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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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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영상https://youtu.be/_vzkZg0R_v0


오늘부터 네 번에 걸쳐서 십자가에 대한 성경의 기초적인 진술들을 살펴보려고 합니다. 중심된 질문은 누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았는가 하는 것입니다. 성경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의 죽음과 관련하여 다양한 사람들이 관련 되어 있음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 중에 가장 대중적으로 잘 알려져 있고 성경에서도 일관되게 진술하고 있는 한 사람이 있습니다. 성경이 가룟 유다에 대한 진술을 찾아 보면 일관되게 표현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되는데 공관 복음서라고 불리우는 마태, 마가, 누가 복음서에서 제자들의 이름이 등장하는 부분들이 있습니다. 특이한 점은 세 복음서 모두에서 제자들의 이름을 나열할 때에 가룟 유다의 이름이 가장 마지막에 두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가 생각할 일반적인 가룟 유다에 대한 잘못된 생각이나 그로 말미암는 동점심에 대하여 입니다. 성경을 깊고 조심스럽게 다루지 못하고 가볍게 겉으로나 드러난 것들을 통하여 가룟 유다가 불쌍하며, 오히려 그가 십자가의 구원의 사역에 참여하고 완성한 자가 아닌가 라고 생각하거나 주장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만약 예수님께서 반드시 죽으셔야만 했다면 결국 누군가는 그를 팔아야 하지 않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왜 유다를 비난하는가? 그는 단지 하나님의 섭리의 도구이며, 예정의 희생자가 아닌가 하는 것입니다.

        누군가 예수를 팔아야 하고 배신하여 십자가에 죽게 하여야 한다면 그 사람은 자신의 의지가 아닌 예언과 하나님의 섭리와 계획 아래에서 한 것이기 때문에 그에게 죄를 묻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의 예언 속에서 누군가 배신하여 예수님을 파는 것이 예언 되었다 할지라도 그것을 행한 자는 자신의 자유로운 의지적 행위로 하지 않았다고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는 것이 예언 된 대로 이루어졌다고 해서 예수님께서 자발적으로 그리고 의지적으로 십자가에서 죽지 않으셨고 어쩔 수 없이 예언이니까 이루어졌다고 말 할 수 없는 것과 같습니다.

        성경은 가룟 유다의 배신에 대하여 명확하게 설명합니다. 결정적으로 그가 예수님을 배반하게 된 계기가 되는 일이 있습니다. 요한 복음 12:4-6절을 보면 제자들 중 하나인 유다가 말합니다. 이 향유는 삼백 데나리온인데 팔아서 가난한 자들을 주지 않고 이렇게 낭비할 수가 있는가 그런데 이 말을 하는 이유가 가난한자들을 돌보는 일을 너무나 사랑하고 가치를 두고 있기 때문이 아니라 사실은 그는 도둑이기 때문이며 돈을 돈궤에 넣고 그것을 훔쳐 가는 자라는 것입니다.        더 중요한 것은 이일 후에 마태복음을 보면 그는 완전한 범죄를 꿈꾸며 그의 마음에 배반을 확정하게 됩니다. 마태복음 2614-16절 보면 그는 삼백 데나리온이 예수님의 머리에 부어져 소비되는 것을 본 후에 대제사장들을 찾아가 예수를 넘겨 주는 대가로 은 삼십을 받으며 예수님을 넘겨줄 때를 찾습니다. 노동자의 일년치 임금에 해당하는 삼백 데나리온을 낭비한다고 분노하던 그는 정작 예수님을 삼백 데나리온의 삼분의 일 밖에 되지 않는 은 삼십에 팔아버리고 배신합니다. 그는 돈을 사랑하는 자이며 탐욕과 욕심에 눈이 먼자라는 것입니다.

        또 다른 성경의 증언을 보면 가룟 유다가 죄가 없다고 말할 수 없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되는데 요한복음 131-2절을 보면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 돌아가실 때가 이른 줄 알았다고 합니다. 이 말씀은 그가 곧 유다로부터 배신과 팔림을 당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실 때가 이르렀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때가 이르렀는데도 예수님은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셨다고 합니다. 예수님은 끝까지 사랑하는데 불구하고 유다의 마음은 예수님을 배반하며 팔려는 생각에 넘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유다는 마귀에게 자신의 마음을 넘겨 주고 생각의 주도권을 넘겨주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자신을 배신할 유다를 참으시며 그에게 많은 기회를 주시며 돌이킬 수 있도록 하셨다는 사실을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요한복음 1321절을 예수님께서 심령이 괴로우셨습니다. 즉 마음이 고통스러웠다는 것입니다. 무엇 때문인가 하면 이것 때문인데 바로 너희 중 하나가 나를 팔 것이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누가 자신을 팔 것인지 알고 계셨습니다. 그리고 그 사실 때문에 몹시 괴로워하시며 자신을 배반할 유다 때문에 마음이 고통스러우셨습니다.

        이 말씀은 다른 의미에서 유다에 대한 경고이자 기회였습니다. 그가 행하려고 하는 일에 대한 돌이킴의 기회이자 회개의 기회였습니다. 그런데 유다는 이 기회를 놓치고 맙니다. 마태복음 2624-25절을 보면 예수님은 자신을 팔자가 얼마나 불행한지에 대하여 경고하십니다. 그러자 이 말을 듣고 있던 유다가 예수님께 랍비여 나는 아니지요 라고 합니다. 원문의 의미는 나는 확실히 아니지요 라는 의미로 이미 예수님을 팔기로 하고 은 삼십을 받은 유다가 얼마나 가증한 인물인지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이에 대하여 예수님은 우회적으로 답변을 하며 네가 말하였다 라고 합니다. 이 말은 간접적으로 바로 너다 라는 것입니다. 유다는 이 기회를 던져버리고 자신의 마음을 더욱 굳게 하며 배신을 확정하게 됩니다.

        마지막으로 주님은 그에게 최후의 호의를 베풀며 기회를 주십니다. 요한복음 1325-26절을 보면 요한이 예수님께 누가 예수님을 팔자입니까? 라고 묻자 예수님은 내가 떡 한 조각을 적셔다 주는 자가 그라고 합니다. 그리고 떡 한 조각을 적셔서 유다에게 줍니다. 떡을 적셔서 주는 행위는 친근함을 표현하는 일반적인 행위이며 사랑의 행위입니다. 이러한 친근함의 행위 속에 다른 의도가 있는지는 질문하고 있는 요한 조차도 몰랐고 제자들 어느 누구도 몰랐습니다. 아무도 예수님께서 유다에게 기회를 주며, 네가 바로 나를 팔 자라는 것을 암시하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였습니다. 누구만 아는가 하면 바로 유다 자신입니다. 그럼에도 그는 죄를 멈추지 않고 오히려 죄를 확정하며 배반을 결정합니다.

        다음 구절인 요한복음 1327-28절을 보면 조각을 받고 사단이 그 속에 들어갑니다. 이 말은 유다가 마음을 열고 사단의 생각을 완전히 받았으며 사단의 지배아래 자신을 두었다는 것입니다. 유다는 자신의 돈에 대한 욕심과 욕망을 따라 살다가 예수님을 배반하며 팔아 넘기는 자가 된 것입니다. 그에 대한 예수님의 지속적인 관심과 사랑과 기회에 대하여 그는 헌신짝 처럼 버렸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자신의 생각과 마음을 사단에 넘겨주고 자신의 욕망과 욕심에 이끌리는 삶을 산 것입니다. 28절에서 이 말씀을 무슨 뜻으로 하셨는지 앉은 자 중에 아는 자가 없다는 것은 예수님께서 유다의 배신을 완전히 드러내지 않고 오직 그에게만 기회를 주시며, 오직 그에게만 알아 듣게 말씀하셨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예수님의 사랑과 인내와 은혜에 대하여 유다의 반응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죽게 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누가복음 1215절에서 이 말씀을 유다 또한 들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생명을 그 소유의 넉넉한 데 있다고 믿었고 그래서 탐욕을 부리며 돈을 사랑함으로 예수님을 팔고 결국은 자신 또한 배가 터져 죽고 맙니다. 그는 차라리 나지 아니하였다면 자신에게 좋을 뻔하였던 인생을 살고 간 것입니다. 우리가 마지막으로 기억해야 하는 것은 성경의 수많은 말씀들은 마치 예수님께서 유다를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며 수 많은 회개와 돌이킴의 기회를 주신 것처럼 우리에게 주시는 생명을 얻고 구원을 얻는 기회임을 기억하십시다. 그리고 말씀이 가슴을 찌를 때에, 말씀이 깨달아져서 새롭게 해야 하며, 나의 삶을 바꾸어야겠다 라는 마음이 들 때 그 마음의 깨달음을 놓치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붙잡고 사는 일에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부디 저와 여러분에게 더 효과적이고 더 확실한 주님의 은혜가 있기를 소원합니다.


주일 말씀 요약 및 설교 영상

주일 말씀 컬럼 안에 설교 영상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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