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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말씀
2017.02.12 13:57

바른 기도의 자세 < 시편 119:58절 >

Y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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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 설교 영상  https://youtu.be/4CAqGoUHZUs

         오늘은 기도자의 바른 자세와 태도에 대해서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먼저 기도는 우리가 하나님께 어떤 것을 주장한다든지 어떤 것이든지 하나님의 것을 요청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기도에 대하여 잘못 생각하는 사람들은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아버지이시기 때문에 원하는 것을 막 요구할 수 있으며 달라고 하면 거부하지 못하기 때문에 달라고 당당하게 요구하라고 합니다. 누가복음 11:8절을 보면 여기에서 요구가 이루어지는 이유에 대한 설명으로 간청함을 보게 됩니다. 이 단어의 의미는 부끄러움이 없는 뻔뻔스러움 그리고 무례함, 건방진의 의미도 가집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기도할 때에 뻔뻔하게 때론 무례해도 하나님은 우리 아버지시니까 그렇게 기도해도 괜찮다고 여기는 이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본문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하나님께 무례하게 굴라는 것도 귀찮게 하며 뻔뻔스럽게 굴하는 것도 아닙니다. 이 구절의 문맥의 결론의 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들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는가 라는 것으로 끝을 맺는 다는 것입니다. 본문은 우리 악한 자들과 하나님이 비교 되고 있습니다. 인간은 무례하게 굴어야 주지만 하나님은 그렇게 해서 주시는 것이 아닙니다. 그분은 자신에게 구하는 자들에게 한없이 베푸시는 분이시라는 것입니다.

         또 한 구절을 보면 히브리서 4:16절로 여기서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라고 합니다. 담대히 라는 것이 마치 당돌하고 당당하고 꺼리길 것 없는 태도를 나타내는 것처럼 보이지만 문맥이나 단어의 의미는 확신을 가지고 입니다. 우리가 기도할 수 있는 것은 우리를 긍휼이 여기시는 대제사장이신 예수 그리스도 때문에 가능한 것이며 그분이 우리를 불쌍히 여기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분을 의지하여 확신가운데 은혜의 보좌 앞에 나아갈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어느 경우 어떤 상황에서도 우리는 하나님께 주장할 수 있는 것이 없습니다. 기억하셔야 할 것은 하나님은 소멸하는 불이시며 거룩하시며 높으신 분이라는 사실입니다. 우리가 자녀로 부름을 받았다고 그분 앞에 방자히 행하여 무례하게 행동하도록 부르심을 받은 적이 없습니다. 하나님께 벗으로 부름을 받은 이들도 감히 하나님을 대면하여 보지 못하였을 뿐만 아니라 여전히 두려움과 경외감으로 하나님을 대하였습니다. 하나님 앞에 함부로 주장하거나 요청하지 마십시오. 경외감으로 그리고 두려움으로 청원하시며 불쌍히 여겨 달라고 구해야 합니다. 모든 기도에 주장하는 자세가 아닌 은혜와 긍휼을 요청하는 자세요 겸손히 하나님 앞에 나아가야 합니다.

         시편 119 58절은 우리가 어떻게 기도해야 하는지에 대한 중요한 가르침을 줍니다. 시편 119 58절을 보면 시편 119:58절 내가 전심으로 주께 간구하였사오니 주의 말씀대로 내게 은혜를 베푸소서  라고 합니다. 여기서 시인의 기도의 모습을 우리가 볼 수 있는데 먼저 내가 전심으로 주께 간구하였다고 합니다. 전심으로 라는 말은 온 마음을 다하여 라는 의미로 무엇에 전력을 다하다 라는 뜻입니다. 예를 들어 백미터 달리기를 하기 위한 선수는 출발선상부터 골인지점까지 오직 전심을 다합니다. 그때에 다른 생각이나 마음을 가지지 않습니다. 오직 결승점을 향하여 온 힘을 다하여 달려가듯이 전심으로라는 말은 그렇게 온 마음으로 전력을 다하는 상태를 가리키는 것입니다.

         그러한 마음의 자세와 태도로 그는 주께 간구하였다고 합니다. 여기서 간구하다 라는 단어는 영어 성경은 간청하다 또는 간절히 찾다 라는 뜻으로 번역이 되었습니다. 원어의 뜻은 아프게 되다 라는 뜻으로 병이 들다 라는 뜻입니다. 시인이 이런 단어를 사용한 이유는 그가 병이 들고 아플 정도로 그래서 약한 상태가 될 정도로 하나님을 찾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주의 말씀대로 내게 은혜를 베푸소서 라는 말씀에서 베푸소서 라는 말은 불쌍히 여겨 달라는 의미입니다. 이 구절에서 우리가 보게 되는 기도자의 자세는 하나님의 은혜 즉 그분의 호의와 약한 자를 향한 도우심과 불쌍히 여기셔서 들어 주심 등에 요청할 때에 우리에게는 아무런 권한이나 권리가 없다는 사실입니다. 시인은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불쌍히 여기심을 받기를 소망하고 있을 뿐입니다. 그것도 주의 말씀대로 입니다. 주님의 약속하심을 따라서 나를 불쌍히 여겨 달라는 소망입니다. 또한 간청하며 구하며 병이 날 정도로 하나님을 찾으며 바라보는 것입니다. 기도에 있어서 우리는 하나님께 마치 맡겨놓은 것처럼 그리고 자신의 것인 것처럼 주장하는 자세로 할 수 없습니다. 기도의 바른 자세는 극도의 겸손과 낮아짐입니다. 오직 하나님의 자발적 선함과 긍휼에 의탁하며 나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18 14절은 이러한 또 다른 증언을 하고 있습니다. 누가복음 18:14절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에 저 바리새인이 아니고 이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고 그의 집으로 내려갔느니라 무릇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하시니라 라고 합니다. 이 내용은 두 사람이 성전에 올라가 기도하는 장면의 마지막 결론에 해당하는 내용입니다. 여기서 주님은 두 사람 가운데 바리새인의 기도가 아닌 세리의 기도가 하나님께서 기뻐하신 기도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세리는 자신을 낮추고 하나님 앞에 나아갔기 때문입니다. 바리새인은 성전 가까이에 나아가 기도하기를 나는 불의 토색 간음 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저 세리와 같지 않다고 합니다. 또한 일주일에 두번씩 금식하며 소득의 십일조를 드린다고 합니다. 그런데 세리는 멀리 서 있습니다. 그리고 감히 하늘을 우러러 보지 못합니다. 그리고 자신의 가슴을 계속해서 치며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라는 말을 반복하며 자신을 불쌍히 여겨 달라고 요청합니다. 이 두 사람의 기도는 기도자가 기도의 대상이신 하나님 앞에 나아갈 때에 어떠해야 하는지를 분명하게 보이고 있는 것입니다.

         겸손 하십시오. 우리는 마땅히 받아야 할 것을 받은 자들이 아님을 기억하셔야 합니다. 구원이 우리에게 마땅한 것도 아닙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피흘리심이 마땅한 것도 아닙니다. 우리에게 성령을 주심도 마땅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기도할 수 있는 특별한 권리를 가진 것도 마땅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에게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어떠한 것도 마땅하고 당연한 것은 없습니다. 철없는 아이는 부모가 자녀를 사랑하며 돌보는 것이 당연하고 마땅한 것인 줄 압니다. 그래서 때론 무례하고 때론 건방지게 주장합니다. 그러나 철이 들고 나면 자신을 낳아 주신 것만해도 감사하고 자신을 키워주신 것이 얼마나 큰 은혜인지 알아 부모에게 감사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안다면 그분이 어떤 분이신지를 바르게 인식한다면 모든 기도에 감사함을 더할 수 밖에 없으며 오직 우리는 그분의 은혜에 매달릴 수 밖에 없는 존재일 뿐만 아니라 우리를 불쌍히 여겨 달라고 구할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을 고백하게 될 것입니다. 겸손히 구하십시오. 불쌍히 여겨 달라고 말하십시오. 하나님이 주인이시며 주권자이심을 고백하십시오. 이러한 모습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기도자의 자세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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