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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본문을 보면 한 사람이 등장합니다. 1절은 그 사람에 대하여 소개하고 있는 내용입니다. 1절을 봅시다. 여기에 등장하는 인물은 나아만이라는 사람입니다. 그는 아람 왕의 군대장관이고 크고 존귀한 사람이었다고 합니다. 이 구절은 두 개의 큰 반전이 숨어 있습니다. 먼저 나아만에 대한 일차적인 소개는 그는 군대 장관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는 아람 군대의 총 사령관에 해당하는 직분을 가진 자였습니다. 이 자리는 오직 왕의 총애와 신임을 받은 자만이 오를 수 있는 자리입니다. 또한 그는 그 주인 앞에서 크고 존귀한 자라고 합니다. 크다라는 말은 위대하다라는 뜻으로 주인이 인정하고 높이 사는 인물이었으며 또한 존귀한 자라고 합니다. 존귀한 이란 단어는 직역하면 그 얼굴이 들려 올려진 자라는 뜻입니다. 이 단어는 수동형으로 스스로 자신의 얼굴을 든 자 교만한 자가 아닙니다. 타인에 의해서 얼굴이 들어 올려진 자 즉 주인에게 존경과 높게 여김을 받은 자입니다. 다음에 나오는 단어 이는 이라는 말은 왜냐하면 이라는 뜻으로 어떻게 나아만은 자신의 주인에게 크고 존귀한 자가 되어 아람 군대의 총 사령관의 지위에 오르게 되었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여호와께서 전에 저로 아람을 구원하게 하셨다고 합니다. 이 구절을 직역하면 저에게 여호와께서 주셨다 아람을 위해 구원을 입니다.

         나아만이 그 주인 앞에 크고 존귀한 자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그에게 아람을 구원하는 능력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이 말은 그의 모든 것은 결국 자신에 의해서 되어진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가지는 질문은 우리가 믿는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백성들 외에도 역사하시는가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신자에게만 하나님이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온 세상의 주인이시며 불신자들 가운데서도 그들의 삶에 영향을 미치실 뿐만 아니라 삶의 주인이십니다.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우리 하나님은 세상의 유일하신 주인이시라는 사실입니다.

         1절의 다음 내용을 보면 저는 큰 용사나 문둥병자더라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직역하면 그리고 그 사람은 힘센 용사였다. 그러나 그는 문둥병자이다. 그는 힘센 용사였습니다. 싸움에 나가면 물러섬이 없을 뿐만 아니라 싸움에도 능한 자였습니다. 이 모든 것은 나아만이 얼마나 성공한 사람이며 능력 있는 사람인가를 말해 주기에 충분합니다. 그런데 마지막에 그러나 문둥병자 였다는 말이 주는 의미는 큰 충격이 아닐 수 없습니다. 1절에 있어서 첫번째 반전은 그가 문둥병자였다는 것입니다. 이 사실은 앞에 아무리 좋은 내용을 갖다 놓는 다고 해도 다 상쇄하고도 남을 만큼의 큰 충격이 아닐 수 없습니다. 1절이 말해주고 싶은 것은 모든 것을 다 가진 것처럼 보여도 그 하나로 인해 그 가진 모든 것을 상쇄하고도 남는 아픔이 있을 수 있고 그 모든 것이 의미가 없는 것으로 만들 수 있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 반전은 그의 이름에 담겨있는 의미입니다. 문둥병에 걸린 이 사람은 아이러니 하게도 그 이름이 나아만 입니다. 나아만이라는 단어의 기원은 즐거움 또는 기쁘다 라는 말이 어원입니다. 즉 그는 즐겁고 기쁜 사람이 되고자 하는 기대와 소망으로 그의 이름을 가진 자였지만 전혀 그 소망과 기대와는 정반대로 슬픈 자였고 번민하는 자였고 고통스러운 자였으며 절망하는 자였습니다. 이것이 나아만의 비극입니다. 나아만은 이렇게 인생을 마칠 수 밖에 없는 운명인 것처럼 인생을 살아왔습니다. 그런데 2절에서 또 다른 반전의 서막이 시작됩니다. 2절에서는 갑자기 뜬금없이 아람 사람들이 예전에 전쟁에 나갔던 이야기가 등장합니다. 아람 사람들이 떼를 지어 나가서 라는 합니다. 이것은 급습을 의미합니다. 그들은 이스라엘을 급습했습니다. 그리고 작은 계집 아이 하나를 포로로 사로 잡아 왔습니다. 그 계집 아이는 공교롭게도 나아만의 아내를 수종들게 되었습니다.

         3절에서 포로로 잡혀온 이 작은 계집 아이의 입에서 나온 말 한마디가 나아만의 인생을 바꾸게 되기 때문입니다. 작은 계집 아이는 그 주인의 아내에게 말합니다. 우리 주인이 사마리아에 계신 선지자 앞에 계셨으면 좋겠나이다. 그러면 저가 그 문둥병을 고치리이다. 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한글 성경에 빠진 단어가 있는데 틀림 없이라는 단어입니다. 이 말은 소녀의 확신에 찬 말이었음을 강조합니다. 우리 주인이 그 선지자 앞에 계시면 틀림 없이 병이 나을 것을 나는 믿는 다는 고백입니다. 4절은 이 말을 들은 나아만의 반응으로 이 구절의 히브리어의 단어를 보면 그리고 그가 들어갔고 그리고 그가 말했다 입니다. 이 말은 나아만이 이야기를 듣고 바로 반응하였음을 가리켜주는 것입니다. 나아만은 자신의 아내로부터 작은 소녀가 한 말을 들었고 그리고 바로 왕에게로 들어갔고 그리고 설명합니다. 이 일들은 막힘 없이 즉각적으로 진행되고 있습니다..

         성경은 나아만이 인생에서 꼭 듣고 싶었던 말처럼 인간이 꼭 들어야 할 말이 있다고 합니다. 나아만은 자신을 점점 무너뜨리며 죽음에 이르게 하는 문둥병 앞에 속수 무책으로 자포자기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에게 희망의 소리, 생명의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그에게 기쁜 소식이 들려진 것입니다. 성경은 나아만이 들었던 것과 같은 기쁨의 소식이 있다고 합니다. 바로 복음입니다. 이것은 마치 나아만에게 있어서 그의 문둥병과 같이 아무것에도 만족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어떤 일에도 행복할 수 없는 상태에 있는 인간들에게 다시금 기쁨과 즐거움을 회복하게 하는 소식입니다. 그러기에 복된 소식 즉 복음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복음은 인간으로 하여금 마치 문둥병과 같이 치료할 수 없는 영적 질병으로 인해 고통 받는 자들에게 모든 죄에서 자유함을 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심판과 진노에서의 구원을 약속합니다.

         마지막으로 나아만이 문둥병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것은 복음을 듣고 그 복음에 반응하였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인 1절부터 3절까지 계속해서 나오는 한 단어가 있습니다. 그것은 그 앞에서 라는 단어입니다. 1절에서 나아만은 그 주인 앞에서 크고 존귀한 자였습니다. 그는 그 주인 앞에 있는 자였습니다. 자신을 칭찬하며 높이며 자랑스러워하며 육체적 필요한 것을 채워주는 자였습니다. 그러나 그 앞에 있다고 해서 그의 인생에 가장 큰 문제가 해결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 앞에 있는 동안 그는 진정한 만족이나 기쁨을 회복할 수가 없었습니다. 3절에서 작은 계집 아이는 나아만의 아내에게 내 주인이 그 선지자 앞에 있었더면 좋겠노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엘리사를 하나님의 사람이라고 부르지 않고 선지자로 말하는 이유는 선지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자이기에 하나님의 말씀을 강조하기 위해서 사용된 것입니다. 즉 이 계집 아이는 내 주인이 하나님의 말씀 앞에 있었으면 좋겠다는 말을 한 것입니다.

         인생이 변화되고 새로운 전환점을 맞이 하기 위해서는 말씀 앞에 있어야 합니다. 자신의 육신을 기쁘게 하고 즐겁게 해주는 자 앞에 서 있는 것으로 깊은 영적 문제가 해결되거나 인생의 가장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닙니다. 여전히 공허함과 슬픔으로 가득하게 될 뿐입니다. 나아만처럼 복음이 들려올 때에 복음을 듣기 위해 신속히 움직여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 앞에 있어야 합니다. 지금 우리가 처해 있는 이 시대는 육체의 만족이 부족한 시대가 아닙니다. 먹을 음식이 없어서 고민하는 시대도 아니고 입을 의복이 없어서 슬퍼하는 시대도 압니다. 오히려 영혼이 만족함이 없을 뿐만 아니라 세상의 염려와 두려움으로 평안함과 참된 쉼이 없는 시대입니다. 말씀 앞에 있어야 위로와 쉼을 누리며 평안을 얻게 됩니다. 염려로 가득할 때 불안으로 가득할 때 성경을 펴십시오. 그리고 그 안에서 생명의 복음을 들으시고 구원을 얻으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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