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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말씀
2022.04.12 11:31

십자가의 고통 히브리서 12장 2절

Y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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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 말씀 영상 https://youtu.be/GCpQRK2avqQ


우리가 오해하지 말아야 하는 것은 바울이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에 참여 한다고 할 때에 그 의미는 다르다는 것입니다. 골로새서 1 24절을 보면 바울은 이제 너희를 위하여 받는 괴로움을 기뻐한다고 합니다. 바울이 골로새 교인들을 위하여 받는 괴로움이란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과정 가운데 받는 핍박을 의미합니다. 그러한 가운데서도 바울은 기뻐한다고 합니다. 또한 그는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자신의 육체에 채운다고 하는데 여기서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이 무엇인가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무엇인가를 알 수 있는데 그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라는 표현이 바로 그것입니다. 즉 주님의 몸된 교회가 세상으로부터 박해를 받고 핍박을 받는 것입니다. 교회는 주님의 몸이기 때문에 교회가 박해를 당하고 핍박을 당하는 것은 바로 주님의 고난인 것입니다. 이에 대하여 주님께서 바울을 만나셨을 때에 주님은 자신을 나는 네가 핍박하는 예수라고 하십니다. 바울이 주님을 어떻게 핍박하여 고난을 준 것입니까? 그분의 교회를 핍박하고 박해 하는 것이 바로 주님이 고난을 당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은 주님께서 고난 주간에 받으신 고난과는 다른 것입니다. 주님이 받으신 고난 주간에 당하신 고난은 한번이며, 영 단번에 이루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그 고난에 참여 할 수도 없고, 그 고난을 자신의 육체에 담아 내려고 하는 것은 어리석은 것입니다.

이제 이에 대하여 우리 주님이 당하신 고난의 의미에 대하여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히브리서 122절을 보면 이 구절을 이해할 때에 주의해야 하는 것은 비록 주님께서 십자가를 참고 견디신 것이 우리 또한 고난을 참고 견뎌야 할 모범으로 제시되고 있지만 여기에는 큰 차이가 있는데 우리가 당하는 고난과 그리스도께서 지신 십자가의 고난은 질적으로 큰 차이가 있으며 내용적으로 큰 차이가 있다는 사실입니다. 먼저 우리가 생각할 것은 복음서에서 십자가를 지시기전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죽음 앞에서 보인 그분의 마음을 표현한 단어들이 상당히 격정적이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첫째로 누가복음 1250절을 보면 여기서 주님은 답답함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시는데 압박감 혹은 고통을 당함이라는 뜻입니다. 둘째는 요한복음 1227절을 보면 예수님께서는 내 마음이 괴로우니 라고 하십니다. 이 단어는 동요되어서 라는 의미로 평정심을 잃어 버릴 정도가 되셨으며 주님은 이미 아버지께 나를 구원하여 이 때를 면하게 하여 달라고 기도해야 할까? 라고 생각할 정도라는 것입니다.

        그 외의 표현들을 보면 마태복음 26:37절에서26:27절 고민하고 라는 단어는 낙담이 조금 섞여 있을 수도 있는 혐오스러운 반감이며 슬퍼하사 라는 단어는 슬픔에 사로잡혀서 도저히 빠져 나갈 수 없는 정신적 고통, 또는 고민을 가리킵니다. 마가복음 14:33절에서는14:33절 심히 놀라며 슬퍼하사 라는 단어로 마음을 표현하시는데 소스라치게 놀라 움츠러들고, 마음이 큰 고통에 사로잡힌 상태를 말합니다. 결국 십자가를 지시기 전 예수님께서는 불안한 마음으로 거의 공포에 가까운 감정을 느끼시며 감정의 큰 고통 가운데 땀을 뻘뻘 흘리고 계셨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지신 십자가의 무게가 얼마나 큰 것인지를 짐작케 하는 것인데 우리는 주님이 지신 십자가의 무게가 얼마나 큰 지를 상상 할 수 조차 없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지신 십자가의 고통에 대하여 주님은 요한복음 1811절에서 아버지께서 주신 잔이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이 잔이 의미하는 것은 십자가의 죽음임은 더욱 분명한 것은 예수님께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세번 하나님께 나아가 기도하실 때에 이 잔을 내게서 옮겨 달라는 청원을 하심으로 이것이 바로 십자가의 죽음임을 알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제 이 잔이 무엇인가 하는 것이며 왜 주님께서는 이 잔을 마시지 않고 지나가시기를 기도하셨는가? 하는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생각하는 고난의 잔의 의미는 십자가를 지실 때에 당하게 되실 육체적 고통으로 채찍과 십자가에 달리심과 자기 제자들이 자신을 배신하고, 부인하고, 버린다는 정신적 괴로움과 자기 대적들의 모욕과 학대, 이런 것들이 고난의 잔이라고 여겨지는 것들입니다. 만약 이러한 것이 예수님께서 그토록 지나기를 원했으며 마시기를 원하지 않으셨던 잔의 의미라면 이것은 예수님께서 살아온 삶의 방식과 너무나 다르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육체적 고통을 마다하지 않으셨으며, 고통이나, 모욕이나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으셨다는 것입니다.

        또한 만약 육체적, 정신적 고통이 고난의 잔의 내용이라면 예수님께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과 명령들과 가르침들은 거짓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그들이 모욕을 당할 것을 말씀하셨으며, 핍박과 박해를 당할 때에 기뻐하고 즐거워하라고 가르치셨기 때문입니다. 마가복음 511-12절을 보면 또한 마태복음 1028절을 보면 예수님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말 것을 가르치셨으며, 고난 당하는 것과 미움을 받는 것을 마땅히 여기라고 가르치신 것입니다. 그러면서 자신은 육체의 고난과 정신적 고통과 수치와 멸시를 피하고자 하셨다면 주님을 위해 목숨을 내 놓았던 사도들과 그 후에 주를 믿는 믿음을 위해 죽은 모든 순교자들보다 못한 것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결코 육체적, 정신적 고통과 수치와 멸시를 피하기 위하여 멈칫하시거나 또는 이 잔이 지나가시기를 원하셨던 것이 아닙니다. 그가 아버지로부터 받은 이 잔은 성경이 완전히 다른 차원의 잔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이 잔은 온 세상의 죄를 짊어진다는 영적인 고뇌이며, 그 죄 위에 떨어지는 하나님의 심판을 견뎌야 한다는 영적 고통인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들은 구약을 통하여 입증이 되는데 아버지께서 주신 이 잔은 구약에서 하나님의 진노가 담긴 여호와의 잔으로 이 잔에는 죄인을 향한 하나님의 진노가 가득 담겨져 있음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에스겔서 23:32-34절을 보면 여기에 깊고 크고 가득히 담긴 잔이라고 표현되고 있는 것은 놀람과 패망의 잔이며 근심하게 하는 잔입니다. 이 잔은 악인들에게 마시게 하는 하나님의 진노의 잔인 것입니다.

성경에 나타난 잔에 대한 말씀 들을 살펴보면 하나님의 진노의 잔은 불순종하는 그의 백성에게만 내려진 것이 아닙니다. 예레미야서 25:15절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에게 여호와의 손에 있는 진노의 술잔을 받아 모든 나라고 마시게 하라고 합니다. 그리고 18절을 보면 예루살렘과 유다 성읍들과 그 왕들과 고관들로 마시게 하였더니 그들이 멸망과 놀램과 비웃음과 저주를 당하였다고 합니다. 바로 이것이 여호와의 잔에 담긴 것이며 잔을 마시는 자들이 당하게 되는 것들입니다.

        이러한 동일한 상징이 계시록에서도 기록되어 있는데 계시록 14:10-11절을 보면 하나님의 진노의 포도주를 담은 진노의 잔을 바벨론에게 마시게 하는데 불과 유황으로 고난을 받게 됩니다. 이 고난은 멈추지고 않고 세세토록 지속되며 밤낮 쉼을 얻지 못하게 되는 고난인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러한 잔에 대한 상징들을 알고 계셨으며 지금 자신 앞에 놓인 그 잔이 악인에게 주어지는 하나님의 진노의 술로 채워져 있다는 사실을 직시하고 계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왜 이 잔을 마시기를 머뭇거리며 두려워하며 공포와 낙심의 마음을 가지게 되셨는가를 생각할 때에 그가 십자가를 지심으로 죄인들의 죄를 담당하실 때에 그는 죄인과 같이 되어야 되셨으며, 그의 무죄한 영혼은 인간의 죄에 접촉되는 것을 회피하고자 멈칫거렸던 것입니다. 더욱 큰 고통은 죄에 대한 심판이 가져다 줄 자기 아버지로부터의 소외의 경험에 대하여 그는 두려움을 느끼고 뒤로 물러나셨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한번도 성부 하나님과 분리된 적이 없으셨습니다. 그러나 죄인들의 죄가 그분 위에 쏟아 부어질 때에 성부 하나님은 예수님을 외면하셨으며 예수님께서는 성부 하나님과 분리 되셨으며 부재를 경험하신 것입니다. 그렇기에 엘리 엘리 라마사박다니 라는 외침을 하신 것입니다.

그것이 아니라면 예수님은 단 한 순간도 저항하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무서운 흑암이 주님의 영혼을 삼킴에 따라서 그분의 눈이 흐려졌을 것이 분명하지만 그러나 주님의 의지는 여전히 하나님께 복종하고 있었습니다. 그랬기에 주님은 그의 기도에서 내 아버지여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라고 기도하셨다가 끝날 때에는 언제나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라는 말로 끝 맺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이러한 고난은 바로 우리의 죄의 무서움과 죄를 사하기 위하여 유일한 방법으로 마련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합니다. 사람들은 죄 사함이 쉽고 간단한 일이며,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을 정도의 문제가 아니라고 여깁니다. 또한 주님의 십자가의 죽음이 얼마나 주님께 조차도 두렵고 무서운 것인가를 알지 못하기 때문에 자신의 죄에 대하여도 깊은 문제 의식을 가지지 못하며, 죄 사함의 은혜가 다른 어떤 것들보다 크고 놀라운 복이며 은혜라는 사실을 알지 못하는 것입니다. 참된 신자는 자신의 죄의 크기와 범위와 힘과 위력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러한 죄가 어떻게 사해질 수 있는지에 대하여 바른 이해를 가지고 있어야 할 뿐만 아니라 그 일을 이루신 예수 그리스도와 성부 하나님께 마땅히 영광을 돌려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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