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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본문 5절을 보면 이 시를 기록한 저자가 시를 기록할 때 그의 안에 일어나고 있는 심리적 상태에 대하여 잘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그는 현재 낙망하고 있습니다. 또한 그의 마음은 불안으로 가득차 있음을 봅니다. 이 두 개의 단어는 시인만이 아니라 신자나 비신자를 가리지 않고 모두에게 엄청난 영향을 주며 삶을 무너뜨리기도 합니다. 오늘 우리가 이 본문을 함께 살펴보는 이유는 이 시인이 불신자이기 때문에 낙망이나 불안의 문제로 그의 마음이 혼란스러운 것이 아닙니다. 또한 신자로써 하나님에 대하여 불성실 하거나 악해서 이러한 일들 속에 있는 것도 아닙니다. 오히려 그의 마음은 하나님께로 향하고 있으며 하나님을 구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이러한 일들이 발생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2절을 보겠습니다. 이 구절은 시인의 하나님에 대한 인식과 또한 그가 과거에 어떠했는지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가 하나님을 갈망하고 있습니다. 갈망한다는 말은 갈증이 나서 목이 마르다는 뜻입니다. 이러한 표현은 시인이 하나님을 얼마나 그리워하고 있는가 하는 것을 나타내줍니다. 마지 목이 타는 갈증을 느끼듯이 하나님의 부재를 느끼며 하나님을 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그가 그토록 갈망하는 하나님에 대한 이해입니다. 시인이 하나님을 생존하시는 하나님이라고 부릅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이란 고백은 지금도 역사하시는 하나님이시며 일하고 계시는 분이시라는 의미입니다. 시인은 하나님의 실존과 그의 능력을 인정하며 확신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그의 신앙은 흠잡을 때가 없는 상태인 것입니다. 또한 내가 어느 때에 나아가서 하나님 앞에 뵈올꼬 라는 그의 기대와 바람은 그가 하나님 앞에 나아간 적이 있으며 과거에 지속적으로 그렇게 하였다는 사실을 말하고 있습니다.

         4절을 보겠습니다. 이 구절은 시인이 전에 일을 회상하는 내용입니다. 이 회상의 내용에서 그는 성일을 지키는 무리와 동행하여 기쁨과 찬송의 소리를 발하여 저희를 하나님의 집으로 인도하였다고 합니다. 여기서 하나님의 집으로 인도하였다는 말이 과거의 익숙한 습관이었다는 것입니다. 즉 그는 하나님의 집에 가는 것이 익숙하였습니다. 이러한 사실을 통하여 우리는 그의 과거의 신앙이 하나님 중심적이었으며 또한 현재에는 지속적으로 그의 마음에 하나님을 향한 갈망이 있음을 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그의 마음에 낙망과 불안이 가득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신앙이 좋다고 해서 영적 침체가 오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때로는 우리가 상황과 환경으로 인해 하나님을 지속적으로 찾고 있지만 그리고 하나님을 갈망하고 있지만 영적 침체를 경험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의 마음을 무너뜨리고 있는 낙망과 불안의 원인은 무엇입니까? 3절을 보겠습니다. 사람들이 시인에게 네 하나님이 어디 있느뇨 라고 질문하고 있습니다. 이 말은 네 하나님이 어찌되었느냐 라는 말로 네 하나님이 아주 너를 떠나 버린 것 아니냐? 라는 의미로 너는 버림받았다는 의미입니다. 이러한 말을 시인은 종일 듣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를 괴롭게 하며 고통스럽게 하는 일들이 하루 종일 우리 눈앞에서 떠나지 않을 때 일반적으로 두통에 시달리게 됩니다. 그리고 식욕을 잃어 버립니다. 시인이 바로 그렇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시인의 상태를 더욱 드러내는 것이 10절 말씀입니다. 여기서도 동일하게 네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 라고 조롱하는 자들을 봅니다. 이러한 말은 시인에게 그의 뼈를 찌르는 칼이 된 것입니다. 뼈를 찌르는 칼이라는 말은 직역하면 뼈를 산산이 조각 낸다는 말입니다. 말은 보이지 않습니다. 어떠한 형체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날카로움이나 예리함도 느껴지지 않지만 말이 살의를 띠면 사람을 죽게 합니다. 성경이 혀를 조심하라는 것이 여기에 있습니다. 말은 쏟아 부으면 주어 담을 수가 없습니다.

         이제 우리가 살펴볼 것은 이러한 시인의 상황에서 그는 어떻게 이것을 극복하고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먼저 다시 5절을 보겠습니다. 여기서 낙망이라는 말은 문자적으로 몸을 구부리는 상태를 표현하는 것입니다. 몸을 구부리는 것은 쳐져 있는 모습입니다. 즉 풀이 죽어 있는 것입니다. 시인의 마음은 주저앉아 있습니다. 이러한 상태는 극단적 좌절의 모습인 것입니다. 시인의 마음의 상태를 잘 드러내는 불안이라는 단어는 신음소리를 내는 것을 의미합니다. 고통 속에서 외마디가 입술에서 새어 나오는 것 같이 "" 하는 낮고 깊은 비명 같은 것입니다. 혼자 외로운 가운데 어디에다 하소연 할 수 없는 상황에서 홀로 이겨내야 하는 힘든 싸움에서 내는 소리입니다.

         시인이 이러한 상태에서 스스로 포기하지 않습니다. 비록 절망 속에 있지만 그 상태를 숙명으로 받고 주저앉아 있지 않습니다. 그는 발버둥치고 있으며 회복하려고 애쓰고 있습니다. 6절을 봅시다. 시인은 자신의 영혼이 그 속에서 낙망이 되기 때문에 무엇을 합니까? 그는 주를 기억한다고 합니다. 요단 땅과 헤르몬과 미살산에서 어떠한 일이 있었는지 우리는 알지 못하지만 시인은 그때 주님과 어떠한 일이 있었음을 말하고 있으며 그곳에서 주님과 만났던 일들 회상하는 것입니다. 영적 회복은 과거에 대한 회상으로 시작합니다. 하나님과 내가 만났던 때를 회상하며 돌아가야 할 곳이 어디인가를 확인하는 것입니다. 내가 서야 할 자리가 어디인가를 생각해 내는 것입니다.

         그런다고 영적 침체에서 쉽게 회복되는 것은 아닙니다. 7절에서 주의 폭포 소리에 깊은 바다가 서로 부르며 주의 파도와 물결이 나를 엄몰하도소이다 라고 합니다. 여전히 주의 파도와 물결이 자신을 엄몰하는 것을 보는 것입니다. 여전히 낙심이 여전이 불안이 그를 업습합니다. 그러나 그는 또 다시 하나님을 바라 봅니다. 8절입니다. 낮에는 여호와께서 그 인자함을 베푸시고 밤에는 그 찬송이 내게 있어 생명의 하나님께 기도하리로다 그는 하나님을 기대합니다. 그의 인자하심을 기대합니다. 그리고 그는 그분을 찬송할 것을 소망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입니다. 자신의 생명의 하나님께 자신을 의탁하고 기도할 것이라고 합니다. 여전히 그는 하나님의 인자함에 그리고 그의 기도에 응답하실 것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가 믿고 의지하는 하나님은 생명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9절은 그가 생명의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입니다. 9절 내 반석이신 하나님께 말하기를 어찌하여 나를 잊으셨나이까 내가 어찌하여 원수의 압제로 인하여 슬프게 다니나이까 하리로다 나를 잊으셨나이까 그렇지 않다면 어째서 내가 내 원수의 압제로 슬프게 다닙니까? 이 기도는 불평의 기도일 수 있고 원망의 기도일 수 있으나 그의 심경의 토하여 낸 것이며 오직 하나님 만이 의지할 자이며 자신을 이 고통에서 벗어나게 해줄 유일한 분이심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영적 침체에서 벗어나는 길을 하나님만을 의지하며 그분께 나아가는 것입니다. 자신을 잊지 말라고 살려 달라고 구해야 합니다.

         우리가 살펴본 이 모든 것들은 영적 침체를 벗어나는데 있어서 중요한 내용들입니다. 그러나 여기에 하나 더 더욱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5절과 11절 입니다. 이 두 구절은 같은 내용 같지만 약간 다릅니다. 11절을 봅시다.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망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하여 하는고 너는 하나님을 바라라 나는 내 얼굴을 도우시는 내 하나님을 오히려 찬송하리로다 시인이 자신의 내면에 가득한 낙망과 불안을 어떻게 극복하며 이겨내는가를 조사할 때 우리가 발견하는 것은 그가 자신의 영혼과 자신을 분리해서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이 구절의 첫 단어가 내 영혼아 입니다. 그는 자신의 영혼을 마치 자신이 아닌 것처럼 여기고 있습니다. 그래서 자신의 영혼에게 말하고 있습니다. 네가 어찌하여 낙망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하여 하는가?

         시인이 영혼이라고 하는 것은 그의 마음에서 일어나는 생각들입니다. 이것들은 때때로 우리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발생하며 우리의 의지를 무너뜨리기도 합니다. 마음의 생각이라는 것은 저절로 발생하는 것입니다. 아침에 일어나서 어제의 문제들이 떠오릅니다. 생각하고 싶지 않은 일들이 또는 사건들이 마음을 흔듭니다. 싸웠던 생각들, 다투었던 생각들, 걱정했던 일들, 마음대로 되지 않았던 일들, 슬프고 화나게 했던 일들이 자신이 생각하지 않는데 불구하고 끊임없이 우리의 마음에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시인이 낙망하고 불안한 것은 단지 그의 상황이 그렇기 때문이 아니라 그의 마음의 생각이 계속해서 그 안에 갇혀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는 자기 자신에게 말을 거는 것입니다. 자신의 마음의 생각에게 명령하며 멈추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는 자신에게 명령합니다. 너는 하나님을 바라라. 여기서 바라라는 말은 하나님께 소망을 둔다는 말로 하나님을 기다리는 것을 의미합니다. 즉 그는 자신에게 외치며 명령합니다.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둔 자이기 때문에 하나님만을 기다리라는 것입니다. 너의 끊임없는 염려와 불안을 멈추라는 것입니다. 자신의 마음의 생각에 자신을 맡기지 않는 것이 영적 침체서 벗어나는 중요한 핵심입니다. 사람들이 왜 마음의 고통과 절망 속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며 늘 불안함 속에 거하는가 하면 자신의 내면의 소리를 멈추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잘못된 소리, 불안의 소리, 염려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그 소리를 듣고 따르기 때문입니다. 멈추어야 합니다. 하나님께 소망을 두지 않는 소리를 멈추어야 하며 명령해야 합니다. 내 영혼아 더 이상 나를 영적 침체에 가두지 말라고 명령해야 합니다. 그리고 나는 오히려 하나님을 찬송할 것이고 선언해야 합니다. 내면에서 들리는 소리를 거부하고 하나님을 찬양 하겠다는 그의 의지와 결단은 시인을 회복케 하였을 뿐만 아니라 오늘도 동일한 영적 침체에 있는 우리를 회복하게 할 것입니다.

         자신의 속에서 들려오는 낙망의 소리에 불안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마십시오. 이 소리를 우리를 더욱 고통과 절망 속으로 밀어 넣습니다. 그 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눈물이 우리의 음식이 될 것이며 우리의 뼈들은 산산 조각이 나며 우리의 소망은 없어집니다. 사단은 끊임없이 우리의 마음을 유혹하여 이러한 소리에 귀를 기울이게 합니다. 그래서 우리를 무너뜨립니다. 극단적 좌절로 몸을 구부리게 하고 절망의 신음 소리만 낼 수 밖에 없는 상황으로 우리를 몰아 갑니다. 거기에서 하나님을 만날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을 기억하시고 말씀을 사모하시고 나오셔야 합니다. 마음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마시고 진리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십시오. 그리고 하나님께 소망을 두십시오. 하나님을 오히려 찬송하십시오. 지속적으로 이렇게 할 때에 우리는 영적 침체에서 또는 신앙의 문제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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