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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본문은 3부분으로 나뉠 수 있는 데 첫째는 12-17절까지로 우상의 실체에 대하여, 둘째는 18-20절까지로 우상의 실체에 대하여 깨닫지 못하는 인간의 죄된 속성에 대하여 그리고 마지막 21-23절까지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이 누구신가? 그들에게 어떤 존재이며 어떠한 일을 하신 분이시며 이스라엘 백성들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 입니다. 먼저 12절은 철공에 의해 만들어지는 우상에 대하여 말씀하고 있습니다. 대장장이는 철을 숯불에 달굽니다. 그리고 쇠망치들로 모양을 만드는데 그의 강한 팔로 일하여서 만듭니다. 열심히 일하느라 그는 음식을 먹지 못하여 기력이 쇠진하였고 또한 물도 마시지 못하여 피곤하게 되었습니다. 당시에 우상을 만드는 자들은 우상을 만드는 동안 경건함을 유지하기 위해서 먹지도 않고 마시지도 않는 습관이 있었습니다. 12절이 의미하는 바는 우상은 사람을 주려서 기진하게 할 뿐만 아니라 피곤하게 한다는 것입니다. 인간을 기진하게 하며 피곤하게 하는 자가 누구인가 하는 것입니다. 반대로 하나님은 인간에 의해 만들어지는 존재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인간에 의해 도움을 받으며 인간의 수고에 의해서 만들어지는 존재 아닙니다. 오히려 하나님은 인간에게 힘을 주시어 기진하지 않도록 하실 뿐만 아니라 피곤하지 않게 하시어 인생을 살아갈 수 있는 능력을 공급해 주시는 분이십니다. 17:28 우리가 그를 힘입어 살며 기동하며 있느니라 너희 시인 중에도 어떤 사람들의 말과 같이 우리가 그의 소생이라 하니 여기서 기동한다는 말은 움직이며 존재한다는 뜻으로 우리는 하나님을 힘입어 살며 움직이며 존재한다는 말입니다.

         13절부터는 목수가 어떻게 우상을 만드는가에 대하여 설명합니다. 13절 목공은 줄을 늘여 재고 붓으로 긋고 대패로 밀고 정규로 그어 사람의 아름다움을 따라 인형을 새겨 집에 두게 하며 목수가 줄로 측량을 하고 철필로 선을 긋습니다. 그리고 대패로 다듬고 정규로 긋는 다고 하는데 정규는 한국말로 걸음쇠라는 것으로 영어로는 컴퍼스로 원을 만들어 사람의 형상을 만드는 작업을 하는 묘사합니다. 목수는 이렇게 만든 우상을 집에 둡니다. 여기서 집이라고 표현된 단어는 목수의 개인 집일 수도 있지만 NIV NASB는 신전으로 번역하고 있습니다. 이 의미는 우상은 인간에 의해 세밀하게 가공되어 제한된 장소에 놓여지게 되는 존재를 의미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제한된 공간에 인간에 의해서 놓여지는 존재가 아니십니다. 하나님은 특정한 장소에만 제한되게 계시는 분이 아니라 온 우주 가운데 편만 즉 가득하신 분이시기에 그분은 장소의 제한이나 공간의 제한을 받지 않으시는 분이십니다.

         14절을 보면 그는 혹 백향목을 베이며 혹 디르사나무와 상수리나무를 취하며 혹 삼림 중에 자기를 위하여 한 나무를 택하며 혹 나무를 심고 비에 자라게도 하나니 목수가 우상을 만들 나무를 준비하는 모습인데 중요한 단어는 우상을 만들 목수에 의해 나무들이 택해 진다는 것입니다. 나무들 중에서 취해진 것이며 그들을 위해서 취해진 것입니다. 이 나무들은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삼림 중에서 저절로 자란 나무거나 혹은 자신들이 심어 놓은 나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둘 다 목수들이 자라게 할 수 없습니다. 나무들이 자라게 하시는 분은 오직 하나님 한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우상과의 비교는 하나님은 우상 처럼 인간에 의해 심겨지거나 취하여 선택되어진 존재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오히려 하나님은 인간을 선택하실 뿐만 아니라 취하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주권적 존재이시며 그 주권은 인간들 뿐만 아니라 자연계와 온 우주에까지 미치는 권세입니다. 그렇기에 우상과 비교할 수 없는 분이십니다.

         15절부터 17절까지는 우상을 만드는 자들의 어리석음에 대하여 설명하는 내용입니다. 우상을 만들며 섬기는 이들의 어리석음과 무지함의 원인이 무엇인가를 설명하는 것이 18절 말씀인데 그들이 알지도 못하고 깨닫지도 못함은 그 눈이 가리워져서 보지 못하며 그 마음이 어두워져서 깨닫지 못함이라  이유는 그들이 절대로 알지도 못하고 깨닫지도 못하기 때문입니다. 여기서의 부정형은 절대적 부정을 사용하여 절대로 알지 못하고 깨닫지 못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들은 스스로 저절로 자란 나무를 취하여 그 중 한 부분은 자기 몸을 더웁게 하고 한 부분은 음식을 만드는데 화목으로 사용하고 그리고 남은 것은 우상을 만들어 숭배하며 절하기도 하는 것입니다. 이들은 이 나무에게 엎드려 절하고 경배하며 기도합니다. 자신들을 구원해 달라는 것입니다. 17절에 자신들을 구원해 달라는 기도는 인생에서 만나는 어려움이나 고통에서 벗어나게 해 달라는 기도입니다. 자신들이 심은 나무를 잘라 일부는 따뜻하게 하기 위한 땔감으로 일부는 음식을 만들기 위한 땔감으로 그리고 나머지는 우상을 만들어 절하며 경배하며 기도하여 자신들을 위기와 어려움에서 구출해 달라고 비는 것은 너무나 어리석은 것입니다. 그 손으로 만든 우상이 무엇을 해 주기를 바라는 것 자체가 미련한 것이며 불쌍한 것입니다.

         그런데 왜 인간들은 신이 아닌 것들을 여전히 섬기며 하나님 아닌 것들을 여전히 하나님으로 삼아 섬기며 예배하며 기도하는 것입니까? 18절에 절대로 알 수가 없고 절대로 깨닫지 못하는 것은 그 눈이 가리워져서 보지 못하며 그 마음이 어두워져서 깨닫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그 눈이 가리워져서 보지 못한다는 말은 직역하면 그 눈에 회반죽으로 그 눈들 위에 덕지덕지 붙여 놓았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주어가 그 자신이 입니다. 자신이 자신의 눈에 회반죽을 붙여 놓아 볼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마음이 어두워졌기 때문에 그는 절대로 깨달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18절에 이어서 19절 말씀이 그 원인에 대하여 계속적으로 설명합니다. 19절 마음에 생각도 없고 지식도 없고 총명도 없으므로 내가 그 나무의 얼마로 불을 사르고 그 숯불 위에 떡도 굽고 고기도 구워 먹었거늘 내가 어찌 그 나머지로 가증한 물건을 만들겠으며 내가 어찌 그 나무토막 앞에 굴복하리요 말하지 아니하니 우상을 만드는 자들과 그 우상을 숭배하는 자들은 마음에 생각도 없고 지식도 없고 총명도 없다고 합니다. 마음에 생각도 없다는 말은 직역하면 그 마음이 절대로 돌아가지 않는 다는 말입니다. 마음이 누구에게로 어디로 돌아가야 합니까? 22절을 보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너는 내게로 돌아오라고 합니다. 여기서 돌아오다라는 단어가 같은 단어입니다. 우상 숭배자들은 왜 어리석게도 우상을 섬길 수 밖에 없으며 헛된 것을 찾게 되는가 하면 그들은 돌아갈 분을 알지 못하며 그들이 돌아갈 곳이 어디인지를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깨달을 수 있는 지식도 총명도 없는 것입니다.

         신자가 되었다는 것은 절대로 알 수 없는 그것을 알게 되었다는 것이며 그 눈에 스스로 회반죽을 붙여 눈 멀었던 것이 떨어져 나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 눈에서 스스로 붙여 놓은 회반죽을 떼어 내셨을 뿐만 아니라 그 어두워진 마음에 하나님을 아는 영광스러운 빛을 비추심으로 깨닫게 되어진 것입니다. 이것은 놀라운 은혜이며 감사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렇게 하심으로 우리가 돌아갈 곳이 어디이며 누구인가를 알게 하심으로 하나님께로 돌아가게 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신자란 자리는 복된 것이며 영광스러운 것입니다.

         21절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백성들에게 선포하시며 나타내시는 자신과 그의 백성들 사이의 관계입니다. 21절 야곱아 이스라엘아 이 일을 기억하라 너는 내 종이니라 내가 너를 지었으니 너는 내 종이니라 이스라엘아 너는 나의 잊음이 되지 아니하리라 우선 하나님은 이 일들을 기억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일들이 가리키는 것은 앞서 말한 것도 포함이 되겠지만 이제 말씀하실 내용들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기억해야 되는 것은 너는 내 종이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종이라는 표현은 하나님의 소유물인 동시에 하나님을 섬겨야 하는 자라는 의미입니다. 그 다음에 나오는 내용은 왜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을 소유이며 하나님을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하는가에 대한 대답으로 내가 너를 지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짓다 라는 단어는 창세기 2:7절에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라는 단어와 같은 단어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창조하신 창조주이시기에 주인이실 뿐만 아니라 인간을 하나님을 섬겨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주인 되신 하나님은 얼마나 자비하시며 인자하신 분이신가 하는 것은 그분이 지으시고 만들어 놓으시고 잊으시거나 모른척 하시거나 무관심한 것이 아니라 너는 나의 잊음이 되지 않을 것이다 즉 내가 너를 기억하리 라는 것입니다. 너는 나의 잊음이 되지 않는 다는 말에서 강조해야 되는 것은 부정형으로 절대로 잊지 않을 것이며 계속적으로 잊지 않고 기억할 것이라는 점입니다. 하나님 아닌 것들은 우리를 잊을 수 있습니다. 우리를 버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은 절대로 자기 백성을 버리거나 잊으시거나 모른척 하지 않으십니다. 이것이 그분의 약속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자유를 외치며 그분을 찬양하며 22절처럼 하나님께서 너는 내게로 돌아오라는 말에 기쁨으로 응답할 수 있는 것이며 그렇게 해야 하는 것입니다. 22절은 우리가 그분께 돌아갈 수 있는 이유가 나옵니다. 그분은 우리의 허물을 빽빽한 구름의 사라짐 같이 사라지게 하시는 분이시며 우리의 죄를 안개와 같이 쓸어 버리실 것입니다. 우리는 오직 하나님께 돌아가는 것으로만 죄에서 자유를 얻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평안을 얻을 수가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우리가 하나님께 돌아갈 이유가 내가 너를 구속하였음이라 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구속하다 라는 단어는 고엘 이라는 말로 우리 대신에 값을 지불해 주시는 분이 되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친히 우리를 대신해서 값을 지불하셔서 우리를 건져내신 것입니다. 이 말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우리의 죄의 값을 지불하신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이와 같으시니 분이 어디에 계십니까? 누가 우리 하나님과 같으며 누가 우리 하나님을 대신 할 수 있습니까? 우리가 왜 하나님께로 돌아가야 합니까? 왜냐하면 그분은 우리의 창조주 이심이며 주인이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를 위해 값을 친히 지불하신 분이시며 우리를 절대로 잊지 않으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지금 이러한 하나님을 섬기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신자는 감격과 기쁨으로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이며 섬길 수 있는 것입니다.  

 


주일 말씀 요약 및 설교 영상

주일 말씀 컬럼 안에 설교 영상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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