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말씀

잃어버린 자를 찾으심 <누가복음 19장 1절부터 10절>

by YC posted Mar 12,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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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영상  https://youtu.be/WVhb12v1kJ0


오늘 우리가 살펴볼 본문에 한 사람이 등장하는데 그 사람의 이름은 삭개오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2절을 보면 그 사람에 대한 짧은 설명이 나오는데 그 사람에 대한 함축적인 이미지와 이해를 함께 포함하고 있는 내용입니다. 이 설명은 두 단어인데 세리장이며 부자라는 것입니다. 세리장이라는 말은 세금을 징수하는 일을 담당하는 자들인 세리들의 우두머리 곧 수장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당시의 세리들은 유대를 지배하고 있던 로마로부터 임명되어 요단 강 동편으로부터 건너오는 물품에 대하여 통관세를 받아 로마에 바치는 일을 했던 이들입니다. 로마의 지배를 받는 상황에서 지배자인 로마를 위해 세금을 바치는 일을 했던 이들에 대하여 유대인들의 감정이 좋지 못하였습니다. 더욱이 세리들은 따로 급여를 받는 것이 아니라 통관세 가운데 얼마를 자신들의 몫으로 취하였기 때문에 더욱 동족들로부터 도덕적으로 윤리적으로 비난을 받는 대상이었습니다.

         삭개오에 대한 설명 중 또 다른 표현은 그가 부자였다는 것입니다. 여기에 사용된 부자라는 단어는 재물이 많은 상태로서 풍족하다 라는 의미를 담고 있기에 그는 상당한 정도의 재력을 가지고 있는 큰 부자였다는 것입니다. 성경은 이에 대하여 많은 정보를 말해주고 있지 않기 때문에 어떻게 그가 이러한 부를 얻게 되었는지 알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 개연성이 있는 것은 그가 세리장이었다는 것이 아마도 그가 어느 정도 부를 축적하는 도구가 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삭개오는 비록 동족들에게 비난을 받았지만 그의 사회적 지위는 어느 누구도 함부로 할 수 없는 상태였습니다. 그는 세상적으로 성공한 사람이었다는 것입니다. 또한 그는 부자였기에 물질적으로 부족함이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다 바라고 원하는 권력과 부를 함께 쥐고 있는 그의 삶은 일면 아무런 문제나 걱정할 것이 없는 마음 편한 사람이라고 여길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3절 이후를 보면 그의 인생이 지금까지 살아오던 방향과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 가는 것을 보게 됩니다.

         삭개오는 예수께서 어떠한 사람인가 하여 보고자 하였다고 합니다. 예수님이 어떠한 사람인지 보고자 하여 라는 말은 보기 위해서 계속해서 찾는 모습을 나타내는데 찾아 보기까지는 멈추지 않을 것이라는 의지를 함께 포함하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그의 작은 키가 많은 사람들로 말미암아 그가 보고자 하는 의지와 생각을 이룰 수 없기에 그는 앞으로 달려가서 돌무화과 나무에 올라가게 만든 것입니다.

         그렇다면 삭개오의 마음은 지금 예수님께로 이끌려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삭개오 마음의 변화에 대한 이해를 우리는 10절에서 발견할 수가 있는데 주님이 이 땅에 오신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시려고 오신 것이라고 합니다. 이 구절은 주님이 이 땅에 오신 목적에 대하여 말씀하고 있지만 문맥 속에서 주님은 바로 잃어버린 자인 삭개오를 찾아 구원하러 오신 것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단어는 주님이 삭개오를 찾아 구원하셨다는 사실입니다.

         이러한 주님의 표현이 참됨은 5절을 보면 예수님께서 그 곳에 이르셨습니다.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삭개오가 주님을 처음 만났듯이 주님도 삭개오를 처음 만나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주님이 그의 이름을 부르시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주님은 그분의 신적 능력으로 인해 이미 삭개오를 아셨으며 그렇기에 삭개오라는 그의 이름을 부르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이 이제 삭개오의 집에 함께 가셔야겠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이러한 지금까지의 내용을 통하여 우리가 알게 되는 것은 삭개오의 마음의 성향의 경향이 호기심을 넘어 주님의 간절히 찾으며 만나고자 하는 열망은 어떻게 발생한 것인가 하면 주님께서 주의 성령을 통하여 그의 마음에 주님을 향한 이끌림을 주셨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한 영혼이 구원을 얻기 위하여 그의 마음에 일어나는 주님을 향한 성향의 경향성은 이렇게 앞선 주님의 은혜의 역사 때문이라는 점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주님께서 앞서 베푸신 은혜의 이끌림에 대하여 삭개오의 잘한 점은 순종하였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성령의 이끄심에 대하여 더욱 강한 악한 의지로 포기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불순종하지 않았고 순종하였다는 것입니다. 주님의 성령은 많은 사람들에게 이러한 기회들을 제공하며 이끄십니다. 그러나 이러한 주님의 은혜에 대하여 깨어있지 못하여 알지 못하거나, 또는 불순종함으로 많은 이들이 이를 헛되게 만들고 있다는 것입니다. 주님은 항상 우리를 부르시며 구원으로 초청하고 계실 뿐만 아니라 이미 구원을 얻은 이들에게는 더 깊은 신앙과 참된 신앙으로 부르시고 계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자신이 가진 것을 즐거워하며, 기뻐하며 만족하며 자신을 사랑하며 살았던 사람이 주님을 만났습니다. 그러자 그에게는 전혀 다른 기쁨과 즐거움이 생기에 되었습니다. 이것은 예전에 육체를 위하여 살던 즐거움과 기쁨과는 비교할 수 없는 다른 차원의 것이었습니다. 6절을 보면 19:6절 급히 내려와 즐거워하며 영접하거늘 급히 내려왔다는 말은 내려오라는 예수님의 말씀에 삭개오가 어떻게 순종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것인데 그는 예수님의 말씀이 너무나 반갑고 좋았던 것입니다. 그렇기에 나무에서 급히 내려온 것입니다. 그리고 그의 마음은 즐거움으로 가득하여 주님을 자신의 집으로 영접하게 됩니다.

         삭개오의 마음에 기쁨이 넘치고 즐거움이 가득하여 행복해 진 것은 분명 그가 이미 가진 권력의 힘이나 또는 많은 양의 재물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주님 때문이며, 주님과의 만남과 그분이 자신의 이름을 부르시며 자신의 집에 거하시겠다는 것으로 인한 기쁨이며 즐거움이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8절에서 주님을 만난 자가 무엇을 관심을 기울이며 무엇을 사랑하게 되는지를 보게 되는데 8절을 보면 19:8절 삭개오가 서서 주께 여짜오되 주여 보시옵소서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 만일 누구의 것을 속여 빼앗은 일이 있으면 네 갑절이나 갚겠나이다 여러분 삭개오가 이러한 말을 하는 배경에 누군가 삭개오에게 이렇게 하는 것이 좋겠다고 간청하거나 조언한 것이 아닙니다. 그의 마음에 이렇게 하고자 하는 마음이 들었으며 그가 스스로 결정하고 선택한 것입니다.

         그의 마음에 스스로 결정한 사항을 보면 주여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다고 합니다. 그가 서서 말하였다고 하는 표현은 그의 결심이 공개적이며, 공적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는 자신의 소유 절반을 나누어 주기로 결정한 것입니다. 그는 이제껏 이러한 마음이 전혀 없었던 사람입니다. 그는 오직 자신만을 위하며, 자신만을 사랑하며 살았던 사람입니다. 그가 세리장이라는 직업을 가진 것도 그는 동족들이 자신을 뒤에서 비난하고 조롱할 것이라는 사실을 모르고 한 것이 아니라 그러하더라도 그는 세상에서 권력을 쥐는 것이 그리고 부를 얻는 것이 더욱 좋은 일이며 그것이 자신을 위하여 가장 복된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가 자신이 이제껏 쫓으며 추구했던 모든 것을 내려놓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누어 주겠다고 하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그는 만일 누구의 것을 속여 빼앗은 일이 있다면 네 갑절이나 갚겠다고 합니다. 속여 빼앗다는 것은 부당하게 취하는 것을 말합니다. 율법에 의하면 이러한 경우 속여 빼앗은 값의 5분의 1만을 더하여 갚으면 됩니다. 그런데 삭개오는 네 배나 갚겠다고 합니다. 그가 자신의 재산을 모으는데 얼마나 속여서 빼앗았는지 우리는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그는 만약 그런 일이 있다면 네 배나 갚음으로 이러한 속이는 인생을 더 이상 살지 않겠다고 선언하며 결심하는 것입니다.

         놀라운 것은 그의 마음 속에 예수님께 잘 보이고 싶어서 말로 아첨하는 것이 절대로 아니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다는 단어와 네 갑절이나 갚겠다는 단어가 현재 진행되고 있는 상황을 내고 있다고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즉 삭개오가 서서 예수님께 자신의 결심을 말씀을 드릴 때에 이미 그는 자신의 종들에게 자신의 재산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누어주기 시작하였으며 또한 갚기 시작하였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어떻게 이렇게 사람이 바뀔 수 있는가? 하는 것에 궁금해 하며 그 마음의 변화를 일일이 추적하거나 살펴보아 알 수 없습니다. 성경이 말하고 있는 것은 주님의 부르심을 받고 주님을 만나게 되면 자신을 사랑하며 자신만을 위하여 살며 세상과 세상에 속한 것들을 즐거워하며 기뻐하며, 만족으로 삼고 살던 이들이 그 모든 것이 헛되다는 것을 깨닫게 되며, 이제 주님과 함께 있는 것이 그리고 더 귀하고 중한 자신의 영혼을 위하여 살게 된다는 것입니다. 삭개오는 자신의 영혼을 위한 삶이 더 중요함을 깨닫게 되었기에 그는 주님을 원했으며 그분의 구원을 더욱 소망하여 이제껏 살아오던 모든 삶을 돌이키게 되고 바꾸게 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