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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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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영상https://youtu.be/EUFoyFd1FB8


오늘 우리가 살펴볼 내용은 십계명 가운데 여섯번째 계명에 대하여 입니다. 성경은 살인에 대하여 엄격한 처벌을 규정을 두고 있습니다. 그러나 모든 살인이 다 죽음에 이르는 죄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성경은 이런 경우를 오살이라는 표현을 사용합니다. 신명기 194-5절을 보면 이웃과 함께 나무를 하다가 도끼가 자루에서 빠져 그의 이웃을 맞춰 그를 죽게 할 경우에는 고의성이 없는 살인이 일어나게 된 것입니다. 이런 경우에 대하여 성경은 이것은 살인죄를 범하는 것이 아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반드시 죄를 물으며 죄에 대하여 무서운 책임이 따르는 살인이 있습니다. 출애굽기 21:12절을 보면 여기서 반드시 죽일 것이나 라는 말은 어떤 예외도 없이 죽음이 언도되어야 하며, 죽음에 이르게 하여야 한다는 강력한 명령의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출애굽기 2114절을 보면 사람이 그의 이웃을 고의로 죽일 경우에는 내 제단에서도라도 잡아 내려 죽이라고 합니다. 고의란 말은 계획이나 의도를 가지고 죽이는 경우입니다.

         그렇다면 남의 생명을 계획이나 의도를 죽이지 않으면 이 계명을 지키게 되는가? 하는 것입니다. 신약 성경에서 살인하지 말라는 계명은 타인의 생명을 물리적으로 빼앗는 행위만이 살인이 아니라 다른 차원의 살인이 가능하며, 이것이 이 계명이 담고 있는 원래의 목적이라는 사실을 듣게 됩니다. 마태복음 521-22절을 보면 예수님께서는 살인하지 말라는 말을 이런 뜻이라고 정확하게 말씀하고 계시는데 형제에게 노하는 것을 금한다, 형제에게 라가 즉 욕하는 것을 금한다, 미련한 놈이라고 하는 것 조차도 살인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주님은 우리가 분노하거나 욕설로 이웃의 마음을 상하게 하거나 낙심하게 하거나 고통스럽게 하는 일을 가볍게 여기지 않으실 뿐만 아니라 이것이 살인하는 죄라고 까지 하시는 것입니다. 무시와 멸시로 상대를 깔보며 업신여기는 행위는 살인이라는 것입니다. 인생을 살면서 한번도 이러한 일을 해 본적이 없는 사람을 찾아 보기 힘들 것입니다.

        심지어는 살인하지 말라는 계명은 모든 사람이 범하여 모두가 범죄자 이구나 라고 생각할 만큼의 심각성을 말씀하고 있는 성경 구절도 있습니다. 요한일서 315절을 보면 이 구절에서 우리가 보는 것은 그 형제를 미워하는 것이 살인하는 것이다 라고 정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성경이 살인하지 말라는 죄의 범위에 대하여 그럼 죄 없는 자가 누구인가? 누가 살인죄를 범하지 않을 수가 있는가? 라고 반문할 것입니다. 그래야 합니다. 내가 살인자라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나는 하나님의 기준에 전혀 미치지 못하는 자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울가 십계명을 통하여 배우게 되는 첫째는 나는 하나님의 법에 여전히 무능하며, 죄인일 수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둘째는 그래서 나에게는 절박한 도움이 필요하며, 이 도움은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두신 성령 하나님을 의지함으로 얻게 되는 것을 깨닫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십계명을 제대로 배우게 되고, 깨닫게 되면, 저절로 겸손해지며, 저절로 낮아지며, 하나님의 은혜를 간구하게 됩니다.

        이제 우리가 살펴볼 것은 이 계명이 왜 이러한 내용으로 주어졌는가 하는 것입니다. 사람의 육체의 생명뿐만 아니라 그 사람의 인격에까지 왜 우리는 주의를 이토록 기울여야 하는가?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인류애 때문에, 인간이 다른 생명체 보다 존엄하기 때문에, 인간의 우월성 때문에 인간의 생명을 보존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을 모르는 이들은 그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사람이 어떻게 사람을 죽입니까? 사람의 생명은 귀하기 때문에 사람을 죽이지 말아야 합니다. 라는 말은 세상 사람들이 하는 말입니다. 우리는 다른 이유가 있습니다. 이것 보다도 훨씬 더욱 고결하고, 높은 가치 때문에 그렇게 해서는 안됩니다.

이에 대한 성경의 가르침을 살펴볼 때에 창세기 95절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너희의 피를 찾으신다고 하십니다. 찾으신다는 말은 그 피에 대한 대가를 치르게 하신다는 의미로 만일 짐승이 사람을 죽게 하면 그 짐승에게서 그 피에 대한 대가를 치르게 하시며 만약 같은 사람이면 그에게서 그 피에 대한 대가를 치르게 하실 것이라고 합니다. 6절은 왜 그렇게 하시는 가를 말씀하고 있는데 왜냐하면 이는 하나님이 자기 형상대로 사람을 지으셨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보실 때에 자신의 형상을 나타내며 드러내는 존재로 여기시며 자신의 한 부분으로 생각하신다는 것입니다. 이 부분은 그리스도께서 왜 종의 형체 즉 인간의 몸을 입으시고 이 땅에 오시기로 하셨는지를 이해하게 합니다. 여기에 우리를 구원하신 목적이 담겨 지게 되는데 하나님의 형상을 닮게 하시려는 것으로 하나님의 형상의 본체이신 그리스도 예수를 닮음으로 인하여 우리는 그 목적에 도달하게 되는 것입니다.

        끝으로 하이델베르크 교리문답에서 이 계명을 어떻게 가르치고 있는지를 살펴보면 내가 이웃의 명예를 훼손하거나 그들을 미워하거나 헤치거나 죽이지 않기를 원하십니다. 나는 생각이나 말이나 몸짓으로, 무엇보다도 행동으로 그리해서는 안되고 다른 사람을 시켜서 해도 안되며 오히려 모든 복수심을 버려야 합니다. 더 나아가 자기 자신을 헤쳐서도 안됩니다. 부주의하게 위험에 빠뜨려서도 안됩니다. 그러므로 살인을 막기 위해서 국가는 또한 칼을 가지고 있습니다. 라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살인하지 말라는 명령을 하신 이유는 살인이란 이웃의 명예를 훼손하거나 그들을 미워하거나 헤치거나 죽이지 않기를 원하신다고 합니다. 왜 그래야 하는가 하면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으심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내가 이웃의 명예를 훼손하거나 그들을 미워하거나 헤치거나 죽이지 않기를 원하십니다. 누가 내게 그렇게 하기를 원하십니까? 바로 나와 내 생명의 주인이신 하나님께서 내게 그렇게 하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내 이웃은 하나님이 사랑하시며, 아끼시는 하나님의 형상 입니다. 그래서 나는 하나님의 형상을 아끼고 사랑하기 위하여 모든 적대적 행위를 중단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 사람이 측은하고 불쌍해서가 아닙니다. 그 사람이 두렵거나 그럴 만한 가치가 없어서 그렇게 하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때문에 우리는 미움을 중단하고, 다툼을 중단하고 멈추어야 합니다.

인생을 살면서 우리는 수많은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게 되고, 수많은 다양한 상황에 놓이게 됩니다. 그때 우리 주변의 사람들은 정말 내가 예수를 믿고 있다는 것을 감사해야 할 경우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또한 우리 어떤 경우에는 그들이 예수를 믿고 있는 사실에 내가 감사할 경우들도 있습니다. 그들이 예수를 믿기 때문에 나를 참아내고 인내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입니다. 나 또한 그래야 하는 것입니다.

        하이델베르크 교리문답에서 또다른 중요한 내용은 나는 생각이나 말이나 몸짓으로 라는 말이 무엇을 가리키는가 하면 이웃의 명예를 훼손하는 일에 그들을 미워하는 것이나 헤치는 것, 죽이는 것 등이 행동이 아니나 생각이나 말이나 몸짓등의 이렇게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살인하지 말라는 계명은 육체적 훼손의 문제가 아니라 생각, , 몸짓으로도 그렇게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쉽지 않은 문제입니다. 얼마나 많은 은혜가 이 계명 하나를 지키는데 우리에게 필요한지 모릅니다. 생각이나 말이나 몸짓에서도 우리는 이웃을 미워하며, 상하게 하려거나, 미워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 계명 앞에 우리가 서있는가 하는 것 뿐만 아니라, 우리가 죄로 말미암아 얼마나 타락하고 오염되어 있는지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선한 것이 하나도 없다는 것이 우리의 고백일 뿐임을 새삼 느끼게 됩니다.

        이제 이 가르침의 마지막 부분을 보면 더 나아가 자기 자신을 헤쳐서도 안된다고 합니다. 존 칼빈이 말년에 만성병으로 말미암아 고통하다 55세에 죽고 맙니다. 이때 회개하였던 것 중 하나는 자신의 몸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 것입니다. 이것 또한 자기 자신을 헤쳐서는 안되는 제 6계명을 범한 것이라고 여겼기 때문입니다. 왜 술과 담배나 마약이나 몸에 해로운 것을 하지 말아야 하는가 하면 바로 살인하지 말라는 하나님의 명령 때문에 우리는 우리 자신을 헤치는 일을 하면 안되는 것입니다. 자신의 건강을 돌보지 않고 살아가는 것은 자신을 죽이는 일인 것입니다.

        이 계명의 마지막 가르침을 보면 이 계명은 결코 소극적으로 하지 무엇을 하지 말아야지 하는 것으로 지킬 수 있는데 절대로 그렇게 해서는 안됩니다. 이 계명을 어떻게 지키는가 하면 적극적으로 지켜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이델베르크 교리문답에서는 이 계명을 지키는 내용에 대하여 이렇게 가르치는데 107문을 보면 107문 앞에서 말한 방식으로 우리 이웃을 죽이지 않으면 그것으로 이 계명을 다 지킨 것입니까? 그렇다면 우리의 이웃을 죽이지 않으면 그것으로 이 계명을 다 지킨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이에 대한 답변을 보면 :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시기와 증오와 분노를 정죄하심으로써 우리가 우리 이웃을 자기 자신처럼 사랑하며, 인내와 화평과 온유와 자비와 친절을 보이고, 우리가 할 수 있는 한 그들을 해악으로부터 보호하며, 심지어 원수에게도 선을 행하라고 하셨습니다.

        단순히 이 계명은 우리로 형제를 향한 시기 증오 분노를 하지 말라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우리 이웃을 자기 자신처럼 사랑하며, 인내와 화평과 온유와 자비와 친절을 보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이 계명이 담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할 수 있는 한 그들을 모든 해악으로부터 보호하는 일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내게 잘해 주는 사람에게만 아니라 내가 못해주는 사람, 내가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사람, 나와 다른 사람에게도 우리는 최선을 다하여 그들을 사랑하는 일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 대상에는 심지어 원수에게 까지도 선을 행하라는 명령을 받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계명을 마주할 때에 우리는 하나님의 심판과 진노를 피할 길이 없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느껴져야 합니다. 내가 얼마나 하나님의 계명과 멀며, 하나님의 계명 앞에 무능한 자인지를 직시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곧장 그리스도에게로 달려가 우리를 용서해주시기를 구하며 은혜를 베풀어 새 마음을 주시기를 간구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주님의 말씀을 지킬 수 있는 힘이 필요합니다. 인내가 필요하고 참음이 필요하고 이해하며 용서할 수 있음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주님의 도움이 필요하기에 기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주일 말씀 요약 및 설교 영상

주일 말씀 컬럼 안에 설교 영상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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