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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영상 https://youtu.be/w-jxLy7lB-w


오늘 본문은 한 사람의 죽음과 관련되어서 일어난 사건들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20절을 보면 마르다는 예수님께서 오신다는 말을 듣고 나가 맞이합니다. 그리고 21절을 보면 이 구절에서 우리는 마르다의 감정을 읽을 수가 있습니다. 그녀는 속이 상해 있고 예수님에 대한 원망의 마음이 있다는 것을 보게 됩니다. 왜냐하면 주께서 여기 계셨더라면 내 오라버니가 죽지 않았을 것입니다 라고 말하기 때문입니다. 22절을 보면 그러나 나는 이제라도 주께서 무엇이든지 하나님께 구하시는 것을 하나님이 주실 줄을 아나이다 라고 합니다. 이 구절에서 중심은 나는 안다는 것입니다. 무엇을 아는가 하면 지금이라도 주님이 하나님께 구하기만 하면 무엇이든지 하나님이 주실 것을 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앎이 참인가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다음에 나오는 구절에서 마르다는 알지 못하는 것처럼 말하며 행동합니다.

         23절을 보면 예수님께서 네 오라비가 다시 살아나리라고 합니다. 여기서 살아나다 라는 말은 요한복음에서 8번 사용되었는데 한번을 제외하고는 모두다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는 일과 관련되어서 사용되었습니다. 여기서는 다시 살리라는 예수님의 말씀은 마지막 때에 일어날 육체의 부활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곧 즉시 일어나게 될 육체의 부활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마르다는 이러한 사실을 이해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할 수도 없다고 믿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24절에서 마르다는 예수님의 네 오라비가 다시 살아나리라 라는 말을 지금 즉시가 아니라 마지막 날 부활 때로 한정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즉 마르다는 안다고 하지만 모르고 있는 것입니다.    22절에서의 신앙 고백이 틀렸다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고백을 한다 해도 여전히 모르고 있다는 것이며 그러한 고백이 다가 아니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확인하게 되는 것입니다. 분명한 것은 마르다의 이러한 부활에 대한 이해는 놀라운 것이며 분명 하나님을 통하여 알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여전히 그녀는 자신의 생각에 갇혀 있을 뿐만 아니라 주님의 능력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을 더욱 확인하는 것은 예수님께서 죽은 나사로의 무덤을 막고 있는 돌을 치우라고 명령하실 때에 죽은 지 나흘이 지나 냄새가 난다고 반대하기도 하였다는 것입니다.  25절은 예수님의 말씀의 의도와 목적을 이해하지 못하는 마르다를 향한 예수님의 가르침과 더불어 자신이 누구신지를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25절을 보면 예수님께서는 스스로 자신을 가리켜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께서 스스로를 부활이요 생명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은 본인이 부활과 생명의 주권자라고 선언하시는 것입니다. 부활이나 생명은 다른 누군가가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닐 뿐만 아니라 다른 누군가로부터 얻을 수 있는 것도 아니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 밖에 부활과 생명을 줄 자가 없다라는 선언인 것입니다.

         그래서 다음에 나오는 문장이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라는 말이 나옵니다. 죽어도 살고자 하는 자는 분명이 예수를 믿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절대로 살지 못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죽어도 살겠고 라는 말에 대하여 깊이 생각해야 하는데 죽어도 산다는 것은 부활을 의미합니다. 요한 복음에서 부활을 이야기 할 때에 두 단계를 말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 둘은 곧 영적으로 죽은 자가 성령의 중생으로 말미암아 살아나는 영적인 부활이 있다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5:24절을 보면 여기서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다고 표현하고 있는 것이 바로 그것입니다. 둘째는 마지막 날에 있을 육적인 부활로 말미암아 살아나는 것으로 육체의 부활을 의미합니다. 요한복음 5:29절을 보면 여기서 말씀하고 있는 것은 육체의 부활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즉 요한 복음에서는 두 단계의 부활에 대하여 말씀하고 있고 예수님의 말씀도 두 단계의 부활을 근거로 하여 둘 다를 함께 설명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25절에서 예수님께서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라는 말씀은 육체적 죽음을 의미합니다. 26절을 보면 여기서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안는다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데 이 말은 살아서 나를 믿는 자란 성령의 중생의 결과로 영적으로 살아난 자로 즉 영적인 부활에 참여한 자는 이라는 뜻입니다. 그러한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라고 하는데 이것은 육체가 죽지 않는 다는 말이 아니라 비록 육체가 죽을 지라도 다시 그 육체는 죽지 않을 몸으로 부활할 것이기 때문에 영원히 죽지 않을 것입니다.

         정리하면 마지막에 있을 육체의 부활에 참여 하여 죽어도 살 자들은 그냥 믿는 다고 하는 자가 아니라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여야 한다는 것으로 성령을 통하여 영적인 부활을 경험하며 참여한 자라는 사실을 말하는 것입니다. 즉 살아서 나를 믿어야 그는 영원히 죽지 않게 되는 것으로 영적인 부활을 가지지 못한 자들은 육체적인 부활을 꿈꾸며 소망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요한 복음에는 형식적으로 예수를 믿지만 그 뿌리가 영적인 부활에 있지 않기 때문에 결국에는 예수님을 배척하는 사람들에 대하여 기록하고 있습니다. 요한복음 2:23-24절을 보면 2:23-24절 유월절에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계시니 많은 사람이 그의 행하시는 표적을 보고 그의 이름을 믿었으나 예수는 그의 몸을 그들에게 의탁하지 아니하셨으니 이는 친히 모든 사람을 아심이요 라고 합니다. 그의 이름을 믿었지만 예수님은 그의 몸을 그들에게 의탁하지 않습니다. 이유는 친히 모든 사람을 아시기 때문입니다. 이들의 믿음은 참 믿음이 아니며 성령의 중생을 통한 영적 부활을 경험하지 않은 자들의 형식적 믿음을 뿐인 것입니다.

         또 다른 부류는 요한 복음 6:66절에서 6:66절 그 때부터 그의 제자 중에서 많은 사람이 떠나가고 다시 그와 함께 다니지 아니하더라 라고 합니다. 예수님을 따랐던 제자 중에서 많은 사람이 떠나갔습니다. 그리고 다시 그와 함께 다니지 않았다고 합니다. 이들은 비록 예수님을 따르며 제자라고 하였지만 이제 그 일을 그만 두고 다시 함께 다니지 않은 것입니다. 이들은 영적 부활을 통한 참된 믿음을 가지지 못하였기에 예수님의 말씀에 대하여 어려움을 토로하며 자기들의 이성적 판단으로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따르기를 거부한 것입니다.

         우리는 부활과 생명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에게서만 주어진 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안다고 해서 그 부활과 생명을 소유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야 합니다. 그러나 이 믿음은 영적 부활을 통하여 얻게 된 믿음이어야 합니다. 성령을 통하여 중생을 경험하여야 합니다. 사람들은 육체의 부활에만 관심을 기울입니다. 그러나 이 육체의 부활은 반드시 영적 부활을 경험해야만 가능하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이러한 영적 부활을 위하여 주님께 구하여야 합니다. 성령을 주시기를 구하여야 합니다. 성령이 임하여 중생을 허락해 달라고 간절히 소망하며 기도해야 합니다. 26절에서 주님이 마르다에게 네가 이것을 믿느냐고 물으십니다. 오늘 주님이 우리에게 묻습니다. 이것을 네가 믿느냐, 내가 부활이요 생명임을 믿느냐, 네게 성령을 통한 중생으로 영적 부활에 참여해야 함을 믿느냐, 네가 마지막 날에 있을 육체적 부활에 참여할 것을 믿느냐 라고 물으시는 주님 앞에 우리는 믿음의 대답을 해야 할 것입니다


주일 말씀 요약 및 설교 영상

주일 말씀 컬럼 안에 설교 영상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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