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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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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영상 https://youtu.be/4B1uyXdOAws


오늘은 2절을 좀더 집중하여 살펴보려고 합니다. 2절을 보면 우리는 이 구절을 앞의 구절과 연결하여 이해하여야 합니다. 즉 이 구절은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는 말씀에 대하여 주님이 주시는 연속적인 해결책 가운데 하나입니다. 우리의 마음이 세상과 세상에 속한 것들로 인해 흔들리고, 중심을 잡지 못하여 허둥대며, 갈팡질팡하여 두려움이라는 나락으로 떨어져 고통 당하지 않기 위해서 우리는 주님과 주님이 하시는 일에 대하여 우리의 생각과 마음을 고정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잊지 말아야 할 것은 믿음은 먼 미래에 일어날 일들을 준비하는 것 뿐만이 아니라 지금 이라는 현실 속에서 효력을 발휘하며 현재의 신자의 삶에 엄청난 영향을 미친다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우리의 현실의 삶에 근심 없는 삶의 유익함을 주시기 위한 방법은 주님이 하시는 일을 생각해 보라는 것입니다. 제자들의 마음이 근심에 휩싸인 이유는 주님이 곧 자신들을 떠나신 다는 것입니다. 그 떠나심은 그가 죽으신다는 것을 암시하셨습니다. 복음서를 보면 이미 주님의 죽으심에 대하여 강력하게 반대하며 제지를 하였던 제자가 있었습니다.   베드로는 주님의 죽으심의 의미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였기에 반드시 자신을 위하여 주님께서 하셔야만 하는 일 조차도 막아서는 우를 범한 것입니다. 우리는 적어도 이렇게까지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으심에 대하여 무지하지는 않습니다. 주님의 죽으심이 반드시 우리에게 필요하며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심은 나의 죄책을 해결하시고 우리는 마귀의 권세에서 놓이게 하려 하심이라는 사실 정도는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알고 있는 주님의 죽으심 가운데 오늘 주님이 말씀하시는 내용을 더하여 알아야 하며 더하여 믿어야 합니다. 요한복음 14 2절을 보면 여기서 우리가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하는 것은 내가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러 간다는 말씀입니다. 주님은 현실의 삶에서 고통스러워 하며 세상과 맞서 믿음으로 살기 위해 세상과 세상에 속한 것들을 사랑하지 않으며, 세상의 염려에 매이지 않고, 세상의 즐거움과 쾌락과 만족을 따라 살지 않고,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하는 일에 온 힘을 기울여 사는 자들에게 위로와 힘을 주며 강력한 위안을 주고자 하심입니다.

         어떻게 이 말씀이 우리의 위로와 위안이 됩니까? 첫째는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다는 것입니다. 여기에 사용된 거하다는 단어가 좀 모호합니다.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지 불분명하기 때문입니다. 분명한 것은 이것이 가리키는 것이 임시적 거쳐가 아니라 항구적 거처라는 사실입니다. 둘째는 주님께서 이 거처를 예비하러 간다는 것입니다. 이 내용에서 주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일하고 계시다는 사실을 먼저 지적해야겠습니다. 주님은 우리를 위해서 일하십니다. 이 땅에서 그의 육신적 삶의 마지막 순간까지 우리를 위하여 일하시며 마지막까지 우리의 거처를 예비하러 가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주님이 우리를 위하여 하신다는 거처를 예비하러 간다는 말이 무슨 말인가 하는 것입니다. 이 구절을 바르게 해석하기 위해서는 간다 라는 단어를 먼저 살펴보아야 합니다. 이 단어는 현재형으로 가고 있는 상태를 가리킵니다. 일반적으로 우리가 아는 이 구절의 의미는 예수님께서 부활 승천하신 후에 하나님 우편에 앉으신 다음에 이제 앞으로 있게 될 종말의 때에 구원받을 모든 성도들을 위하여 처소를 마련하고 계신다는 것으로 이해합니다. 그러나 그렇게 이해하면 이 말씀을 주님은 부활 하신고 승천하실 때에나 하시는 것이 시간적으로 맞습니다. 그렇다면 이 구절은 사도행전 1 8절과 9절 사이가 딱 어울리게 됩니다. 왜냐하면 승천 하시고 하나님께로 가셨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주님은 이 말씀을 자신이 잡히시기 전날 밤에 하시고 계십니다. 그러면서 내가 지금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러 간다고, 지금 간다고 말씀하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 구절에서 말하는 거처를 예비한다는 것이 주님이 부활 승천하신 후에 천국에 우리를 위한 건물을 짓는 것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바로 자신의 죽음을 가리키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죽는 다는 사실 앞에 두려워하며 떨고 있으며, 낙심하며, 마음에 근심하고 있는 자들에게 지금 자신의 죽음의 의미를 설명해 주고 계시는 것입니다.

         나의 죽음은 힘이 없어 죽는 것도 아니고, 어쩔 수 없이 죽는 것도 아니고, 억울하게 죽는 것도 아니다. 너희들이 두려워하며 걱정하며, 낙심하며, 근심하는 나의 죽음은 내가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는 죽음인 것이다 라는 것입니다. 어떻게 예수님의 죽음이 거처를 예비하는 죽음이 됩니까? 예수님의 죽음이 그의 죽음이 죄사함을 주는 능력이 있음을 믿는 자들에게, 그리고 그 피를 의지하여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들에게 하나님의 집에 거할 권세를 주시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 어느 누구도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이루신 속죄의 사역을 믿지 않으면서 아버지 집에 갈 수 없습니다. 이 거처를 누가 예비하시고 준비하신 것입니까? 바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예비하고 준비하신 것입니다. 어떻게 준비하고 예비하신 것입니까? 그분이 십자가에서 죄인을 향한 하나님의 진노를 대신 받으심으로 하신 것입니다.

         이미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을 믿음으로 자신의 죄를 위함이라고 고백하는 우리는 이 세상의 어떤 사람도 스스로 아버지의 집에 간 자가 없으며 갈 수 있는 자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저와 여러분들이 처한 비극적인 상태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힘으로 아버지의 집에 갈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오직 우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신 그리스도를 필요로 합니다.

         우리는 주님께서 달려 죽으신 십자가 사건이 우리를 위한 처소를 예비하는 방법이었다는 사실을 믿습니다. 그렇다면 그 십자가를 통하여 어떻게 우리가 하나님의 집에 갈 수 있게 하신 것입니까? 첫째는 율법을 온전히 지키심으로 우리가 아버지 집에 갈 수 있게 하신 것입니다. 율법을 온전하게 지킬 수 있는 자는 이 땅에 하나도 없습니다. 성경은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고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였다고 말씀합니다. 중요한 것은 율법을 어긴 범법한 자는 결코 아버지의 집에 갈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우리를 위하여 율법을 온전히 지키심으로 우리에게 그분의 의를 덧입게 하심으로 우리로 아버지의 집에 갈 수 있도록 예비하신 것입니다.

         둘째로는 주님은 우리의 죄책을 친히 담당하심으로 우리로 아버지의 집에 갈 수 있도록 예비하셨습니다. 성경은 죄는 크기와 강도와 정도의 문제가 아니라 모든 죄의 삯은 사망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죄에 대가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 영광도 감사하지도 않는 모든 죄에 대하여 그리고 자신의 위하여 살았던 모든 죄에 대하여 율법은 책임을 요구합니다. 그것이 율법의 저주이며 모든 인간은 이러한 율법의 저주아래 놓이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스스로 자신이 짓지 아니하고, 관여하지도 않은 죄에 대하여 책임을 지셨으며 율법의 저주를 기꺼이 우리에게 아버지의 집을 예비하기 위하여 즐거움으로 대신 담당하신 것입니다. 그럼으로 우리에게 있던 모든 율법의 저주와 죄책은 사라지게 되었고 우리는 아버지의 집에 갈 수가 있게 된 것입니다.

         셋째로 주님은 우리 원수 마귀가 가지고 있는 죽음의 세력에서 우리를 자유케 하셨습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위해 대신 죽으심으로 마귀의 죽음의 힘을 무력화 시켜 더 이상 우리를 지배하지 못하게 하신 것입니다. 이로 말미암아 우리는 죽음에서 완전히 벗어나 영원한 아버지의 집에 거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넷째로 그분이 죽음의 권세를 이기시고 부활하심으로 인해 그를 믿는 자들도 죽음에서 부활하게 됨으로 아버지의 집에 거하게 하셨습니다. 주님의 부활은 우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신 것에 대한 확신한 보증이 되며 보장이 되는 사건입니다

         우리는 마음에 근심하지 않기 위해서, 우리의 삶이 세상과 세상에 속한 것들과, 또한 하나님을 덜 사랑하게 만들며, 하나님으로부터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돌리게 하는 모든 일상의 일들에 대하여 싸우고자 할 때에 기억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내가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러 간다는 주님의 말씀을 말입니다. 이 땅은 우리의 영원한 거처가 아니며 우리의 거처는 주님이 예비하셨다는 것입니다. 주님이 우리를 위해 예비하신 거처가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그곳에 들어가는 길은 이미 주님이 예비하셨고 준비를 마치셨습니다. 이 모든 일을 주님은 우리를 위하여 하셨습니다. 여러분들은 아버지의 집에 거하는 것을 목표로 삼고 계십니까? 그것이 여러분들이 무엇을 희생하고라도 얻고자 하는 그것입니까? 주님이 여러분들을 위해 예비하신 아버지의 집에 가고자 주님이 예비하신 것들을 붙들고 계시며 그것을 지속적으로 묵상하며 바라보고 살고 있습니까? 또한 여러분들의 마음은 어떠한 상황에도 이겨낼 수 있는 준비가 되셨습니까? 주님이 저와 여러분들을 위해 아버지 집에 거할 처소를 예비하셨음을 믿으십시오. 그리고 삶에 믿음이 굴복하지 않게 하고 오히려 믿음이 삶을 지배하도록 주님을 더욱 붙드십시오


주일 말씀 요약 및 설교 영상

주일 말씀 컬럼 안에 설교 영상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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