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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우리가 읽은 말씀은 과부의 헌금으로 잘 알려진 말씀입니다. 그렇기에 본문에 대한 일반적인 이해는 헌금이 주된 내용이라고 생각합니다. 41절을 보면 예수님께서 연보궤의 반대편에 앉으셨습니다. 거기에 앉으신 이유는 사람들이 헌금하는 것을 보시기 위해서 입니다. 보실새라는 말은 계속해서 지켜보고 있었다는 의미입니다. 당시에 헌금함은 여인의 뜰에 놓여 있었습니다. 이 헌금함은 모두 열세개가 있었다고 합니다. 이 헌금함은 놋쇠로 되어 있었는데 일설에 의하면 헌금함이 놋쇠로 된 이유가 당시의 헌금이 금이나 은이나 동이나 구리등의 금속이었기에 소리를 내게 해서 사람들의 시선을 끌게 함으로 드리는 자들이 더 많이 드릴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었다는 말도 있습니다. 이 헌금함중 9개는 성전세나 제물을 대신한 헌금을 바치는 용도로 사용되었고, 나머지 4개는 가난한 자를 돕는데 쓰일 재원마련을 위해 설치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보고 계실 때에 부자들이 와서 헌금을 합니다. 본문에서 넣는데 라는 말은 계속 던진다는 의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계속해서 소리가 났을 것입니다. 42절을 보면 예수님께서는 한 가난한 과부가 와서 두 렙돈을 헌금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렙돈은 당시의 화폐가치로 따져서 참새 반마리를 살수 있는 돈이었습니다. 이것이 의미하는 것은 지극히 작은 돈이라는 것입니다. 43절과 44절을 보면 과부의 헌금을 보신 후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불렀습니다. 그리고 말씀하시기를 가난한 과부가 연보궤에 헌금을 한 모든 사람들 보다 많이 넣었다고 합니다. 44절에 원문에는 왜냐하면 이라는 접속사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풍족한 중에 넣었고 과부는 그 구차한 중에 자기 모든 소유 곧 생활비 전부를 넣었기 때문이랍니다. 구차한 이란 궁핍한 중에서 라는 말로 이 과부가 얼마나 가난한 상태인지를 말해 주는 것입니다. 또한 생활비 전부 라는 말은 생명을 유지시키는 것 이라는 뜻으로 이제 더 이상 그녀의 생계를 위해서는 남은 것이 없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여기서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예수님께서 부자와 과부의 헌금을 비교하셨다는 것입니다. 비교하였다는 것이 부자들의 헌금을 비난 하시고 과부의 헌금을 칭찬했다는 말은 아닙니다. 일반적으로 예수님께서 부자들을 인색한 자로 비난하신 것으로 이해 되는데 예수님은 부자들이 풍족한 가운데 드린 것에 대하여 비난하지 않고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무엇을 말씀하시려는 것일까에 대하여 관심을 기울여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불러서 헌금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불러 가르치고자 하신 것이 헌금을 과부처럼 해야 한다 라는 교훈이라면 제자들에게 이 말씀은 과부와 같이 자기의 모든 소유를 바치라는 의미가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제자들은 이미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을 쫓고 있어서 바칠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10:28절은 베드로가 우리는 모든 것을 버리고 주를 좇았다고 고백하는 부분입니다. 제자들은 이미 모든 것을 바친 자들입니다. 그런데 과부의 헌금을 통하여 다시 전부를 드리라고 말씀하시는 것일까요? 과부의 두렙돈 이라는 이야기를 이해하기 위해서 좀더 우리의 시각을 넓혀야 합니다. 본문의 문맥을 봅시다. 38절부터 40절을 보면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가르치고 계심을 봅니다. 무엇을 가르치는가 하면 서기관들에 대하여 삼가라고 가르치고 계십니다. 그들의 무엇을 조심하는가 하면 긴 옷을 입고 다니는 것을 입니다.  여기서 긴 옷이란 발목까지 오는 숄로 권위를 드러내는 옷을 의미합니다. 또한 복잡한 시장에서 문안 받는 것 그리고 회당의 상좌에 앉아 자신의 지식과 학식을 자랑하는 것, 잔치의 상석에 앉아 사람들 앞에 높아지는 것들을 좋아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조심하라는 것입니다.

        40절에는 서기관들은 과부의 가산을 삼킨다고 합니다. 예수님은 서기관들이 과부의 가산을 삼키는 도적들이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과부의 가산이라는 것은 재산을 말하는 것으로 이들은 법률적 자문을 해주며 돈을 뜯기도 하고 과부의 재산을 관리해 주며 돈을 빼앗으며 과도한 헌금을 강요함으로 재산을 빼앗기도 하였습니다. 즉 종교를 이용하여 이들은 과부들의 남겨진 재산을 모두 훔쳐내는 자들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바르게 가르치며 실천해야 할 서기관들은 사회의 약자인 과부들의 재산을 탈취하여 자신들의 배를 불리며 과부들을 돌보지 않고 마땅히 해야 할 책임을 지고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사회의 가장 약자이며 자신의 생계 조차도 이어갈 수 없는 가난한 과부는 하나님께 자신의 전부를 드립니다.

        누가복음 21 1절부터 4절은 오늘 본문과 병행 구절입니다. 누가복음 21 5절 예루살렘 성전이 무너질 것을 예언하는 예수님의 말씀이 나옵니다. 이 성전은 미석과 예물로 지어진 것인데 헌물이라는 말은 헌금입니다. 이 헌금은 서기관들과 같은 종교지도자들의 탐욕과 욕망으로 강요된 헌금이었습니다. 마치 과부가 두 렙돈의 헌금을 바칠 수 밖에 없는 것처럼 말입니다. 과부의 두 렙돈에 대한 이야기의 핵심은 당시의 탐욕에 눈먼 서기관과 사회의 약자를 돌보지 않고 성전을 아름답게 꾸미기에 급급한 종교지도자들을 향한 질타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생각해야 할 중요한 이야기는 그런 종교적인 타락과 문제에도 불구하고 예수님께서는 과부의 헌금을 그냥 두셨다는 것입니다. 종교 지도자들이 타락했으니 네가 해야 할 종교적 행위를 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씀하지 않으셨다는 것입니다. 과부의 헌금에 대하여 그녀는 전부를 드렸다고 말씀하심으로 그녀의 수고와 애씀에 대하여 인정하셨습니다. 오늘날 교회의 타락을 도처에서 봅니다. 참으로 슬프고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신자들이 오히려 이러한 일을 비난과 정죄를 하며 그것을 이유로 교회를 등지며 자신이 해야 할 신앙적 책임과 의무를 다하지 않는 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교회가 타락했다고 신자의 삶을 등한시하여 책임과 의무를 포기하는 것은 신앙적 게으름과 나태함을 가리기 위한 핑계일 뿐입니다. 세속주의에 물든 교회를 바라보며 그러한 교회가 되지 않도록 그리고 바른 신자의 삶을 통하여 참된 것이 무엇인지 나타나도록 애쓰는 것이 진정한 신자의 자세입니다.


주일 말씀 요약 및 설교 영상

주일 말씀 컬럼 안에 설교 영상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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