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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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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영상 https://youtu.be/woZnA7Jner8


신자는 열매 없는 이의 삶이 아니라 열매 있는 자로써 부르심을 받았다는 사실을 기억합시다. 우리가 살펴볼 네 번째 땅이 다른 땅들과 다른 특별함을 가지고 있다는 것에서 피하여야 할 생각들은 우리가 할 수 없는 어떤 내재되고 본성적인 특별함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특히 믿음과 신앙에 있어서 특별히 최적화 된 사람은 없다는 것입니다. 신자 안에 내재하는 죄가 어떤 사람에게는 크게 역사하고 어떤 이들에게는 작게 역사한다고 생각하시지 마십시오.. 신자에게 외부의 적인 사단의 공격에 대하여 어떤 이들은 사단의 공격하지 않고 봐주기 때문에 시험에 들지 않거나 넘어지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모든 신자는 동일한 강력한 내재하는 죄의 세력의 공격을 받을 뿐만 아니라 동일하게 우는 사자와 같이 삼킬 자를 찾아 헤매며 두렵게 하며 공포감을 주는 사단의 공격에 놓여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어떤 이들은 더욱 크고 강한 믿음의 역사에 따라 열매 맺는 삶으로 나아가고 어떤 이들은 열매 없으며 삶의 진전이나 나아짐이 없이 마치 하나님으로부터 버려진 자처럼 아무런 영적 감동도 기쁨도 즐거움도 느끼지 못하는 무미건조하며 메마른 신앙 생활을 하게 되는가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오늘 씨 뿌리는 자의 비유가 기록된 세 개의 복음서의 병행구절들을 함께 종합하여 살펴 보려고 합니다. 먼저 마태복음 13:23절과 마가복음4:20, 그리고 누가복음 8 15절을 함께 보도록 하겠습니다.

         이 구절들에서 첫 번째로 살펴볼 것은 누가복음 8 15절에서 네 번째 땅은 좋은 땅이고 하며 좋은 땅은 착하고 좋은 마음이라고 합니다. 우리가 착하고 좋은 마음이 무엇인가를 생각할 때에 이미 자신 안에 존재하는 착하다는 이미지 좋다 라는 이미지를 대입하면 안됩니다. 우리의 관심은 각기 다른 사람들의 기준에 의한 착하고 좋은 마음이 아니라 본문에서 착하고 좋은 마음이란 무엇이냐 하는 것입니다. 먼저 마태복음의 경우를 보면 말씀을 듣고 깨닫는 자 라고 말하고 있는데 이 부분을 두 개로 나누어 생각할 수 있습니다. 먼저는 듣고 라는 것입니다. 말씀을 들어야 하는 것이 먼저입니다. 로마서 10 17절을 보면 항상 믿음은 들음에서 납니다. 믿음이 들음에서 난다는 것은 어떤 것이든지 듣기만 하면 믿음이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의 말씀을 들어야 믿음이 발생하는 것입니다.

         착하고 좋은 마음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으로부터 시작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신자가 왜 열매 없는 상태에 빠지고 비신앙적인 삶으로 후퇴하며 삶의 진전이 없는가 하면 하나님의 말씀으로부터 멀어지기 때문임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이제 두 번째로 살펴볼 단어는 깨닫다 라는 단어입니다. 그런데 이 단어는 앞선 듣고 라는 말에 의미를 부여합니다. 즉 듣는 다는 것이 단순히 귀로 듣는 것으로 소리에 귀를 노출시키는 것을 의미하고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집중하고 주의하고 주목하여 깨닫고자 하는 마음의 상태로 들음은 반드시 효력을 발생합니다. 왜냐하면 이 들음의 마음은 잊지 않고 기억하고자 하는 마음의 상태로 듣기 때문에 마음에 반드시 뿌리를 내리게 되는 것입니다.

         깨닫다 라는 말이 바로 그 의미입니다. 이해하려는 마음의 상태로 듣는 것입니다. 이 말은 지식과 정보의 차원에 알겠다라는 의미가 아닙니다. 합의에 도출되어 가지게 된 깨달음입니다. 착하고 좋은 마음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에 그의 마음이 작용하게 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착하고 좋은 마음은 말씀에 반응합니다. 이 마음의 분주하고 바쁜 움직임은 그의 전 인격 즉 지성과 정서와 의지가 함께 합의하고 그 결과를 도출하기 위해서 입니다. 이러한 전인격의 합의에 의한 도출을 마가복음 4 20절에서 말씀을 듣고 받아 라는 말과 누가복음 8 15절에서 말씀을 듣고 지키어 인내로 결실한다는 의미입니다. 말씀을 받아 들이다 라는 단어는 용인하거나 채택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용인이라는 말은 의지적 결단에 의하여 수용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 단어는 내면의 결정이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에 누가복음 8장에서 또 다른 의미를 말하고 있는데 착하고 좋은 마음은 말씀을 듣고 지키어 인내로 결실한다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수 십 번, 수 천 번 경험하는 것이 말씀을 수용하고 채택하고 전인격이 말씀에 반응하여도 그 결정과 결심이 분명한 것은 그것이 전인격의 합의하에 도출된 결론임에도 불구하고 삶에서 또 다시 무너지고 그 마음의 결정이 희석되고 흐트러지고 좌절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여기에 필요한 것이 빠졌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바로 피를 흘리기까지 지키는 일과 인내하는 일을 못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좋은 땅은 이미 좋은 땅이라는 인식으로 시작하기 때문에 좋은 땅은 특별한 사람이나 그러한 상태의 조건을 갖추거나 최적한 된 어떤 이들에게나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입니다. 좋은 땅은 결정론으로 좋은 땅이라고 표현한 것이 아닙니다. 만약 그랬다면 이렇게 비유는 네 번째 땅을 설명해야 합니다. 좋은 땅은 엄청나게 결실하였다 왜냐하면 원래부터 좋은 땅이었기 때문이다. 이것이 다이어야 합니다. 그런데 착하고 좋은 땅에 대하여 예수님은 설명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 땅이 자신의 마음에 뿌려지는 말씀에 대하여 어떻게 반응하며 대응하는지를 말입니다. 이 말은 착하고 좋은 땅은 본래적이거나 본성적으로 착하고 좋은 땅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사람들 중에는 다른 이들보다 좋은 성품을 가진 이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다 해도 말씀을 대하는 일에 있어서 그들의 그러한 사람들이 인정하는 착함과 좋음은 전혀 적용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정말 착해도 징그럽게 말씀을 거부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법 없이 살수 있는 사람인데도 불구하고 예수를 거부하며 하나님을 부인합니다. 이런 사람들은 성경이 말하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하여 결실하는 착하고 좋은 마음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처음부터 착하고 좋은 마음은 없습니다. 모든 신자는 처음부터 동일한 출발선에서 출발합니다. 그리고 모든 신앙적 환경은 동일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은혜에서 있어서 차별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신앙이 차이가 있고 믿음의 차이가 있으며 수준이 다른 것은 오직 하나의 이유 즉 자신의 삶을 변화하려는 노력과 더불어 말씀을 대하는 자세와 태도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신자는 모두가 세 번째 땅에서 출발합니다. 그 땅은 가시 덩굴이 가득한 땅입니다. 마음에 하나님의 말씀이 자라지 못하도록 목을 조르는 것들이 가득합니다. 일상의 삶의 분주함으로 마음이 나뉘게 하는 것들, 물질의 속임으로 인하여 탐욕과 욕심에 따라 물질을 쫓으며 섬기는 일들, 일락으로 무엇보다도 육체의 즐거움과 쾌락을 위해서라면 시간과 돈을 아끼지 않는 육신의 생각들입니다. 이러한 것들이 가득합니다.

         그런데 착하고 좋은 마음은 말씀을 듣고 자신의 마음을 정리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세상의 유혹과 재리의 유혹과 일락을 잘라버리며 뿌리를 뽑아 버리며 싸우는 것입니다. 비록 그것이 마음에서 완전히 없어지지 않을지라도 부지런히 자신의 마음을 가꾸는 일에 온 힘을 기울인 것입니다. 그것이 그의 인내인 것입니다. 참고 견디며 수고하는 일을 마다하지 않을 때에만 착하고 좋은 마음의 상태가 되는 것입니다. 열매를 맺는 삶을 교회 생활 오래하면 되는 것이 아닙니다. 썩은 열매 냄새 나는 죄의 열매를 맺는 일이 허다합니다. 하나님이 정말 나의 삶을 기뻐하실까? 내 삶이 하나님께서 받을 만 하신가? 정말 나는 성경 대로 살고 있는가? 하는 물음으로 자신을 돌아보아 열매 없는 자가 아니라 열매 맺는 착하고 좋은 마음을 가지는 여러분들이 되었으면 합니다


주일 말씀 요약 및 설교 영상

주일 말씀 컬럼 안에 설교 영상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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