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말씀

믿음: 아브라함 < 창세기 15장 1절부터 6절 >

by 박경호목사 posted Sep 02,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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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영상   https://youtu.be/nGJAsaHjiHw


오늘 우리가 함께 살펴볼 말씀은 아브라함의 믿음에 관하여 입니다. 본문은 그의 인생 가운데 처음으로 믿음이라는 단어가 등장하며 그가 믿었다 라는 말이 시작됩니다. 먼저 이 구절의 핵심 구절을 먼저 보겠습니다. 15:6절을 보면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 라고 합니다. 우선 살펴볼 것은 믿다 라는 단어로 이는 히브리어로 아만이라는 단어입니다. 그 뜻은 확신하다, 신뢰하다의 뜻이 있지만 하나님을 목적어로 할 때 즉 하나님을 믿다 라고 할 때 이 단어는 하나님을 붙잡다 라는 의미를 가집니다. 즉 하나님에 대한 신뢰와 확신 가운데 그분을 붙잡는 것을 아만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먼저 아만이라는 단어를 통하여 알아야 되는 것은 믿음이란 단어를 이해하는데 있어서 중요한 것이 아만이 믿음으로 번역이 될 때에 믿음이란 단어는 인격 간에 사용되는 단어라는 사실입니다. 믿다 라는 단어가 인격 사이에 사용되는 것은 생각하고 사고하는 지성과 기쁨과 슬픔을 느낄 수 있는 정서와 하고자 하는 것을 실행하게 하는 의지 이 전체가 작용함으로 믿음이 일으켜지며 믿음을 발생하게 한다는 것입니다.

         즉 믿음이라는 것은 전 인격과 결부되지 않고는 믿음이라고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야고보서 2:19절을 보면 이 구절에서 하나님이 한 분이신 줄 믿지만 귀신들은 믿고 두려움에 떨게 된다고 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믿음은 지식적 앎에 의한 믿음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믿음이라는 것이 지성만 가지고는 온전하지 못하다는 것입니다. 믿음은 항상 전 인격적인 신뢰이며 확신인 것입니다. 또한 정서의 부분만으로도 믿음이 온전하지 못함을 마태복음음 13장의 예수님의 비유에서 알 수 있습니다. 마태복음 13 20-21절을 보면 여기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말씀을 듣고 즉시 기쁨으로 받는 자에 대한 것으로 믿음이 인격의 감정적 요소만 영향을 미치게 되면 기쁨이 있지만 그 기쁨은 잠시일 뿐이며 곧 넘어지는 자가 된다고 합니다. 의지의 영역은 지성과 정서에 의해 영향을 받기에 지성과 정서 없이 믿음이 의지적으로 작동할 수는 없습니다.

         믿음에 이러한 이해들이 필요한 이유는 우리는 믿는 다는 것이 하나님께서 기계적으로 우리 안에 믿음이라는 것을 집어 넣은 것이거나 우리의 인격의 동의와는 상관없는 것이라고 여겨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이유는 믿음이란 하나님의 우리를 향한 열심의 결과하는 사실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백성을 향하여 길이 참으실 뿐만 아니라 열심으로 자신을 나타내시고 계시하신 결과가 바로 우리의 믿음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을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이 바로 믿음의 조상인 아브라함의 이야기 입니다. 이제 아브라함에게 하나님께서 어떻게 그의 전인격에 자신을 계시하고 나타내시는지를 그래서 하나님의 열심에 의해서 한 사람의 인격 전체가 믿음에 이르게 하는지를 살펴보겠습니다. 다시 창세기 15 6절 내용을 보면 15:6 (그래서)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 에서 한글 성경에는 없지만 원문에는 확실하게 문맥적으로 번역을 하면 그래서 라고 번역될 수 있습니다. 그럼 5절의 내용이 무엇이길래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게 됩니까? 5절을 보면 이 구절에서 그를 이끌고 밖으로 나갔다고 합니다. 여기서 이끌려 나간 사람은 아브람입니다. 그럼 누가 아브람을 이끌고 밖으로 나간 것입니까? 여호와 하나님이십니다.

         믿음은 어떻게 오는가 하는 질문에 대한 첫 번째 대답을 우리는 여기서 찾게 되는데 하나님께서 아브람을 밖으로 데리고 나가셨다는 것입니다. 밖으로 데리고 나가다는 말이 물리적인 작용에 의한 변화로만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람에게 별을 보이신 목적이 있으시며 별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누구신지를 알게 하시는 것입니다. 하늘에 있는 무수한 별을 본다는 것이 특이한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그것이 한 낯에 하늘의 별을 볼 수 있다는 것은 일반적인 것은 아닙니다. 문맥 전체를 볼 때 이것이 시간적인 간격이 없다는 것을 전제하면 하나님께서 아브람에게 하늘의 별들을 보게 하신 것은 밤이 아닌 낯 시간이라는 것입니다. 15:12절을 보면 해 질 때에 아브람에게 깊은 잠이 임하고 큰 흑암과 두려움이 그에게 임하였더니 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람을 밖으로 이끌고 나가셨다는 것은 믿음은 하나님의 설득이며 하나님의 인간의 지성을 향한 자기 계시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을 좀더 분명하게 본문을 통하여 증명하고자 합니다. 오늘 본문의 시작인 15 1절을 보면 이 후에라는 단어로 시작합니다. 이 후에 라는 말은 단순히 시간을 나타내는 부사로 다음으로 라는 의미를 나타내고자 사용한 것은 아닙니다. 원문의 의미는 앞서 일어났던 일들 뒤에 라는 뜻입니다. 이 후에 라는 말은 복수입니다. 이 일들 후에 라는 말입니다. 하나의 일이 아니라 여러 가지 일들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즉 시간적으로 단순히 바로 앞에 아브람에게 일어난 사건만을 가지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아브람에게 일어났던 앞선 모든 사건들이 이 일들이라는 표현 속에 담겨져 있는 것입니다.

         아브람에게 일어난 이들은 12장부터 시작됩니다. 그리고 15장에 이러한 일들 후에 하나님께서 환상 가운데 나타나셨습니다.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그는 전쟁에서 승리하였지만 그는 패배한 4명의 왕들이 다시 연합하여 자신을 공격하지 않을까 두려워합니다. 또한 자신을 시기하는 어떤 자들에 의해서 낯선 땅에서 침입을 당하지 않을까 염려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또한 하나님은 자신을 방패이로써 계시하심으로 아브람의 보호자이시며, 지키는 자이심을 보이시고 계신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 자신이 아브람의 상급이시라고 말씀하십니다. 상급이란 표현 속에서 알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은 모든 필요를 채워주시는 분일 뿐만 아니라 큰 도움이시고 충분히 만족할 만한 분이라는 것입니다. 그에게는 조금도 부족함이 없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이 일들과 또한 환상은 모두 하나의 목적에 의해 아브람에게 허락되었고 주어진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믿음을 가지게 하려는 목적으로 주어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로 하여금 믿게 하시는 방법은 기계적인 주입이거나 우리의 지성과 정서와 의지를 기능을 마비시키고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말씀을 통하여 그리고 때론 인생 가운데 벌어지는 일들을 통하여 자신이 누구이신지를 나타내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끊임 없이 인간의 지성과 정서와 의지를 설득하시는 일을 하시는 것입니다. 아브람이 하나님을 믿게 된 것은 바로 이러한 하나님의 구원의 열심을 통하여 믿게 된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믿음의 조상이라고 성경은 말하고 있는데 그 이유는 아브라함이 다른 사람보다 뛰어나다거나 탁월하다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 하는 말이 아니라 믿음은 아브라함과 같은 방식으로 그리고 같은 방법으로 같은 내용으로 주어진 다는 의미에서 아브라함의 믿음의 시초이며 믿음의 본이 되며 가장 명확한 모델이 되는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들이 이와 같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다고 할 때에 이것은 하나님의 열심의 결과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창세전부터 아셨고 우리를 향한 그분의 구원 계획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시작되었고 또한 우리가 이 땅에 보내심을 받는 태중에서도 우리는 그분의 구원 계획 가운데 포함되었을 뿐만 아니라 우리의 삶의 모든 일들은 하나님 자신을 알게 하시며 그분을 계시하는 일들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이러한 사실을 우리는 우리의 어두워진 지성과 둔감한 정서와 더럽혀진 의지로 인해 알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어느 날 그분은 열심은 드디어 우리 안에 온전한 효력을 드러내게 되었고 그의 열심이 결실을 맺기 시작하여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을 믿는 다는 고백을 하게 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이러한 사실을 통하여 마음에 가져야 할 자세는 우리를 믿게 하신 하나님의 열심을 헛되게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며 우리의 믿음의 얼마나 귀한 것인가를 생각해야 합니다. 여러분의 믿음이 헛되게 하지 마십시오. 그것을 하찮게 여겨 거룩한 부르심을 쓸모 없게 만들지 말아야 합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부르심에 합당하게 생활하라고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구원이 우리의 믿음이 아무런 희생 없이 주어진 것도 아닐 뿐만 아니라 값없이 되어진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열심으로 값을 지불하셨고 그리스도 예수께서는 자신의 보배로운 피로 값을 지불하셔서 우리에게 주신 것입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그리고 믿음에 의해서 살아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