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ip to content

YC
조회 수 26323 추천 수 0 댓글 0

설교 영상 https://youtu.be/wmpQ-1MkSOI


문맥 속에서 지금 주님께서 제자들의 시선과 마음을 어떻게 인도해 가시는지를 깨닫습니까? 주님은 마음에 근심하는 이들에게 그들의 시선과 마음을 하나님께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께 고정하라고 합니다. 너희들이 다룰 문제는 닥쳐오는 문제들과 너희 마음을 근심하게 문제들이 아니라 하나님을 믿는 것이며 예수님을 믿는 것이다 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첫째 입니다. 그럼 이제 우리의 시선을 우리를 괴롭게 하는 문제로 가도 됩니까? 라는 질문에 주님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너희의 시선과 마음은 어디로 가야 할 곳은 이 땅이 아닌 너희를 위하여 준비하고 예비된 아버지의 집으로 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왜 우리를 위해 예비되고 준비되는 하나님의 집을 우리 마음을 근심하게 하는 일보다 앞서 보아야 하며 생각해야 합니까? 왜냐하면 이 세상의 삶은 다음 세상의 관점에서 바라볼 때에만 진정으로 이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 우리의 관점과 시각을 이 땅의 삶이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세상을 향하도록 하시는 이유는 현실을 도피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문제들을 회피하고 생각하지 말라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은 현재의 삶이 우리의 영원한 삶에 어떤 의미가 있으며 어떤 가치가 있는가 하는 것을 보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신자는 이 땅에서만 사는 자들이 아니며 이 땅의 삶의 끝이 나면 사라지는 존재들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히브리서를 보면 이러한 삶을 살았던 이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히브리서 11 13절과 14절을 보면 이 사람들은 다 믿을 따라 죽었다고 하는데 이는 믿음으로 살다가 죽었다는 것입니다. 이들이 믿음으로 살다가 죽었다는 것이 어떤 상황이었는지를 알게 되는 순간 우리를 당황스럽게 하며 놀라게 합니다. 왜냐하면 믿음으로 살다가 죽은 이들은 약속을 받지 못한 자들이었기 때문입니다. 이 말씀은 약속하였지만 그것이 실현되는 것을 보지 못한 것입니다. 이들은 단지 말로만 언질을 받은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그것을 멀리서 볼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그들은 환영하였다고 합니다. 환영하다는 말은 만세를 부르며 기뻐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이들이 말로만 언질 받은 것은 오실 예수 그리스도 그리고 그분을 믿음으로 세워질 허다한 수의 하나님의 백성들입니다. 또한 그들과 함께 거하게 될 하나님의 나라 즉 하나님의 집에 대한 약속입니다.   이들과 우리의 큰 차이는 그들은 하나님을 믿었고 예수님을 믿었으며 그들의 눈을 돌려 하나님의 집을 사모하며 그 집을 보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들은 이 땅에서의 삶을 외국인이요 나그네의 삶이라고 인정하였고 고백하였습니다. 이 단어는 공언하다 라는 뜻을 포함하고 있는데 공적으로 선포한 것입니다. 그 다음의 히브리서 11 15절과 16절을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은 그들의 조상들의 땅인 갈대아 우르를 사모한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들은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였다고 합니다. 그들이 사모하는 본향은 하늘에 있는 것입니다. 이 곳은 하나님께서 그들을 위해 예비하신 곳으로 이들은 그곳이 자신들이 갈 곳으로 여기며 그곳을 사모하며 살았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이것이 주님이 우리에게 말씀하시고자 하시는 내용입니다. 주님은 우리로 하여금 육체를 위한 삶을 넘어 영혼을 위한 삶으로 우리를 인도하시고자 하시는 것입니다. 신자는 썩어질 육체를 위해 살도록 부르심을 받은 존재가 아니라 영원토록 하나님과 함께 할 영혼을 위해 일하도록 부르심을 받은 자입니다. 누가복음 12 19-20절을 보면 어리석은 부자는 이 땅에 쌓아 놓은 물건을 바라보며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고 합니다. 그의 어리석음은 그의 영혼의 주인이신 하나님께서 그 영혼을 불러 가시게 되는 순간 그가 이 땅에 쌓아 놓은 모든 것들은 헛된 것이 될 뿐만 아니라 그는 자신의 영혼이 가서 편히 쉬게 될 하나님을 집에 거할 곳이 없으므로 망하게 된 것입니다.

         육체를 위해 일하지 말고 영혼을 위해 일하라는 것은 직장에 가지도 말고, 사업도 하지 말고, 가정도 돌보지 말라는 것이 아닙니다. 이 모든 것을 행하되 이 모든 것들의 주된 목적이 육체를 만족시키기 위한 것이 아니라 다음 삶을 준비하는데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의 마음이 이 땅에서 영원히 살 집을 만들기 위해 열심히 일하고 있는가? 내 모든 수고와 노력의 목적이 이 땅에서 얻게 될 것을 바라보며 그것을 위한 것인가? 아니면 내 모든 수고와 노력은 다음 삶을 준비하기 위하여 일하고 있는 것인가를 살펴보셔야 합니다.

         그렇다면 이 둘의 차이는 무엇입니까? 큰 차이는 기쁠 때 보다는 실망이나 낙심이 될 때 납니다. 기쁠 때는 이것이 하나님 때문에 기뻐하는 것인지 아니면 일이 잘 돼서 기뻐하는 것인지를 잘 구분할 수가 없을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실패나 낙심이나 기대나 소망이 무너지게 될 때에 이 땅에 소망을 두며 살아가는 자는 어쩔 줄 몰라 하며 두려움에 휩싸이고 근심으로 인해 고통을 당하게 됩니다. 사람을 의지하려고 하며, 일에 미친 듯이 매달리기도하고, 분노에 휩싸이기도 하고, 무기력감에 시달리기도 하고, 죽고 싶음 마음이 들며, 오락이나 다른 기타 쾌락에 빠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육체를 위해 살지 않고 영혼을 위해 살아가는 자는 이 땅에서 실패에 대하여 깊은 낙심이나 좌절에 빠지지 않습니다. 비록 근심이 찾아 오고 절망이 찾아오지만 금세 그는 하나님을 찾고 구하며 예수님의 은혜를 사모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나아갑니다. 그리고 오직 자신의 소망은 하나님께 있음을 다시 확인하며 하나님께서 자신의 삶의 주인이심을 고백합니다. 그리고 자신을 불쌍히 여기되 이 일로 인해 염려 하지 않게 해 달라고 기도 할 뿐만 아니라 참고 인내할 수 있는 믿음을 달라고 기도합니다. 그는 자신의 마음이 하나님을 믿음 안에 사는 일에만 온 힘을 기울일 수 있도록 하는데 더욱 관심을 기울이게 되는 것입니다.

         영혼을 위해 사는 자들이 왜 삶의 고통 가운데서도 그리고 연이은 불행한 일을 당해도 낙심하지 않는 이유는 그들이 살고 죽는 것이 하나님의 주권에 속해 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죽음도 두렵지 않은 것입니다. 빌립보서 1 21절을 바울은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하다고 합니다. 사람들이 왜 발버둥치며 살려고 애를 쓰는가 하면 죽는 것이 두렵기 때문입니다. 죽으면 끝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죽는 것만큼은 피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일에 매달리는 것도 사실은 죽지 않기 위해서 입니다. 건강에 매달리고 병에 걸리는 것이 두려운 이유는 죽기를 무서워하기 때문입니다. 돈에 집착하는 것도 실상은 죽지 않으려는 것입니다. 그러나 신자에게 죽음은 불행한 것이 아닙니다. 죽음은 우리가 기다리며 사모하던 주님께로 가는 것입니다. 바울이 말하는 것처럼 죽는 것도 유익한 것입니다.

         주님께서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라고 하신 것을 기억하십시오. 우리의 근심은 살기 위한 것이며 죽기를 무서워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들은 죽음 이후에 주님께서 예비한 주님이 계신 곳으로 가실 것을 믿으십니까? 주님께서 내가 너희를 위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을 두셨다는 말씀을 믿어야 합니다. 우리에게는 영구한 집이 이 땅이 아니라 이 땅 이후에 있습니다. 그곳이 우리가 가야 할 곳입니다. 그곳을 우리가 바라 본다면 이 땅에 일로 우리가 근심하며 걱정하는 이유는 무슨 이유입니까? 이 땅에서 오래 살지 못할까 봐 두려우신 것입니까? 정말 이 땅의 삶이 이 후에 우리가 거할 곳보다도 더 좋다고 생각하십니까? 그렇다면 여러분들은 하나님을 믿지 않는 것이며 주님을 믿지 않는 것이며 하나님이 예비하신 본향을 믿지 않는 것입니다. 믿는 다면 주님께서 내가 네 거할 곳을 예비하러 가신다는 말씀을 믿는 다면 삶의 문제 앞에 근심하거나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주일 말씀 요약 및 설교 영상

주일 말씀 컬럼 안에 설교 영상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List of Articles
번호 카테고리 제목 날짜 조회 수
528 하이델베르크 교리문답 강해 70 2019.05.01 19860
527 하이델베르크 교리문답 강해 69 2019.05.01 21491
526 하이델베르크 교리문답 강해 68 2019.05.01 19237
525 하이델베르크 교리문답 강해 67 2019.05.01 20239
524 주일말씀 부활 아직 개봉되지 않은 선물 <계시록 14장 13절> 2019.04.24 27220
523 주일말씀 하나님과 공감 능력을 상실한 마음 <예레미야 17장 9절> 2019.04.18 26168
522 주일말씀 하나님의 손에 있는 마음 <잠언 21장 1절> 2019.04.11 25725
521 주일말씀 가변적인 것을 떠나 불변적인 것으로 <요한복음 1장 12절과 13절> 2019.04.04 25661
520 하이델베르크 교리문답 강해 66 2019.03.31 22481
519 하이델베르크 교리문답 강해 65 2019.03.31 21072
518 하이델베르크 교리문답 강해 64 2019.03.31 20494
517 주일말씀 그 이름을 믿는 자에게 <요한복음 1장 12절과 13절> 2019.03.28 26960
516 주일말씀 당신의 인생이 안전 하려면 <요한복음 1장 12절> 2019.03.21 26372
515 하이델베르크 교리문답 강해 63 2019.03.15 20280
514 하이델베르크 교리문답 강해 62 2019.03.15 20882
Board Pagination Prev 1 ... 29 30 31 32 33 34 35 36 37 38 ... 69 Next
/ 69

차타누가 열린교회 CHATTANOOGA YEOLIN PRESBYTERIAN CHURCH
1622 HICKORY VALLEY RD. CHATTANOOGA, TN 37421
담임 : 박경호 목사 Ph : 423-645-7910 Email : pkrain1@gmail.com

abcXYZ, 세종대왕,1234

abcXYZ, 세종대왕,1234

나눔글꼴 설치 안내


이 PC에는 나눔글꼴이 설치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 사이트를 나눔글꼴로 보기 위해서는
나눔글꼴을 설치해야 합니다.

설치 취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