주이십니다. 우리의 형질을 그분이 만드셨습니다. 이 말은 나에 대하여 가장 잘 아시는 분이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왜냐하면 그분이 나를 지으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나를 가장 잘 아시며 나를 가장 위하신 분이 누구신가를 먼저 생각해 봅시다. 이 세상 누가 나의 죄를 위하여 내 영혼을 위하여 기꺼이 죽으려 하겠습니까? 누가 나를 대신해서 지옥의 심판을 감히 감당하려고 하겠습니까? 세상에는 나를 사랑해서 나의 고통을 함께 나누려고 하는 자들이 몇몇 있을 수 있습니다. 또한 나를 사랑해서 내가 당할 손해의 일부분을 감당해 주고자 하는 선한 마음을 가진 사람도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자신이 범하지 않고 내가 범한 죄의 대가를 자신이 담당할 뿐만 아니라 어떤 인간도 감당할 수 없는 하나님의 진노의 형벌인 지옥의 형벌을 감당하여 지옥을 맛보고자 하는 자는 없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그렇게까지 나를 사랑하시며 내 영혼이 영생에 이르시기를 원하며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고 화평을 누리기를 원하시는 그분이 나의 인생의 가장 좋은 길을 가르쳐 주고자 하시는 것입니다. 나에게 가장 좋은 삶을 제안하시고 계신 것입니다. 그것이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 즉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구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란 하나님이 다스리는 영역 즉 통치의 영역을 말씀하시는 것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구하라고 하는 것은 너의 삶과 너의 인생이 하나님의 통치와 다스림을 받는 일을 모든 것보다 앞에 두고 생각하고 행동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통치와 다스림이 너의 모든 시간과 장소와 모든 순서에 앞서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정리하자면 하나님의 나라를 구한다는 것은 나의 모든 생각이나 행동은 반드시 앞서서 하나님의 다스림 속에서 그리고 그분의 통치 아래에서 실행되어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우리의 삶에 실천하기 위해서는 내 생각이 하나님의 지배를 받고 내 의지가 하나님의 지배를 받고 내 행동이 하나님의 지배를 받도록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한 순간에 되는 것도 매일 날마다 쉽게 습관으로 우리 몸에 베일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구하라는 단어를 주님께서 하시는 이유는 방향을 하나님의 말씀에 부합한 삶으로 틀어 고정시키는 일을 계속하는 행위를 가르치기 위해서 입니다. 사람들이 운전을 할 때에 운전대에 손을 놓고 운전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핸들을 움직이지 않아도 운전대를 놓고 운전하지 않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운전대를 놓으면 차가 마음대로 가기 때문입니다. 비록 내가 방향을 틀지 않더라도 운전대를 놓으면  작은 홈이나 돌과 도로의 방향에 따라 차가 가야 할 길에서 이탈 하게 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즉 그의 나라를 구한다는 것은 손에서 핸들을 놓지 않듯이 지속적으로 하나님께서 그분의 말씀으로 나의 삶을 방향을 잡아 지속적으로 향하게 하는 것입니다.

둘째로 그의 의를 구하라고 하십니다. 여기서 의란 쉽게 말해서 그리스도 예수를 믿고 얻은 새로운 삶을 추구하는 삶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았을 때 자신의 삶을 쫓지 말고 하나님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얻은 새 생명이 살아가야 하는 그 길을 추구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실제적으로 그리스도 예수를 믿은 후의 삶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행위로 나타납니다. 그분을 예배하기를 원하여 주일을 거룩하게 예배자로써 살아갑니다. 또한 하나님을 찬양하며 기분을 기뻐하는 것으로 나타납니다. 모든 일에 있어서 정직하며 바르게 할 뿐만 아니라 책임과 의무를 모든 이들에게 행합니다. 어떤 이들은 술을 끊고 담배를 끊기도 하고 어떤 이들은 노름이나 오락에 심취한 것을 끊어버리기도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를 즐거워하며 배우기를 기뻐하며 하나님에 대하여 생각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교회에 나와서 봉사하거나 다른 이들을 돕고자 하는 것도 새 생명과 새로운 삶이 주는 변화입니다. 먼저 하나님의 의를 구하라는 말씀의 결론은 너의 모든 삶은 하나님이 주신 새 삶의 모습이 되도록 찾으며 쫓으며 발견하라는 것입니다. 내 모습이 변화되어 예수님을 믿는 자로써의 삶이 되도록 추구하라 그것을 열망하고 갈구하라 그래서 너의 모습 속에서 변화된 새 사람의 모습이 나타나도록 하게 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시는 말씀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 하시리라 라고 말씀하시는데 이렇게 사는 것에 대한 주님의 약속입니다. 주님께서는 이렇게 산다고 해서 너희 인생이 망하지 않는다 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내가 먹고 사는 것을 누가 책임집니까? 내가 우선적으로 모든 것에 앞서서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며 변화된 새로운 삶으로 살아감으로 세상에서 뒤처지고 세상에서 잘 안 되어 불행하게 되면 어쩝니까? 라는 말에 주님은 이미 모든 것이 너희에게 필요한 줄 아시는 하나님께서 더하여 주실 것이라고 약속해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이렇게 말해도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위하여 살지 못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무엇 때문에 안 되는가 하면 30절을 보면 30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져지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 보냐 믿음이 작은 자들아 이 구절에서 주님께서 주님의 말씀을 듣고 있는 청중을 향하여 하시는 말씀이 믿음이 작은 자들아 입니다. 믿음이 적은 자들아 라는 말은 너무나도 적게 믿는 이라는 뜻을 가지지만 다른 말로 쉽사리 믿지 않는 자들을 말합니다. 긍적적으로는 믿음이 적어서 못 믿는 것입니다. 그러나 부정적으로는 실제적으로는 쉽사리 믿지 않는 마음 때문에 그렇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처한 마음의 상태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대놓고 아니요 라고 말하지는 안지만 이미 마음에는 쉽사리 믿지 않습니다. 그걸 어떻게 믿습니까?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더 하여 주신다는 것을 믿을 바보가 어디에 있습니까? 그냥 나는 믿는 다는 것으로 만족하고 내가 내 인생 책임지며 열심히 살아 보겠습니다 라는 마음을 가지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쉽사리 믿지 못하는 마음이 이미 그의 마음에 가득 채워져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마음을 바뀌지 않으면 절대로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지 못합니다.

쉽사리 믿지 못하는 마음이 바뀌어야 무엇이 믿어지게 되는가 하면 32절이 믿어지게 됩니다. 32절을 보면 32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리라 이것을 믿어야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처럼 먹고 사는 문제에 매달리며 살지 않게 되고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먼저 구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34절을 믿게 되는 것입니다. 34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이 염려할 것이요 한 날의 괴로움은 그 날로 족하니라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고 합니다. 왜냐하면 내일 일은 내일이 염려할 것이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이것을 NIV로 보면 Therefore do not worry about tomorrow, for tomorrow will worry about itself. 라고 합니다. 즉 왜냐하면 내일은 내일 스스로가 염려할 것이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내일 스스로가 내일을 염려할 것이라고 하는데 내일 자체는 어떠한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도 내일 스스로가 내일을 염려한다고 하는 것은 내일이라는 날의 주인이신 하나님께서 내일에 대하여 예비하시고 마련하시기 때문에 우리가 염려할 것이 아니라는 것이며 내일의 주인이신 하나님께 내일을 맡기라는 의미입니다.

이것을 쉽사리 믿지 않게 되면 우리는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위하여 살 수 없으며 우리 인생의 가장 귀한 것을 놓칠 뿐만 아니라, 인생을 허비하고 낭비하여 아무것도 남긴 것이 없는 인생을 살게 될 뿐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믿는 일에 온 마음을 기울여야 하며 그렇게 함으로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며 쫓는 일에 온 마음과 힘을 다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올해 저와 여러분들의 삶이 이러한 삶이 되시길 바랍니다.


주일 말씀 요약 및 설교 영상

주일 말씀 컬럼 안에 설교 영상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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