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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영상  https://youtu.be/ZsF6MXDXhnQ


성경에서 동물이나 식물 등을 비유로 해서 효과적으로 의미를 전달하고 말하고자 하는 뜻을 나타내고자 사용하는 예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 중에 오늘 우리가 함께 살펴보려고 하는 본문은 참새를 예로 들어 말하고자 하는 내용을 효과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29절을 보면 참새 두 마리가 한 앗사리온에 팔리지 않느냐 라는 말은 청중들에게 동의를 구하고자 하시는 말씀으로 실제적인 사실에 대한 일반적 정보를 의문형으로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당시에 사람들이 참새를 매매하는 이유는 먹거리로서 사용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시장에서는 참새를 구워서 식용으로 팔고 있었습니다. 참새 매매에 있어서 두 마리가 한 앗사리온에 팔린 다고 말씀하신 이유는 참새의 가치가 너무 하찮은 것이라는 점을 부각하기 위해서 의도적으로 실제적 매매 상황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누가복음 12:6절을 보면 참새에 대한 예수님의 말씀을 더욱 부각시켜서 말씀하고 있는데 여기서는 마태복음과 다른 것이 참새가 두 마리의 매매를 예로 드는 것이 아니라 다섯 마리를 예로 들고 있다는 것입니다. 누가는 참새를 다섯 마리를 두 앗사리온에 살수 있다고 말합니다. 마태는 두 마리에 한 앗사리온 입니다. 다섯 마리와 두 마리의 구입 가격이 다르다는 것을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마태복음이나 누가복음이나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려는 의도는 매매 단가나 경제적 이익 효과에 대하여 말씀하고자 하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께서 참새를 예로 드는 이유는 가장 보잘 것 없으며 하찮게 여겨 가치 없는 것으로써 참새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그 다음에 나오는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다시 마태복음 12:29절을 보면 그러나 라는 단어를 주목하셔야 합니다. 참새는 하나를 덤으로 줄 수 있는 정도로 시장에서 하찮게 여기는 것이다. 기분 좋으면 더 줄 수 있고 많이 구입하면 더 주어도 손해가 나지 않을 정도의 것이다. 그러나 너희 아버지께서 허락하지 아니하시면 그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리라 라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하찮게 여기는 참새 한 마리라도 그것이 땅에 떨어지는 것 즉 죽는 것은 하나님께서 허락하셔야만 되어지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허락하다 라는 단어는 의지나 개입을 의미하는 것으로 하나님의 의지나 개입이 없이 저절로 또는 우연히 벌어지는 자연 스스로의 인과율의 법칙에 의해서 되어지지 않는 다는 것입니다.

         30절을 보면 너희는 이라는 표현이 나옵니다. 여기서 너희는 이라는 것은 분명 사람을 가리키는 것이며 제자들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정작 주님께서 말씀하시고자 하시는 것은 참새가 아니라 하나님을 아버지로 믿고 살아가는 자들에 대하여 입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자녀들에게 관심을 기울이시며 그들의 생명을 가치 있게 여기시는 분으로 묘사된 것이 바로 머리털까지 다 세신 바 되었다라는 표현입니다. 사실 머리털은 참새 보다 더욱 하찮은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머리털까지 하나님께서는 다 세신 바 되었다고 합니다. 세신 바 되었다는 말은 다 계산이 끝이 난 상태를 말합니다. 이것은 단순히 하나님은 전지하시다 라는 의미를 말하고자 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그분이 자신의 자녀된 자들을 향하여 얼마나 애정을 가지고 계실 뿐만 아니라 사랑과 관심을 기울이고 계신가 하는 것을 말하고자 합니다.

         그래서 31절 말씀에 주님은 두려워 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시장에서 값싼 음식으로 덤으로 줄 정도 가치의 참새에 대한 이야기와 머리털의 이야기의 목적은 두려워 말라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12:6절에서 하나님 앞에 그 하나도 잊어버리시는 바 되지 않는다는 말을 기억하셔야 합니다. 여기서 잊어버린다는 의미는 무관심이며 소홀이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자녀를 소홀이 하지 않습니다. 참새 하나가 땅에 떨어지고 떨어지지 않는 것에 대하여 하나님의 개입과 참여가 있어야만 되는 것이 아무런 감정 없이 단순히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도덕적으로 선하신 분이시기 때문에 생명을 존중해서 개입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자녀들의 머리털까지 알고 계신 이유가 창조주가 가지는 윤리적이고 도덕적인 책임감 때문으로 이해하면 안됩니다.     마태복음 7:11절을 보면 이 구절은 아버지대 아버지로써 비교를 하고 있습니다. 창조주가 피조물을 향한 윤리와 도덕적 책임감에서 행하는 돌봄이나 관심이나 사랑이 아니라 육신의 부모가 자신의 자녀를 대할 때에 가지는 사랑과 자비와 궁휼과 애정 어린 돌봄과 같은 동일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말씀을 주님이 주시는 이유는 첫째 하나님이 누구신지를 바르게 이해하기 위해서 입니다. 인생의 두려움이 어디서 옵니까? 인생의 걱정과 근심이 어디서부터 시작되며 발생하게 됩니까? 하나님에 대한 부재이며 하나님과의 관계의 소원함으로부터 입니다. 하나님이 누구신지를 우리는 생각하지 않고 잊고 살기에 우리는 의지할 자를 상실할 뿐만 아니라 우리의 안전과 평안이 위협받게 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 세상에는 의지하며 신뢰할 것이 전혀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알다시피 이 세상에서 아무도 스스로 안전하다고 확신할 수 있는 자는 없습니다. 불의의 사고나 질병은 사회적 지위의 고하를 가리지 않으며 학력의 높고 낮음이나 부유하거나 가난함을 따지지 않고 찾아 옵니다. 하나님이 자신의 아버지라는 사실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누구신지를 알지 못하면 두려움이 찾아올 뿐만 아니라 늘 염려 속에 살게 됩니다. 매일 기도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매일 말씀을 읽고 묵상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염려와 두려움에 휩싸일 뿐만 아니라 삶이 고통으로 가득하게 됩니다.

         둘째는 하나님이 나의 머리털까지 세신바 되었다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우리가 가운데 믿음이 필요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도 그리고 그것을 비록 깨달았다 하여도 우리는 두려움에서 벗어나지 못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믿음은 우리가 들고 깨달은 것은 우리 마음에 확신으로 자리 잡게 합니다. 믿음은 우리가 하나님에 대하여 알고 있는 사실에 대하여 우리의 마음에 적용하게 하며 마음을 변화시킵니다. 우리가 믿는 일에 힘을 써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믿지 않으면 하나님이 주신 어떤 것도 내 것이 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자신의 자녀들에게 주신 약속은 반드시 믿음으로 받게 되는 이유 때문입니다. 히브리서 11:6절을 보면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라고 합니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습니다. 이 말은 하나님의 위하여 살수도 없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과 어떠한 관계를 맺을 수 없다는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그렇기에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을 믿어야 할 뿐만 아니라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한다고 합니다. 믿음으로 우리는 하나님이 존재하고 계시다는 사실에 도달하고 확신 가운데 설수 있으며 믿음으로 우리는 하나님께서 자신의 백성들에게 상을 주시는 분이라는 사실 즉 자신의 백성을 돌보시며 은혜를 베푸시는 분이라는 사실을 믿음으로 확신하며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신자에게 중요한 일은 믿는 일입니다. 이 일 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이렇다 저렇다 아무리 말하여도 믿지 않는 다면 그에게 그 말씀은 아무런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믿기 위해서 말씀을 지속적으로 마음에 품고 묵상하십시오. 하루 시작을 기도로 하루의 마감을 기도와 함께 하십시오. 하나님을 지속적으로 찾으려고 애를 쓰십시오. 이것이 경건한 삶이며 이것이 믿음으로 사는 삶입니다. 하나님이 누구신지를 어떤 분이신지를 어떤 일을 행하시는 분이신지를 믿음으로 여러분의 마음에 확신하시기 바랍니다


주일 말씀 요약 및 설교 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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