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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중요한 인물 가운데 한 사람인 이 사람의 직업은 감옥을 지키는 간수였습니다. 그 날에는 성을 소동케 한다는 죄목으로 심하게 매질을 당한 두 사람이 그에게 할당이 되어 그들을 옥에 넣고 지켰습니다. 그리고 깊은 밤이 되었습니다. 그때에 사건이 발생하였습니다. 그는 평상시와 같이 깊은 잠에 빠져 있었습니다. 25절을 보면 그날 성을 소동케 한다고 심한 매질을 당하고 옥에 갇힌 두 사람인 바울과 실라가 옥중에서 기도하며 하나님을 찬양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함께 갇혀 있었던 다른 죄수들은 그들의 기도와 찬양 소리를 계속해서 듣고 있는 상태였습니다. 26절을 보면 그때에 갑자기 지진이 났습니다. 이 지진은 잠깐 감지 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닌 감옥의 땅이 출렁거릴 정도의 큰 지진이었습니다. 그리고 곧 옥문이 모두 열려 버렸고 죄수들을 묶어 두었던 사슬들이 다 풀려 버렸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 지진이 빌립보라는 지역이 원래 잦은 지진일 발생했기 때문에 이 사건을 자연적 발생에 의해 생긴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은 증거가 있습니다. 지진과 별개로 옥문들이 열렸다는 것입니다. 그것도 한 두 개가 아닌 모두다 열렸습니다. 이것도 지진으로 인해 문들이 뒤틀려서 열렸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여기에 이것이 자연적인 현상에 의해 발생된 사건이 아니라는 증거는 24절에 있습니다. 이 말씀에서 간수는 상관들로부터 명령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바울과 실라를 깊은 옥에 가두었습니다. 그리고 그 발들에 착고를 든든히 채웠다고 합니다. 이 단어는 나무로 된 것으로 두꺼운 나무 판을 발목이 놓일 만하게 우묵하게 팝니다. 그리고 다른 나무 또한 동일하게 만들어 그 두 나무 사이에 발을 끼워 쇠 사슬로 이 두 나무를 연결하여 풀리지 않게 하는 것입니다. 이 착고의 특징은 죄수에게 고통을 주기 위한 것으로 양쪽 발목 사이를 넓게 하여 죄수는 다를 벌리고 있게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지진으로 풀린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인 것입니다. 그렇기에 이것은 하나님의 능력이 드러난 사건인 것입니다.

          27절을 보면 이 구절은 간수가 이제 어떻게 이 일에 반응하고 있는지를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그는 지진이 일어날 때에 자고 있는 상태였습니다. 그리고 이제 잠에서 깨어났습니다. 27절에서는 몇 개의 중요한 동사들로 간수의 행동과 마음 상태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깨어난 그가 인식하게 된 것은 모든 옥문들이 열려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보다라는 동사로 표현되고 있습니다. 그것을 인지하게 된 것입니다. 한글 성경은 죄수들이 도망한 줄 생각하고 검을 빼어 자결하려고 하거늘 이라고 표현되어 있지만 원문은 어순이 좀 다릅니다. 그가 검을 빼었다 라는 단어가 먼저 옵니다. 이 말은 그의 행동의 변화가 어떻게 되고 있는지를 보여 줍니다. 그는 보았습니다. 그리고 검을 뺍니다.

         이것이 중요한 이유는 인간의 일반적인 행동 패턴이 어떠한 가를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일반적으로 사람이 절박한 상황에 이르게 되면 보이는 것에 집중하게 되며 모든 상황 판단을 지금 당장 자신의 눈에 보이는 것에만 관심을 가진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에 의해 모든 판단이 내려지고 자신의 운명을 결정한다는 것입니다. 이 간수는 옥문들이 열린 것만 보았을 뿐입니다. 그런데 그 자신의 칼을 뽑습니다. 자신의 칼을 뽑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자결하려고 입니다. 그가 자살을 하려고 하는 이유는 그가 현재 보고 있는 상황 때문에 그렇습니다. 옥문들이 열려 있는 것입니다. 이 말은 죄수들이 모두 도망을 쳤다는 것으로 이해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왜 죄수들이 도망을 쳤는데 자신이 죽어야 합니까? 당시의 로마 법에 의하면 죄수가 도망을 치면 간수는 그 죄수의 죄를 대신해야 했습니다. 이 사람이 보고 바로 자결을 하려 했던 것은 날이 새면 자신은 형장의 이슬로 사라질 것이라는 두려움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두려움은 막연한 두려움이 아니라 그에게는 눈앞에 닥친 현실이었습니다. 그렇기에 그는 자신의 칼로 자신을 찌르려 한 것입니다.

         이 구절에서 우리가 눈 여겨 보아야 할 것은 보고 칼을 뽑아 자결하려는 그의 행동 뒤에 숨어 있는 행동을 조장하는 그의 마음입니다. 27절에 있는 단어 가운데 유독 한 단어만 미완료형입니다. 미완료형이란 멈추지 않고 계속되고 있는 어떤 것입니다. 그 단어가 바로 죄수들이 도망한 줄 생각하고 입니다. 간수를 죽음으로 스스로 자결로 몰아가고 있는 것이 바로 지속적으로 그의 마음을 상하게 하며 절망스럽게 만드는 생각입니다. 모두가 도망쳤다는 생각이 그의 마음을 움켜 잡고 있습니다. 이제 모든 것이 끝이 났다는 것이 그의 마음을 사로 잡고 있습니다. 아침이 되면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게 될 자신이 계속해서 떠오르는 것입니다. 그는 그 생각을 멈추지 못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제어하지 못하고 그 생각에 자신을 죽이는데 까지 몰아가도록 방치하고 있으며 무능력하게 죽음의 생각에 지배를 당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오늘날 하나님을 떠난 인간의 무능력한 모습입니다. 평안할 때는 모든 것이 안정될 때에는 모릅니다. 건강할 때는 모릅니다. 큰 문제가 자신의 인생에 발생할 때까지는 모릅니다. 늘 불안하지만 잘 될꺼야 괜찮을 꺼야 라면 스스로 위로하며 그렇게 두려움 속에 살아갑니다. 그러다 진짜 마주치고 싶지 않았던 일들 앞에 정면으로 서야 할 때가 옵니다. 그것이 물질의 문제이건 사업의 문제이건 건강의 문제이건 개인의 죽음이건 인간은 언젠가 자신이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을 시인할 무능력 앞에 서게 됩니다.

         이 절망의 사람에게 희망이 있습니까? 누가 이 사람에게 희망을 줄 수 있습니까? 28절에 이 사람에게 희망의 소리가 들려 옵니다. 바울이 크게 소리지릅니다. 상황이 급박하기 때문입니다. 그를 제지 하려고 소리를 지른 것입니다. 바울은 계속해서 말합니다. 네 몸을 상하게 하지 말라. 왜냐하면 우리가 다 여기 있기 때문이다. 라는 것입니다. 29절과 30절을 보면 간수는 등불을 달라하여 뛰어 옥 안으로 뛰어 들어갑니다. 그리고 그는 모든 죄수들이 그대로 옥에 있음을 확인합니다. 그리고 그는 무서워 떱니다. 여기서 무서워 떤다는 것은 단순한 공포심이 아닌 절대자 앞에서의 경외감 때문에 발생한 두려움입니다. 그렇기에 그는 무릎을 꿇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을 데리고 나아가 말합니다. 선생들아 이 말은 일반 호칭이 아니라 존경과 우러름을 담은 호칭입니다. 그는 내가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얻으리이까 라고 묻습니다.

         왜 갑자기 간수가 바울과 실라에게 무릎을 꿇고 내가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얻으리이까 라고 묻는 것입니까? 갑자기 일어난 지진과 옥문들이 열린 것과 그들의 발의 착고가 저절로 풀려진 것, 그리고 그들과 죄수들이 하나도 도망치지 않은 것이 이 간수에게 놀라움과 두려움을 준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결정적인 것은 그가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 또는 하찮게 여기고 있던 그것이 사실이며 참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16절 말씀을 봅시다. 이 구절은 본문에 앞서 왜 바울과 실라가 심하게 맞고 깊은 옥에 갇히는 신세가 되었는가를 설명해 주는 말씀입니다. 16절에서 바울과 실라를 쫓아와 소리를 지르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는 여자였는데 점치는 귀신이 들린 여자였습니다. 그가 바울과 실라를 보고 따라와서 소리를 지릅니다. 며칠 동안 계속해서 이 일이 반복이 되었습니다. 그 점치는 귀신들린 여자가 따라다니며 외치는 말이 이 사람들은 지극히 높은 하나님의 종으로 구원의 길을 너희에게 전하는 자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말을 소리지르며 계속해서 하는 것 때문에 복음을 전하는 일에 심각하게 방해가 되었습니다. 성경에서는 바울이 심하게 괴로워했다고 합니다. 마치 미친 것 같은 여자가 쫓아 다니며 소리를 지르니 어떻게 이야기를 할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바울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이 귀신을 그 여자에게서 쫓아 냅니다. 그것 때문에 그 여자의 주인이 돈 벌이가 사라져서 고소하고 결국 매를 맞고 감옥에 간 것입니다.

         점치는 귀신들린 여자의 이야기는 삽시간에 성에 퍼졌습니다. 모두가 다 이들이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종들이라는 사실을 구원의 길을 너희에게 전하려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정말 그런지를 그 말이 참인지는 그들이 진짜로 구원의 길을 전하는 지는 아무도 몰랐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지진으로 그리고 옥문을 여심으로 그리고 죄수들의 착고를 푸심으로 그리고 아무도 도망가지 않게 하심으로 오히려 간수의 죽으심을 막으심으로 하나님이 누구신지를 나타내신 것입니다. 간수는 귀신들린 여자가 하는 소리를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주의 깊게 듣지 않을 뿐만 아니라 믿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관심을 기울이지도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제 그는 그 말이 사실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살아계심을 나타내신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사건은 바울과 실라를 위로한 사건이 아닙니다. 정말 그들이 전하는 것처럼 하나님의 구원이 사실인가 하는 것을 증명하는 사건입니다. 간수는 그 사건을 보고 구원이 필요함을 인식하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내가 어떻게 해야 구원을 얻을 수 있습니까? 라고 질문하게 됩니다. 이 말은 내가 구원을 얻기 위해서 절대적으로 반드시 필요한 것이 무엇입니까? 라는 질문입니다. 바울은 간수의 질문에 주 예수를 믿으라 라고 말합니다. 이 말은 쉽고 간단한 것 같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바울이 주 예수를 믿으라 라는 말이 내가 믿는다고 말하면 되는 차원으로 한 것이 아닙니다. 여기서 예수 앞에 붙은 단어가 주입니다. 예수님이 주인이시냐는 물입니다. 예수님이 너의 주인이 되셔야 한다는 것입니다. 또한 그분을 믿는 다는 것은 그분에 대하여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30절 말씀에 주의 말씀을 전하게 됩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나고 들음은 그리스도 말씀입니다. 예수를 믿는 다는 것은 그분에 대하여 알아야 합니다. 그분의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그분이 누구신지 왜 이 땅에 오셨는지 왜 십자가에서 죽으셔야 했는지, 그 죽으심으로 이루신 것이 무엇이며, 그의 죽으심이 우리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되었는지 그리고 우리는 무엇을 믿는 것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들이 이러한 것을 모른다면 믿는 것이 아닙니다. 그냥 아는 것이며 어떠한 정보를 가지고 있는 것일 뿐입니다.

         본문의 마지막 34절에서 저와 온 집이 하나님을 믿음으로 크게 기뻐하였다고 합니다. 이 간수의 이야기는 한 개인이 어떻게 하나님을 만났고 어떻게 구원을 받았는가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이 이야기는 우리 모두의 이야기입니다. 왜냐하면 우리 모두에게는 우리를 구원해줄 주님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지금 당장은 아닐 지라도 언젠가 우리는 절망과 마주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우리의 인생에서 자신의 무기력함과 무능함이 현실로 다가오며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것이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그때에 주님께서 이 간수에게 찾아오셨듯이 우리에게 찾아오시지 않는다면 그는 그 절망 중에 죽게 될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내가 어떻게 해야 구원을 얻을 수 있습니까? 라고 외쳐야 되는 이유는 오늘 주님께서 이 복음을 통하여 여러분들을 부르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또한 내일은 우리가 확신하거나 우리가 소유하고 있는 날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십시오. 그리고 구원을 얻으십시오. 이것이 이 땅에 사는 동안 우리가 만날 수 있는 최고의 일이며 최상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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