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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구절은 사람들이 크게 두 개의 오해를 하는 구절들입니다. 첫 번째의 오해는 낙타와 바늘귀에 대한 오해입니다. 두 번째로는 사람은 할 수 없는 것을 하나님은 하실 수 있느니라 라는 말씀이 의미하는 것에 대한 오해입니다. 먼저의 오해는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보다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더 어렵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바늘귀가 무엇인가 하는 것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습니다. 바늘 귀라는 것이 바느질을 할 때 사용하는 바늘 구멍을 가리킵니다. 그렇다면 낙타가 바늘구멍에 들어가는 것이 더 쉽다는 것은 사실은 불가능한 것처럼 보입니다. 이것이 전혀 불가능한 것처럼 보이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바늘 귀라는 것을 그냥 두고 낙타라는 단어와 비슷한 것을 찾아보니 밧줄이라는 단어가 나오게 되었습니다. 또한 후대에 기록된 사본들에서 낙타와 비슷한 단어인 밧줄이라는 단어로 바꾸어 놓았습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밧줄이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쉽다라고 해석을 합니다.

         다른 해석은 바늘 귀라는 것은 바늘 구멍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바늘 귀라는 예루살렘에 있었던 작은 문을 가리키는 것으로 이 문은 작아서 이문을 통과하기 위해서는 낙타가 모든 짐을 풀어 놓아야 될 뿐만 아니라 무릎을 꿇어야 간신히 통과할 수 있는 문이라고 합니다. 심지어 어떤 분은 낙타의 혹조차도 잘라야 들어가는 문이라고도 합니다. 이것이 가리키는 것은 예루살렘에 들어가는 것 즉 하나님께 나아가기 위해서는 낙타가 모든 짐을 다 내려 놓듯이 우리의 모든 짐을 다 내려놓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또한 낙타가 자신의 무릎을 꿇고 기억서 들어가듯이 우리 또한 하나님께 무릎을 꿇고 겸손한 자세로 하나님께 나아가야 한다고 합니다. 심지어는 낙타가 자신의 혹을 떼어 내듯이 자신이 가장 소중히 여기는 것을 잘라내어야만 들어갈 수 있기에 잘라내어야 한다고 합니다.

         이러한 이야기들은 듣는 자들에게 그렇구나 혹은 맞아 라는 동의를 얻어 낼 수는 있습니다. 신자가 하나님 앞에서의 삶이 겸손함과 자기 부정과 속된 것을 버림이라는 제자도가 가리키는 것과 비슷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본문이 그렇게 말하고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낙타가 밧줄이라는 것도 사본적인 문제에서 후대에 변질된 기록이며 또한 바늘귀가 예루살렘의 한 문이라는 말도 11세기에 데오필락트라는 헬라인의 주석에 기록된 말일 뿐입니다. 즉 역사적으로 예루살렘에 바늘귀라는 문은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그렇기에 이 말은 역사적 허구입니다.

         그렇다면 본문이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에 대하여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우리가 살펴보아야 하는 것은 24절입니다. 이 구절에서 예수님께서 저를 보시고 말씀하시는 것을 봅니다. 마태복음에 의하면 그는 근심하면서 갔습니다. 이미 누가는 23절에서 심히 근심하더라 라는 말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24절에서 다른 사본에 근거하여 KJV과 표준 새번역에서는 근심에 사로잡힌 또는 큰 슬픔에 빠진이라고 번역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에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예수님을 만나 더욱 근심에 빠질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심히 근심하였다는 표현은 죽음의 원인이 될 정도의 슬픔입니다. 즉 너무나 죽게 될 정도의 슬픔이 가득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무슨 말씀이 이 청년을 죽음의 슬픔에 빠지게 만들었습니까? 네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누어 주고 나를 쫓으라는 것입니다. 이 말이 이 청년에게 죽을 정도의 슬픔이 된 것입니다.

         이 청년에게는 주님의 말씀이 마치 자신을 죽이려는 말씀과 같습니다. 그렇게 주님의 말씀을 받게 된 이유가 무엇입니까? 이 청년 안에 든 주님의 말씀을 죽기까지 대적하며 거부하는 세력이 그 안에 거하기 때문입니다. 이 청년의 심히 큰 슬픔과 근심은 자신의 내면에 있는 바뀌고 싶지 않으며 순종하고 싶지 않은 내면의 세력이 주님의 말씀과 충돌하기 때문입니다. 그는 자신의 소유를 지키기를 원했습니다. 다른 것은 다 포기해도 그것은 절대로 포기할 수 없으며 끊을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이 청년에게 있어서 자신의 소유는 영생보다 더욱 귀한 것이며 하나님의 나라 보다 더욱 소중한 것입니다. 그렇기에 이 청년은 심히 근심하며 돌아가는 것입니다

         이 청년의 이야기가 일반적인 적용을 가지고 있는 것은 그의 내면에서 일어났던 일들은 신자들의 삶 속에서 계속적으로 일어나고 있습니다. 주님의 말씀은 항상 우리에게 유익하게 들리지 않으며 항상 복된 말씀으로만 여겨지지 않습니다. 이유는 주님의 말씀이 옳지 않기 때문이 아닙니다. 오히려 우리 안의 죄성이 너무나 강하기 때문입니다. 우리 안에 주님의 말씀에 온전히 순종하고자 하는 마음이 아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죄를 사함 받았으며 새로운 사람이 되었지만 여전히 죄의 오염과 우리 안에 남아있는 죄의 세력으로 인해 우리는 도전을 받고 싸우고 있는 것입니다신자가 되었다는 것이 모든 하나님의 말씀에 아멘하며 완전히 순종할 수 있는 자가 되었다는 것이 아닙니다. 여전히 죄의 세력은 우리 안에서 거부하며 귀를 닫고자 하며 그것이 아니라고 외치고 있습니다. 심지어는 불쾌하게 여기며 화를 내며 분노하기도 합니다.

         세상에서 벌어진 첫번째 살인에 대하여 여러분들은 잘 아실 것입니다. 창세기 4 6절과 7절을 보면 가인은 화를 내었고 얼굴을 떨어뜨렸습니다. 그가 화를 낸 이유가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가인의 제사를 열납하지 않고 아벨의 제사를 열납했기 때문입니다. 그는 하나님께 화를 내고 있습니다. 자신이 원하는 대로 또는 자신이 바라는 대로 되지 않을 때에 인간의 죄성은 하나님을 거부하며 화를 내며 분노합니다. 이것이 타락한 후 인간의 죄성입니다. 7절에서 하나님께서는 가인에게 자신을 돌아볼 것을 말씀하십니다. 또한 그 안에 죄의 세력 호시 탐탐 그를 노려 죄가 죄악이 되지 않도록 죄가 발현되어 죄악된 행동으로 나타나지 않도록 경고하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인은 아벨을 죽입니다. 인간이 하나님을 떠난 후에 급속하게 죄성은 인간을 장악했을 뿐만 아니라 인간 깊숙이 뿌리 내리고 인간을 지배하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이 그렇게 순종적이지 않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늘 겉으로는 순종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속으로는 스스로 자신이 원하지 않고 순종하고 싶지 않은 것들을 걸러내며 자신의 육신에 기회를 주며 유익을 주고 있지 않은가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에 이 부자 청년처럼 마음이 근심하며 돌아가면 안됩니다. 마음의 문을 닫고 지금은 아니야 조금 더 즐기다가 다음부터 라는 말을 되새기며 말씀에서 멀어지지 마십시오. 이 모든 것은 우리가 죄의 세력에 굴복하고 있다는 것이며 사단이 우리를 유혹하고 있다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주일 말씀 요약 및 설교 영상

주일 말씀 컬럼 안에 설교 영상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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