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말씀

라합 < 여호수아 2장 8절부터 14절 >

by 박경호목사 posted Nov 10,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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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영상 https://youtu.be/IFqfftatwlo


오늘 우리는 라합이라는 사람의 인생 가운데 일어나게 된 사건의 내용들을 살펴보려고 합니다. 먼저 9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이 구절은 라합이 자신이 숨겨준 정탐꾼들에게 하는 말입니다. 이 구절에서 핵심 단어는 아노라 입니다. 안다는 단어는 단순한 지식과 정보에 의해서 아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이 단어는 경험과 체험을 바탕으로 한 전인격적 앎을 의미합니다. 이 구절에서는 라합이 알고 있는 세 개의 내용이 등장합니다. 이 모두가 경험과 체험을 통하여 앎입니다. 첫째는 여호와께서 이 땅을 너희에게 주신 줄을 아는 것입니다. 둘째는 우리가 너희를 심히 두려워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직역하면 너희에 대한 공포가 우리 위에 떨어졌다 입니다. 이것은 갑작스럽고 또한 충격을 받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셋째는 이 땅 주민들이 다 너희 앞에 간담이 녹았다는 것입니다. 간담이 녹았다는 표현은 무기력해졌고 상실감에 어떠한 의욕도 없는 상태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생각해야 하는 것은 둘째와 셋째의 내용인 우리가 너희를 심히 두려워하는 것이나 또는 너희 앞에 간담이 녹았다는 것은 라합이 실제로 주변에서 경험하고 체험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녀가 알고 있는 첫 번째에 대하여 우리는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 이것이 특별함은 이것은 그녀의 주변을 보고 알게 된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원문을 보면 더 명확한데 라합이 하나님께서 이 땅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신 것을 라합이 알고 있는 원인으로 여리고에 사는 사람들이 큰 두려움에 휩싸여 있거나 또는 그들이 간담이 녹은 것을 보고 추론해본 결과 그녀가 얻게 된 지식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원문은 뒤의 앎이 첫 번째 하나님에 대한 앎의 원인이 아닙니다. 때론 우리는 하나님을 이런 식을 알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경향들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지식으로 알 수 있거나 경험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영이시기 때문입니다. 또한 하나님을 안다는 것은 지식이나 정보의 개념이 아닌 하나님에 의한 체험과 경험됨이며 전인격의 만남이기 때문입니다. 성경이 하나님을 안다는 라고 말하는 것은 우리의 지식과 정서와 의지가 하나님을 인정하는 상태인 것입니다.

         라합의 경우에 어떻게 안다는 것이 그녀의 전인격에 나타나는지를 보겠습니다. 11절을 보면 먼저 마음이 녹았습니다. 마음이 녹았다는 표현은 분명히 정서적인 표현으로 감정의 상태를 말합니다. 감정이 지금 낙심과 두려움과 공포감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또한 정신을 잃었습니다. 여기서 정신이란 사고의 영역입니다. 여기에 더하여 라합은 이런 고백을 합니다. 하나님 여호와는 위로는 하늘에서도 아래로는 땅에서도 하나님이시라 이 말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너희의 하나님은 하늘과 땅에서 유일하신 신이라는 말입니다. 이것은 그의 의지가 담긴 고백으로 그녀의 의지가 움직인 것입니다.

         이것을 통하여 우리가 알게 되는 것은 그녀의 전인격이 하나님을 경험하였던 것입니다. 그 결과 하나님께서 이 땅을 너희에게 주신 것을 알게 된 것입니다. 이러한 전인격이 하나님을 만나는 것을 성경은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라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그녀에게 구원을 베풀어주셨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아는 지식과 정서와 의지를 주신 것입니다. 왜 그렇게 해석하며 왜 그렇게 이해할 수 밖에 없습니까? 불행하게도 9절과 11절에서 우리는 라합이 우리라는 표현을 하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 우리가 두려워하고 우리가 간담이 녹고 우리의 마음이 녹았고 우리가 정신을 잃었습니다. 그런데 그러한 상태인 수많은 여리고 주민들 중에 오직 라합만이 하나님을 안다고 고백하며 하나님께서 이 땅을 너희에게 주실 것을 알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라합만이 오직 너희의 하나님만이 하늘과 땅에 유일하신 하나님이라고 고백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아는 일에는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합니다. 우리 중에 어느 누구도 자신의 심으로 자신의 노력을 하나님을 믿은 자는 없으며 아는 자도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이런 일을 행하신 것이며 하나님은 우리 안에 믿음을 주시기 위해서 하시는 일은 무엇입니까? 10절을 보면 이 구절에서 라합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께서 하신 일들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 구절에서 핵심은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신 것이 무엇이냐 입니다. 라합은 이 이야기들을 들었습니다. 라합이 이스라엘 백성이 홍해를 건넜다는 소식과 시혼과 옥에 행한 일도 들었습니다. 그런데 그러한 사건들이 자연 현상도 아니고 우연이나 이스라엘 백성들의 실력이나 힘이 아닌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셨다고 라합은 고백하고 있습니다.

         이 구절에서 우리는 라합이 들려오는 소리를 인간적 사고와 생각으로 듣는 것이 아니라 영적으로 들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과 관련된 믿음으로 듣고 있다는 것입니다. 여리고의 사람들도 동일한 내용을 들었습니다. 라합과 여리고에 사는 주민들의 다른 반응은 들려오는 소리의 다름이 아닙니다. 듣는 내용이 달라 각기 다른 반응으로 한 무리는 하나님을 대적하여 멸망의 길로 가고 한 사람은 하나님께 순종함으로 영원한 생명을 얻는 것이 아닙니다. 동일한 내용이지만 듣는 이의 마음이 다른 것이며 듣는 이해력이 다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라합으로 하여금 들을 수 있는 귀를 주셨으며 이해할 수 있는 능력을 주신 것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는 귀를 가진 자가 복이 있다고 합니다. 똑같은 경고를 받고 있지만 그 경고를 이해하면 생명을 얻습니다. 그러나 그 경고를 이해하지 못하며 무시하는 자들은 멸망을 당하게 됩니다.

         라합의 이야기는 역사 속 과거의 이야기가 아니라 지금도 동일하게 우리의 현실 속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여전히 세상 속에서 고통가운데 살고 있는 자들에게 찾아 오십니다. 삶이 무의미해지고 인생에 회의가 생기고 풀리지 않는 문제 속에 고통하며 힘들어 하는 이들에게 하나님은 지금도 자신이 누구신지를 듣게 하심으로 그들을 고통 속에서 불러 내시고 계십니다. 지금도 수많은 곳에서 그 음성을 듣고 그분의 은혜 주심에 감사하며 사망에서 생명으로 나아오는 자들이 있습니다. 인생에 내일을 누구도 장담할 수 없듯이 신앙에서도 우리는 내일을 믿을 수 있다는 장담을 할 수 없습니다.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의 은혜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삶에 찾아오시고 은혜 주실 때를 놓치지 마십시오. 그분이 들려주는 그분에 대한 말씀을 소홀히 하지 마십시오. 그래야 하나님의 은혜 아래 살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