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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영상  https://youtu.be/2G82vn47iQU 

             편집 과정에서  잡음이 섞여 들어갔습니다. 양해해 주십시오.


6절을 보면 원문에서 빠진 단어가 있는데 왜냐하면 이라는 단어입니다. 왜냐하면 이라는 접속사는 앞에 제시하고자 하는 것에 대한 이유입니다. 5절을 보면 그러나 너는 모든 일에 신중하여 고난을 받으며 전도자의 일을 하며 네 직무를 다하라 라고 합니다. 바울은 4 3절과 4절에서 때가 때면 교회 안에 있는 사람들에게 나타날 현상을 말합니다. 바울이 지적하는 이러한 현상은 결코 바람직한 모습은 아닙니다. 그렇기에 5절에서 그러나 라는 말을 통하여 너는 그렇게 하지 말라고 합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는가에 대하여 바울은 모든 일에 신중하고 고난을 받고 전도자의 일을 하며 네 직무를 다하라고 합니다.

         그 후에 6절에서 바울은 왜냐하면 나의 죽음이 가까이 왔고 나는 곧 세상에 있지 않을 것이라는 것이 이유입니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마지막 유언을 하는 것입니다. 내가 있을 때에는 네게 위로가 되었고 힘이 되었다. 네게 필요한 것이나 도움이 있어야 할 것을 너는 내게서 얻을 수 있었지만 이제는 내가 이 세상을 떠날 날이 다가왔다 그렇기에 너는 더욱 힘을 내며 약하여지지 말고 네가 해야 할 일에 대하여 충실하여라 하는 것입니다.

         이제 바울이 자신에 대하여 무엇이라고 말하는지를 살펴보려고 합니다. 바울은 자신이 전제와 같이 벌써 부어졌다고 합니다. 구약에서 전제란 제사를 드릴 때에 제물 위에 포도주를 붓는 것을 의미합니다. 포도주를 붓는 행위가 의미하는 것은 하나님께 대한 헌신의 의미를 가지고 있는데 다른 액체가 아닌 포도주를 붓는 이유는 상징적으로 제사 드리는 자가 자신의 생명과 피를 희생제물로 드린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여기에 상용된 제사라는 의미는 일반적인 의미가 아닌 순교의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바울은 자신이 곧 순교자로써 자신의 생명과 피를 하나님께 드릴 것을 의식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죽음이 결코 그를 실망시키거나 낙심하게 하지 않고 있습니다.

         바울에게 있어서 순교의 죽음의 의미는 두 개의 큰 의미가 있습니다. 하나는 그의 죽음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출발이라는 것입니다. 또 다른 하나는 8절에 말하고 있는 죽음 이후에 그에 주어질 의의 면류관이 자신을 위하여 예비 되었다는 것입니다. 먼저 바울이 나의 떠날 시각이 가까웠도다 라는 말을 살펴봅시다. 떠날 이라는 단어가 의미하는 것은 선원이 배를 바다로 출항시키기 위해서 정박해 두었던 배의 줄을 푸는 것 또는 여행자가 새로운 행선지로 향하기 위해 자신이 기거하던 텐트를 걷는 것과 같은 이미지를 연상시키는 것입니다. 바울은 자신의 죽음을 저주나 혹은 없어져 버림이나 끝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출발로 이해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확신이 나에게 있는가 하는 것을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이것은 바울에게만 주어진 약속된 죽음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고백하며 세상을 의지하지 않고 오직 주를 의지하여 산 모든 자들에게 주어진 약속입니다.

         둘째로 바울의 확신은 8절에 나타나는데 이에 후로는 이라는 말은 바울이 이 세상을 떠난 후를 가리킵니다. 그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다고 합니다. 면류관이란 경주에서 승리한 자들에게 주어지는 승리의 월계관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이 면류관은 의의 면류관이라고 부르게 되는데 그 의미는 이 면류관을 받을 수 있는 자가 누구인가를 명시하는 것으로 의로운 자들이 받게 되는 면류관이라는 뜻입니다. 이 면류관을 주시는 분은 누구십니까? 바울에게 의로운 자들이 받게 될 승리의 면류관을 수여하시는 분은 바로 의로우신 재판장이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우리는 그분의 판결을 신뢰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염려 없이 그분의 판결에 우리를 맡길 수 있게 됩니다. 이것이 신자에게 주는 유익은 우리가 참되신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살기며 순종한다면 그 뒤에 있을 평가와 판결에 대하여 염려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며 우리는 어떠한 판결이 있을 지를 확신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바울이 자신의 죽음에 대하여 두 가지의 확신을 가지고 있음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확신은 어디로부터 오는 것이며 어떤 것에 근거한 것입니까? 7절을 보면 첫째로 그는 나는 선한 싸움을 싸웠다고 합니다. 둘째는 나의 달려갈 길을 마쳤다고 합니다. 셋째로는 믿음을 지켰다고 합니다. 이 세 개의 동사는 모두 현재 완료형으로 과거로부터 지금까지 지속적으로 해온 상태를 가리킵니다. 또한 세 개의 동사를 정리하면 내용이 더욱 명확해 지는데 싸우고 마치고 지켰다는 것입니다. 먼저 선한 싸움을 싸운다는 것은 경주에 참여하여 경주를 하는 상태를 말하는 것입니다. 이 경주는 선한 경주입니다. 여기서 선함이 가리키는 것은 가장 가치 있는 싸움임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바울이 싸운 선함은 인간에 있어서 가장 고상하며 가치 있는 것으로 바로 우리를 지으신 하나님의 목적에 따라 사는 삶을 가리킵니다.

         그리고 두 번째로 그는 그 달려갈 길을 마친 것입니다. 여기서 마쳤다는 의미는 끝내다, 완성하다, 성취하다는 뜻으로 그는 그 경주를 완주한 것입니다. 이 말씀에서 우리가 생각해야 할 것은 몇 등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이 경주는 기록을 단축하는 경기가 아닐 뿐만 아니라 몇 사람을 이겨 기록을 남기고 영웅적이어야 하며 탁월해야 하며 뛰어나야 하는 것이 아닙니다. 얼마나 다른 사람보다 잘났는가의 싸움이 아니기 때문에 다른 사람과 비교할 필요가 없으며 신경 써야 할 이유가 없습니다. 이 경주는 완주하는 것이 목적이며 끝까지 결승점을 향하여 나아가고 들어가는 것이 목적인 싸움인 것입니다. 그렇기에 주님만 바라고 가며 내게 주어진 일을 생각하고 가는 것입니다. 신앙이 남과 비교하고 되고 삶이 다른 사람과 비교 되면 우리의 경주가 흔들리며 혼란스러워 지게 되고 쉽게 지키거나 길을 벗어나게 됩니다. 마라톤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자신의 pace를 유지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중도에 포기하기 때문입니다. 믿음의 경주가 복된 것은 결승점에만 도달하면 되는 경주이며 그러면 모두에게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다는 것입니다.

         세 번째로는 믿음을 지켰다는 것으로 지켰다는 것은 보존하였다는 것으로 믿음을 보존하며 믿음이 끝까지 유지되었으며 변질되거나 약해지지나 왜곡되지 않고 끝까지 충성된 자로 있었다는 것입니다. 신자의 삶이란 바로 이러한 것입니다. 바울이 의의 면류관이 자신에게만 예비 된 것이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도 동일하게 주어진다고 합니다. 이 말은 모든 신자들이 바울이 살았던 삶의 발자취를 쫓아 산다면 선한 싸움을 싸우고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키게 되면 그는 바울이 확신하였던 것처럼 확신 가운데 죽음을 맞이하며 그 죽음 이후에 얻게 될 의의 면류관을 기대하며 기쁨으로 삶을 마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신자는 이 땅에서 영광을 얻기 위해 부르심을 받은 자도 아니며 이 땅에서 영원히 살도록 부르심을 받은 자도 아닙니다. 우리는 이 현세 이후에 있을 안식할 영원한 처소로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또한 그곳에서 우리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의의 면류관을 받는 영광스러운 자리에 서게 될 것입니다. 그렇기에 우리의 기쁨은 잠시 유보되며 우리의 승리는 아직은 아닌 것입니다. 현재적 신자의 삶은 경주에 참여한 자입니다. 경주에 참여하고 있는 자에게 면류관을 주는 일은 결코 없습니다. 결승점에 도달하지 않은 자에게 승리하였다고 선언하지도 않습니다. 신자의 삶이 힘든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경주에 참여하고 있기에 아직 완주하지 않았기에 아직 지켜낸 것이 아니기에 힘든 것입니다. 그러나 그날 이 올 것입니다. 경기에 참여한 자들에게 필요한 것은 응원이며 성원입니다. 이기십시오. 주님이 예비한 의의 면류관을 생각하십시오. 그러므로 힘을 내십시오. 그것이 저와 여러분이 지금 가져야 할 마음입니다


주일 말씀 요약 및 설교 영상

주일 말씀 컬럼 안에 설교 영상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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