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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 설교 영상 https://youtu.be/91Hlt4NR4Hg


오늘 우리가 함께 살펴볼 본문은 죄의 세력과 그 힘이 얼마나 강한지를 말해주고 있으며 죄는 어떻게 활동하며 죄가 노리는 것이 무엇인지를 말해줍니다. 5절을 보면 가인은 몹시 분하였고 안색이 변하였습니다. 분하였다는 말은 뜨겁게 달아 오르다 라는 뜻으로 화가 난 상태를 말합니다. 지금 가인의 분노의 대상은 누구입니까? 하나님입니다. 이유는 하나님께서 자신의 제사를 받지 않으셨다는 것입니다. 가인의 감정에 분노나 화를 불러일으키는 원인은 자신이 부당한 대우를 당하였다고 생각할 때입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을 불공평하게 대우하고 있으며 하나님은 아벨을 편애하셔서 자신의 제사가 열납되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6절과 7절을 보면 이러한 가인의 감정이 옳은 것이 아님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가인의 하나님에 대한 제사는 뭔가 문제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가인을 편파적으로 대하거나 불공평하게 취급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문제는 그 안에 선을 행하지 않고 있음이 문제입니다.

        죄는 하나님과 원수라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죄는 하나님을 대적하며 하나님을 향하여 거짓과 독기를 뿜습니다. 죄는 가인의 마음을 사로 잡았습니다. 그의 마음에 자신의 잘못을 가리웠습니다. 그의 지성에 독을 뿜어 자신의 문제를 보지 못하게 했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불공평한 대우를 받고 있으며 하나님이 자신을 하찮게 대우하고 있다고 여기게 하였습니다. 그래서 자신의 제사를 받지 않았다고 믿게 하며 분노의 감정을 타오르도록 부채질 하고 있습니다. 죄가 무기는 감정을 충동질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지성을 마비시킨다는 것입니다. 눈을 가려 보지 못하게 하고 마음을 가려 깨닫지 못하게 합니다. 그래서 자신의 말만 듣게 하는 것입니다. 죄의 무서움은 죄가 마음을 사로잡는 순간 그는 파멸의 길을 갈 수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가인을 향한 하나님의 은혜가 나타나는데 하나님은 가인에게 선을 행하지 않으면 이라는 경고를 합니다. 선을 행하지 않으면 이라는 말은 만일 좋게 만들지 아니하면 이라는 뜻입니다. 무엇을 좋게 만들어야 합니까? 그의 마음을 좋게 만들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 다음에 나오는 말이 죄를 짓고자 하는 상태에 대한 경고이기 때문에 가인은 자신의 마음을 절제하며 통제하여야 합니다. 하나님은 네 마음을 다스리고 분노를 삭이고 감정을 통제하라고 요구하시는 것입니다. 왜 그렇게 해야 하는가 하면 죄가 문에 엎드려 있기 때문입니다. 죄가 문에 엎드려 있다는 말은 마치 맹수가 갑자기 달려 들려고 숨어서 웅크리고 있는 상태를 말하는 것으로 죄가 지금 문에 너를 덮치기 위해서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고 있으니까 네 마음을 좋게 만들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가인은 이미 죄에 사로잡혀 있었습니다. 그의 마음을 죄에 지배아래 놓여 있고 그는 죄가 지시하는 대로 여전히 분노와 광기로 그의 마음을 가득 채웠습니다. 죄가 그를 원하는 대로 그는 죄에게 자신을 내어주게 되는 것입니다. 죄는 스스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죄의 도구는 사람의 지체입니다. 죄는 사람의 감정을 충동질하고 이성을 마비시켜 그의 몸을 마치 자신의 몸처럼 사용하여 죄의 열매들을 맺히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가인에게 죄를 다스리라고 경고하십니다. 죄의 지배를 받지 말고 죄를 지배하라는 것입니다. 죄에 사로잡힌 자의 특징은 하나님의 경고가 들리지 않기에 무시한다는 것입니다. 죄를 지배하라는 명령에 실상 인간은 죄를 지배할 수 없는 상태에 있다는 것이 인간의 비참함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실 수 밖에 없으며 죄를 멸하시는 일을 하시게 된 것입니다. 주님은 단순히 죄를 사하러 오신 것이 아닙니다. 죄를 멸하며 마귀의 일을 멸하러 오신 것입니다.

        8절을 보면 죄에 사로잡힌 가인이 벌이는 참혹한 장면이 나타납니다. 죄의 특징은 죄는 그 죄의 열매가 맺히도록 집요하고 끈질기며 한번 물은 것은 놓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가인과 아벨은 들에 있었습니다. 그곳에서 가인은 아벨을 쳐죽였습니다. 인류가 창조되고 2세대에서 살인이 일어난 것은 타락이 얼마나 급속도로 진행되었으며 죄의 세력이 얼마나 큰가 하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런데 아벨은 왜 들로 갔습니까? 여기서 들이라는 곳으로 사람들의 인적이 드문 곳이며 한적한 곳입니다. 마치 살인하기에 딱 어울리는 장소입니다. 이곳에 아벨이 왜 갔는지를 말해주는 것은 가인이 그의 아우 아벨에게 말하고 라는 말씀에서 찾아 볼 수 있습니다. 가인이 아벨에게 말했습니다. 무슨 말을 했는지는 모릅니다. 그리고 그 다음에 나오는 말이 그리고 그들이 들에 있을 때입니다. 이 의미는 가인이 아벨을 따로 불러 내었음을 의미합니다.

        죄는 열매를 원하며 죄는 가인을 원하였습니다. 가인의 마음을 사로잡은 죄는 그로 하여금 때를 기다리게 하였고 아벨을 불러냅니다. 여기서 가인의 모습은 아무런 낌새를 느낄 수가 없는 상태입니다. 그가 아벨을 들로 불러내려는 것은 그와 말하기 위함이 아니라 그를 죽이려는 계획의 일환입니다. 그런데 그는 조용하고 감정의 변화 없이 너무나 능숙한 살인자처럼 아벨에게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죄의 특징은 죄를 죄로 여기지 않게 감추며 속인다는 것입니다. 죄를 지어도 죄에 대하여 무감각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이것은 인류역사상 첫 번째 살인입니다. 어느 누구도 앞서 살인을 해 본적도 하려는 시도도 없었습니다. 가인 또한 처음 하는 일이며 생명을 빼앗는 일입니다. 그것도 자신의 동생을 죽이는 일입니다. 그러데 그는 주저 없이 죽입니다. 만약 그가 죄책감이 죄의식을 가지고 있었다면 그렇게 할 수 없습니다. 죄에 사로잡히고 죄의 지배를 받는 자에게 죄책감과 죄의식에 대한 기능은 죽어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작동되는 순간 죄는 그 힘을 잃게 되기 때문에 죄는 인간의 감정을 완전히 사로잡아 광기와 분노로 가득하게 하여 오직 자신에게만 복종하며 충성하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광기에 물들고 죄의 충동에 이끌리자 전날까지 찬양하며 메시야로 외치던 예수 그리스도로를 십자가에 못박으라고 미친듯이 소리지는 모습으로 돌변하였습니다. 죄가 사람을 사로 잡으면 그 순간 자신만이 아니라 자식을 죽이고 타인을 죽이는 자로 변하게 되는 것입니다. 죄는 자신을 감추어 자신이 저지르는 일들이 무엇인지 모르게 합니다. 지성과 감정을 속이며 가리우는 것입니다.

        9절을 보면 아벨을 찾으시는 하나님의 모습이 나타납니다. 가인에게 네 아우 아벨이 어디 있느냐고 물으십니다. 몰라서 물으시는 것이 아닙니다. 가인으로 하여금 자신의 죄가 무엇인지를 인식하게 하고자 함입니다. 이에 대하여 가인의 대답을 보면 내가 알지 못하나이다 라고 합니다. 이 말은 내가 절대로 알지 못하나이다 라는 강한 부정과 더불어 내가 아우를 지키는 자냐고 되려 하나님께 화를 냅니다. 죄의 특징은 하나님이 모르실 것이라고 믿게 한다는 것입니다. 죄는 자신에게 사로잡힌 자들에게 거짓 정보로 속임을 일으키는데 죄를 짓는 자들의 마음에 하나님께서 모르실 것이라고 속삭입니다. 그래서 죄를 짓는데 두려움이 없게 합니다. 둘째로는 하나님께서 죄에 대하여 아무런 관여를 하지 않을 것이라고 속삭입니다. 죄를 지어도 아무런 해가 미치지 않을 것이라는 거짓된 평안을 심어주는 것입니다. 세번째로는 죄를 지어도 이것이 큰 문제는 아니라는 점을 부각시켜 죄를 짓는 마음에 위로를 줍니다. 이 죄를 짓는 다고 네 신앙에 문제가 생기는 것은 아니야 네가 예배드리지 않는다고 기도하지 않는 다고 네게 큰 문제가 발생하지 않아 너에게 아무런 해도 입지 않아 라는 거짓된 속임수로 속입니다.

        하나님이 모르시고 하나님께서 죄를 범하는 자들에게 아무런 심판도 내리지 않으리라는 것은 죄의 속임수입니다. 인간의 죄가 그리스도 예수의 죽음을 필요로 했다면 여전히 그러합니다. 여전히 모든 죄는 그리스도의 죽음을 요청할 정도로 크고 엄중하며 자신을 죽음에 이르게 한다는 생각을 하여야 합니다. 죄에게 속아 죄를 지어도 자신의 인생에 자신의 영혼에 아무런 문제가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은 죄의 거짓된 속임수입니다. 하나님은 반드시 벌하실 것이며 죄에 대한 책임을 물으실 것입니다. 11절과 12절을 보면 가인이 하나님으로부터 저주를 받습니다. 그는 땅에서 버림을 받을 것이며 유리하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         유리한다는 말은 방황하는 자라는 것입니다. 그는 계속해서 성을 쌓는 일을 합니다. 왜냐하면 그의 마음에 두려움이 있기 때문이며 불안한 마음이 그를 지배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는 하나님을 떠나 영원히 버림받은 자가 되었습니다. 여러분 기억하십시오. 죄는 절대로 책임을 지지 않습니다. 죄가 주는 평안과 만족과 기쁨을 추구하면 죄는 우리 마음에 그것을 주는 것이 아니라 결국에는 우리의 영혼이 망하며 죽게 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이때에 죄는 그 목적을 다했기에 더 이상 우리와 관련이 없는 것입니다. 죄의 목적은 영원한 불행이며 파멸이며 죽음입니다. 그 길을 가도록 우리의 마음을 충동과 무절제와 욕망으로 채워 마치 만족을 줄 것처럼 마치 행복할 것처럼 마치 평안할 것처럼 속이는 것입니다. 죄가 여러분의 마음을 지배하지 못하도록 하나님의 말씀으로 채우고 성령으로 충만하시길 기도하셔야 합니다. 


주일 말씀 요약 및 설교 영상

주일 말씀 컬럼 안에 설교 영상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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