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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에서 제자들을 세상의 빛이라고 말씀하셨는데 왜 예수님께서 자신의 제자들을 세상의 빛이라고 하셨는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다른 성경에서 세상과 빛이 무엇인가에 대하여 말하고 있는 부분을 찾아 보아야 합니다. 요한복음 11절부터 5절까지 보겠습니다. 요한이 말하고 있는 것을 자세히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요한은 지금 예수님에 대하여 말하고 있습니다. 4절을 보면 예수님 안에 생명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 다음으로 그 생명에 대하여 설명하는데 그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5절에서 그 빛이 어둠에 비취었습니다. 그런데 어두움이 깨닫지 못하더라고 합니다. 요한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생명이 되신 예수님께서 세상의 빛으로 오신 것은 어두움 가운데 있는 자들에게 빛을 비추심으로 생명을 얻게 하시려 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이 깨닫지 못하였다는 것입니다. 요한의 설명을 통하여 우리가 이해할 수 있는 것은 빛과 세상이라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입니다. 다시 돌아와서 마태복음 5 14절에서 예수님께서 너희들은 세상의 빛이라는 의미를 살펴보면 이것은 어두움 가운데 있는 곳에서 너희들은 나에게 생명을 부여 받은 빛이 되어진 존재라는 의미입니다.

        우리가 빛이 된 것은 우리의 노력이나 수고의 결과가 아닙니다. 참빛이신 예수님을 만남으로 그분에게서 그 생명을 얻었기 때문에 비로서 우리가 빛이 되어진 것입니다. 14절에서 예수님께서 너희들이라는 구별되고 차별된 표현을 쓰신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모든 사람이 빛이라고 말씀하신 것이 아닙니다. 너희들 혹은 너희들만입니다. 이 제한된 의미는 예수를 믿고 따르는 자들이 그렇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에서 우리가 주의 하고 촉각을 곤두세워야 할 부분은 무엇이 그 분별법인가?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너희는 소금이다 그리고 빛이다 라고 말씀하신 것은 행위에 근거한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얼마나 착하게 살고 양심에 거리낌 없이 살았으며 윤리적으로 도덕적으로 흠이 없이 살았냐? 하는 것이 그 기준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소금이나 빛은 자기의 의로 그 수준에 이르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예수를 만났기 때문에 발생하는 일들이라는 것입니다. 착하게 살고 선하고 바르게 살고자 하는데 그 원인이 내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 때문에 그런 일들이 발생하고 일어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고 말씀하신 것의 의미가 바로 그것입니다. 우리가 빛인 것은 빛된 모습이 나타나는 것은 우리 안에 생명이 들어 왔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 5절에서 말하는 것처럼 빛이 어둠에 비취되 어둠이 깨닫지 못하더니 라고 합니다. 우리는 어두움 가운데 있었고 그 빛을 깨닫지 못하던 자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그 빛을 깨닫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그 빛이 우리 안에 들어와 우리가 그 빛을 나타내는 자들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우리의 빛된 행위들은 그의 생명이 자신 안에 있음으로 해서 발생되는 행위요 나타나는 선함이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물어야 할 것은 우리가 어떤 빛된 행위를 하고 있는가의 물음이 아니라 내가 예수를 만났는가? 하는 것에 대한 물음이어야 합니다. 내가 주님을 만나 새로워졌는가? 내가 빛인가 하는 물음을 던져야 하는 것입니다. 내 안에 새로운 생명이 있는가 하는 물음을 던지는 이유는 그래야 내 삶의 모든 행위가 빛이기 때문에 행하여 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말해 주는 것이 바로 그 다음 내용입니다. 갑자기 예수님께서 산 위의 동네가 숨기우지 못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산 꼭대기에 동네가 세워졌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산 꼭대기에 세워진 이 동네는 그 어떤 것으로도 숨겨질 수가 없다고 하십니다. 숨겨질 수 없는 동네가 의미하는 것은 감출 수 없는 것에 대한 이야기 입니다. 다른 말로 나타나질 수 밖에 없고 드러날 수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라고 말씀하신 후에 감출 수 없다, 본질상 드러날 수 밖에 없다 라는 말을 하신 것은 빛이 그렇다는 것입니다. 빛된 너희들은 감출 수 없으며 숨길 수 없으며 나타나며 드러나야 할 존재들이라는 의미입니다. 그렇기에 감춰진 다면 빛이 아닌 것입니다.

        그 다음 구절인 15절은 빛의 목적에 대하여 입니다. 사람이 등불을 말 아래 두려고 키는 어리석은 사람은 없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말 아래라는 말은 됫박을 말하는 것으로 큰 그릇을 생각하시면 됩니다. 큰 그릇으로 덮어 두기 위해 등불을 켜는 어리석은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등불을 켜는 이유는 등경인 등잔대 위에 올려 놓아 온 집안에 비취게 하기 위해서 입니다. 이것은 빛을 의도적으로 감추거나 숨기는 것은 어리석은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아무도 등불을 그렇게 사용하거나 그런 목적과 의도로 등불을 켜지 않기 때문입니다. 숨길 의도로 등불을 키는 경우가 없기에 숨겨진 빛이라면 빛이 아닌 것입니다.

        14절과 15절을 바르게 이해하지 못하면 16절의 바른 해석이 가능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앞의 두 구절은 16절의 결론을 만들어 내는 원인이 되기 때문입니다. 16절에서 예수님은 너희 빛을 사람 앞에서 비취게 하라고 합니다. 그런데 여기에 앞서 한 말이 있는데 이같이 입니다. 이같이 라는 말은 14절과 15절의 의미를 종합하는 것입니다. 빛으로써의 본질을 가진 자로써 그리고 그 목적에 합한 자로써 빛이 비취는 기능을 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16절의 빛이 사람들 앞에 비취는 것으로 나타난 착한 행실은 참 빛을 경험하며 그 빛을 소유한 자만이 그 행실을 나타낼 수 있으며 그 행실은 오직 참 빛의 강렬한 빛을 반사함으로 나타나는 것일 뿐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아무리 착한 행실을 한다고 해도 그것은 우리의 영광이나 자랑이 될 수 없으며 오직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도록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빛인 신자의 삶의 모습이며 판별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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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ycnjc 2014.02.25 15:25
    3주에 걸쳐 빛과 소금에 대한 설교 감사합니다. 결국 본질과 용도에 관한 혼동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소금의 용도는 부패 방지이고, 빛은 밝히는 것입니다. 잘못 해석하면 우리가 세상을 정화하고 밝혀 깨끗게 해야 한다는 소명감?을 말씀하시는 듯 하나, 실은 본질적으로 우리 자신들이 소금, 빛 그 자체라는 의미이겠지요. 그것도 우리의 노력의 결과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입니다. 마치 우리가 구원을 은혜로 받은 것과 같은 맥락으로요. 결국 우리는 우리의 본질이 무엇인지 깨닫게 된다면, 그리고 우리의 삶의 모습을 비추어 본다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로써 어떻게 사는 것이 그분께 영광이 되는지 알 수 있을 것입니다.(혹 제 의견이 잘못 되었으면 수정해 주세요, 목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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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경호목사 2014.03.04 11:10
    예 맞습니다.
    중요한 한가지는 맛을 잃어 버린 소금과 숨겨지고자 하는 빛에 대한
    주님의 엄중한 경고를 잊지 말아야 합니다.

주일 말씀 요약 및 설교 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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