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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영상 https://youtu.be/xzzs8Icgdxs

시편 136편은 감사 찬양 시입니다. 오늘 본문인 시편 136 23절 보면 시인은 하나님께 감사하라고 합니다. 여기서 감사하라는 단어는 명령형으로 하나님께 감사하는 일에 참여 하라 그 일을 하라 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감사하라는 단어의 기본 의미는 던지다 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던지다, 쏘다 라는 뜻이 왜 감사하다 라는 의미가 되었는가는 던지기 위해서는 손을 뻗는 행위가 있어야 합니다. 이 행위는 물건을 던지는 행위도 되지만 누군가에게 손을 펴고 뻗어서 공개적인 고백을 할 때 표현되는 행동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시인이 무엇 때문에 어떠한 이유로 인해 하나님께 감사하라고 하며 감사해야 한다고 요청하고 있는가를 살펴봅시다. 감사하라는 말의 앞의 내용을 보면 우리를 비천한 가운데에서도 기억해 주신 이에게 라고 합니다. 기억해 주신 이는 하나님이십니다. 우리가 여기에서 따로 생각해야 할 것이 감사의 내용으로 그들이 처한 상태와 그 처한 상태에서 어떤 일을 하셨는가에 대한 문제로 분리해서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먼저는 비천이라는 단어를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비천이라는 말은 낯은 신분이나 지위를 가리킵니다. 이것이 어떤 상태를 의미하는지는 의견이 나뉘고 있지만 문맥 속에서 살펴볼 때에 애굽에서부터 가나안에 들어가기 전까지의 전체적인 상황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기 때문에 비천함 즉 신분의 낮음이나 지위의 낮음이란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종 되었고 노예 상태의 비천하였던 것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제 그 상태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가가 감사의 이유인데 하나님께서 비천한 그들을 기억해 주셨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기억하다 라는 말은 실제적 행동이 없는 정신적 작용 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한 상태를 안타까이 보시고 그들을 불쌍히 여기셨으며 하나님의 마음이 움직이셨고 그 결과 그들을 구원해 내셨다는 의미가 함축된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기억하다 라는 뜻의 의미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잊지 않으셨습니다. 여기서 잊다는 의미는 관여치 않으실 뿐만 아니라 마음에서 지워버려 괘념하지 않는 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의 자신의 백성을 향한 성품을 보게 되는데 하나님은 자신의 백성들에 대하여 항상 기억하신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자신의 백성들을 대하는 변함없는 태도요 자세이며 모습입니다. 그렇다면 이에 대한 인간의 하나님에 대한 자세와 태도는 어떻습니까? 우리는 늘 하나님을 기억합니까? 늘 하나님을 생각합니까? 내가 힘들고 어려울 때가 아니어도 고통이 지나가고 평안이 찾아올 때에도 우리는 하나님을 항상 기억하는가 하는 부분입니다.     이 부분에서 좀더 나아가 기억하다 라는 단어를 성경에서 좀더 추적해 보면 얼마나 우리와 하나님과의 관계가 비대칭이며 일방적인 관계라는 사실을 알 수가 있습니다.

         성경에서 오늘 본문에 사용된 기억하다 라는 단어가 처음으로 쓰여진 다섯 번의 구절들을 보면 모두다 하나님과 관련이 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먼저 첫번째로 기억하다라는 단어가 사용된 구절은 창세기 8:1절입니다. 하나님은 노아와 그와 함께 방주에 있는 모든 들짐승과 가축을 기억하셨습니다. 여기서 기억하다는 뜻은 그들을 불쌍히 여기셨을 뿐만 아니라 그들의 형편과 상황에 대하여 도움이 필요함을 아셨다는 것이며 그래서 하나님은 그들 때문에 바람을 땅 위에 불게 하셔서 물이 줄어들게 하신 것입니다.

         또 다른 구절은 창세기 9 16절입니다. 여기서는 생각하사라고 번역이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롯이 거주하는 성을 멸하시려고 하셨는데 롯 때문에 하나님은 지체하시며 롯을 그 성에서 내보시려고 천사를 보내셨습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백성이 죄인들과 함께 멸망하시는 것을 원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생각하시고 그를 불쌍히 여겨 주신 것이며 그에게 은혜를 베푸시고자 하신 것입니다. 롯은 바로 이런 하나님의 기억하심 때문에 구원을 얻게 된 것입니다.

         우리가 모든 구절을 다 살펴볼 수는 없습니다. 그런데 기억하다라는 단어가 성경에서 하나님 외에 인간이 그 대상이 되어 사용되는 구절이 나오게 됩니다. 이 구절을 통하여 우리는 하나님의 기억과 인간의 기억이 어떻게 다른지 확인할 수가 있습니다. 창세기 40 23절입니다. 여기서 기억하지 못하고 그를 잊었다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기억하지 않은 이유는 그를 마음에서 지워 버렸기 때문입니다. 마음에 그가 없는 것이며 그는 생각할 만한 그에 대하여 괘념할 만한 가치가 없는 자라는 의미입니다. 물론 성경 전체에서 이 단어가 인간에게 사용되었을 때에 항상 부정적인 언어로 사용된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백성에 대하여 기억하시는 일을 멈추신 적이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백성을 생각하시고 괘념하시는 즉 마음에 두고 염려하며 걱정하시며 생각하시는 일을 그만 두신 적이 없으며 잊어버리신 적이 없다는 것입니다.

         기억하다 라는 단어의 또 다른 의미를 생각해 보면 좀더 하나님께 왜 이렇게 자신의 백성에 대하여 항상 은혜를 베푸시는지를 알 수 있는데 이단어의 또 다른 뜻은 생각 또는 마음을 부르다는 뜻을 가집니다. 즉 하나님께서 기억하시다는 라는 말은 단순히 사람들이 처한 상황이나 놓인 어려움 그 자체를 생각하시다 라는 의미보다는 무엇인가를 생각해 내시는 일이 있음을 말해 주고 있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처한 상황이 보다는 그 상황을 볼 때에 다른 무엇이 마음으로 불러지고 생각으로 불러진 것입니다. 이러한 표현이 조심스러운 것은 기억하다 라는 것이 인간의 언어이지 하나님의 본성에 맞는 언어는 아니기 때문에 이렇게 표현 하는 것이 조심스럽습니다.

         왜 그런가 하면 시인이 하나님께서 그들을 비천한 가운데서 기억하셨다고 합니다. 출애굽기 2:24-25을 보면 하나님께서 그들을 비천함 가운데 기억하신 것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세운 하나님의 언약 때문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백성을 기억하시는데 바로 그 자신의 언약을 지키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신뢰할 수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그분은 말씀을 변개하지 않으실 뿐만 아니라 식언 즉 한번 뱉은 말을 다시 입으로 집어 넣지 않으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이 신실하신 하나님이신 이유는 그분은 자신의 말에 있어서 항상 충성되실 뿐만 아니라 성실하신 분이십니다. 그렇기에 자신의 백성들을 기억하신 다는 약속을 지키시는 것이며 보호하시는 일에 게으름이 없으신 분이십니다.

         우리의 기억은 희미하며 잊어버리기 일수이며 자신에게 유리한 것만을 기억하고 살아갑니다. 이러한 우리의 기억에 대하여 우리는 여러 가지 항변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과학적으로 인간의 기억에는 한계 용량이 있으며 인간의 기억력은 감퇴하기 때문에 모든 것을 다 기억할 수 없다고 육체적 정신적 한계에 대하여 항변 할 수도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육체적 존재이기에 육체의 능력에 따라 제한을 받을 수 밖에 없습니다. 우리의 기억도 그렇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변명이 정당화 될 수 없는 것은 우리의 인생에 의미 없을 뿐만 아니라 가치 없는 일들에 대하여는 기억하고 생각해내며 자신의 뇌 속에 저장하면서 정작 자신의 인생에 가장 가치 있고 고상하며, 귀한 하나님의 은혜와 그분에 관한 것들을 기억하지 않고 있으며 생각하고 가슴에 담지 않는 것은 그 어떠한 항변도 타당한 이유가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기억력의 문제가 아니라 마음의 문제이며, 상대에 대한 존중의 문제이며, 상대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하는 가치의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마치 술 맡은 관원이 요셉을 잊어 버린 것처럼 조금만 자신에게 유리한 상황이 오고 조금만 뜻대로 되며, 평안하면 하나님의 은혜를 잊어 버려 마음에 두지 않는 태도를 보인다는 것입니다. 이런 표현이 적절하지 않지만 그래서 하나님은 늘 사람들에게 버리움을 당하십니다. 심지어는 하나님을 믿는 다는 사람들에게 조차 그 마음에서 내 쫓기심을 당하며 그 마음에서 지워지시는 것입니다.

         기억이란 단어를 통해 우리는 하나님은 늘 짝사랑을 하시는 분으로 이해되지 않습니까? 편애이며 일방적인 사랑이라는 생각이 들 때가 많이 있는 이유가 바로 우리의 온전치 못한 하나님을 향한 자세와 태도 때문입니다. 우리는 우리에게 중요한 사람을 한 시간씩 절대로 기다리게 하지 않습니다. 비지니스를 위한 고객을 만날 때에 우리는 그에게 내가 천천히 갈 것이니 내가 갈 때까지 기다리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소중한 사람을 만날 때 시간을 어기지 않을 뿐만 아니라 그와의 약속을 하찮게 여기지 않습니다. 만약 그를 소중하게 여긴다면 우리는 가장 단정하게 그리고 가장 좋은 곳으로 그리고 먼저 가서 기다리며 최선을 다해 대할 것입니다. 하나님이 여러분의 고객보다 못하며 여러분이 생각하는 소중하고 귀한 분보다 못하십니까? 하나님을 잊지 마십시오. 여러분의 삶 속에서 매일의 일상 속에서 그 일이 어떤 일들이건 그 모든 일들보다 하나님이 더 귀하며 그 어떤 사람들 보다 하나님이 우선이라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그리고 그렇게 하나님을 대접하시기 바랍니다.

 


주일 말씀 요약 및 설교 영상

주일 말씀 컬럼 안에 설교 영상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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