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말씀

또 다른 보혜사 <요한복음 14장 16-18절>

by YC posted Feb 22,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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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영상https://youtu.be/TW4ftYtdxI0


오늘 우리가 살펴볼 본문은 무엇이 그리고 어떻게 그리스도인은 참되게 그리고 온전하게 만드는가 하는 것을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요한복음 14 18절을 보면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하시는 말씀으로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않을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버려둔다라는 단어는 홀로 내버려 두다, 혼자 있게 하다 라는 뜻입니다. 내버려 두는 것이 어떤 상태인가를 좀더 설명해주는 단어가 고아와 같이 라는 표현입니다. 여기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첫째는 보호를 보장한다는 것입니다. 고아란 보호자가 없는 아이를 말합니다. 이 말씀에서 누가 고아입니까? 주님이 없는 자들이 고아입니다.

         둘째로 너희가 마치 고아와 같다는 의미는 너희는 자신 스스로를 어떻게 할 수 없는 고아와 같은 무능한 상태라는 사실을 가리켜 주는 것입니다. 고아가 불쌍한 이유는 그들에게는 자신을 위해 무엇인가를 할 수 있는 능력이 없고, 힘이 없고, 지혜가 없습니다. 고아는 아직 모든 면에서 자신을 책임 질 수 있는 성인이 아닌 어린 아이입니다. 모든 인간은 하나님 앞에서 나아감에 있어서 고아와 같이 무능한 존재이며, 하나님의 뜻이나 영적인 일에 있어서 고아와 같아 아무것도 스스로 할 수 없는 연약함 속에 있다는 것입니다.

         그 주님의 약속된 보호와 능력이 무엇인가를 보면 16절에 이렇게 기록되었습니다. 이 구절에서 우리는 또 다른 보혜사라는 단어를 보게 됩니다. 먼저 보혜사라는 말은 일반적으로 돕는 자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럼 어떻게 돕는 것인가에 대하여 또 다른 이라는 표현 속에서 이 보혜사는 먼저 있던 보혜사와 같은 일을 하시는 분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럼 먼저 있던 보혜사는 예수님 자신입니다. 여기서 다른 이라는 단어는 질적으로 같은 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어서 다른 보혜사는 예수님과 질적으로 같은 분이시며, 또한 능력이나 힘에 있어서도 같으며, 사역에 있어서도 같은 일을 하시는 분이십니다. 이 보혜사는 알다시피 바로 성령님이십니다.

         주님은 자신과 같은 보혜사를 보내어 주시는데 이 성령은 주님을 대신하여 우리와 함께 있는 분이시라고 합니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성령이 오심은 우리 주님께서 우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않으시기 위해서 우리를 위해 친히 성부 하나님께 구하셔서 우리에게 오시게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부분에 대하여 주님께서 성부 하나님께 기도한다는 사실에 대하여 놀라야 하는데 왜냐하면 기도란 종속된 자가 주인에게 비는 형식을 가집니다. 그런데 성자 하나님께서 성부 하나님께 기도하신다는 것입니다. 삼위 하나님께서 그 능력과 위엄과 영광에서 있어서 동등 되심에도 불구하고 성자 하나님께서 마치 성부 하나님께 종속되신 것처럼 기도하신다는 것은 성자 하나님께서 인간 구원과 관련하여 특히 자신이 구원할 자들을 위하여 자신을 낮추신 것입니다. 자신의 백성, 즉 우리를 위하여 자신을 낮추심으로 구원 사역을 위하여 기도하시며 성령을 구하시는 시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감사해야 하는 것입니다.

         17절을 더 보면 요14:17절 우리와 영원히 함께 하실 성령은 진리의 영이라고 합니다. 이 말은 쉽게 말해 진리의 스승으로 진리이신 예수 그리스를 깨닫게 하시며 주님의 말씀을 알게 하실 뿐만 아니라 가르치시는 분이라는 것입니다. 성령이 진리의 영이라는 부분과 또한 너희는 그를 아나니 그는 너희와 함께 거하며 너희 속에 계신다고 하십니다.

         이 부분이 저와 여러분에게 중요합니다. 성령은 진리의 영이신데 누구에게 그런가 하면 예수를 믿는 자들에게 이 구절에 의하면 그를 아는 자들에게 또한 그가 너희와 함께 거하고 너희 속에 계시는 이들에게 입니다. 이 부분을 중요하게 오늘 생각해야 하는 이유는 성령이 나에게 진리의 영이신가 하는 것입니다. 또한 그를 나는 알고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분이 당신과 함께 하고 계십니까? 당신 속에 계십니까? 하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신자가 왜 신앙 생활 즉 하나님의 말씀을 삶에서 실천하며 순종하며, 말씀이 자신의 삶에 살아 역사하지 못하는가에 답변입니다. 또한 왜 오늘날 신자들이 삶에서 하나님을 경험하거나 말씀의 힘과 능력과 위력을 확신하지 못하며 의지하여 말씀에 따라 승리하는 삶을 살지 못하고 패배와 무기력과 생기나 활력이 잃어버려 현실의 삶이 신앙을 지배하는 상태에 빠지게 되었는가 하는 이유입니다. 제 주변의 많은 사람이 마치 고아와 같이 살고 있습니다. 버려진 채 아무도 돌보지 않은 것처럼 살고 있습니다. 정말 세상 사람들처럼 이 세상에 목숨을 걸고 살고 있습니다. 그들의 눈에는 마치 천국이 보이지 않고, 하나님의 나라는 없는 것처럼, 그리고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은 예배당에서만 머물며 존재하는 상태가 된 이유가 바로 성령을 알지 못하고 성령이 함께 하지 않고, 성령이 속에 계시지 않기 때문 아닐까 하는 의구심이 든다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성령이 없는 세상에 대하여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세상은 능히 그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그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라는 것입니다. 세상은 능히 그를 받지 못한다고 합니다. 원문을 직역하면 세상은 절대로 성령을 받아 들일 수 없다는 것입니다. 받아 들이다는 말은 취하거나 붙잡거나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절대로 세상 즉 세상 사람들은 성령을 자신들의 것으로 취하거나 붙잡을 수 없습니다. 왜입니까? 왜냐하면 그들은 성령을 보지도 못합니다. 그리고 알지도 못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주님은 여기에 반전을 주십니다. 그러나 너희는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문제는 저와 여러분들이 바로 그러나 너희는 에 해당하는가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성령이 진리의 영이심을 느끼십니까? 이 말은 성령께서 여러분들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도하시고 계시냐는 것입니다. 내 마음이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며, 하나님의 알기를 원할 뿐만 아니라, 말씀에 순종하고자 하는 이끌림이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분명히 주님은 너희는 그를 안다고 말씀하십니다. 안다는 것은 경험되어지는 것입니다.

         성령을 아는 이의 또 다른 특징은 지속성입니다. 그는 너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 이 구절이 말씀하고 있는 것은 성령이 잠깐 있다가 떠나시는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또 다른 특징은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는 일은 희생이 손해를 감수 할 뿐만 아니라 참고 인내하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는 다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는 결국 삶에서 거룩한 변화의 열매를 맺어 가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스스로 물어야 하는 것은 나는 고아인가? 아니면 성령을 알며 그분이 내 안에 오셔서 거하시고 계시는가 하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