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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 말씀 영상 https://youtu.be/JIivG5s2t4I


주님이 가르쳐 주신 기도가 무엇인지에 대하여 구체적인 내용들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주기도문의 첫번째 문장을 보면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부분은 마치 의미 없는 호칭처럼 여겨질 수 있지만 이 첫 부분이 중요한 이유는 우리의 기도의 대상과 그분과 우리의 관계에 대한 정의를 말해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주기도문의 첫 소절이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는 세 부분으로 나누어 생각할 수가 있는 첫째는 아버지이고 둘째는 우리 이며 셋째는 하늘에 계신 입니다. 먼저 아버지에 대하여 생각해보겠습니다. 주님께서는 왜 하나님께 기도하도록 가르치면서 아버지라는 표현을 사용하도록 가르치신 것입니까? 다른 호칭으로 하나님을 부를 수 있는데 말입니다.

        주님께서 우리의 기도의 대상이 아버지라는 사실을 우리에게 주지 시키고자 하고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즉 기도는 아버지와 자녀와의 관계 속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이러한 사실이 구약과 신약을 구분 짓는 표현이기도 한데 왜냐하면 구약에 살았던 사람들은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거의 부를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구약의 백성들에게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는 것을 금지하셨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을 보면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구약 성경에서 하나님 자신이 아버지라는 표현을 사용하심으로 이스라엘 백성과의 관계의 정의하시는 경우가 많다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기도문에서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도록 하심으로 우리와 하나님과 관계가 어떠한지를 확인시키며 기도를 통하여 관계를 회복하시기를 원하셨던 것입니다. 이에 대한 하이델베르크 교리문답의 가르침을 보면 그리스도께서는 기도의 첫머리에서부터 우리 마음에 하나님께 대하여 어린아이와 같은 공경심과 신뢰를 불러일으키기를 원하셨는데, 이것이 우리의 기도의 기초입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게 하심으로 우리 마음에 하나님께 대하여 어린 아이와 같은 공경심과 신뢰를 불러 일으키기를 원하셨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여길 때에 우리는 아버지에 대한 공경심과 또한 아버지가 자녀들을 위하시는 마음을 통하여 하나님을 무한히 신뢰하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어린 아이들이 자신의 아버지를 얼마만큼 그리고 어느 정도 신뢰하는가를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창조주 되신 하나님을 무한히 신뢰하며, 의지하기를 원하신다는 것입니다. 두려움이 느낄수록 아기는 더욱 아빠의 품 속을 파고들며, 아빠의 가슴이 머리를 묻습니다. 왜냐하면 아빠가 그 모든 두려움에서 자신을 보호하여 줄 것을 확신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를 때에 그분은 내가 완전히 신뢰할 뿐만 아니라 의지할 수 있는 분이시며, 내가 당하는 모든 고통과 어려움에서 나를 지켜주시고, 보호해 주실 분이심을 신뢰함으로 부르는 것입니다.

        그 다음으로 나오는 것을 생각해보면 두번째는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 아버지가 되셨으며, 우리가 믿음으로 구하는 것에 대해서는 우리 부모가 땅의 좋은 것들을 거절하지 않는 것보다 훨씬 더 거절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우리 아버지로 부르며 우리 아버지가 되게 하신 것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되어진 것이기에 우리는 그 은혜에 감사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기억해야 하는 것은 피조물의 위치에서 그리고 원수가 되었던 자리에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입양되어 이제 창조주를 하나님이라고 부르는 자리에서 아버지라고 부르는 자리로 옮겨져 왔을 뿐만 아니라 호칭의 변화와 더불어 그 호칭이 가져다 주는 상호관계의 변화까지 얻게 되어, 자녀들이 아버지로부터 기대하는 모든 것을 하나님께 기대할 수 있는 자리에 이르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아버지가 되신 다는 사실은 우리가 믿음으로 구하는 것에 대해서는 우리 부모가 땅의 좋은 것들을 거절하지 않는 것보다 휠씬 더 거절하지 않으실 것이라는 사실을 아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711절을 보면 우리는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께서는 좋은 것으로 주실 것을 약속하고 계심을 기억해야 합니다. 또한 야고보서 117절을 보면 온갖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다 위로부터 오는데 바로 우리들의 아버지께로 부터 우리에게 내려오는 것입니다. 그분의 우리를 향한 사랑은 변함도 없고 회전하는 그림자처럼 움직이지도 않습니다.

        이제 두번째로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라는 문장에서 우리라는 말에 대하여 생각해 보겠습니다. 왜 주님께서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여라고 하지 않으시고 우리 아버지라고 부르도록 가르치신 것입니까?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주님께서 하나님을 부르실 때에 무엇이라고 부르셨는지 아십니까? 주님은 한번도 성부 하나님을 부르실 때에 우리 아버지라고 부르신 적이 없다는 사실입니다. 주님은 항상 나의, 내 라는 표현을 사용하셔서 성부 하나님을 부르셨습니다. 마대복음 721절을 보면 여기서 주님은 성부 하나님을 내 아버지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나의 하나님과 너희의 하나님을 혼동하지 않고 나의 하나님과 우리 하나님을 혼동하지 않고 사용하시는 것은 예수님께서 성부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는 것과 우리가 성부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는 것과는 다름이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본질로 하나님의 아들이시지만 우리는 입양된 아들이라는 것입니다. 또한 주님께서 우리 아버지라고 부르게 하신 이유는 우리는 교회라는 공동체 속에서 함께 부르심을 받았다는 것을 가르치시기 위함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실 때에 우리는 개개인의 인격으로 하나님 앞에 부르심을 받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 나라의 일원으로 공동체 속으로 부르심을 받아 한 몸을 이루는 교회 공동체 속에서 부르심을 받고 그곳에서 하나님을 섬기는 것입니다. 주님은 교회를 자신의 몸으로 삼고 계시며 이 몸은 여러 지체들로 구성되어 한 몸이 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기도 속에서 우리라는 표현을 사용하심으로 나 개인이 하나님 나라에 참여하며 하나님을 나라를 세우는 자가 아니라 우리는 함께 기도하는 공동체로 부르심을 받았으며 함께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자리로 부르심을 받았다는 것을 상기시키는 것입니다. 우리 라는 것은 서로 관계 속에서 연합된 것을 가리킵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우리로 부르신 것은 우리를 통하여 내가 성장하고 성숙하며 온전함에 이르는 방법과 훈련을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랑은 혼자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며 섬김도 봉사도 용서도 혼자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이기 때문에 행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제 세번째로 하늘에 계신 이라는 것에 대하여 살펴보겠습니다. 왜 주님은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라는 표현으로 하늘에 계신 이라는 말씀을 하셨는가 하는 것입니다. 이에 대한 하이델베르크 교리문답의 가르침을 보면 하나님의 천상의 위엄을 땅의 것으로 생각지 않고, 그의 전능하신 능력으로부터 우리의 몸과 영혼에 필요한 모든 것을 기대하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이 말을 쉽게 설명하면 우리가 하나님을 부를 때에 하늘에 계신 분으로 부르는 이유는 그분이 땅의 우리와 다름을 말하기 위함이라는 것입니다. 그분은 우리와 질적으로 존재 자체로 다르신 분이라는 사실을 가르치기를 원하셨습니다.

        성경이 하나님을 하늘에 계신 분으로 표현할 때마다 그 안에 담겨진 의미는 그분은 전능하신 분이라는 사실과 그분은 전지하신 분이라는 사실을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처럼 제한된 육체를 가지고 있지 않으실 뿐만 아니라 그분은 우리처럼 미련하거나 무지하거나 모르는 것 투성이의 존재가 아니라 모든 것을 아시는 구별된 분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마다 우리 아버지는 하늘에 계시다는 사실을 스스로 인식하도록 해야 합니다. 이 말은 하나님께는 불가능한 일이나 못하실 것이 없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생각과 사고를 뛰어 넘은 제한이 없는 지성을 가지고 계시며 우리가 불가능하다고 여기는 모든 일도 그에게는 아무런 어려움 없이 하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천지를 말씀으로 지으셨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처럼 작은 일도 직접 몸으로 힘으로 해서 하는 분이 아니십니다. 있으라 명하시면 모든 것이 되어지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렇기에 우리의 몸과 영혼에 필요한 모든 것을 기대할 수 있는 것입니다. 기도는 이러한 기대를 가지고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께 구하는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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