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말씀

왜 성령인가? <누가복음 11장 13절>

by YC posted Jan 31,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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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영상   https://youtu.be/Ds0KTvnQ34Y     


마태복음 7 11절을 보면 이 구절에서는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구절은 너희가 악할 지라도 자식에게 좋은 것을 준다는 누가복음 11 13절 말씀과 같은 내용인데 누가복음에서는 성령을 주신다고 하는데 마태복음에서는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을 주신다고 하십니다. 즉 이 두 구절을 연결해서 생각해 보면 구하는 자들에게 좋은 것은 성령이라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결국 왜 하나님께서 기도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는가에 대한 대답은 성령은 우리에게 좋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좋은 것이란 의미는 무엇보다도 더 나은 것이며, 더 필요한 것이며, 꼭 있어야 할 것이라는 점에서 좋은 이라는 의미입니다. 성령은 우리에게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에 기도할 때에 다른 모든 것들 보다 앞서 주어져야 하며, 반드시 있어야 하는 하기 때문에 먼저 주시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제 성령께서 우리에게 어떤 분이시기에 모든 것에 앞서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주시기를 원하시는가 하는 것입니다. 우선 성령에 대하여 살펴보려고 합니다. 성령께서 성도들을 위하여 행하시는 사역은 크게 두 가지로 구분 될 수 있는데 첫째는 성령의 보편적인 사역입니다. 이는 성령께서 성도들을 위하여 일반적으로 행하시는 기본적인 사역들인데 우리에게 있어서는 가장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필수적인 사역으로 불신자를 신자되게 하시는 거듭남 즉 중생의 사역입니다. 또한 중생한 자를 거룩하도록 만들어 가시는 성화도 성령의 성도를 향한 일반적인 사역입니다.

         둘째로는 성령의 일반적인 사역 이외에 특별하게 사역하시는 일들이 있습니다. 이것을 성령의 특별사역이라고 표현합니다.. 이 특별사역은 성도들이 기도하고 간구할 때에 역사하시는 사역입니다. 성경이 기도에 대하여 말할 때에 아무나 할 수 있다고 가르치거나 또는 누구나 자신 스스로 할 수 있다고 말씀하고 있지 않습니다. 기도는 성령의 사역이며 성령의 도우심을 반드시 필요로 한다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초점을 맞추려고 하는 것은 성령의 광범위한 사역 전체에 대하여서가 아닙니다. 기도에 있어서 성령의 사역에 초점을 맞추고자 하는 것입니다. 왜 기도에 있어서 성령의 도우심이 필요한가 하는 것입니다.

         바램과 기도에 대한 구분부터 시작하도록 합시다. 신자들이 자신은 기도하고 있다고 믿고 있거나, 기도하지 않는 사람도 있나요? 라는 생각을 하는 이유는 바램을 기도로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바램이 없는 사람은 없습니다. 마음에 무엇이 되어졌으면 하는 소원이 없는 사람은 없습니다. 간절함의 정도의 차이는 있을 수 있지만 다 바램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것을 기도라고 여기는 이유는 기도란 마음에 간절한 소망을 가지고 계속해서 바라는 것이라고 믿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바램은 헛된 것일 뿐이며, 바람을 잡으려는 생각일 뿐이라고 합니다.

         스가랴서 12 10절을 보면 이 구절에서 은총과 간구하는 심령을 부어 주신다고 하나님께서 약속하십니다. 심령이라고 번역된 단어는 성령으로 번역하는 것이 좋습니다. 왜냐하면 이 단어가 요엘서 2 28절을 보면 내가 내 영을 만민에게 부어 주신다고 약속하는데 이 영이 성령을 가리키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스가랴서 12 10절에서 은총과 간구하는 심령은 바로 성령을 의미합니다. 이 성령이 간구하는 영이라고 표현되고 있는데 이 의미는 성령이 기도의 영이라는 뜻입니다.

         성령이 기도의 영이라는 의미는 우리의 기도는 성령의 인도하심이 있어야 하며 성령의 도우심으로 기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기도자가 성령의 인도하심이 없이 기도하는 것은 바람을 잡으려는 헛된 일일 뿐입니다. 또한 우리가 에베소서 6장에서 이미 살펴보았듯이 항상 성령 안에서 기도하라는 말씀도 이러한 이유 때문입니다.

         기도에 성령이 필요한 이유에 대하여 조금 더 성경이 말하는 논리적 이유를 생각해 봅시다. 첫째는 하나님께서 자신의 자녀들에게 가장 좋은 것을 주시기를 원하시며 구하는 자들에게 성령을 주신다는 것은 우리에게는 성령의 도우심이 없이는 온전하지 않다는 것이 사실이기 때문입니다. 즉 우리 자체의 연약함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죄책에서 자유케 되었으며 새 사람이 되었지만 이 새사람은 죄가 없는 완전한 새 사람이 아니라 여전히 자신 안에 죄의 오염으로 인한 죄의 유혹에 끊임 없이 시달리는 자이며 죄에 이끌리며 사랑하는 육체의 소욕 가운데 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주님께서 다시 오시는 그날에 순식간에 모든 믿는 자는 썩지 않고 죽지 않을 새 몸으로 변화되게 될 것입니다. 현재의 우리의 몸은 여전히 죄의 오염 가운데서 고통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하나님은 우리를 도우시는 분으로 성령을 부어주셔서 기도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둘째는 기도에 있어서 성령의 도우심은 더욱 필수적일 수 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영적인 것에 대하여 무지하며 잘 깨닫지 못할 뿐만 아니라 이해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고전 2: 14절을 보면 영적인 일들에 대하여 깨닫고 순종하는 삶을 살 수 있는 것은 바로 성령께서 그 마음에 역사하셨기 때문입니다. 기도는 더욱 영적인 일이기 때문에 성령이 아니고서는 어리석게 보이며 미련하게 보이며 시간을 낭비하는 것이며 의미 없이 자신을 괴롭게 하는 시간일 수 밖에 없습니다. 성령이 아니면 기도 중요성이나 필요성이나 기도의 자리에 나아갈 수가 없는 것입니다. 바빠 죽겠는데 한 시간을 기도한다는 것은 미친 짓이라 여길 수 밖에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셋째는 기도는 육체의 소욕에 반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참된 기도는 가장 영적인 일 가운데 하나입니다. 만약 누군가 참된 기도를 하려 한다면 반드시 자신 안에 내재하고 있는 죄로부터 반격을 당하게 될 것이며 사단의 공격을 받게 됩니다. 다른 생각들로 마음이 이끌려가며, 집중력과 간절함은 사라지게 되고, 온갖 잡다한 생각들과 걱정들로 마음이 온전히 하나님께 나아가지 못하게 막는 일들이 생기게 됩니다. 죄와 사단은 기도하고자 하는 마음을 제거하기 위해서 육체의 즐거움을 추구하도록 부추길 뿐만 아니라 기도에 대하여 피곤한 마음과 싫증의 마음을 불러 일으키게 됩니다. 죄는 기도자의 마음에 즐거움의 상실과 기쁨의 상실의 마음을 주어 기도를 싫어하도록 부추깁니다. 사단은 외적으로 바쁘고 분주하게 만들어 기도하는 시간을 내지 못하게 할 뿐만 아니라 온갖 일로 생각을 기도에서 멀어지게 하고 결국에는 오늘은 할 수 없다고 생각하게 만듭니다.

         기도는 반육체적이며 죄와 대적할 뿐만 아니라 사단과 싸우는 영적인 일이기 때문에 기도에는 성령의 인도하심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비록 사단의 유혹과 죄의 싸움에서 이겨 기도의 자리에 나왔을 때에도 이긴 것이 아님은 참된 기도를 하지 못하도록 방해하기 때문에 기도자는 아무것도 느끼지 못할 뿐만 아니라 성령의 인도하심 가운데 나아가지 못하고 기도와 기도의 능력에 대하여 실망할 뿐만 아니라 낙심하여 기도가 필요 없다고 느끼며 종교적인 의식 행위에 불과하다는 믿음으로 돌아서게 만듭니다.

         기도가 바로 이러한 영적인 싸움의 일이기 때문에 반드시 성령의 인도하심이 필요하며 우리의 마음을 참된 기도 가운데로 나아가도록 도우시는 성령의 역사가 필요한 것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간구하되 성령을 구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참된 기도를 드릴 수 있도록 성령이 강하게 자신의 마음에 역사하도록 구해야 합니다. 우리의 기도가 헛된 바램으로 변질 되거나 쓸모 없는 것이 되지 않기 위해서 우리는 오직 성령의 도우심을 능력을 구하셔야 합니다. 경건한 사람들이 매일 빼지 않고 기도했던 것이 바로 성령의 충만하심과 인도하심이었다는 사실을 성령이 기도에 있어서 얼마나 중요한 분이신지를 다시 한번 확인하게 되는 것입니다. 성령을 구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