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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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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다 왕인 요시야는 신실하고 선한 하나님의 사람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갑작스러운 죽음을 당하게 되며 그의 죽음은 많은 사람들을 당황스럽게 합니다. 역대하 35 24-25절을 보면 온 유다와 예루살렘 사람들이 요시야의 죽음을 슬퍼하였다고 합니다. 또한 선지자 예레미야는 그를 위하여 애가 즉 슬픈 노래를 지었고 모든 노래하는 남자와 여자들이 그를 추억하며 슬피 노래하였다고 합니다. 모든 이들을 슬픔에 빠지게 한 그의 죽음은 갑작스러운 것이었으며 놀라운 사건이었습니다. 왜냐하면 그의 지나온 삶에 비추어 볼 때에 그에게 합당하지 않은 그의 신앙과 정서에 어울리지 않는 행동으로 말미암은 결과였기 때문입니다.

        성경에 기록된 그의 죽음에 관련된 사건들을 살펴보면 당시에 요시야가 다스리던 남유다 주변으로는 강대국들이 중동의 패권을 놓고 국제적 전쟁이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떠오르는 신흥 강국은 바벨론이라는 나라인데 이 나라는 점점 커져서 오랜 강대국이었던 앗수르라는 나라를 무너뜨리고 마지막으로 앗수르의 심장에 칼을 찔러 전쟁을 마무리 하려고 하였습니다. 앗수르는 바벨론의 칼로 인하여 곧 멸망의 직전에 서 있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앗수르의 패망을 지켜 보던 애굽이 바벨론이 점점 강해지는 것을 그냥 보고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힘의 견제와 균형이 깨지면 자신들에게 불리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애굽 왕 느고는 군사들을 일으켜 앗수르를 돕기 위해서 전쟁에 참여하게 됩니다. 열왕기하 23:29절에서 치고자 하는 단어는 NIV에서는 돕고자 라고 번역했는데 이 단어는 위하여 라는 뜻으로 번역될 수 있기 때문이고 역사적으로도 애굽은 앗수르를 도왔기 때문입니다.

        역대하 35 20절 말씀을 보면 애굽 왕 느고가 갈그미스를 치러 올라왔다고 표현되었는데 치다라는 단어는 마치 갈그미스를 치는 것처럼 여겨지지만 갈그미스에서 전쟁을 하기 위해서 올라왔다는 것입니다. 이때 요시야가 나가서 방비하였는데 왜냐하면 남 유다 땅을 지나가기 때문입니다. 다음 구절을 보면 바로가 사신을 보내어 요시야에게 말하기를 내가 너를 치러 온 것이 아니라 다른 족속을 치러 온 것이라고 합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명령한 것이기 때문에 너는 하나님을 거스르지 말고 돌아가라고 합니다.

        이에 대하여 22-23절에 요시야가 어떻게 행하였는지가 나오는데 22-23절을 보면 요시야가 몸을 돌이켜 떠나기를 싫어하였다고 합니다. 그리고 오히려 변장하고 그와 싸우고자 합니다. 그는 하나님의 입에서 나온 느고의 말을 듣지 않고 싸우다가 화살에 맞아 죽음에 이르게 된 것입니다. 그가 몸을 돌이켜 떠나기를 싫어하며 변장까지 하고 싸우고자 합니다. 그가 이렇게 한 것은 하나님의 뜻임을 알면서도 거역한 것으로 보기 보다는 그는 느고의 말이 하나님의 말씀이 아닐 것이라는 생각을 하였을 가능성이 더 큽니다. 그의 신앙 정서상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대놓고 거역하는 일을 하였을 것으로 추정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모습 속에서 요시야의 영적 분별력에 문제가 있었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게 됩니다. 그가 왜 그렇게까지 하였을까 하는 부분을 좀더 들여다 보겠습니다.

        22절에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그의 마음의 상태를 보면 첫째는 그는 돌이켜 떠나기를 싫어하였다고 합니다. 히브리어 원문은 그러나 그는 돌이키기를 즉 방향을 바꾸는 일을 하지 않았다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한글 성경은 몸을 돌이키다 라고 표현되어 있지만 원문은 그의 얼굴을 그로부터 라는 방향을 바꾸는 일을 하기를 거부했다는 의미가 강합니다. 요시야의 이러한 행동은 그의 마음의 작용의 결과인 것입니다. 그는 바로 느고의 말을 듣고 그를 떠나는 것이 싫어졌고 그렇게 하고 싶은 마음이 없는 상태가 된 것입니다.

        그 다음에 나오는 말씀은 그가 왜 그의 얼굴을 돌이키고 바로 느고를 떠나기를 싫어하는 마음을 가지게 되었는지를 설명하고 있는데 원문의 의미는 왜냐하면 그가 싸우고자 하였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는 변장을 하고서라도 싸우기를 원한 것입니다. 그의 마음은 지금 자신의 땅에 허락 없이 들어온 바로 느고의 말을 들을 생각도 없을 뿐만 아니라 그와 싸우고자 하는 마음이 강하게 그의 마음 전체를 지배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요시야의 마음에 싸우고자 하는 의지가 일어나 그를 사로잡은 그가 호전적인 사람이거나 또는 전형적인 싸움꾼이기 때문이 아닙니다. 요시야는 바로가 행할 일들의 결과가 만들어 낼 것이 싫었던 것입니다. 앗수르는 오랜 동안 남유다를 괴롭혀 왔습니다. 그래서 그는 바벨론에 의해서 앗수르가 멸망을 당하기를 원했습니다. 그런데 바로 느고가 이 일을 막아 서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 일이 싫은 것입니다. 다시 앗수르가 회복되거나 일어나는 것이 요시야의 마음에 못마땅한 것입니다. 그래서 바로를 막아서고 싸우고자 하였던 것입니다.

        요시야의 마음에 일어난 강렬히 싸우고자 하는 정서는 그의 인생에 치명적인 결과를 가져오게 되었습니다. 첫째로 그의 앗수르의 패망에 대한 그의 정서 속의 열망은 그로 하여금 분별력을 상실하게 하여 바로를 통하여 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지 못하게 한 것입니다. 둘째는 판단력과 절제력을 상실한 그의 충동적 정서는 변장을 하기까지 싸움터를 그를 내 몰아 죽음에 이르게 하는 것입니다. 충동에 이끌리는 정서는 쉽게 물러서지 않으며 포기하여 사라지지 않습니다.

        우리가 요시야의 죽음을 통하여 깨닫고 경고하심을 받아야 하는 것은 지속적으로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정서의 움직임과 상태를 파악하고 경계심을 가지지 않게 되면 언제든 잘못된 정서에 이끌려 어려움과 고통을 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만이 아니라 더욱 중요한 것은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하듯이 그가 하시는 일도 사랑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는 하나님을 사랑하였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순종하기를 온 마음을 다하여 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에 대하여 하나님을 거역한 것이지만 그 일의 결과가 자신이 원하는 일이 아닐 뿐만 아니라 자신이 바라는 것과 정 반대의 결과를 만들어 낼 것을 두려워하고 싫어하여 싸움에서 물러나지 않은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하지만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사랑하지 않고 인정하지 않을 수 있다는 우리 안에 상반된 마음이 존재함을 기억해야 합니다. 성경이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할 때 그 말씀은 그가 하시는 일이 비로 내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우리는 절대적으로 그분에게 순종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함으로 우리는 대놓고 하나님을 대적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싫어하여 우리는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에 있어서 뒤로 물러가거나 또는 도망치는 일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요나가 바로 그랬습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니느웨를 회개하게 하시는 일을 싫어한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다시스로 가는 배를 타고 도망치려고 하였습니다. 그는 결국 끌려 니느웨로 갔지만 그는 성의 없이 그리고 열심 없이 느니웨 성을 돌며 하나님의 진노를 선포합니다. 그러자 니느웨 성이 회개하고 하나님은 그들의 심판을 유예하십니다. 이에 요나는 화가 나서 하나님께 심술을 부립니다. 요나서 4 9절을 보면 요나는 자신이 심지도 않고 자라게도 하지 않은 박넝쿨이 시들어 햇빛을 가리는 일을 못하게 되자 화를 냅니다. 이에 하나님은 그의 성냄을 옳지 않다고 하지만 요나는 내가 성내어 죽기까지 할지라도 옳다고 합니다. 자신이 한 것이 없는 박넝쿨에 대하여 그것이 시듬에 대하여 화를 낸 것입니다.

        이에 대하여 하나님은 다음 구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요나가 수고도 재배도 아니였고 하룻밤에 났다가 하룻밤에 말라 버린 박넝쿨을 요나가 아껴서 화를 내는데 하나님께서 좌우를 분변하지 못하는 십이만여 명의 느니웨 사람들을 아끼는 것이 어찌 당연한 것이 아닌가 하는 것입니다. 요나서의 결론은 요나의 답변이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처럼 하나님께서 하시는 방법을 사랑하고 그분의 방식을 사랑하고 그분께 하시는 일을 사랑해야 합니다. 비록 어떤 것은 내 마음에 들지도 않고 어떤 것은 내가 원하는 결과가 아닐지 모릅니다. 그러나 감사합시다. 한 해 동안 우리에게 하나님이 원하시는 방법과 하나님이 원하시는 방식대로 일어나는 모든 일에 대하여 감사합시다. 비록 하나님께서 나를 낮추사 어렵게 하신다 하여도 그것이 하나님의 일이라면 기뻐할 수 있는 힘을 달라고 기도합시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행하시는 모든 일을 옳으며 모든 일은 참되며 모든 일은 우리를 위함이라는 사실을 기억합시다. 비록 사람들의 눈에 불행이라고 여겨지는 일도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유익이 되게 하실 것이며, 사람들이 눈에 재앙이라고 여겨지는 일도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우리의 축복으로 바꾸실 것입니다. 우리는 신실하게 하나님과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에 의심 없이 아멘 하며 믿음으로 따라갑시다.


주일 말씀 요약 및 설교 영상

주일 말씀 컬럼 안에 설교 영상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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