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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말씀
2017.02.26 12:55

믿음의 역사 < 히브리서 11:3절 >

Y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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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영상 https://youtu.be/cN6ip8Vmdd4


오늘 우리가 함께 살펴볼 히브리서 11장은 믿음의 장이라고 불립니다. 먼저 우리가 함께 생각해 보고자 하는 히브리서 11:3절 말씀으로부터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본문은 믿음이 신자 안에서 일어나게 하며 발생시키는 것이 무엇인가를 말해준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믿음이 신자들 안에 발생시키며 일어나게 하는 일은 무엇입니까? 믿음이 하는 일은 알게 한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알다 라는 단어는 마음을 사용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사도가 사용하는 안다는 것은 정보나 지식이 아닌 마음 안에서 일어난 변화를 말하고자 함입니다. 왜 이런 마음을 사용하며 이해하여 깨닫다 라는 표현이 필요한가 하면 바로 이 일이 믿음이 일으킨 것이며 믿음이 일하였기 때문에 발생된 것이라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렇다면 믿음이 왜 인간의 마음 안에서 그리고 마음의 자리에서 일하며 역사해야 하는 것입니까? 왜냐하면 인간의 마음은 인간의 모든 활동의 중심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겉으로 들어나지 않는 내면적 일이건 또는 밖으로 표출되는 외면적 행동이건 인간은 마음을 통하여 활동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더욱 중요한 것은 마음은 인간의 핵심 컨트롤 타워인 동시에 이곳을 지배하고 있는 죄의 자리이기 때문에 믿음은 이 마음 안에서 역사해야 하는 것입니다.

         믿음이 오기 전에 인간은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알지 못하였습니다. 또한 보이는 것이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라는 사실도 몰랐습니다. 보이는 것이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라는 말은 보이지 않는 것들이 뚜렷이 보이는 것들의 광경들이 되었다 라는 뜻입니다. 이 말의 의미는 이 세상의 모든 것들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명백한 형상을 본다는 것입니다. 결국 신자 안에서 역사하는 믿음은 신자가 바라보는 것에 영향을 미치며 세상을 인식하는데 있어서 변화를 주는 것입니다. 이렇게 사람이나 사물이나 사건을 바라보며 해석하며 이해하는 것을 다른 말로 관점이라고 합니다. 관점이란 사물을 관찰하거나 고찰할 때, 그것을 바라보는 방향이나 생각하는 입장 을 일컫는 것입니다. 관점을 다른 말로 표현하자면 세계관이라는 말로 바꿀 수 있습니다. 세계관이란 세상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나 사물이나 사건을 해석하며 이해하는 관점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구약에서 완전한 비유는 아니지만 이러한 것을 설명할 만한 사건이 있습니다. 열왕기하 6 14절부터 17절의 내용을 보겠습니다. 14절에서 왕이 라는 말이 가리키는 왕은 아람 왕입니다. 아람 왕이 말과 병거와 많은 군사를 보내서 밤에 도단 성읍을 에워쌌습니다. 그러자 그 사환이 놀라서 엘리사에게 아아 내 주여 우리가 어찌하리이까 라고 합니다. 이 말은 절규에 찬 소리를 지른 것으로 그의 입에서 절규의 비명이 나올 수 밖에 없는 것은 지금 보고 있는 상황을 어떻게 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이제 열왕기하 6 16-17절을 보면 엘리야의 대답이 나옵니다. 엘리사는 절규의 비명을 내지르며 떨고 있는 자신의 사환에게 두려워하지 말라고 합니다. 그리고 우리와 함께 한 자가 그들과 함께 한 자보다 많다고 합니다. 그리고 엘리사가 기도합니다. 기도하기를 여호와여 원하건대 사환의 눈을 열어 보게 하옵소서 라고 합니다. 그러나 여호와께서 그 사환의 눈을 열어 보게 합니다. 그가 본 것은 불말과 불병거가 산에 가득하여 엘리사를 둘러있는 모습입니다.

         이 구절들이 보여주는 것은 물리적 눈으로만 보는 시각적이고 감각으로 경험하고 느끼며 알 수 있는 세계가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계를 의미합니다. 그러나 세상에는 눈으로 밖에 지각할 수 없는 세계만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가 있다는 사실이며 이것이 영적 세계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육체의 모든 지각 능력으로 알 수 있는 세계가  아닙니다. 이러한 세계는 믿음으로 보게 되며 믿음이 마음의 틀을 바꾸어 보게 하고 알게 하는 것입니다. 신자란 바로 이러한 보이지 않는 세계에 대하여 보며 이해하며 알 수 있는 자들이라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인 히브리서 11 3절에서 믿음의 역사는 신자로 알게 하는 것입니다. 세상에 대하여 압니다. 이 세상이 누가 주인이며 누가 지은 피조 세계인지를 압니다. 믿음의 역사가 신자의 마음의 틀에 관점을 바꾸어 놓았고 기독교 세계관을 만들었기에 신자는 세상과 세계를 볼 때에 세상적 가치관을 가지고 보지 않을 뿐만 아니라 그렇기에 세상 사람과 다르게 세상을 보는 것입니다. 신자는 신앙의 눈으로 세상을 보며 신앙의 눈으로 세상을 해석하며 이해하는 자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의미하는 것은 신자는 세상과 다른 가치관으로 살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살아 간 사람들이 바로 히브리서 11장에서 나열하고 있는 믿음의 선조들입니다. 이들은 모두다 세상적 가치관과 세속적 세계관의 눈을 가지고 살아간 사람들이 아니라 믿음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그들이 믿고 있는 기독교적 세계관으로 세상을 바라보며 세상을 이해하며 세상을 대하였던 것입니다. 히브리서 11 38절 말씀은 이들이 어떻게 세상을 바라보며 세상을 대하였는가 하는 것을 잘 설명해 줍니다. 11:38(이런 사람은 세상이 감당하지 못하느니라) 그들이 광야와 산과 동굴과 토굴에 유리하였느니라 라고 합니다. 이런 사람이란 앞서 11장에서 나열하고 있는 셀 수 없는 믿음의 선조들을 가리킵니다. 그들 모두는 세상이 감당하지 못하였다고 합니다. 이 말의 의미가 한글 성경에서는 세상이 마치 이들을 감당하지 못한다는 의미로 이들이 마치 세상 사람들 보다 능력이 탁월한 사람들이라는 의미 같아 보이는데 원문의 의미는 세상은 그들이 살기에 적당하지 못하였다 혹은 그들에게 세상은 가치가 없었다 라는 뜻입니다.

         세상은 믿는 자들에게는 살기에 적당하지 못하였습니다. 그랬기에 그들은 광야와 산과 동굴과 토굴을 유리하였다는 말씀처럼 정처 없이 떠 돌아 다니는 삶을 살수 밖에 없었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의 의미는 이들은 세상에 머물 생각으로 살았던 자들이 아니며 세상을 사랑하며 세상에 정착하기 보다는 영원한 집을 사모하며 신자의 본향인 천국을 세상 보다 더 사랑하며 그곳을 바라보며 살았다는 의미입니다. 그렇기에 이 세상은 그들에게 아무런 가치가 없었던 것입니다. 믿음이 신자에게 주는 것은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이 바뀌는 것입니다. 세상이 저절로 우연이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신자는 하나님이 세상의 주인이시며 하나님께서 세상을 움직이며 다스린다는 사실을 믿음으로 알고 이해할 뿐만 아니라 그래서 하나님만을 의지하며 사는 자들입니다.

         신자가 세속적 가치관과 세속적 세계관 속에 살지 않는 이유는 신자는 그 눈이 가리워 육체적 감각으로만 볼 수 있는 세계만을 보는 자가 아니라 보이지 않는 영적 세계를 보고 사는 자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보지 못하는 자는 세속적일 수 밖에 없습니다. 세속적이라는 것은 돈을 밝히고 성공과 번영에 탐욕과 욕심이 가득한 자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세속적이란 눈에 보이는 세계의 것만을 인정하며 그것만을 위해 살아가는 자이며 영적 것을 보지 못하고 영적인 것을 무시하는 자를 가리키는 것입니다. 자칭 신자라고 하면서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를 바라보지 못하고 눈에 보이는 세상만을 위해서 살며 그것에 목숨을 걸고 삶을 걸고 살아가는 자는 누구든 세속주의자 이며 세상에 속한 자입니다. 믿음으로 영적 눈이 열린 자들은 절대로 세속적이지 않을 뿐만 아니라 세속적 가치를 우선으로 여기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보이지 않는 영적 세계가 더 중요하며 그것이 참된 것이며 영원한 것임을 알기 때문입니다. 이 앎이 온전한 것은 믿음으로 마음의 사용을 통하여 이해되고 깨닫게 된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믿음의 눈이 있습니까? 당신 안에 이러한 믿음의 역사가 있습니까? 그래서 당신은 세속주의자가 아닌 영적인 사람입니까? 그럼으로 당신은 세상이 무가치하며 세상이 사랑할 대상이 아니며 영원한 본향을 사모하며 살고 있습니까? 그렇지 않다면 믿음을 달라고 기도하십시오. 당신을 변화시켜 달라고 구하여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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