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말씀

부인 할 수 없는 하나님의 존재 < 로마서 1장 18절부터 23절 >

by 박경호목사 posted Nov 03,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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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몇 개의 질문을 가지고 하나님의 말씀을 살펴보려고 합니다. 첫 번째 질문은 모든 인간은 하나님을 알 수 있는가? 하는 것과 만약 알 수 있다면 둘째로 그렇다면 하나님을 안다는 것이 예수를 믿지 않는 불신자와 예수를 믿는 신자 사이에 다른 것인가 아니면 같은 것인가? 마지막으로는 만약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을 알 수 있다면 왜 어떤 이들은 여전히 하나님을 믿지 않으며 존재를 부인 하는 것일까?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세 개의 질문이 중요한 이유는 18절에서 하나님의 진노에 대하여 말하고 있는데 이 하나님의 진노가 어떤 사람들에게 임할 것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는 자들이 누구인가에 대하여 불의로 진리를 막는 사람들이라고 합니다. 여기서 불의로 진리를 막는다 라는 말을 살펴보아야 하는데 막는다 라는 말은 끌어 내린다, 밀어붙이다, 눌러버리다, 거스려 싸우다 등의 의미입니다.

         여기서 진리란 너무 깊이 생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이루신 구원의 복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문맥 속에서 피조물 가운데 자신을 계시하신 하나님에 대하여 알 수 있는 것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에 대한 신지식 또는 신의식이라고 설명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구절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모든 인간은 하나님을 알 수 있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만약 하나님을 전혀 알 수 없다면 어떻게 진리 즉 하나님의 존재에 대한 인정과 이해를 할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19절이 말하고 있는 것은 18절의 하나님께서 진로를 내리시는 이유가 합당하고 정당한 이유에 대하여 말씀하시고 있는데 왜냐하면 그들에게 하나님을 알 만한 것이 그들 속에 보임이라고 합니다. 이 말은 모든 사람들 안에 하나님을 명백하게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럼 사람들이 어떻게 하나님을 명백하게 알 수 있습니까? 라는 질문에 그 다음 말이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이것을 즉 하나님을 알 수 있는 것을 그들에게 나타내셨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보이셨다는 말은 명백하게 하다 보이게 만들다 라는 뜻으로 하나님께서 자신을 보이게 만들며 확실히 알만한 것을 주셨다는 것입니다.

         지금 18절부터 시작된 하나님의 진노가 왜 합당한 가에 대하여 설명하고 있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19절에서는 하나님을 알 만한 것들이 그들 안에 명확하게 주어졌고 그것은 하나님께서 그들 안에 두신 것이라고 하십니다. 20절은 구체적으로 사람들이 어떻게 하나님을 알 수 있는가 하는 부분을 다루면서 하나님께서 자신을 나타내신 방법에 대하여 말씀합니다. 알아 둘 것은 이 방법과 방식은 너무나 명확하기 때문에 아무도 핑계하지 못할 정도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20절에서 하나님께서 자신을 명확하게 알리셔서 사람들로 하여금 신의식, 하나님의 존재하심에 대하여 알게 하신 방법과 방식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은 그가 지으신 피조물들을 사용하셨다고 하십니다.

         20절에서 바울은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이라고 합니다. 창세 즉 세상의 시작 때부터 존재하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있었지만 그것은 보이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볼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은 우리의 눈으로 보이지 않습니다. 그래서 그의 능력이 얼마나 크신지 눈으로 볼 수는 없습니다. 또한 하나님의 신성 즉 하나님의 신적 탁월성과 신적 완전성도 보이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얼마나 탁월하신지 얼마나 완전하신 분이신지 볼 수가 없습니다.

         능력이나 탁월함과 완전함은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가늠할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있구나 하는 것은 그것이 눈으로 볼 수 있게 드러나는 행위의 결과를 통하여 입니다. 이 말은 자연 만물은 그냥 자연 만물이 아니라 하나님의 보이지 않던 능력과 그분의 신성이 보여지게 드러나게 된 것들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은 이러한 그가 만드신 만물을 볼 때에 하나님에 대한 신의식과 하나님의 존재에 대하여 인정할 수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불의로 진리를 막는 자들이 있습니다. 보이는 것을 끌어 내리며, 눌러버리고, 거스려 싸우는 자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 말은 만물 속에 분명히 보이는 하나님에 대한 신의식을 거부하며 부인할 뿐만 아니라 왜곡하며 비틀어 끌어 내려 거짓으로 바꾸려 한다는 것입니다.

         21절을 보면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을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하지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 라고 합니다. 이들이 왜 하나님께서 계시다는 사실을 부인하고 끌어내리며 왜곡하려고 하는가 하면 이들의 생각이 허망하여졌기 때문입니다. 허망하다는 말은 쓸모 없어지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생각이 쓸모 없다 라는 의미는 제대로 생각할 수 있는 능력이 상실하였으며 바르게 머리를 사용할 줄 모르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또한 미련한 마음을 가지고 있는 이것 마쳐 어두워졌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고 하나님의 존재를 시인하지 않는 것입니다.

         여기서 잠시 집고 넘어가야 할 것은 하나님을 인정하고 시인한다는 것이 구원에 대하여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지금 바울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일반 계시로 특별계시와 다른 것입니다. 무슨 말이냐면 자연속에 있는 하나님의 능력과 신성을 보고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는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셔서 나의 죄를 사하셨구나 하는 것을 알고 회개하고 예수를 믿는 다는 말이 아닙니다. 지금 이 부분은 일반적으로 하나님의 존재, 하나님에 대한 신의식 조차도 없다는 것입니다.

         자연 만물을 보는데 진리를 막지 않는 자들은 기본적으로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 하면 누군가 계시구나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저절로 존재하지 않았겠구나 하는 마음이 들어야 합니다. 그 신적 존재는 탁월한 분이시며 완전하신 분이시며 엄청난 능력을 가지신 분이라는 생각이 들어야 정상입니다. 그런 분은 존재하지 않거나 또는 다른 것에게 영광을 돌리며 창조자의 지위를 주면 안 되는 것입니다. 현대 시대에도 돌에게 절을 하며 돌에게 기도하는 일들이 있습니다. 나무에게 절을 하고 나무를 숭배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성경은 분명히 그가 지으신 만물에 분명하게 하나님의 능력과 신성이 알려졌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알려졌다는 말은 확실하게 이해하게 되었으며 부인할 수 없을 정도로 명확하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봅시다. 지구의 자전축이 기울어지지 않았다면 태양은 항상 적도를 수직으로 내리 쬘 텐데, 지구의 지축이 23° 5' 기울어 자전하면서 태양 주위를 돌게 되니 태양이 수직으로 내리쬐는 지역이 바뀌게 됩니다. 지구는 자전축이 기울어져 태양을 공전하게 됨으로 사계절이 있습니다. 만약 지구의 자전축이 기울어 있지 않다면 지구에는 생물이 살기 힘든데 남극은 계속 얼음이 쌓여가고 결국에는 바닷물이 점점 줄어 들 뿐만 아니라 적도에는 너무 뜨거워서 사람들이 살지 못하게 됩니다. 그런데 어떻게 지구가 정확하게 23.5도가 기울어져서 사람이 살기에 안성 맞춤이 되었느냐는 것입니다. 지구가 생길 때에 우연히 다른 별과 부딪혀서 기울어졌다고 이야기 하는 것은 바로 하나님을 인정하기 싫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을 통하여 우리는 적어도 하나님이 계심을 부인해서는 안됩니다. 이러한 사실들을 무시해서는 안됩니다. 오늘 우리는 자연 속에서 하나님을 생각하며 그분이 모든 피조물 속에 자신을 나타내신 것을 분명히 보며 인정하는 하루가 되었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